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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고트 May 03. 2019

남국의 새벽

"오징어요! 아주 큰 놈입니다."

 팔라우의 코로르 공항은 90년대 지방 시외버스터미널을 연상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어울렸다. 그 이상 나은 비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게 몇 년 전이었으니 지금은 확장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멀뚱멀뚱 서 있는 중형 비행기는 우등 버스처럼 보였고, 좌석은 그보다 못했다. 출발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줄곧 밤이었다. 어떻게 무사히 착륙했나 싶을 만큼 활주로는 어두웠다. 카메라 렌즈엔 습기가 찼다. 수화물용 컨테이너 벨트는 미국 통조림 공장에서 뜯어 와 재활용한 것 같았다. 짐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고 무사히 나왔지만, 팔라우에서 가장 저렴한 호텔로 가는 버스는 짐이 나오는 레일만큼 얇은 왕복 이 차선 도로 위를 달렸다. 아무 일 없을 것을 알면서도 마주 오는 대형 트럭이 없길 바랐다. 시계는 졸음운전이 흔한 새벽 4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막 지난 시기였다. 눈 한 번 내리지 않는 섬 곳곳에 코가 빨간 사슴이니, 선물 보따리를 쥔 노인이니, 여왕의 손길에 이 더위에도 살아 움직일지 모를 눈사람이니 두루 장식돼 있었다. 겨울이 없는 곳에서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는 어쩌면 이뤄지지 않을 꿈같은 것이 아닐까. 사계절 속에 사는 사람의 편견으로 저 혼자 애달팠다. 기적이 어찌 눈 오는 땅에만 있으랴, 예수도 눈이 오지 않는 땅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던가. 줄로 엮인 전구는 비가 내리든 눈이 오든 어둠은 다 같은 어둠이라며 하던 가락대로 반짝였다. 소리 없이, 번갈아 색동옷을 걸치며, 고요하게. 갑자기 집에 두고 온 겨울이 보고 싶기도 했다.


 주물로 통째 짜 놓은 듯한 콘크리트 건물, 그 위에 불안하게 얹힌 슬레이트 지붕, 비에 젖었다 말랐다 반복하다가 얼룩이 생겨버린 가건물의 베니어판, 배가 불러 나태해진 나뭇잎, 외진 곳에 숨겨진 타이어 없는 자동차, 잔뜩 녹이 슬어도 신의 바다로 나갈 날만 기다리는 줄에 묶인 배를 보았다. 땅 것들의 나이 듦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적도에 준하는 태양과 쉴 새 없는 바람과 한껏 수선을 떨다가 도망치는 스콜 앞에 속수무책으로 터전을 내어놓은 사람들을 그려 보았다. 그들은 파도에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모래성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달리 수가 없다는 체념. 막 포장을 뜯어 빛이 나던 한때를 기억하기에 피하지 못할 애상. 남국은 겨울보다 슬픈 곳일까.



 호텔은 그런 분위기에 직접 한발 디딜 수 있을 만한 곳이었다. 어차피 가장 크고 비싼 곳도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천장에서 도마뱀 한 마리가 심야의 오수를 즐기다가 사람이 들어서자 에어컨 구멍으로 줄달음질 쳐버렸다. 없던 용기가 생겨 꼬리를 휙 낚아챈다면 정말 소문대로 꼬리만 남겨놓고 떠나버리려나. 항상 잘 도망치는 사람이 부러웠다. 남국은 그러기에 좋은 곳이라고 상상했었다. 찰스 스트릭랜드도 그런 편견을 심어준 인물 중 하나였다. 이곳이 타히티는 아니지만, 나는 벽에 눅눅한 기운이 흐르는 방이 금세 마음에 들었다. 짐을 푼다 만다 허둥지둥하는 사이 일출이 가까워졌다. 암막 커튼을 그대로 둔 채 잠들어야 했지만, 무슨 생각에서인지 커튼을 젖혔다. 빛이 새어 들어왔다. 아니, 빛은 저기 지평선 나지막한 산 너머에서 도움닫기 중이고, 여기 창가에 서린 건 연한 상처색을 띠는 빛의 숨 끝이었다. 나는 잠이 확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처음으로 남국에서 맞이하는 새벽이었다. 남국에 환상이 있었다면, 그건 ‘남국’이라는 단어 자체에 줄곧 마음이 끌려왔다는 일종의 습관이었다. 내가 사는 도시보다 아래 있는 지도의 작은 점들, 창밖에 그림자로 자라는 야자수들, 이슬이 맺힌 유리창과 얼음이 녹아 투명한 층이 생긴 주스 잔들, 발 디디면 태양이 이글이글 세상을 넘보는 문턱들, 바람에 실려 온 갯내에 무심코 돌아보게 되는 표백된 건물들, 누군가 적셔놓고 해변에 남겨둔 새하얀 수건들. 그런 것들이 남국이란 말 속에 숨겨져 있었다. 바베이도스, 말리부, 괌과 모리셔스, 또는 타히티. 내가 가보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기약 없는 이름들과 함께. 그런데 그 어느 곳보다도 멀리 있다 싶던 남국의 장막이 지금 눈앞에 열린 것이다. 부푼 빵 같은 적운이 땅으로부터 솟아오르고, 수면엔 보랏빛, 분홍빛 잔영이 어른거렸다. 호텔에 붙은 선착장의 전등이 채 꺼지기 전이었다. 해가 지기 직전이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없는 시간이라면, 해가 뜨는 지금은 모든 것들이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시간이라 했다. 아, 누가 그런 표현을 썼더라, 프루스트였던가. 그가 이 순간도 글로 써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해가 뜨지 않고 영원히 그 자리에 멈춰줬으면 싶었다. 



 제주도를 제외하면, 제주도를 같은 카테고리에 포함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남국은 팔라우가 처음이었다. 이곳엔 거대한 에메랄드가 녹아 숨 쉬는 바다가 있고, 산속 호수로 길을 잘못 든 스펀지처럼 독 없는 해파리들이 살았다. 밤낚시를 갔다가 팔뚝만 한 상어를 낚았는데 뱃사람은 상어의 빨판을 시험해 보겠다며 갑판에 턱턱 내리치다가 바다로 돌려보냈다. 자랑스럽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안해졌다. 그 순간만 제외하면 나는 온통 섬과 바다로만 짜인 물의 세상도 나쁘지 않겠다는 걸 알았다. 섬이나 다이빙 포인트를 오가는 작은 보트의 쌍발모터는 소리만큼 효율적이었다. 포말은 순백이었다. 길고 긴 해변에선 온갖 사람들이 물에 젖은 몸을 태양에 내어놓고 말렸다. 얼룩이 진 베니어판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도 질리지 않지만, 낡은 건물을 잇는 유일한 포장도로와 그 주변이 나에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남국은 도피처가 아니었다. 남국의 사람들은 어떤 면에선 버티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선물로 주어진 바다를 지키기 위해 개발을 포기했고, 섬은 노화를 인정했다. 나는 인내를 모르고, 희생을 알지 못한다. 여기선 배울 게 많을 듯했다.


 발코니로 나가자 첨벙첨벙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선착장에서 페트병에 단 실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가 빛을 받아 거뭇한 끼를 벗고 있는 뭔가를 들어 올렸다. 소리쳐 물었다, 무엇을 잡으신 거예요? 오징어요! 아주 큰 놈입니다.


 그것이 남국의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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