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생폴 레스토랑 무통 누아흐Mouton Noir
무통 누아흐Mouton Noir. 검은 양. 활기찬 호스트가 추천해준 식당은 우리가 묵은 B&B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돼지 어깻살과 단풍당, 그리고 고수 잎을 넣은 파이로 2009년 메이플 로드 콩쿠르(Les Créatifs de la Routes de l'érable)에서 수상을 한 쉐프가 이곳을 운영하고 있었다. 꽤 유명한 곳인 듯 실내는 거의 만석이었다. 벽에 잔뜩 달라붙은 덩굴이 액자틀에 새겨놓은 장식처럼 보였기 때문에 창문을 들여다 보면 시시각각 움직이는 그림을 눈앞에 둔 것 같았다. 불어로만 쓰인 메뉴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지불해야 하는 음식값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 (나 자신을 포함하여) M을 데려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망설임을 끝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한 무리가 입구에서 메뉴판을 노려보던 우리에게 휘파람을 불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격려해 준 덕분이기도 했다. 그들은 메뉴까지 추천하면서 아직도 그 맛이 남아있다는 양 입으로 “쯥쯥”하는 소리를 냈다. 도저히 속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매력적인 소리였다.
그런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자 예약이 끝나 자리가 없단다. 작은 동네 레스토랑이라고 너무 얕봤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예약을 해야만 식사를 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던 것이다. 모르는 것도 죄가 될 수 있다는 말은 그 가혹함만큼 드문 일일 것만 같지만, 사실 생각보다 자주 우리에게 적용되곤 한다. 발길을 돌리다 미련을 못 버리고 재차 메뉴판을 들여다 보았다. M이 몇 개의 단어를 해석해 주는 동시에 어색한 발음으로 길고 긴 불어 메뉴를 읽어가다 보면, 초점이 맞지 않은 영사기 화면처럼 음식의 형체가 아른거렸다. 머릿속에 차려진 그 요리는 얼마간 향도 나고 질감도 있으며 막 오븐이나 프라이팬에서 꺼낸 듯한 온기도 품고 있었다. 그때, 매니저가 우리를 따라 나왔다. 마침 두 자리가 있다고, 어서 들어오라고. 이 시각, 유일한 두 동양 여행자의 실망한 표정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나 보다.
그 모든 시적인 이름들 가운데 M은 스테이크를, 나는 오늘의 생선 요리를 주문했다. 전식, 본식, 후식과 음료가 함께 나오는 코스였다. 제일 먼저 우리 앞에 놓인 건 애피타이저 전에 공짜로 내어주는 아뮤즈 부셰였다. 한 미국 시트콤에서 처음으로 들었던 아뮤즈 부셰는 참 생소한 말이었다. 하긴 그 단어를 들은 시트콤 속 주인공도 그게 뭐냐는 표정이었으니까, 그리 부끄러워 할 건 아니라고 믿는다. 밥상머리에 앉기 전에 과자를 집어 먹는다면 등짝이나 얻어 맞을 일이겠지만, 격식을 갖춘 언어의 힘 덕분에 없던 품위까지 덩달아 입는 날이 여기에 이르렀다. 조류인지 어류인지 모를 튀김옷 안의 고기는 그 이름만큼이나 색다른 맛이었다.
추구하는 건 별 달린 식당인 것만 같은데 분위기는 푸근했다. 촛불에 의지해야 할 만큼 어두운 실내에서 누구도 점잔을 빼지 않았다. 테이블마다 오늘의 요리에 관해 반복해서 설명하던 직원들은 주방에 가까이 있을수록 서로 잡담도 하고 웃음도 터트리며 시끌시끌한 분위기에 한 몫 거들었다. 가족끼리 온 테이블도 많았다. 서로를 향한 그들의 미소와 눈빛을 보면 절로 목구멍이 마르며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뢰와 믿음(나는 이 두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고 싶다), 평온과 위안. 각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충분히 인지하고 거기에 충실히 따르는 성숙함은 얼마간 무대 너머의 연출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좋은 연극이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오래 시선을 끌었다.
파이 안에 고수 풀을 넣는 대범함을 보이고(나는 고수를 아주 싫어한다), 세간이 그것을 인정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호박 수프 위에 고수 한 줄기가 올려져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으깬 감자와 채소를 곁들인 스테이크, 연어와 이름 모를 흰살생선을 올린 오징어 먹물 파스타도 적당한 간격을 두고 식탁 위에 올랐다. 생선이 너무 짜서 의아했지만, 짠기가 하나도 없는 검은 면과 함께 먹어 간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이내 깨달았다. 서로 다른 재료가 섞여 있어도 한 접시 안에선 그 모든 게 하나의 요리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긴 그것이 그렇게 생소하고 어려운 주장은 아니었다. 달걀노른자를 터트려 밑에 깔린 김치 볶음밥에 비벼 먹어야 제맛이라는 이치를 매우 세련되게 표현한 셈이랄까. 잘만 응용하면 국밥과 따로국밥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지 몰랐다.
배가 불러도 신기하게 계속 들어가는 디저트와 커피가 나오고 나서, 웨이트리스가 묵직해 보이는 티 박스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네 시의 차' 티백이 종류별로 들어 있었다. M은 언제부턴가 오후 네 시를 가장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그게 '네 시의 차'라는 낭만적인 상표를 보기 전이었으니, 가격도 저렴하고 풍미도 좋은 이 차를 덩달아 좋아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M은 우리가 이미 여러 번 마셔본 메이플 티를 골랐다. 새벽 네 시에 마셔도 무방할, 카페인이 없고 향이 달큼한 차였다. 이미 내 몫의 커피를 거의 다 비워버린 나는 단체석이 마련된 뒤뜰 테라스로 나와 잠시 찬 바람을 쐬었다. 덩굴은 없어도 식당 내부는 여전히 시시각각 움직이는 그림 같았다. 무통 누아흐, 검은 양이라. 어감이 좋았다. 양고기가 들어간 요리도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검은 양은 아니었을 것이다. 밑도 끝도 없는 그 이름을 왠지 모르게 자꾸 불러 보았다. 으슬으슬한 바람 때문인지 촛불의 낮은 색온도 때문인지 내가 앉아 있던 자리가 아직도 다 식지 않았을 메이플 티처럼 따뜻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