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아침을 바랐다

아침과의 불화는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by 베르고트

M은 B&B의 주인과 불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알아듣지 못할 그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도, 나중에 M에게 전해 들으면 된다는 식으로 아예 모른 척하기도 어중간했다. 탁자 위에 놓인 모닝빵 하나를 집어 잼을 발라 먹다가 손에 진득한 게 묻었다.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소박한 사교계의 배경으로 쓰였음직한 거실을 괜히 감탄하며 둘러보기도 했다. 대화의 주제는 우리의 간단한 이력과 이 공용 저택의 아름다움에 관한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보, 아침 식사는 어디에서 하면 되는가. 전날 산책에서 이미 봐둔 적 있는 꽤 괜찮은 레스토랑이었다.


오전 8시도 안 된 시각이었다. 6시 알람에 맞춰 일어나 부지런히 떠날 채비를 했다. 캐리어를 정리하는 소리가 거슬렸는지 옆방에서 쿵쿵 벽을 두드리기도 했다. 이 조용한 마을에서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건 반칙이라는 의미였다. 휴가를 떠나온 사람의 아침잠을 깨워 미안한 일이었고, 나또한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버릇은 없다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옆방과의 대화 통로는 얇은 벽 한 장밖에 없었다. 그걸 두드렸다간 예의가 사라진 새로운 대화의 국면으로 접어들 게 뻔했다. 소리를 죽일 시간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못 들은 척, 이쪽의 사정도 있다는 걸 에둘러 항변하며 준비를 마치고 거실로 내려왔다. 그렇게 M과 주인의 대화가 시작되고 나서야 나는 하품이 멈추지 않는 이른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아침을 좋아하지 않는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야 하는 삶을 형벌이라 여긴다 하더라도 치기어리다고 탓하지 않길 바란다. 살면서 언젠가, 아침에 가져다 붙이는 모든 예쁜 말에 꿍꿍이가 있을지 모른다고 믿어 버렸다. 희망이라든가 활기라든가.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는 낙관 내지는 사소한 데서 찾을 수 있다는 행복이라든가. 아침을 위한 찬가는 내게 있어 어떻게든 삶을 견뎌내라는 선동처럼 들렸다. 수많은 부품으로 뚝딱뚝딱 움직여야 하는 사회의 생존 프로파간다라고 여겨졌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떴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단순한 동작 하나가 내게는 커다란 돌덩어리를 드는 것보다 힘겨웠다.


잠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먹고 사는 일에 치열하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휴일이나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여행지에선 아침도 제법 배길 만했으니까. 때로는 찬란하기까지 했으니까. 캄캄한 새벽 구름을 뚫고 손을 뻗던 남국의 태양, 지나다니는 스쿠터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 한가운데 누워있던 누렇고 커다란 개, 쇼윈도 안쪽에 의자와 탁자를 차곡차곡 쌓아뒀던 어느 인적 없는 상점가.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그 모든 기억이 다 아침의 것들이다. 그런 날에는 하루의 남은 시간을 세며 여유를 부리는 게 즐거웠고, 그 시간을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을 느끼기도 했다.



‘부케’라는 이름의 식당은 숙박비에 포함되어 있다고하기엔 미안할 정도로 괜찮은 곳이었다. 몇 가지 아침 메뉴 중 하나를 내키는 대로 고르고 나면 차나 커피도 마실 수 있는 만큼 계속 내어주었다. 테이블도, 누런 재생지로 만든 냅킨도, 적당히 날이 빠지고 흠이 생긴 식기도 마음에 들었다. 빵, 시금치, 연어와 수란이 카드처럼 포개진 음식을 칼로 잘라 단면을 감상하면서 나는 몬트리올로 여행을 오기 전 몇 달 동안 먹었던 편의점 음식들을 떠올렸다. 때로는 기꺼이,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먹었던 그 모든 비닐 포장지 속 식단에 비하면 여기엔 감동적이기까지 한 정성이 담겨 있었다. 오늘 아침은 막연한 희망을 품기에 좋은, 동전 저금통 속에서 가끔씩 발견할 수 있는 오백 원짜리 동전 같은, 그런 희소한 날의 하나임이 분명했다.


아침과의 불화는, 어쩌면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나 역시 예쁜 말로 매일 아침을 수식할 수 있을 만한 삶을 살고자 했다. 그러나 항상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곳으로 가야하는 아침에 순응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 비탈길을 뛰어 내려가야 하고, 지하철 시간표나 버스 도착 시간 알림에 민감해져야 할까. 단 일이 분 때문에 도착 시각이 십여 분 씩 달라지는 심오한 통근 체계를 어떻게 납득해야 할까. 아니, 진짜 문제는 아침 자체에 있는 게 아니지 않을까? 그저 표준에 맞추기엔 내가 너무 게으르고 무른 성미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아니 해서가 아니라 아니 되어서 이런 곳까지 오고 말았다. 문자 그대로 여기, 북미의 어느 작은 마을까지 흘러온 것이 그런 맥락이었다. 이런 곳에서라면 침대에서 일어나는 그 단순한 동작 하나가 마침내 돌덩어리를 옮긴 것처럼 어떤 의미를 지닐 것 같았다. 맑고 찬 공기를 한 줌이라도 더 들이마시기 위해,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거리의 여백을 한 톨이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기꺼이 눈을 뜰 수 있을 것 같았다. 함께 여행을 하는 M은 예상 밖으로 부지런을 떠는 나를 보며 놀라곤 했다. 그녀가 본 나의 부지런함은 결국 조급함의 뒷면이었다. 이런 아침을 다시는 맞이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더도 덜도 아니고 이 시간을 일상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 딱 그것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