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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고트 Apr 06. 2017

뒤늦게, 여름

그러니 매 초가 비현실적일 수밖에

 그들은 그해 여름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 그 남자는 서울에 있었고, 그 여자는 몬트리올에 있었다. 여느 때처럼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도 있는 여름이었다. 남자가 아침 여섯 시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면, 거의 지구 반대편에서 여자는 그날의 저녁을 만들었다. 빌려 쓰는 주방에서 하는 요리는 속도와 효율이 중요했지만, 음식을 접시에 예쁘게 담아내는 습관마저 저버릴 수 없었다. 아니면, 시내를 한참 걸어 다니다가 눈에 띄는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도 했다. 여자는 식당이 마음에 들면 지도에 저장을 해두었다. 그 여자의 몬트리올 지도는 온통 노란 별로 가득했다.


 아마 거의 비슷한 시간에 그 남자는 택시를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그 여자의 하루 식사비용보다 훨씬 많은 돈을 택시미터기에 쏟아 부으며 서울의 반대편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때로 지각을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도시를 횡단하는 지하철을 타기도 했다. 남자는 한참 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여자와 주고받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더위를 느낄 새는 없었다.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도로에서 차들은 억지로 끼워맞춘 블록처럼 움직일 줄 몰랐다. 한여름조차도 그 틈에 끼어 보이지 않았다. 엔진 소리와 경적 소리, 호들갑을 떠는 라디오 DJ의 목소리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벅찼다. 가끔 몸이 흔들려 실눈을 뜰 때면, 남자는 이 상황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놀라워했다. 창문에 머리를 들이밀면 유리창이 부서지던가 머리가 부서지던가 속이 다 시원할 것 같았다. 분명 나는 여기 없는 것이라고, 불운한 택시기사가 빈차로 정체 구간에 들어서는 실수를 한 것이라고, 남자는 눈을 감았다.



 설거지를 하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여러 경로 중 하나를 선택해 걸으며 여자는 남자가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길 기다렸다. 몬트리올도 한여름이었다. 하지만 그 여자의 눈에도 여름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해가 지면 바람이 시원해 졌다. 건물과 건물 사이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식어 가고, 한 뼘이라도 햇볕을 더 받기 위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젊은이들은 테라스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뜨거운 속을 마저 식혔다. 올 여름은 유난히 길고 덥다며 시민들은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서울의 여름을 기억하는 여자에겐 창문 열 일도 없는 계절일 뿐이었다. 어쩌면 창문을 열지 않음으로써 여름을 무시하면, 그만큼 여름이 빨리 지나갈 것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여름이 가면 몬트리올로 오게 되어 있었다. 지도의 노란 별은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의라고 해야 할까, 수업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뭐라 정의하기 힘든 오전 일과를 끝내면 남자는 거꾸로 서울을 횡단하는 지하철을 탔다. 일을 하러 갈 시간이었다. 10분 정도 떨어진 역으로 걸어가며 어마어마한 일조량을 몸으로 받아냈다. 세상이 노랗게 제자리에 들러붙을 만큼 강렬한 태양이었지만, 남자는 때로 춥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남자의 경우, 그가 여름을 무시했다기보단 여름이 그를 무시했다고 쓰는 편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여름은 남자에게 줄줄 흐르는 땀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남자는 몽유병 환자처럼 도시를 돌아다니며 할일을 해나갔다. 꿈속에선 땀이 흐르지 않으니까. 남자는 그 자신이 진실로 없는 존재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또는, 영혼의 중요한 일부가 벌써 바다와 대륙을 건너 몬트리올로 넘어가 그곳에서 다시 자신과 합쳐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남자와 여자는 종종 다투기도 했다. 서로 이 여름이 가지 않길 바란다고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면 열세 시간의 시차가 영으로 맞춰지고, 서울의 여름과 몬트리올의 여름 사이에 문이 열렸다. 바람은 저만치 앞에서 불어와 저만치 뒤로 사라져 버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여름이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고 여겨질 때도 있었지만, 바람은 꼬박 사랑한다는 말을 실어 저편에서 오고 이편에서 갔다. 두 사람이 마침내 여름을 무시하거나 여름에 무시당하지 않는 순간은 그때뿐이었을 수도 있다. 이 지랄 같은 여름이 문제라며, 대저 여름이 무슨 죄인가, 차라리 시간과 공간의 탓을 해야 하지 않나 뒤늦게 후회하기도 했던 그 순간들.





 가을의 몬트리올에 인디언 서머가 찾아온 날, 마침내 두 남녀는 그해 여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퀘벡 시티로부터 먼 길을 달려왔기 때문에 바닥이 말랑말랑하게 밟힐 만큼 노곤한 상태였다. 하지만 초겨울을 밀어낸 따뜻한 바람이 도시 전체를 들뜨게 했고, 두 남녀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자꾸만 걷고 싶어졌다. 차이나타운은 이곳이 몬트리올이라는 사실을 금세 잊게 했다. 엄청난 높이의 1000 드 라 고셰티에흐1000 de la Gauchetière 빌딩은 여기가 뉴욕일지도 모른다고 두 사람을 속이려 들었다. 맥길 대학이 보이는 분수대는 노란빛 물줄기를 공중으로 쏘아 올리며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거기서 맥길 콜레주 가街 위로 나붓거리는 여름날 저녁 공기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이제 막 퀘벡 여행을 마쳤기 때문에 여행의 감흥이 얇은 치즈처럼 두 남녀의 마음을 덮고 있었다. 그것은 긴 여행 후에 집에 돌아와 느끼는 묘한 이질감이었다. 실은 몬트리올에 돌아온 것 자체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일이었지만, 여자에게 몬트리올은 이미 여행지가 아니었고 남자도 슬슬 같은 기분을 느낄 차례였다. 그런데 뒤늦게 두 사람에게 여름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니 매 초가 비현실적일 수밖에.



 계절을 처음 느껴본 아이처럼 뭔가가 머릿속에 몽글몽글하게 차올라 깊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곳은 가을의 나라였는데. 오늘은 현재에서 잠깐 유리된 날인가 봐. 두 남녀는 듣는 사람도 없는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건물을 덮었던 햇살이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도시의 소음은 그늘 속에 맴돌며 음악으로 진화해 갔다. 해의 움직임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시민들은 그런 사소한 변화 따위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있음이 분명했다. 남자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에 끌려다녔던가, 마치 남의 일 보듯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여기에 오기 위해 꾸역꾸역 버텨야 했던 그 시간들을 무감각하게 기억해 냈다.


 제법 걸은 탓일까, 티셔츠가 땀에 조금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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