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베르고트 Oct 28. 2017

내가 훔쳐야 했던 가을

바로 이 동네처럼 보이는, 읽히는, 쓰인 글이기를 바랐다  

 나는 여전히 몬트리올의 공용 자전거 빅시를 타고 있었다. 그게 실수였음을 안 것은 플라토라 불리는 지역의 중심부로 방향을 돌리고 오 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몬트리올에 와서 비교적 잘 먹고 잘 놀고 다녔지만, 그렇다고 자전거로 단숨에 언덕을 오를 수 있는 체력이 생기지는 않았다. 나는 가파른 경사에 순종하며 안장에서 내렸다. 그리고 억울하게 짐짝 신세가 된 자전거를 끌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방향을 바꿀 수도 있었다. 집에 들렀다 나온 이후로 계산하자면 달려온 거리가 아까울 만큼 많이 온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언덕을 따라 이어진 생 튀베흐 가Rue St. Hubert는 40리터짜리 배낭을 메고 있든 40파운드짜리 자전거를 끌고 있든 몇 분의 고생쯤은 잊으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몬트리올에서 지내는 내내 이 도시에 관한 글(바로 이 글)을 쓰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 생 튀베흐 가의 언덕 한 단락에서 그 생각이 마침내 진전을 보였다. 바로 이 동네처럼 보이는, 읽히는, 쓰인 글이어야 하겠다고, 나는 숨을 고르며 확신했다.





 이미 다섯 개의 달, 두 번의 계절을 몬트리올에서 보낸 M은 매일 우리가 다녀야 할 시내 곳곳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안내하는 장소에는 어느 정도 그녀의 취향이 배어있었고, 그보다 더 자주 그녀가 나의 것이라고 여겼던 취향이 숨겨져 있었다. 그녀의 수첩은 내가 몬트리올에 왔을 때 가야 할 곳으로 빼곡했다. 그중 절반은 그녀가 이미 갔던 곳이었고, 나머지는 꼭 가보고 싶었으나 나와 함께 가기 위해 남겨둔 곳이었다. 가끔은 함께 길을 걷다가 충동적으로 들어간 카페나 식당, 서점도 있었다. 그런 경우도 즐거웠지만, 나는 대체로 그녀의 선택에 나를 맡겼다. 몬트리올은 온전히 그녀에게 달려있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M의 안목이 뛰어난 것일 수도 있고 그저 M이 선택했기에 나도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녀가 안내한 곳들은 내 마음에 꼭 들었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앙큼해진 나는 이번엔 내가 그녀에게 소개할 곳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니콜의 집에서 한 번도 택하지 않은 방향으로 핸들을 돌린 것이었다. 평범한 주택가였고, 사실 이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다.



 제법 부티가 나는 석조가옥들은 현관에 매달린 반 층짜리 계단도 나무가 아니라 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차들은 규정 속도 이하로 달렸다. 신호등은 초록과 빨강 사이를 굼뜨게 오갔다. 햇살을 받은 이파리도 초록과 빨강 사이 어디쯤에선가 빛났다. 신호가 바뀌고 바람이 불면 쌀알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건물 위를 쓰다듬는 나뭇잎은 꼭 색깔이 있는 그림자 같았다. 때때로 신호등을 흉내 내며 제 색깔을 바꾸는 이파리도 보였다. 그게 다 햇빛의 장난이었으나 나는 몇 번이고 속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림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닮은 오후랄까. 앞 장에서 벌어진 소동이 일단락되며 복을 받을 사람은 복을 받고 평온해져야 할 사람은 평온해진 결말의, 공을 들인 삽화 같았다. 그러면서도 얼마간, 쓸쓸한 잉크를 적신 붓질도 되어 있었다. 행인들은 아이들 놀이처럼 햇볕을 따라 걸어 다니다가 그늘로 들어가면 이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좁은 골목, 작은 상점들이 사람들을 삼켜대고 있었다. 절대로 잔혹하지도, 비극적이지도 않은 이야기처럼 그들은 엇, 하고 사라졌다가 짜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나타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방인인 나는 질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향한 질투인지, 완벽한 풍경 그 자체를 향한 질투인지, 아니면 이 순간을 훔쳐 과거로 도망쳐 버릴 현재를 향한 질투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눈앞의 삽화만큼 사람을 녹이는 글을 써야 한다는 나의 바람이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누구나 그런 장면을 맞닥뜨린 적 있지 않은가. 마음의 빈틈으로 비집고 들어와 눈으로 보아도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장면. 환상인가 싶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다시 보아도 사라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는 장면. 하지만 이미지로든 헛된 글 몇 줄로든 절대 있는 그대로 남길 수는 없는, 마치 비밀과도 같은 그런 장면.


 사람들은 너무 쉽게 그런 장면을 마음에 남기라고 말한다. 나 또한 그렇다고 믿을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 말이 ‘최선을 다하면 성공한다’는 말 만큼이나 공허한 주장에 지나지 않음을 안다. 내 마음은 너무도 작아서 짧은 순간이라 할지라도 나를 둘러싼 세상을 담아낼 여력이 없다. 남는 것은 인상뿐. 소파에 찍힌, 막 자리를 뜬 누군가의 체온 같은 희미한 흔적뿐이다.



 M에게 그녀가 모르는 몬트리올을 선보이려던 나는, 혼자서 이런 장면을 목격한 것도 모자라 그것을 전달해 줄 능력도 없었다. 하릴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다시 이곳을 찾는다 하더라도 지금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을까? 잡화점, 서점, 찻집이나 샌드위치 가게 같이 눈에 보이는 유형의 목적지를 찾아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플라토 지역Le Plateau-Mont-Royal은 생활자가 아니고서야 그 경계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범위가 넓었다. 나와 M이 며칠에 걸쳐 돌아다닌 길들이, 서로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음에도, 이 지역 안에 포함되었음을 깨닫고 놀라웠다. 오래된 건물 벽엔 커다란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그 때문인지 아닌지 예술가의 거리라는 별명도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삭막한 구조물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곳을 예술가의 거리라고 부를 수 있을지, 훗날 포틀랜드에서 (역시 예술가의 거리라는 별명이 붙은) 앨버타 스트리트를 걸을 때도 어리둥절했었다. 하긴 예술가가 한 명도 없는 동네에서 누가 앞장서서 그 큰 벽화를 그리겠느냐마는.



 빅시를 끌고 – 중간에 가까운 스테이션을 찾아 반납해 버렸지만 – M과 함께 간 적 없는 거리를 헤매던 나는 이십여 분 전에 지나온 부촌과는 전혀 다른 주택가로 접어들었음을 깨달았다. 머지않아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질 것 같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쥐와 비바람이 뜯어 먹어 흠집이 난 널빤지와 기둥 따위가 질긴 넝쿨에 파묻혀 있었다. 얇은 운동복 차림의 청년은 갈색 바람을 가르며 조깅을 했다. 몸이 불편한 여인이 지팡이 끝으로 낙엽을 쿡쿡 찌르다 갈림길에 접어들었다. 어떤 식당은 불을 다 꺼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고, 어떤 공예품 가게는 불을 다 켜놓았지만 주인이 자리에 없었다. 한쪽에선 하수도관을 교체하는 공사장에서 울리는 탕탕탕, 아스팔트 깨는 소리가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멀어지는 퍼레이드의 북소리처럼 아련한 소음이었다.



 결국, 그 길 어딘가에서 내가 M에게 소개하기로 한 곳은 스시 모모라는 이름의 일식집이었다. M에게 주소를 알려주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몽 후아얄Mont-Royal 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녀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지하철역으로 달려갈 것이었고, 나는 모퉁이 스타벅스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방금 본 풍경들, 방금 본 색상들, 방금 맡은 냄새와 기억들, 방금 지나친 시간들에 관하여.


 독자가 M 단 한 명뿐이라도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온전히 전달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불능을 재확인하느라 애꿎은 커피만 금세 바닥이 났다. 아마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시인밖에 없을 것 같았다. 시어만이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고, 시로써만 어루만질 수 있는 개념과 감정과 경험이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인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시인이 아니었다. M도 스시 모모는 처음 알게 된 곳이라 했으나 내가 자전거를 오르락내리락하며 혼자 걸은 길의 절반 정도는, 그녀도 이미 홀로 걸었던 길이었다.





 M이 나에게 보여준 몬트리올은 나에게 몬트리올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가을이 올 때마다 그곳에 가고 싶어지는 것은 그 모습 그대로 몬트리올을 재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내 개념 안의 도시 경계선을 좀 더 넓혀보고 싶은 욕구도, 아니면 그냥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백일몽도 얼마씩 공평하게 작용한 탓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구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일상의 작은 무언가라도 공유하거나 공유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음을 알았던 M을 닮고자 함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도 나는 참 서투르게 배웠다.



 혼자 플라토 지역을 다녔던 날, 그날의 오후에 나는 처음으로 가을을 소개받은 기분이었다.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정확한 표현은 거기까지가 한계다. 나는 불과 이십여 분 거리에 있는 M에게도 내가 만난 가을을 인사시키고 싶어 안달복달했었다. 내가 훔치기라도 해야 했을 가을은 탕탕탕, 아스팔트를 부수는 소리와 함께 어딘가로 솟아 도망가 버렸다. 내가 시인이 아닌 것이, 결국 몬트리올에 관한 이 모든 글들이 그날 생 튀베흐 가부터 시작된 언덕과 닮지 않은 것이 나는 몹시 아쉽고 미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멀리 데려다줄 탈것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