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의 여행

건조기에서 막 나온, 뜨거운 만두 같은 세탁물

by 베르고트

세탁기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새집 화장실은 작았고, 베란다 배관은 뚫을 수도 없을 만큼 막혀 있었다. 원룸처럼 싱크대와 세탁기를 나란히 놓을까 했지만, 그쪽 배관도 좁아 거품이며 옷 먼지며, 헹굼 단계에서 쏟아져 나올 배수량 때문에 역류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겨우 이 년 썼고 앞으로도 십 년은 넘게 쓸 수 있을 세탁기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급한 대로 아기 빨래용으로 선물 받은 벽걸이 세탁기를 돌리기로 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쌓이는 빨랫감을 처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세탁기가 크고 무거운 장식대가 되자 (잘 코팅된 하얀 나무판을 올리자 꽤 예뻤고, 아내는 그 위에서 차를 내린다) 주변에 있는 세탁소, 정확히 말하면 동전을 넣고 직접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는 곳을 찾을 명분이 생겼다. ‘셀프 빨래방’, ‘코인 런드리’, 뭐라 불러도 좋았다. 적당히 가까운 곳 한 군데, 꽤 가까운 곳 한 군데. 세탁기 없는 사람이 많은 동네일까? 한 번에 몰아서 빨 생각으로 차로 사오 분 거리에 있는 곳을 찾았다. 밝고 깨끗하고, 문을 열면 뭐라 말할 수 없이 보드랍게 부푼 향기가 났다. 잠시 여행을 떠나 온 감미로운 기분에 젖었다. 명백하게 일상이고 반복인 노역을 불과 1Km 남짓 떨어진 곳에서 재연하는 것만으로도 권태가 사라졌다. 어쩐지 향수가 일기도 했다. 미적인 면보단 기능에 더 중점을 둔 거대한 드림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나는 백일몽을 꾸는 듯했다.




출장 배정자는 와이키키 해변에서 한참 떨어진 호텔에 내 방을 잡아놓았다. 멀리서 보면 주차 타워와 구분이 되지 않는 밋밋한 건물이었다. 외벽은 한참 빨지 않은 침대 시트 색깔이었고, 건물의 윤곽선은 수직으로 쌓아둔 레고 블록을 닮았다. 주변엔 온통 엇비슷한 빌딩뿐이었는데, 중심으로부터 밀려 나온 소외된 자들의 도피처 같았다.


아파트라는 말이 더 어울리진 않을까, 복도를 조금만 어슬렁거려도 이 호텔에 모인 이들이 장기투숙자임을 알 수 있었다. 우쿨렐레의 간지러운 가락과 가스등의 너울거림에 황홀하게 반짝이는 눈빛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로비에는 젖은 옷차림으로 돌아다니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으나 한낮이라면 해변에서 이곳까지 걸어오는 동안 물기가 다 마를 테니 부질없는 걱정이다 싶었다. 로비의 분위기는 하와이라기보단 태국이나 라오스, 거기서도 소도시의 여행자 거리에 밀집한 게스트하우스와 비슷했다. 그런 점에서, 덧붙여 섬 전체에 넘실거리는 기대와 희망에 찬 신혼부부들의 아우라에서 몇백 미터는 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 호텔이 금세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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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동안 와이키키 해변을 걸어 다니며 유명한 호텔들의 사진을 ‘기록’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의 전부였다. 11월이었다. 밤바람은 외투의 지퍼를 목 위까지 올려야 할 만큼 서늘했다. 빈 맥주 캔 더미에서 새 캔을 찾아 외부 수영장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수영장은 폐쇄된 지 오래인 모양이었지만, 어쨌든 옥상 난간을 따라 걸으며 호놀룰루의 이면을 내려다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가끔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바로 옆 주차 빌딩 안을 휘젓는 헤드라이트 불빛, 맞은 편 열린 창문 사이로 펄럭이는 하얀 커튼과 그 밑에 깔린 거칠거칠한 황색 카페트, 가로등도 없는 뒷골목에서 들려오는 술 취한 남자의 고성,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커질 때마다 입구가 열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술집, 그 앞에 모인 젊은 남녀의 흥청거림, 우울한 코발트블루 구름과 그 위로 깜빡이는 비행기의 붉은 항해등, 알라와이 운하를 따라 조깅을 하는 재빠른 그림자들, 어디선가 미끄러지는 타이어와 그 위로 덮쳐드는 클랙슨 소리, 바람의 것인지 사람의 것인지 모를 끝없는 웅얼거림과 먼 메아리들, 그리고 이미 내 뒤에 있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텅 빈 코인 런드리. 큰 창을 통해 세탁실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세탁기가 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자리를 뜬 누군가가 그 안에 제 감정도 넣어두고 간 것처럼.


가끔씩 실체를 드러내는 옷가지 속에서 몇십 번 입어 낭창거리는 맨투맨 티셔츠 한 장을 구분해 낼 수 있었다. 나도 문득 빨래를 하고 싶어졌다. 저 빨래의 주인처럼 지금 내 기분도 깨끗하게 헹궈 어딘가에 널어두면 좋을 것 같았다.






집에서 빨래는 내 담당이었다. 처음엔 적당량의 세제를 넣는 게 어려웠다. 액체 세제 뒷면에 인쇄된 적정 투입량 조견표는 해석이 불가능한 수학 공식 같았다. 요리할 때와 비슷하게 계량은 감으로 했다. 나는 레시피에 쓰인 양보다 조금씩 더 넣는 버릇이 있는데, 음식이야 내가 이 작은 세계에 어떤 재앙을 불러들였는지 바로 알고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만, 빨래는 그렇지 않았다. 평소보다 옷감이 좀 더 반들반들하다는 느낌이 들면 세제든 유연제든 뭔가를 너무 많이 넣은 것이었다. 별로 개의치는 않았지만.


동네 빨래방은 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따로 넣을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었다.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자판기에서 일회용품을 살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개량은 알아서 되는 모양이었다. 섬유 유연제는 내가 쓰는 것보다 남이 쓰는 것이 향기가 더 오래간다는 착각이 있다. 옷에서 나는 낯선 향기가, 팔을 꿰고 머리를 집어넣을 때 코끝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 벌써 기다려졌다. 여행 중에 처음 보는 세탁 용품을 살 때도 그런 기대감에 부풀곤 했었다.




방콕의 숙소에서 닷새간 모인 빨래를 세탁기 안에 넣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제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세탁실 안에 자판기가 있어야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오후 세 시가 조금 안 된 시각이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며 한풀 고집이 꺾인 사람처럼 햇살이 비껴들어 왔다. 관상용으로 심은 야자수의 그림자가 길어져 있었다. 뒤편에 있는 자그마한 야외 수영장에선 한 아이가 물을 첨벙거리며 환성을 내질렀다. 굼뜬 오후였다. 당황했지만 걸음은 느긋하게 로비로 향했다. 세제를 팔진 않는다고 했다. 대신 건너편 구멍가게에 가보라고 했다.



가게 카운터엔 열 살 내외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휴대전화로 TV쇼를 보며 앉아 있었다. 열 걸음이면 충분한 실내를 두 바퀴 정도 돌았지만 주인이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황급히 들어온 백인 청년이 차가운 생수를 건네자 아이는 바코드를 찍고 돈을 받았다. 그때야 내가 누구와 거래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나는 향기가 그려진(?) 플라스틱 통을 집어 들었다. 흔들어 보니 가루가 들어있는 것 같긴 한데 태국어로만 쓰여 있어 세제라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혹시 영어 할 줄 아니?”

“응, 알아.” 너무나 당연한 걸 묻는다는 당돌한 말투였다.

“세제는 어디 있어?”

“세, 뭐?”


아이는 detergent, 그러니까 세제를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쩐지 미안했다. 세제가 있냐고 묻기 전에 나 또한 한영사전에서 그 단어를 찾아봤기 때문이다. 열 살 꼬마나 나나 태어나서 영어로 세제를 말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빨래할 때 넣는 거 말이야.”

“아, 그건 여깄어.”


아이가 가리킨 곳은 지금껏 찾아볼 생각도 못 했던 카운터 아래 진열대였다. 보통 껌이나 사탕이나 작은 초콜릿 바가 놓여있기 마련인 그곳 말이다. 세제 포장지엔 과연 옷이 펄럭이는 그림이 인쇄돼 있었다.


“그럼 이건 뭐야?”


나는 방금까지 흔들고 있던 플라스틱 통을 내밀어 보였다.


“그건 몸에 바르는 거야.”


그러면서 아이는 팔에 뭔가를 바르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이 몹시 귀여워 필요도 없는 바디 파우더까지 살 뻔했다.



아이는 카운터에 위에 올려놓은 세제와 섬유 유연제의 바코드를 야무지게 찍었다. 나처럼 바로 건너편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외국인 여행자들을 대하며 그들에게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얼마나 다른 환경인지. 거리에서 외국인을 보면 신기해서 몰래 구경하기도 했는데, 그들은 대체로 모르몬교 전도서를 들고 다니는 선교사들이었다. 아이는 나보다 훨씬 넓은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한동안 이 동네를 떠날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여행자들이 그들의 세계를 이 작은 구멍가게로 가져올 것이었다. 가게를 나서며 친밀한 마음을 담아 또 보자는 인사를 건넸다. 이미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눈을 돌린 작은 주인은 한마디 대꾸도 없었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그늘에 앉아 책을 읽었다. 건조까지 마치고 포근하게 익은 옷을 챙겨 가면 방안에 어떤 향기가 감돌지 궁금했다. 야자수 그림자인지 바람인지 뭔가가 발끝을 간지럽혔다. 여행이 끝났는데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여행을 떠나는 상상,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부리고 밀린 빨래를 처리한 후 널어두는 상상, 그 사람을 미치게도 하고 살아가게도 하는 향기에 취해 잠드는 상상이 조금은 현실로 이루어진 것도 같았다.






빨래의 또 다른 난관은 건조다. 수건은 잘 마르지 않으면 퀴퀴한 걸레가 됐고, 속옷이나 티셔츠에서 그런 냄새가 나면 하루가 찝찝했다. 건조대가 꽉 찰 정도로 빨래는 너는 일은 정교한 블록 쌓기나 다름없었다. 큰 빨래와 작은 빨래를 번갈아 걸고, 서로 겹치거나 닿지 않도록 안배하고, 날씨에 따라 건조대를 놓는 자리를 바꾸기도 하고. 빨래 초보였던 나는 결혼 후 섬유 유연제를 처바른다고 해서 모든 결과물이 이상적인 향기를 내는 건 아님을 배웠다. 하지만 어떤 노력을 기울이든 장마철에 습도가 치솟으면 도루묵이었다. 땡볕이 내리쪼이는 주택가에서 마당에 걸린 빨래가 바람에 빙그르르 돌아가며 말라가는 한가로운 풍경은 아파트에선 재현할 수 없는 낙원이었다. 그럴 때마다 건조기 생각이 많이 났다.


새집에서 다탁이 된 세탁기엔 건조 기능도 있었다. 시간이 좀 오래 걸리고, 어디서 공사를 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 집 베란다가 원흉이었다는 육중한 진동을 느껴야 하고, 무엇보다 세탁량보다 건조량이 적어 탈수가 끝난 후 일부는 덜어내야 건조가 제대로 됐다. 요즘 가전제품 코너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건조기는 미세먼지, 과습한 여름, 동시에 더 길고 혹독해진 겨울 따위의 변화된 환경을 에둘러 주지해 준다. 기후가 좋지 않은 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건조기를 써 왔다지만, 그래서 처음으로 여행 중에 빨래를 할 때 왜 세탁기가 두 종류나 있나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한국은 빨래하기 참 좋은 나라였다. 이제 그 시절이 모두 지나가 버렸다.


빨래방에서 이불 두 채를 넣어도 넉넉한 거대한 건조기를 마주하며 최신식 노트북이나 카메라를 눈앞에 둔 것처럼 희열을 느꼈다. 기계에 열광하는 게 현대인의 숙명이라지만, 건조기에 그런 경의를 표할 줄은 몰랐다. 어쩌면 건조기를 써 보고 싶어서 빨래방에 오려던 것인지도 모른다. 전기세 걱정이나 소음 걱정이 없는, 24시간 열려 있는 이곳에서 언제든지 세탁 바구니를 통째로 비울 수 있었다. 건조대와 테트리스를 할 필요도 없었다.




조용한 저녁이었다. 오로지 우리만 이야기하고 있기에 세상은 벽과 상의하여 아무런 소리도 들여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거실엔 미약한 울림이 있었다. 내가 같은 말을 한 번 더 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숨을 죽인 건 누군가 반 층 아래 현관문을 두드렸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우리를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이곳은 우리가 살던 도시가 아니었고, 거의 아무도 우리를 알지 못했다. 나와 그녀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당신이 방금 한 말이 노크를 한 게 아니냐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갔다.


문을 열자 니콜의 남자친구가 서 있었다. 며칠 전 니콜 대신 집 열쇠를 건네줄 때 보여줬던 낙천적인 표정이 아니었다. 걱정, 불편함, 성가신 무언가를 대하는 얼굴이었다. 그는 어젯밤 세탁기를 돌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밤중에 빨래를 하면 안 된다고, 진동이 아래층까지 전해질 만큼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그는 몬트리올 출신 치고 영어를 잘 하진 못했다. 애를 쓰는 게 느껴졌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고, 정말로 미안했다. 가끔 어떤 말은 너무 잘 들리길 바라서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아래층 여자에게서 임대인으로, 임대인에게서 지금 파리에 있는 니콜에게로, 니콜에게서 맞은편 건물에 사는 남자친구로 이어졌을 긴박하고 엄중한 메시지의 여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는 한 번 더 주의를 요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밤중에 빨래를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제는 이상하게 빨래를 돌려야겠다는 고집이 생겼다. 몬트리올에서 보낼 날은 길었고, 챙겨 온 속옷과 양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분 전환 같은 게 필요하기도 했다. 이제 여행 중에 하는 빨래는 집을 떠올리게 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진 삶으로 몸을 던지는 의식이나 다름없었다. 밤 9시 반에 시계를 봤고, 11시를 조금 넘겨 끝내면 괜찮겠지 싶었다. 그 안일함이 누구도 두드릴 일 없는 현관문을 열었다. 상황이 격식을 갖춘 경고로 끝났다는 데 나와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호텔도 아니라 집을 빌렸으므로 니콜의 남자친구로부터 열쇠를 받을 때부터 욕실 안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다는 사실이 특별할 이유는 없었다. 건조기는 세탁기 위에 놓여 있었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그녀가 원래 그렇게들 배치한다고 일러주었다. 기가 막힌 공간 활용이라고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건조기가 뒤뚱거리다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상상을 피할 순 없었다.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 다이얼과 버튼을 유심히 들여다보았고, 다급하다고 하면 좋을 기분으로 첫날 바로 밀린 빨래를 했다.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에서 동전으로 빨래를 돌릴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집을 빌리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의 생활도 빌려 왔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처음으로 내가 그녀의 빨래를 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에게 건조까지 마친 빨래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건조기 성능이 굉장하다고 감탄했다. 나중에 우리도 건조기를 쓰자는 말을 맺지는 못했지만, 돌이켜 보면 건조기를 함께 사고 싶은 사람이 그녀였다. 그러니까 내가 건조기를 쓰고 싶게 만드는 여자는 당신 한 명뿐이라는.


한밤중 아래층에 사는 여자에게 지진을 체험케 한 실수는 결국 일상처럼 변해가는 여행에 방심해서였다. 번거롭고 스스로 무안한 역을 떠맡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니콜의 남자친구에게 다시 한번 사과를 전한다. 그 이후로 해가 떨어진 뒤 빨래를 돌린 적은 없지만 나와 그녀에게 그의 방문은 금방 무덤덤해질 작은 해프닝에 불과했다. 누군가의 옷과 나의 옷을 섞어 거대한 통 속에 집어넣고, 세제와 섬유 유연제와 그 많은 거품과 물세례와 건조대를 공유한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는 처음으로 알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앎에 취했다.


깨끗하게 빤 옷을 입고 외출을 하면 우리 둘에게선 같은 향기가 났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번엔 우리에게서 먼지 같은 계절의 냄새가 배었다. 가끔은 그 도시의 풍경보다도 거실에 희미하게 감돌던 그 냄새가 더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세탁방의 세탁기와 건조기는 예상대로 탁월한 성능을 보여주었다. 건조기에서 막 나온, 뜨거운 만두 같은 세탁물은 거의 바로 개어 옷장에 넣을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앉아 있으라는 푹신한 소파, 작은 진열대에 꽂힌 만화책 전집, 식물의 이파리를 확대한 사진이 담긴 액자, 문을 열어두어도 줄어들지 않는 향기의 부피, 어딘가로 쉽게 마음을 옮겨다 놓을 수 있는 규칙적인 모터음이 엄연한 생활의 용무를 환상으로 바꿔놓는다. 집을 떠나 있을 때면 곪았던 자리에 좋은 약을 바르는 안도감이 든다. 긴 비가 그치고 아주 오랜만에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해방감을 느낀다. 여행을 하며 했던 빨래도 여행의 일부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하는 빨래는 내가 떠나지 않은 여행의 일부였다. 세탁에 삼십 분. 다시 건조에 삼십 분. 세탁을 마친 옷을 차에 실으며 나는 먼 곳에 다녀온 듯한 아늑한 피로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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