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트 뭉크 - 2
제 최초의 기억은 5살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햇빛이 좋은 여름날 어린 저는 아빠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있었고, 아버지는 저를 태워주기 위해 자전거 안장에 앉아있는 모습입니다. 어머니는 집 앞에서 뭐라고 말씀을 하고 계시고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아버지가 출발하는 순간 제 발이 자전거 바퀴에 끼어버렸습니다.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던 것 같고, 당황한 아버지는 자전거를 멈추고, 놀란 어머니는 달려와 아버지를 나무라는 모습이 기억납니다. 제 기억엔 엄마가 아빠를 나무라는 게 지나치다고 느껴져서 울면서도 아빠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엄마가 좀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심리학자 아들러(Alfred Adler)는 사람의 초기 기억들은 개인의 생활양식 발달의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인간관, 세계관, 삶의 목표, 믿음 체계, 가치관, 동기 등을 반영하기 때문에 개인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초기 기억은 현재 제 삶에서 어떻게 반복되고 있을까요?
지금의 저는 제가 좀 불편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행복해하고 편안할 때 마음이 편합니다. 예를 들면 주말아침 남편이 늦잠을 자고 있다면 그냥 둡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너 정말 착하다 하겠지만 사실은 남편이 불편해하는 걸 보기가 힘듭니다. 내 몸이 불편하더라도 상대방이 편안한 것을 보는 쪽이 마음 편한 것이죠. 하지만 몸이 힘든 것은 시간이 지나다 보면 쌓이게 되고, 언젠간 펑! 하고 터지게 되죠. 그러니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뭉크의 사랑이야기를 엿볼까요?
뭉크는 평생 결혼을 하진 않았지만 사랑했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첫사랑은 밀리(Millly Thaulow)입니다. 당시 뭉크의 후원자였던 프리츠 탈로의 형수로 유부녀였습니다. 뭉크가 21살이었고, 밀리는 23살이던 어느 여름날 여름 휴가지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그녀는 크리스티아니아 사교계에서 이미 유명한 인물이었고, 노르웨이의 첫 음식과 패션을 주제로 글을 썼던 당시 신여성이었습니다. 서로에게 빠르게 빠져든 둘은 5년간 사랑을 하지만 자유연애를 추구하던 밀리는 뭉크에게 싫증이 났던 것 같습니다. 뭉크 또한 태어날 때부터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나 마음속 깊은 곳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고요. 영화 같은 강렬한 사랑을 끝낸 후 뭉크는 힘들었던 마음을 그의 노트와 그림에 남기기도 했습니다.
저기 바 bar에 있는 게 밀리인가? 아니다. 그녀이길 바랐는데. 아니, 그녀가 다른 이들과 함께 있지 않기를 바랐는데.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쓰러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주위가 빙빙 돌았다. 그는 집에 돌아가려고 재빨리 나섰다. - 뭉크의 노트(MM N 598, 연대미상)
유성혜. 뭉크. 아르테, 2019.
이후 밀리가 이혼을 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 재혼을 하는 모습을 보며 뭉크는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런 감정들이 뭉크에게는 그림을 그려 성공하고자 하는 연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많은 그림에서 밀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런 모습을 통해 뭉크의 아픔 소화법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녀와의 추억과 이별을 여러 번 곱씹어가며 그림을 통해 소화해 내는 뭉크의 모습에 또 한 번 숙연해집니다.
뭉크에게 첫사랑이 영화같이 아름다우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면 뼛속 깊이 박혀 평생 잊을 수 없었던 강렬한 사랑은 무엇이었을까요?
뭉크와 연인의 사진입니다. 포즈에서 나오는 자신감과 여유로움 그리고 당시 멋쟁이였을 그녀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이 사진 속 주인공은 뭉크와 4년간 폭풍 같은 사랑을 했던 여인 툴라 라르센(Tulla Larsen)입니다. 라르센은 부유한 와인상의 11번째 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라르센이 5살이던 시절 돌아가셨지만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부를 물려주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부유한 가족의 11번째 딸이라면 부모님의 감시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자유롭게 자랐을 것을 예상할 수 있죠. 그녀는 끊임없이 구애를 했지만 뭉크의 인생사전에 결혼은 없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결혼을 싫어했습니다. 그의 아프고 불안한 가정은 그에게 결혼할 권리가 없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뭉크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면, 뭉크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엄마는 5살에 돌아가시고, 하나밖에 없는 엄마 같던 누나는 14살에 뭉크를 떠나갔습니다. 또한 스스로도 계속된 질병으로 학업, 친구관계 어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 뭉크가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의 중심인물이었던 한스예거를 만나고 보헤미안 빠져들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것 원하는 것에 대한 반복된 좌절이 인생에 대한 허무함을 추구하게 된 시작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뭉크의 아버지는 당시 보수적이고 경건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아버지와 전통적 가치관, 결혼제도, 사회계급에 대한 반발 그리고 자유를 추구하는 뭉크는 자주 부딪힐 수밖에 없었죠. 뭉크는 참 외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라르센을 피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떠난 뭉크는 그곳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럼에도 불안정한 삶을 살아갔던 것 같습니다. 술집에서 술에 취해 동료들과 싸우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뭉크를 포기할 수 없었던 라르센은 뭉크와의 화해를 위해 베를린으로 왔습니다. 그래도 뭉크가 받아주지 않자 라르센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달라며 뭉크의 숙소에서 기다립니다. 뭉크가 계속 거절하자 라르센은 숨겨둔 총을 꺼내어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면, 총을 쏘고 죽겠다고 하며 뭉크를 협박합니다. 뭉크와 몸싸움 끝에 발사된 총알은 뭉크의 손가락 두 개를 관통합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뭉크의 그림입니다. 원래는 하나였던 그림을 '그 사건' 이후 뭉크가 둘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뭉크가 그녀와의 과격한 이별에 뭉크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둘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고 몇 년 후 라르센은 뭉크의 젊은 동료와 결혼을 하였다고 합니다. 뭉크는 그녀를 그렇게 떠나보낸 후 술과 싸움 등 불안정한 삶을 지속했습니다. 뭉크는 Dr. Jacobson의 병원에 들어가 8개월간 치료를 받고,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려 노력했습니다. 선생님의 의견을 잘 따른 결과 뭉크는 후원자나 친구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경제적으로도 여유를 되찾았습니다. 최악일 것 같은 상황이 닥칠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 그의 모습을 통해 살고자, 살아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반복된 사랑의 아픔에 방황하던 그는 52살의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뭉크는 크리스티아니아 에켈리에 정착한 후 격리된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립니다. 뭉크에게 여성이란 가족이란 그다지 행복한 기억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5살에 나를 두고 돌아가신 어머니, 14살에 먼저 떠난 사랑하는 누나. 금지된 사랑을 나누었지만 결국 나를 떠난 밀리, 나를 사랑했지만 결국 나를 죽일뻔한 라르센. 자신조차도 항상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뭉크는 지쳤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뭉크는 최소한의 사람들만 만나고, 그림만 그리며 은둔생활을 하다가 1944년 1월 사망합니다.
뭉크의 마지막 자화상을 볼까요? 마르고 나이가 든 노인의 모습이지만 그의 꼿꼿한 목과 자세에서 죽음을 담대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병으로 잃었던 뭉크는 항상 죽음과 지근거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스페인 독감에도 살아냈고 결국 80세까지 장수합니다. 질병과 죽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항상 뭉크를 아프게 했지만 그는 끊임없이 싸웠고, 이겨냈습니다. 죽기 전까지 약 30년간 고향 크리스티아니아에서 뭉크는 죽음을 준비하고 기다리지 않았을까 합니다. 시곗바늘 없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끝도 없는 기다림에 지쳐가는 뭉크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나는 보이는 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내가 본 것을 기억해 나의 가치관 생각 감정등을 넣어서 그린다.'
누나의 죽음을 소화할 때에도 사랑했던 연인을 떠나보낼 때에도 뭉크에게 그림은 치료적 도구이자 내 마음을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