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

- 구스타프 말러 교향악 기행(1) <교향곡 제1번>

by 황지원

내가 생애 처음으로 체코 보헤미아 땅을 밟은 건 말러가 그의 첫 교향곡을 썼던 때와 같은 나이인 28세 즈음이었다. 뭐 거창한 명분이나 대단한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다. 당시 베를린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던 나는 겨우 몇 주 만에 ‘정주하는 자의 권태’를 겪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어떤 형태로든 크고 작은 일탈이, 단조로움으로부터의 탈출이 필요했다. 무작정 프라하로 떠나기로 했다. 수중에 돈이 없으니 가장 싼 교통편을 골랐다. 베를린 리니엔 부스(Berlin Linien Bus). 만원 약간 넘는 돈이면 한밤의 고속버스를 집어 타고 프라하까지 갈 수 있었다.

독일 동부의 삼림지대를 통과한 버스가 체코 국경도시 치노베츠에 멈춰 섰다. 사나운 눈매의 국경 경찰이 버스에 오르고, 차 안에는 불이 환하게 켜졌다. 그제야 같이 탄 동승객들의 면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독일 대학생이 몇몇, 피곤에 절어있는 체코 아저씨들이 또 몇 사람. 옆자리의 금발 체코 미녀는 어찌나 사납게 담배를 피워대던지, 무서워서 말 한마디 못 붙여보던 참이었다. 경찰이 모든 승객의 여권을 압수하듯 걷어내 사라졌다. 20분이 지나서야 나타난 그들은 갑자기 루마니아 국적의 할아버지를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낡고 너덜너덜해진 여권이 어디는 지워지고 어디는 희미해져 신원확인이 안되는 모양이다. 남루한 차림의 어르신이 연신 두 손을 모으며 울먹였다. 그래, 이 여정은 생각보다 슬프구나.

간신히 국경을 넘었다. 심야의 국도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가로등 하나 없는 체코의 도로길 위에 아주 간간히, 앙상한 형광 조명 아래 짧은 옷을 입고 뼈마디를 다 드러낸 채 춤을 추는 젊은 여성들이 보였다. 너절한 좌판 위에 과일과 음료수를 늘어놓은 남자 행상도 있다. 그들 모두가 슬프고 텅 빈 눈을 지니고 있었다.

영국의 어느 평론가가 말러 교향곡 제1번의 첫 악장을 가리켜 ‘백일몽’이라 불렀다. 숲 속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 소년 말러의 괴이한 환상을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나는 '아스라한 악몽'이라고까지 부르고 싶다. 속 편하게 듣자면야 맑고 상쾌한 자연 찬양의 음악이다. 새벽 안개를 뚫고 희붐한 여명이 밝아온다. 여기저기서 숲 새들의 노래소리가 들리고, 청명한 아침이슬을 뚫고 열정에 찬 젊은이가 성큼성큼 숲 한 가운데를 걸어가기 시작한다. 마치 베를린에서 프라하행 버스에 막 오를 때의 내 들뜨고 순진한 심정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러의 교향악도,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간단하게만은 흘러가지 않는다.

하이든 이래 교향곡(Symphony)은 세계를 질서 있게 노래하기 위해 존재한 양식이었다. 그것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악장은 그 구체적인 형식미 속에서 차분하고 꽉 짜인 서사를 자랑했다. 그러나 말러는 자신의 첫 교향곡에서부터 이 틀을 깨버린다. 그는 선언한다. 이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 차 있으며, 그것은 설명 불가능한 숙명에 의해 작동하거나 혹은 멈춰서 있다고. 그래서 그의 교향곡은 카오스면서 동시에 매혹적이고 황홀하다.


말러의 교향악은 세계의 삼라만상을 모두 담고 있다. 그 속에는 사랑, 분노, 슬픔과 좌절이 살아 숨쉬고, 가장 정련된 고도의 예술음악부터 뒤틀린 음정의 싸구려 길거리 밴드 연주까지 망라되어 있다. 그건 마치 우리 삶의 실제 모습과 비슷하다. 숭고한 가치를 쫓다가 비루한 삶의 현실에 좌절하기도 하고, 작은 행복에 자족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이상에 휩싸여 무모한 돌진을 꿈꿔보는 그런 인생말이다.


말러의 교향곡은 21세기를 지배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공연장에서 그의 교향악이 울려퍼진다. 여러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 음악 속에 현대인의 삶이 오롯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러의 음악은 불안(不安)을 자양분 삼는다. 극도로 피폐한 불협화음의 절규가 엄습하는데, 동시에 천상의 행복을 노래하는 선율이 이어진다. 놀랍게도 그 둘은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그의 복잡한 화성, 찢어지는 불협화음, 날카로운 소음과도 같은 절규에서 되려 깊은 위안을 얻는다. 기댈 곳없는 이 고독한 세상에서 말러는 '우리를 대신해 울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그는 선지자였고 예언자였으며, 복잡하고 불안정한 말러의 교향악이야말로 우리 삶의 깊은 심연을 가장 예리하게 포착한 음악이었다.


<교향곡 제1번> '거인'에는 유년 시절 말러의 행복과 슬픔, 쓰라린 기억과 소중한 추억이 모두 들어가 있고, 범신론에 기초한 자연 찬양이 기독교적 세계관과 기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부조리한 삶에 대한 실존적 고뇌, 세기말 오스트리아 제국을 살아가던 한 유태인 예술가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슬픈 좌절감도 듣는 이를 가슴 아프게 만든다. 오늘도 저항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말러의 교향악을 듣는다. 그건 피할 수 없는 현대인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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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악장] 다시 기립하는 세계


서주 _ 세계를 향한 애도의 새소리


현악기가 하모닉스 주법으로 넓은 옥타브에 걸쳐 A음 즉 '라'를 연주한다. (⊙T1/00:05) 마치 태초의 숲 속에 신비로운 안개가 자욱하게 낀 형세다.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등의 목관악기가 조심스레 화답한다. 저 멀리서 - 콘서트홀의 무대 뒤에서 - 트럼펫 합주가 태고의 신비를 벗겨내듯 찬란한 기상나팔을 울린다. 뒤이어 클라리넷이 부는 새소리가 들리는데, 독일어로 쿠쿡(Kuckuck)이라고 하는 뻐꾸기 소리다. (⊙ 01:56, 02:16)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조율이 엇나간 듯, 목에 멍울이 맺힌 듯 약간 어색하게 들린다. 그 소리는 4도로 하강한다. 무릇 독일 음악사에서 새소리는 3도가 정석이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6번> '전원'의 2악장 말미가 좋은 예다. 여기서 베토벤은 시냇가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즐겁게 묘사한다. 오보에는 하버가이스(Habergeiß 메추리), 플루트는 나흐티갈(Nachtigall 나이팅게일), 클라리넷은 쿠쿡(Kuckuck 뻐꾸기)인데 모두가 ‘미-도’의 장3도 하강 음계로 되어 있다. 말러만이 ‘도-솔’의 4도 하강이다.


누구는 실제 자연의 뻐꾸기 소리와 가장 닮아 있는 게 4도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이 부분을 한없이 맑고 밝은 톤으로 구김없이 다듬어낸다. 다른 설명도 있다. 1악장 전체를 지배하는 ‘숙명의 동기’가 애초 4도 하강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말러가 이 질서에 맞추기 위해 새소리 또한 4도로 조율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일리 있는 합리적 설명들이다.


그러나 내게는 이 새소리가 못내 불길하게만 들린다. 부다페스트 초연에서도 관객들을 끊임없이 불안에 빠뜨린 소리였다. 뻐꾸기의 멍울진 울음은 이 세상을 향한 말러의 태도를 드러낸다. 이른바 ‘세계를 향한 애도(哀悼)의 새소리’다. 첫 머리부터 복기해 보자. 몽환적인 현악부의 희미한 하모닉스 안개를 뚫고 트럼펫의 신호에 맞춰 인류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잠들어 있는 대자연을 깨워내 완전히 새로운 교향악 세계를 열겠다는 청년 말러의 담대한 테마다. 그러나 원래 ‘깨어남’은 불안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밤과 수면, 꿈과 무의식의 세계는 멈춰 있기에 오히려 평온하다. 동이 트고 아침이 되면 다시 우리는 바깥으로 나가 어떤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누구에게는 활기차고 희망을 주는 곳이지만, 동시에 그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불안하고 부조리한 투쟁과 좌절의 시공간이다. 저 멀리 트럼펫이 애써 깨워낸 신새벽에 뻐꾸기가 불온한 곡조로 계속 구슬피 울어대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더블베이스가 하강 음계로 존재의 슬픔을 다시 한번 어둡게 고지하면, 그제서야 서주는 간신히 마무리된다.


주제부 _ 아침 들판을 거닐면


이제 음악은 아침을 맞이하는 상쾌한 기분으로 부드럽게 전환된다. 여기서 말러는 자신의 연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두 번째 곡 '아침 들판을 거닐면(Ging heut' Morgen über's Feld)'의 전반부 선율을 재인용하고 있다. (⊙03:58) D장조의 음률이 첼로를 시작으로 점차 모든 오케스트라로 번져 나가며 탁 트인 해방감을 선사한다.


전통적인 교향곡의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Sonata Form) 하에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즉 두 개의 주제를 제시하는 '제시부'(메인테마인 제1주제와 그에 딸린 제2주제는 조성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두 주제를 자유롭게 상승발전 시키는 '전개부',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두 주제를 소환해 한 차원 승화시키며 마무리하는 '재현부'다. 이는 일종의 헤겔식 정반합(正-反-合) 구조로, 음악이라는 감정 예술에 뚜렷하고 질서있는 논리적 아름다움을 보장하는 지적인 설계장치다. 말러는 여기서 조금 벗어나 있다. 1번 교향곡의 1악장은 보통 '변형된 소나타 형식'으로 불리는데, 사실은 몇 가지 주요주제가 수평적으로 펼쳐진 자유형식에 가깝다. 그러니 우리도 1,2주제를 애써 찾아내고, 그것들이 치밀하게 교차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추적할 필요는 굳이 없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도 1악장을 도입부, 주제부, 마무리로 심플하게 나눠 해설했다. 고민없이, 보다 자유롭게 음악을 들어보자.


서주의 안개 낀 음형이 다시금 등장하고 4도의 뻐꾸기 소리도 반복적으로 돌출된다. (⊙08:01) 호른이 사냥꾼의 호방한 뿔피리 소리를 합주하는 건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연상케 한다. (⊙10:47) 첼로가 D장조의 '아침 들판' 주제를 우아한 춤곡 형태로 다시금 조려내면, 음악은 어느덧 천상의 황홀경을 자아내며 듣는 이를 한없는 도취로 몰아간다. 이제 모든 현은 벨벳처럼 두텁고 유려한 표정으로 우아한 곡선을 그려내고, 목관은 도처에서 반짝이며 그 선율에 황금빛 가루를 흩뿌린다. 궁정의 대무도회 같은 찬란한 황홀함이 콘서트홀을 가득 메우는 순간이다.


마무리 _ 엄습하는 불안과 승리의 포효

바로 이때, 어디선가 절뚝거리는 리듬을 지닌 F단조의 불온한 음악이 주선율 사이로 틈입한다. (⊙12:58) 4악장 피날레의 이른바 '지옥의 테마'가 성급히도 난입해 날카로운 스크래치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말러가 리스트의 <단테 교향곡>에서 소재를 취한 것이다. 어둡고 압제적인 지옥 군단의 음습한 기운이 크레센도의 거친 호흡을 타고 연신 우리를 압박하며 전신에 무력감을 강요한다. 바로 그때, 오른쪽 후위의 트럼펫 합주군이 시퍼렇게 날이 선 D장조의 메탈릭한 포효로 지옥의 포위망을 단숨에 찢어버린다. (⊙14:13)


자, 이제는 자유의 들녘이다. 다시 한번 사냥꾼들의 호른 행진곡이 너른 해방감을 온 몸으로 곱씹게 해준다. (⊙14:23) 거듭 고조되는 음악이 위로 솟구쳤다 준비도 없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쫓기듯 즐거운 코다 - 이 또한 말러 음악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 와 함께 1악장이 황급하게 끝을 맺는다.


[제2악장] 여름날의 춤곡


세 도막 형식(A-B-A')으로 전개되는 2악장은 무곡 악장이다. 말러가 유독 사랑한 춤곡은 렌틀러(Ländler)였는데, 그건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민속춤곡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와 루드비히 폰 트랍이 추던 3/4박자의 바로 그 춤 음악 말이다.



제1부(A) 시골마을의 렌틀러


말러는 적나라하게, 아니 생생한 형태로 렌틀러의 기운을 살려냈다. (T2/⊙00:02) 뒷발을 탕탕 치며 땅을 울리는 탭핑 댄스와 흥에 겨운 점프로 렌틀러 춤곡 특유의 활기와 거친 감칠맛을 자아낸다. 목관은 마치 조율이 살짝 나간 떠돌이 악대의 연주처럼 소란스런 흥겨움을 자아내고, 활로 몸통의 줄을 힘차게 두들기는 첼로와 바이올린 독특한 주법은 수면 위를 재빠르게 지치며 날아가는 물총새의 날쌘 움직임을 보는 듯하다. 한 여름의 어느 호숫가에서 처음 만난 시골사람들과 흠뻑 땀 흘리며 한바탕 윤무를 즐기는듯한 정경이 눈 앞에 그려진다.

제2부(B) 한밤의 은밀한 무도회


트리오(A-B-A'의 세 도막 형식에서 가운데 B부분을 지칭하는 용어)로 넘어오면 분위기가 급변한다. 빈의 어느 골목길 작은 카페에서 펼쳐지는 은밀한 왈츠 무도회를 보는 기분이다. 투명한 밤의 장막이 오보에의 애절한 세레나데를 타고 빗물처럼 흘러내리는데, 짓궃은 속요가 귀공자의 술주정처럼 불쑥 등장하더니 선율은 다시금 고요하고 신비로운 밤의 장막 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간다. (⊙03:28) 못내 귓가를 맴도는 쓰디쓴 아련함이 마치 지나간 청춘의 잃어버린 옛 사랑을 달콤히도 추억하는 듯 하다.


제3부(A’) 원유회의 추억들

저녁 무렵에 되돌아 본 오후의 원유회다. (⊙06:05) 노을이 진 호숫가에 앉아 향긋한 화이트 와인을 기울이며 그날의 태양과 떠들석 했던 대화, 그녀의 아름다움과 그 남자의 생생한 숨결을 반으로 접은 엽서처럼 활기차게 되새긴다. 음악이 회오리치며 상승하는 가운데 2악장은 찬란하게 마무리된다.


[제3악장] 소년의 잿빛 꿈


교향곡의 완서(緩徐) 악장, 즉 느린 악장은 아다지오나 라르고 정도의 빠르기로 가장 감성적인 음악을 전달한다. 드보르작의 9번 신세계 교향곡의 2악장, 차이콥스키 5번 교향곡의 2악장 등이 대표적으로, 느릿한 템포와 나긋하고 센티멘털한 선율이 1악장의 그 복잡한 소나타 형식에 지쳐버린 우리의 영혼을 잠시나마 달래준다. 그러나 말러는 여기서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완서 악장을 선보인다. 세도막 형식으로 구성된 3악장은 '거인 교향곡'의 가장 문제적 장면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 악장은 음악학자나 평론가, 애호가들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동요를 단조로 뒤집어 놓은 기이한 장송행진곡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제1부(A) 장송행진곡


팀파니가 피아니시모로 으뜸음과 딸림음을 반복해서 타격하며 휘청이는 걸음걸이의 행진을 시작한다. 그 위에 콘트라베이스 솔로가 해골처럼 메마르고 앙상한 곡조를 캐논풍으로 연주하는데, 놀랍게도 동요 '마르틴 형제 Martin Bruder'를 단조로 뒤집어놓은 장송행진곡이다. (T3/⊙00:12) 돌림노래가 진행되면서 장례식장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악기도 차례로 추가되기 시작한다. 비틀린 오보에의 신랄함, 1악장 '4도 하강 뻐꾸기'가 재림한듯한 멍울진 클라리넷 소리 등은 장면에 스산함을 더한다. 바로 그때 보헤미아 집시풍의 애수어린 주제가 트럼펫을 타고 서글프게 흘러들고, 경박하기 짝이 없는 카바레풍 음악이 더해지며 작은 카오스를 형성한다. (⊙02:23) 호흡을 가다듬은 장례 행렬이 다시금 마르틴 형제를 구슬피 읆조리며 운구를 계속하는 가운데 서서히 1부가 마무리된다.


초연 때부터 엄청난 논란이 되었던 장면이다. 가장 고결한 예술성을 자랑해야 할 교향곡에 어린이 동요는 왠말이며, 그걸 또 단조로 뒤집어 장송행진곡으로 사용하는 기행은 또 무슨 일인가. 게다가 처연한 장송행진의 와중에 난입한 보헤미안 집시들의 구슬픈 엘레지와 싸구려 속요의 폴리포니(다성음악)적 모자이크는 또 얼마나 사람들을 난감하게 했던가.

그간 여기에는 다양한 설명들이 있어 왔다. 우선은 말러가 마음 속의 기괴한 환상을 음악으로 묘사했다는 주장이다. 독일의 환상문학 작가 E.T.A 호프만의 소설이나 판화가 모리츠 폰 슈빈트의 그로테스크한 작품 속에서 나올법한 스산한 정경을 관현악으로 풀어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말러의 가족사를 추적한다.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의 경계를 이루는 이글라우(체코명 이흘라바)에서 살았던 말러는 어려서부터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특히나 말러가 가장 아끼던 두 살 터울의 동생 에른스트의 사망(1875년)은 말러에게 평생동안 잊혀지지 않을 트라우마를 남겼다. 여기서 그는 동생의 장례식을 음악적으로 구슬프게 재현했다. 에른스트의 시신이 안치된 관이 운구되어 나가고, 그 동안에도 집안 1층의 술집 겸 여인숙에서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드나들며 구성진 집시 음악과 싸구려 유행가를 번갈아 불렀다는 것이다. 그때의 기억이 상처입은 노스탤지어처럼 3악장 이 장면에 오롯이 담겨 있다는 이야기다.

독일의 한 철학자는 말러가 동요를 단조로 바꾼 것에 주목한다. 어린 시절 꿈과 희망만이 가득하리라 생각했던 미래의 어른 세계는 성인이 되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결국 소년이 그 시절에 품었던 꿈은 '잿빛 꿈'일 뿐이었고, 그 서글픈 자각을 단조로 된 말라 비틀어진 동요 가락으로 표출했다는 설명이다.


제2부(B) 보리수 아래의 안식


제2부 트리오는 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제4곡 '사랑하는 그녀의 푸른 두 눈은 Die zwei blauen Augen von meinem Schatz'을 다시금 인용한 것이다. (⊙05:15) 1악장의 '아침 들녘을 걸으면'이 자신의 가곡에서 일종의 분위기만 가져온 것이라면, 이 부분은 음악과 내용 모두 가곡의 정신세계와 깊이 맞닿아있다.


나는 한밤중에 떠났네

어두운 숲길을 넘어

아무도 내게 잘 가란 인사 없었고

내 길벗은 사랑과 슬픔 뿐이었어


길가엔 한 그루 보리수가 서 있네

그곳에서 잠들며 나는 비로소 안식을 찾았네
(Da hab’ ich zum ersten Mal im Schlaf geruht!)

보리수 나무 그늘 아래서
난 이제 세상 고통 모두 잊었네

(Da wußt’ ich nicht, wie das Leben tut)


실연의 슬픔을 겪은 젊은이가 마을을 떠났다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작은 안식을 찾는다. 이미 일그러진 그 영혼이 가슴을 부여잡고 못내 쓸쓸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 허무한 심상과 초연한 기운이 뒤섞인 말할 수 없이 서글픈 애상이 눈물을 자아낸다.


제3부(A') 아련한 노스탤지어


3부는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회고적 감성으로 가득하다. (⊙ 07:13) 언젠가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렌베크(Rennweg) 거리에 살았던 자신의 빈 유학시절을 회상한 적이 있다. 지금은 각국의 대사관이 즐비하게 늘어선 란트슈트라세(Landstraße)와 도축장이 있던 장크트 마르크스(Sankt Marx) 등으로 구획을 나눠 부르는게 일반적이지만, 예전만 해도 벨베데레 궁전에서 시작해 빈 중앙묘지가 있는 11구 짐머링(Simmering)까지 쭉 이어지는 도로 주변을 전부 렌베크라고 칭했다. 말러가 이 지역 아우엔부르거가세 2번지에 살면서 10 여년에 걸쳐 빈 국립오페라의 지휘자 생활을 했다. 다만 그의 집은 시내에서 매우 가까운 쾌적한 지역에 있었고, 빈 음악원 학생이었던 아바도는 장크트 마르크스 주변의 하숙촌 등지에서 살았던 듯하다.

"1950년대만 해도 흔히 보는 풍경이었다. 장례 행렬이 악대와 함께 그곳을 지나갔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슬픔에 잠겨 있었고, 상여가 있었고, 모든 것이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마치 말러 음악이 함께하는 것만 같았다."

1부의 장송행진곡이 유년 시절의 기억을 선명히 되살려내 재구성한 것이라면, 3부는 시간이 흐른 후 필터를 교체해 과거의 그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다.

[제4악장] 천국을 향하여


4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제시부에 등장하는 두 개의 주제가 아니라, 전개부에 등장하는 D장조 '천국의 테마'가 악장의 핵심이라는 형식적 반전이 존재한다. 제시부의 제1주제(F단조 지옥)와 전개부의 새로운 테마(D장조 천국)를 대조시켜 환희의 세계로 올라간다는 이런 구성은 음악적 스토리텔러로서의 말러의 천재적 작가성을 여실히 증명한다. 명쾌하게 선형적으로 요약된 결론보다는, 복잡하고 사변적인 아이러니를 즐기는 말러 특유의 기질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제시부 _ F단조의 지옥


시작하자마자 세계는 굉음과 함께 붕괴되기 시작한다. 심벌즈의 충돌, 수직으로 떨어지는 고음현, 피를 토하는 금관과 날카롭게 울부짓는 목관의 외침으로 4악장이 열린다. 도입부의 카오스를 진정시킬 의지도 없이 곧바로 F단조의 제1주제가 사납게 터져나온다. (T4/⊙01:11) 리스트의 <단테 교향곡>에서 소재를 취한 이른바 '지옥(inferno)의 테마'다. 메탈릭한 폭력성이 넘쳐 흐르는데, 사실 이게 또 듣다보면 되려 통쾌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건 아이러니다. '에네르기쉬'(에너지가 넘치도록)라는 악상 기호에 걸맞게, 마치 거인이 성큼성큼 걸어가 우리를 옥죄는 운명과 정면대치하는 모습을 그린 듯한 느낌도 준다. 경과부를 지난 음악은 다시 현악기에 의해 수면 위를 미끌어지듯한 유려함이 넘치는 내림 D장조의 제2주제로 이어진다. (⊙04:05) 요동치던 음악도 잠시간의 온화함을 되찾는다.


전개부 _ 천국으로의 계단


전개부는 내려치는 F단조의 지옥 주제를 다시 소환한다. 뒤이어 온화한 C장조의 코랄 주제(찬송가풍의 테마)가 공간을 가득 채우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한줄기 빛처럼 온화하고 따스하다. (⊙08:18) 이는 바그너 최후의 악극 <파르지팔>에 등장하는 '성배의 동기'를 인용한 것이다. 성배의 동기를 타고 음악은 이제 한 단계 위로의 이행을 준비한다. 드디어 D장조의 천국 테마가 찬연히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10:00) 뚜렷한 상승의 분위기는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올라가는듯한 느낌이다. 트럼펫이 승리의 찬가를 소리 높여 노래하면서 전개부는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암흑의 F단조를 넘어 C장조 성배 테마의 따뜻한 복음에 힘을 받아 천국의 D단조까지 올라왔다. 이제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1악장 '아침 들녘'의 주제가 다시금 등장해 더없이 맑고 상쾌한 기운을 뿌리기 시작한다. 서서히 제자리를 맴돌다 나긋한 손길로 느려지기 시작하는 제2주제가 이어지면서 이제 우리도 오랜 시간 방황의 큰 날개를 접고 각자의 안식처로 돌아가야겠다는 안도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재현부 그리고 피날레 _ 찬란한 승리


그러나 바로 이때, 비올라가 수직으로 떨어지며 이 세계에 날카로운 스크래치를 낸다. (⊙15:33) 음악은 급작스레 숨막히는 푸가로 전환되고, 지옥의 군대가 하나둘씩 군세를 모으기 시작한다. 창검이 하늘 위로 치솟고, 전사들의 호흡이 가파르게 고조된다. 지옥의 기병대가 포르티시모의 강박에 맞춰 지축을 울리며 일대 전진을 개시한다. 트럼펫은 마치 성곽 위의 궁수대와도 같이 연신 피를 토하는 포효로 그에 맞선다. 공세와 반격, 외침과 저항의 거대한 일진일퇴(一進一退). 말러 외에 그 누가 이토록 숨막히고 전율적인 푸가를 쓸 수 있단 말인가. 개인적으로 이 교향곡의 가장 숨막히는 명장면으로 손꼽는 부분이다.


다시금 트럼펫이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쾅! 치솟는 오케스트라의 총주가 모든 것을 깨뜨리고 드디어 하늘로 향하는 문이 찬란히도 열린다.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개파(Durchbruch 改破)라 불렀던, 말러 교향곡 특유의 찬란한 클라이막스가 바로 여기다. (⊙17:45) 개파는 건물 전체가 느닷없이 무너지듯, 예고없이 비논리적으로 갑자기 폭발하는 말러 교향곡 특유의 통렬한 승리선언을 가리키는 아도르노식 신조어다.


1악장의 승리보다 더 한층 가열된 찬란한 종국의 환희가 내려왔다. (⊙18:25) 이제 피날레다. 천국의 들판이 우리 눈앞에 펼쳐진 듯 하다. 달리자, 계속 달려나가자. 저 멀리 지평선 끝까지. 가슴이 터져 나갈 때까지!


음악이 끝나고


베토벤에 의할 때 교향곡은 1악장에서 비롯된 고난과 좌절을 딛고 4악장에 이르러 기어이 환희의 세계에 도달해야만 한다. 이른바 '고난을 헤치고 환희로 durch leiden zur freude'의 명제다. 기승전결의 치밀한 논리구조로 상승해가는 이 거대한 서사는 일종의 사회적 승리를 묘사하며, 그 과정은 마치 정기적금과도 같다. 말러에겐 그 정도의 참을성이 전혀 없다. 그는 4악장 단 하나에서 지옥에서 천국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수직적 엘리베이팅을 시도한다. 사실상 '정신승리'에 가깝다. 그러나 비명처럼 터져나오는 이 환희의 포효가 오히려 우리를 참을 수 없게 만든다. 말러의 이 '근거없고 느닺없는 승리'는 비할 바 없이 통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안겨다 준다.


청년 말러는 자신의 첫 교향곡으로 이미 서양음악의 역사를 뿌리부터 통째로 뒤흔들어 놓았다. 작곡가 자신은 '거인'이라는 부제를 달았다가 나중에 삭제했지만, 지금도 우리에게 거인과도 같은 웅변력을 행사하는 음악이다. 찬란한 이 대곡은 말러의 교향악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가장 위대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 본문 속 음반의 타임코드(⊙)는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의 1990년 라이브 레코딩(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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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음반과 영상]

[음반①] 클라우디오 아바도 & 베를린필 (DG) _ 청명하게 빛나는 크리스탈 말러

[음반②] 클라우스 텐슈테트 & 시카고심포니 (EMI/Warner) _ 폐허처럼 처절한 거인

[영상] 투간 소키에프 & 베를린필 (디지털콘서트홀) _ 21세기 말러의 표지석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가 베를린필을 지휘한 1990년 실황 녹음[DG]은 음악적으로 가장 정교한 완성도를 자랑하며, 이 교향곡을 처음 들을 때의 어떤 텍스트적 연주로도 1순위에 추천할만한 명반이다. 1악장의 청신한 정서, 2악장의 리드미컬한 생동감 등은 매우 인상적이다. 뒤틀린 냉소가 주는 연극적 긴장감이나 폭발하는 클라이맥스의 넘치는 고양감 대신 한결 풍부한 음악적 울림을 추구한 연주로, 21세기 말러 교향악의 대세적 해석과도 궤를 같이한다. 비슷한 스타일로 마리스 얀손스(Mariss Jansons) 지휘의 음반들이 있다.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와의 연주[RCO Live]는 악단 특유의 볼드한 음색이 얀손스의 정밀한 지휘봉과 만나 가장 완벽한 밸런스를 자랑하는 이른바 '육각형 음반'이다. 아바도와 함께 순음악적 해석의 양대 산맥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정밀한 연주의 반대편에는 극단적인 주정주의 해석이 존재한다. 그 중심에 클라우스 텐슈테트(Klaus Tennstedt)의 1990년 시카고 심포니 실황연주[EMI/Warner]가 있다. 평생 음악정치나 사회적 세련미 등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텐슈테트는 개인의 삶 자체도 신산했다. 동독 시절 위태위태했던 그의 처신을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가 그를 설득해 서유럽으로 보내버렸을 정도다. 그의 말러는 한마디로 강철같은 저돌성과 감정의 극한까지 치달리는 파괴적 격정이 특징이다. 검붉은 피를 토해내는듯한 시카고 심포니 금관군의 포효는 지금 들어도 전설적이며, 폐허 같은 현실을 뚫고 기어코 승리를 쟁취하는 4악장의 처절한 드라마 또한 다른 어떤 연주에서도 듣기 힘들다. 극적인 고양감이 가장 크며 '거인' 교향곡의 다크한 해석으로 첫 손에 꼽힌다. 듣는 이에게 당연히 뭉클한 문학적 감동이나 철학적 사색의 영감을 제공하기에, 한동안 서구의 애호가들은 이 연주를 듣고는 '말러를 제대로 연주하려면 독서를 많이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에 몰두하기도 했다. 이에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시니컬하게 답했다. '텐슈테트는 독서와 담 쌓은 인간이다. 그의 집에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몇 권이 전부였다.' 그러니 텐슈테트의 이 놀라운 해석 또한 철저히 그의 예술적 직관에서 탄생한 가장 순음악적인 해석이다. 내일 당장 지구의 마지막 날이라도 도래하는냥 온몸을 불사르는 텐슈테트 모습에서는 어떤 초월적인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썩어 내려앉은 트라반트 자동차 한 대를 빌려 불빛 하나없는 구 동독의 내륙 국도를 끝도없이 내달리는 기분이다. 여기에 승차감이며 연비를 분석하는게 대체 무슨 소용인가.

주관적인 해석의 대명사로는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60년대부터 말러를 적극적으로 지휘하면서 20세기 후반 말러 붐을 주도한 선구자였다. 현재는 그의 해석을 놓고 '투 머치'하다는 주장과 '그래도 뜨거운 말러로는 최고다'로 의견이 갈린다. 번스타인의 음반은 뉴욕필과의 연주[SONY]와 콘세르트헤바우[DG] 두 종류가 있는데, 전자가 좀 더 직설적이고 호쾌한 감동을 주며 음악적 응집력은 콘세르트헤바우 것이 낫다. 빈필과의 공연은 영상물로 남아 있는데 특유의 끈적이는 물성이 잘 느껴지는 연주다. 요즘에는 번스타인처럼 해석하는 지휘자가 사실상 없고, 현재는 지난 시절의 '추억의 말러' 정도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 한 시대를 관통했던 역사적인 해석이고, 수많은 지휘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강한 영향을 끼쳤던만큼 그의 음악을 들어보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예술적 경험이다.


벨벳처럼 유려하고 우아한 '거인'도 찾아보자. 브루노 발터(Bruno Walter)는 말러의 직계 제자로, 평생 말러의 교향곡을 널리 알리는데 온 힘을 다했던 거장이다. 그의 말러는 따뜻한 소릿결로 유명한데, 거의 모든 악구를 노래하듯 칸타빌레로 해석하여 모나지 않고 부드럽다는 특징도 있다. 콜롬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연주[Sony]는 1960년대에 녹음되었고, 최근에 리마스터링되면서 음질면에서도 훌륭하다. 야사 호렌슈타인(Jascha Horenstein)은 구 소련 우크라이나 태생이나 어려서부터 독일과 빈에서 공부하였고, 지휘자가 되어서는 당대 최고의 말러와 브루크너 스페셜리스트로 명성을 떨쳤다. 그의 해석은 고상한 휴머니즘과 온화한 낭만성이 돋보이는데, 1950년대 빈 심포니와의 음반[VOX]이나 1960년대 런던심포니와의 레코딩[Unicorn] 모두 감동적이다.


체코 출신의 지휘자 라파엘 쿠벨릭(Rafael Kubelik)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지휘봉을 잡으며 스메타나와 드보르작 등 체코 음악의 정신을 독일 악단에 이식하는 한편, 말러 교향악에 진한 보헤미안적 숨결을 불어 넣었다. 그의 음반[DG]은 3악장이 특히 인상적인데, 장송행진곡 이후 등장하는 동유럽 유대 가요와 보헤미안 속요 등을 가장 지역색이 듬뿍 담긴 표정으로 구성지게 해석해내고 있다. 전체적인 음악의 빛깔도 풍윤하고 온화한 녹색 빛이어서 듣는 이에게 편안한 느낌을 준다. 헝가리 지휘자 이반 피셔(Ivan Fischer)가 자신이 직접 조직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녹음한 음반[Channel Classics]도 뛰어나다. 느릿한 우아함과 귀족적 기품이 감돌면서도, 중부 유럽 특유의 풍성한 따뜻함이 어우러져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자아낸다.



영상물로는 베를린필의 디지털 콘서트홀(Digital Concert Hall) 연주들이 단연 첫 손에 꼽힌다. 21세기 우리 시대의 말러 트렌드를 이야기 해보자면, 드라마적이고 감정적인 굴곡이 심한 해석은 점차 사라지고 악기군간의 섬세한 밸런스와 정밀한 디테일 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결국 각 파트별로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이 두루 포진해 있고, 강력하면서도 명징한 음색을 지닌 베를린필이 최고의 말러 교향악단 중 하나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러 지휘자들의 명연들이 업로드되어 있으나, 그 중에서도 2025년 1월 투간 소키에프(Tugan Sokhiev) 지휘의 최신 라이브 실황을 추천한다. 소키에프의 해석이 자아내는 유려한 서정이 악장 전반에 넘실거리며, 베를린필 특유의 활기와 디테일, 강력한 생동감 모두 최고 수준이다. 목관과 금관에 객원단원이 많이 참여한 연주인데, 그들 모두 최상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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