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스타프 말러 교향악 기행(2) <교향곡 제2번>
2011년 7월 4일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태자' 오토 폰 합스부르크(Otto von Habsburg)가 파란만장했던 98세의 삶을 마감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그들만의 독특한 장례식 전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카푸치너 성당의 황가납골당 카이저그루프트에 시신을 안치하기 전에 펼쳐지는 일명 노크의례(Klopfzeremonie)가 유명하다.
장례 의전관이 지팡이로 성당의 철문을 세 번 두드리며 고인의 생전 작위를 읊기 시작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이며, 헝가리와 보헤미아, 달마티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일리리아의 왕세자, 토스카나와 크라쿠프 대공, 로트링겐, 잘츠부르크, 슈타이어, 케르텐, 카르니올라, 부코비나의 공작, 트란실바니아 대공, 모라비아 변경백, 오버-니더 슐레지엔, 모데나, 파르마, 피아첸차, 구아스탈라, 아우슈비츠와 자토르, 테셴, 프리울리, 라구사, 자라의 공작, 합스부르크와 티롤, 키부르크, 괴르츠, 그라디스카의 백작. 트렌토와 브릭센 후작, 오버-니더 라우지츠와 이스트리아의 변경백, 호에넴스, 펠트키르히, 브레겐츠, 조넨베르크 등의 백작, 트리에스테, 코트, 빈트 변경주의 영주이시며 세르비아 보호령의 영주 등등의 작위를 지녔던 오스트리아의 오토입니다."
수도사가 문 안쪽에서 답한다. "우린 그런 사람 모르오 Wir kennen ihn nicht!"
의전관이 다시 문을 세 번 두드린다.
"범유럽연합 전 대표 및 명예대표이며 유럽의회 의원을 지내고, 수많은 대학의 명예박사이자 중부유럽 지역사회의 명예시민이고, 유서깊은 학술원과 여러 기관의 회원이며, 국가와 교회로부터 최고의 표창, 훈장, 명예장을 수여받은 오토 폰 합스부르크 박사입니다."
"우린 그런 사람 모르오!"
"유한하고 죄많은 인간, 오토입니다 Otto, ein sterblicher, sūndiger Mensch"
"그럼 들어오시오! So komme er herein!"
한때 프랑스와 유럽 대륙을 양분하면서, 본토 오스트리아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북부,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발칸 반도 대부분을 영유했던 광대한 대제국 합스부르크. 그러나 이 역사적인 제국의 황태자 또한 죽어서는 '아인 멘쉬(ein Mensch)', 한 명의 인간으로 불릴 뿐이었다.
황혼의 전조가 뚜렷하던 오스트리아 제국 말기, 그 세기말의 빈을 살아가던 구스타프 말러 또한 '죽음'이라는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미 그는 유년 시절부터 죽음과 뒤엉켜 살았다. 열세 명의 형제 중 절반 가까이가 어린 시절 세상을 등졌고, 말러가 열다섯 되던 해에 병사한 동생 에른스트는 평생 그에게 상처로 남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죽음은 언제나 말러 곁을 맴돌았다. 열다섯 개의 종족, 열두 개의 언어,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종교가 뒤엉킨 이 제국은 언제나 터지기 일보직전의 시한폭탄 같은 분위기였고, 그 즈음 빈 시장에 취임한 기독교사회당의 카를 루에거(Karl Lueger)는 아예 반유대주의를 공식 모토로 내세우며 사회적 파열음을 극한까지 키웠다. 수십 개의 국경, 얽히고 설킨 정치지형 속에 제국은 언제나 크고 작은 군사적 분쟁과 일상적인 전쟁의 파장음 속에 있었다. 제국에게나 말러 개인에게나 죽음은 '널부러진 일상' 같은 것이었다.
말러의 교향곡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죽음'이다. 그의 교향곡에는 수많은 형식적 약속들이 다양한 스타일로 펼쳐진다. 소나타, 론도, 푸가, 대위법, 변주곡, 세도막 형식 등은 때로는 고전적인 형태로, 어떤 경우는 상당히 모던한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내 전체를 아우르는 경향적 통일성을 부여하기 힘들다. 그러나 단 하나, 그의 교향곡 속에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등장하는 음악이 있으니 그것은 트라우어마취(trauermarsch), 즉 '장송행진곡'이다. 찬란히 치솟는 승리의 순간 바로 직후에 언제나 단말마의 비명처럼 붕괴와 추락의 음악이 쏟아지는 것도 그가 항상 '죽음'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향곡 제2번> '부활'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사색과 고민을 담아낸 작품이다. 1번 교향곡 3악장에서 동생 에른스트의 죽음을 떠올리며 처연한 동요로 된 장송행진곡을 썼던 말러는, 2번에 이르러 인간 존재 자체의 실존적 소멸을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다. 심장을 조여오는 숨막히는 긴장감으로 가득 찬 1악장에서부터, 초월적인 천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5악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악구 속에 말러의 끝없는 고뇌와 갈구하는 정신의 심오함이 깊게 베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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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악장] 그의 죽음
제시부 _ 강림(降臨)하는 죽음
1악장은 '죽음의 고지'가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며 시작된다. (⊙CD1/00:02)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격렬한 트레몰로를 타고 더블베이스의 저현이 무시무시한 어둠의 장막을 드리우기 시작한다. 불안정한 짧은 리듬이 끊어졌다 이어짐을 반복하며 C단조의 제1주제 즉, '죽음'을 제시한다. (⊙01:00-01:15) 깨어나보니 자신은 이미 죽어있고, 관을 운구하는 장송행진을 혼령이 되어버린 그가 하늘 위에서 무력하게 지켜만 보고 있는 모양새다. 주변의 악기들이 하나 둘씩 가세하여 장대한 클라이맥스로 치솟는 가운데 음악은 기어이 그의 죽음을 확정한다.
제2주제는 E장조로 등장한다. (⊙02:49)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유려한 상승의 테마인데, 그러나 제1주제의 음울한 더블베이스 리듬이 도사리듯 뒤에 깔려있다. 결국 이 상행 테마는 5악장의 '부활'로 이어지겠지만, 여기서는 아직 죽음을 초월하여 또 다른 차원으로 나아갈 힘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다시 1주제의 어두운 분위기로 돌아갔다가, 리스트의 음악에서 유래한 A♭장조의 '십자가 동기'(⊙04:19)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후 다시 한번 하강의 음악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제시부는 마무리된다.
전개부 _ 생과 사의 처절한 변증법
전개부는 느릿한 템포의 제2주제가 C장조로 등장하면서 막을 연다.(⊙06:32) 잉글리시 호른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목가가 등장(⊙07:22)하여 한참이나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더니, 스멀스멀 안개가 피어나면서 베이스 클라리넷과 잉글리시 호른이 베르디의 <레퀴엠> 중 '신의 어린 양'(Agnus Dei, 아뉴스 데이) 선율을 노래(⊙08:42)한다. 이것은 신을 향해 보내는 간절한 기도다. '신이여, 저를 용서하소서, 주여 저를 구원하소서!' 그러나 이 애타는 갈구(渴求)는 이어지는 '진노의 날'(Dies Irae, 디에스 이래) 동기에 의해 좌절(⊙09:41)된다. 6대의 호른이 엄혹한 대제사장들처럼 포효하는 이 테마는 기독교 고대 성가에서 유래한 '도-시-도-라'(C-B-C-A)의 4음 동기로, 최후의 심판을 상징한다. 음악은 더욱 요동치며 카오스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10:40)
플루트가 노래하는 꿈같은 제2주제(⊙11:00)가 바이올린 솔로의 미려함(⊙11:17)과 합쳐져 잠시 비현실적인 천국의 이미지를 자아내다, 다시 파국과도 같은 악마적인 제1주제로 돌아온다. (⊙12:04) 이제 죽음의 공포가 세상을 뒤덮고, 그 어떤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 듯 칠흙같은 어둠이 세상을 지배한다.
콘트라베이스가 다시 운을 띄우고, 잉글리쉬 호른이 그레고리안 성가를 읊조리는 수도사의 어조로 무언가의 기도를 노래하는 가운데 '진노의 날' 동기와 '신의 어린 양' 테마가 트럼본과 트럼펫의 연주로 삶과 죽음의 변증법처럼 교차한다. (⊙13:13-13:40) 그러나 결국 최후의 심판이 이 공간을 압도하면서 다시 한번 호른이 '진노의 날' 테마를 무서운 어조로 쏟아내는데, 그때 갑자기 E♭장조가 그간 쌓여왔던 울분을 쏟아내듯 급작스레 해방감 넘치는 승리를 외치다 급박하게 소멸한다. (⊙14:26-14:39) 이것은 복잡한 현실에 치이고 갇혀서 혹은 실타래처럼 뒤엉킨 그 수많은 관계 속에 매몰되어서 삶의 그 어느 지점에서도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가, 상처받고 괴로워하다 결국 쓰러지기 바로 직전에 외치는 절규에 가까운 승리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짧은 팔로 포효하는 만세'와도 같으며, 이 불완전한 승리의 모습은 말러의 음악이 왜 현대인들에게 그토록 강렬한 소구력을 가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무정한 이 세계는 그런 우리의 절규를 받아줄 마음이 전혀 없다. 곧바로 음악은 폭풍같은 하강 음계와 만나 비극의 심연으로 다시 한번 수직 추락하는 가운데 전개부가 끝난다. (⊙15:05-16:08)
재현부와 코다 _ 불꺼진 창(窓)
죽음의 제1주제와 상승의 제2주제가 다시금 뒤엉키는 재현부가 등장하고, 곧이어 음악은 코다로 진입한다. (⊙20:25) 이곳이 제1주제가 지배하는 영역임을 알리듯 C단조의 오스티나토가 저음으로 무겁게 깔리고, 크고 작은 동기들이 고개를 내밀다 사라지며 죽은 이의 생전모습을 묵묵히 반추한다. 잠시 한줄기 빛이 비치며 온화한 C장조로 상승하던 음악은 곧바로 돌출하는 트럼펫의 개입을 신호로 급락하며 '쾅'하고 마무리된다.(⊙23:40-24:10) 죽은 자를 매장하는 흙이 그의 관 위에 떨어지고, 장례의식이 완전히 끝나는 모습을 표현한 듯한 스산한 정경이다.
[제2악장] 그대, 온화하고 찬란했던 여름날의 젊음
2악장은 1악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의 생전 모습을 아련하게 그려낸 춤곡이다. 세 도막 형식이 두 번 반복되는 형식(A-B-A-B-A)을 취하고 있다.
나긋한 A주제(CD2 T1/⊙00:04)는 여름날 호숫가의 작은 무도회 같다. 빈에서 시골의 호반 마을로 피서를 온 두 가족이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며 서로 인사를 나눈 두 집안 사람들이 어스름한 저녁 불빛을 벗삼아 왈츠를 추기 시작한다. 부드러운 미소의 귀공자와 살짝 수줍은 기색의 청초한 여인이 나무로 이어붙인 소박한 무도장 위에서 큰 원을 그리자, 남은 가족들도 이에 화답하여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순백의 윤무들이 초저녁의 오스트리아 호수 위에 푸르른 고요를 수놓는다.
B주제(⊙01:24)는 현악기의 3연음 스피카토(Spiccato) 위에 몽글거리는 하프와 파릇한 플루트가 추가되어 보다 꿈같은 회상의 분위기다. 그렇다. 사실 우리는 지금 현실이 아니라 그와의 지나간 추억을 애틋한 심정으로 반추하고 있는 중이다.
두 주제(A,B)가 다시 한번 반복된 후, 마지막으로 A주제가 다시 돌아온다. (⊙06:58) 여기서부터는 현이 피치카토(Pizzicato)로 음악을 연주한다. 셔츠 단추를 하나쯤 풀어헤치고 화이트 와인 한잔과 함께 기타나 치터(Zither, 오스트리아 일대의 민속악기)를 뜯으며 저 멀리 풍경을 아스라히 바라보는 그런 평화로운 여름날의 초저녁이 그려진다.
2악장은 '어제의 휴가' 혹은 '지난 날의 여름방학'과도 같은 음악이다. 매년 여름마다 나는 2악장과 같은 시간을 꿈꾸곤 한다. 가깝고 소중한 이들과 작은 테이블에 조용히 둘러 앉아 좋은 음식과 음악, 풍경과 바람을 함께 나누며 뉘엿이 해가 저물어가는 풍경을 느긋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런 나날들 말이다.
[제3악장] 인생이라는 간난신고(艱難辛苦)
팀파니의 기괴한 외마디 비명으로 3악장은 시작된다. 기묘하지만 멋들어진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의 한 챕터를 만난 기분이다. 형식은 2악장과 동일(A-B-A-B-A)하다.
A주제(T2/⊙00:16)는 말러 자신의 가곡에서 가져왔다.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Des Knaben Wunderhorn> 중 '물고기에게 설교하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우스 Des Antonius von Padua Fischpredigt'다. 차가운 음색의 클라리넷이 도통 알아듣지도 못할 설교를 물고기에게 한참이나 늘어놓는 성자 안토니우스의 모습을 시니컬한 뒤뚱거림으로 묘사한다.
B주제(⊙03:34)는 피콜로와 플루트가 고장난 컴퓨터의 전자음 같은 소리를 16마디나 지속하는 걸로 시작된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이 장면에서 섬뜩한 이명(耳鳴)을 떠올릴 것이다. 낮 동안의 노동과 학업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휴식과 잠을 청했으나 알 수 없는 전파음 같은 것이 뇌를 그대로 관통하는듯한 그 불쾌한 경험 말이다. 고양이 걸음같이 살금거리는 저현과 찢어지는 D장조의 금관 팡파르가 교차되는 B파트는 종잡을 수 없지만 왠지 묘하게 끌리는 느낌을 남긴 채 마무리된다.
A와 B 두 주제가 한번씩 굴곡진 변화를 보이며 반복되는 가운데, 말러 교향곡의 전형적인 특징인 '느닺없는 폭발 혹은 붕괴'가 여지없이 깜작 등장해 격한 쾌감을 선사한다. (⊙08:55) 마지막 A주제가 음산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내민 후(⊙10:43) 곧바로 사라지면서 3악장은 마무리된다.
2악장과 달리 3악장은 삶이라는 난해한 현실에 직면한 우리 존재의 어지러운 일상을 아이러니로 가득 찬 음악으로 보여준다. 인생은 정교하게 쌓아올린 화음처럼 완벽할 수가 없다. 고장난 기계소리, 소름끼치는 전파음, 텅빈 공간의 불쾌한 진동음처럼 우리 인생은 온갖 상처와 생채기, 예상 못한 사건사고로 가득하다. 말러는 인생의 이런 부조리함을 '질서있는 무질서의 음악'으로 생생히 묘파했다. 당대의 청중들보다 오히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에게 더 큰 울림으로 와닿을, 실로 예리한 음악이다.
[제4악장] 성스런 인터메초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카타니아 대성당(Cattedrale di Sant'Agata)은 이 도시에서 가장 유서깊은 역사지구의 한 복판에 위치해 있다. 한낮의 무더위, 수많은 관광객들, 잡상인들의 소음이 뒤섞여 주변 분위기는 요란하기 그지없다. 그때 잠시 고개를 들어 대성당 파사드를 장식하고 있는 성인들의 조각상을 올려다 본다. 시칠리아 특유의 그 티끌 한점없이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희고 달콤한 질감'의 시칠리아 대리석으로 빚어낸 이름모를 가톨릭 성인들의 조각상이 열주처럼 참으로 고요히 늘어서 있다. 그 장면은 순식간에 우리를 세속의 번잡함에서 건져올려 어떤 초월적인 세계로 이끈다.
부활 교향곡의 4악장 또한 그러하다. '오 붉은 장미여 O Röschen rot'라고 시작되는 메조 소프라노의 고요한 독창이 등장한다. 앞선 두 악장이 자아낸 '살아간다는 것의 떠들석함'에서 벗어나 존재의 본질을 사색하게 만드는 음악이다.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가곡집에서 제목을 따온 '태초의 빛 Urlicht'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음악은 거대한 5악장으로 나아가는 '성스런 간주곡'의 역할을 하게 된다.
오 붉은 장미여(O Röschen rot!)
인간은 큰 고뇌 속에 있고
인간은 큰 고통 속에 있도다.
그러나 나는 천국에 있고 싶다!
나는 넓은 길로 나아갔으나
한 천사가 나를 돌려보내려 했다
아니, 나를 돌려보내지 마시오!
나는 신에게서 왔으니 신에게로 돌아가리오!
존귀하신 하느님이 내게 빛을 내려주시니
영생의 복된 삶을 향한 길에 환한 빛이 비추리라!
[제5악장] 나 살기 위해 죽으리
제1부 천국으로 향하는 길
30분에 달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5악장은 크게 3부로 나눌 수 있는데, 카오스적인 붕괴의 음악이 나온 직후에 이른바 '영원의 동기'가 들리며 시작된다. (T4/⊙00:28) 영원의 동기는 바그너의 4부작 악극 <니벨룽의 반지> 중 세번째 작품인 <지그프리트> 피날레에 등장하는 음악에서 소재를 취한 것이다. 전쟁의 여신에서 필멸자로 강등되었던 브륀힐데가 지그프리트를 만나 자신의 처지와 운명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감동적인 선율이다.
"나는 영원한 자였으며, 나는 영원한 자입니다.
감미롭게 갈망하는 희열 속에서 영원하며,
당신의 지복을 위해 참으로 영원하지요."
(Ewig war ich, ewig bin ich
ewig in süß sehnender Wonne
doch ewig zu deinem Heil!) - 바그너 <지그프리트> 3막 브륀힐데
저 멀리서 호른의 장대한 팡파르가 울리며 천상의 세계가 열리고 있음을 알린다. (⊙01:51) 현과 하프 등이 출렁이는 화음으로 화답하다 템포가 점차 느려지는 가운데, 목관이 메마른 표정으로 '진노의 날' 테마를 연주하면 트롬본이 이를 달래듯 '부활의 테마'로 화답한다. (⊙03:14) 여기서 진노의 날은 죽음의 공포 혹은 죽음 그 자체를 표상하여 날카로운 표정을 지녔고, 부활의 동기는 보다 장엄하며 온화한 모습이다. 수도사들의 묵상같은 경과부를 지나 트럼본과 튜바가 '진노의 날'과 '부활'의 테마를 조화롭게 합주하자 곧이어 하늘의 문이 활짝 열리고 찬란한 음악이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리기 시작(T5/⊙01:18)한다. 영혼이 천국에 도착한 듯 하다.
제2부 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이 시작된다. 타악기와 금관이 메마르고 찢어지는 공포의 음형을 자아내고(T6/⊙00:02), '진노의 날' 등 수많은 동기가 그로테스크한 리듬을 타고 군대 행진곡 풍으로 울려퍼진다. 길거리의 속요 등이 돌출하며 뒤섞이다 1악장 1주제도 다시 등장하고, 금관악기가 찢어지는 비명과도 같은 '공포의 팡파르'를 터트리는 가운데 다시 한번 저 멀리서 '영원의 동기'가 구원처럼 들려오기 시작한다. (T7/⊙02:18)
제3부 그대 부활하리라
장엄한 나팔소리가 들린다. (⊙03:45) 하늘을 가로지르는 트럼펫의 신비로운 울림 위에 피콜로와 플루트가 천상의 새소리를 듀엣으로 노래하는데, 그 끝에서 부활 합창의 첫 소절이 들려온다. (T8/⊙00:01) "아우프에어슈테엔, 야 아우프에어슈테헨 비르스트 두! Aufersteh'n, ja aufersteh'n wirst du (부활하리라! 그대 부활하리라!)"
①
부활하리라, 그대 부활하리라!
나의 죽음이여, 짧은 휴식 후에 다시 부활하리라!
그대를 부른 이가 그대를 불멸의 삶으로 인도하리라!
②
그대는 새롭게 피어나리라!
수확의 주님이 오셔서
볏단을 모아 죽은 우리를 하나로 모으리라!
③
오 믿어라 나의 마음아, 믿어라!
그대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그대가 갈구한 것은 그대의 것,
그대가 사랑하고 그대가 투쟁한 것은
모두 그대의 것이다!
④
오 믿으라, 그대는 헛되이 태어나지 않았다.
그대의 삶도, 그대의 고통도 무의미하지 않다!
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으며
죽은 것은 부활하리라!
더 이상 두려워말라!
새 삶을 준비하라!
⑥
오 고통이여! 그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고통이여!
그대는 극복되었도다!
오 죽음이여! 그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죽음이여!
이제 그대는 정복되었도다!
⑦
쟁취한 날개를 달고 나 날아 오르리니
뜨거운 사랑의 갈망 속에서 나 날아 오르리라
누구도 본 적 없는 빛을 향해!
⑧
나 살기 위해 죽으리라!
⑨
쟁취한 날개를 달고 나 날아 오르리라!
부활하리라, 그래 부활하리라!
내 마음이여, 그대 한순간에 부활하리라!
그대가 겪은 그 고통이
그대를 신께 인도하리라!
합창의 1절과 2절은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클롭슈토크의 '부활' 시에서 가사를 가져온 것이고, 3절 이후는 말러가 직접 쓴 것이다. 여기서의 '부활'은 기독교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좀 더 보편적인 시각에서 삶의 소멸과 그 재생을 노래한 일종의 범신론적 고찰에 가깝다. 7절에서부터 음악은 가사대로 '날개를 달고'(Mit Flügeln) 하늘을 향해 계속해서 상승하는 이미지를 자아내고, 마지막 9절에서 오르간이 합세해 '신께'(Zu Gott)를 외치는 장면에서 거대한 절정을 이룬다. (T10/⊙02:55)
합창이 마무리되고 오케스트라가 후주로 대단원을 장식한다. 호른, 트럼펫, 트럼본이 어울려 거대한 톤으로 다시 한번 '영원의 동기'를 쏟아내고, 3대의 거대한 종이 자아내는 초월적 울림이 온 하늘을 뒤덮는 가운데 '부활 교향곡'의 장대한 막이 내린다. (T10/⊙03:29)
음악이 끝나고
"내 옆으로 두 발짝 떨어져 앉은 그녀는 허밍으로 말러 2번 교향곡의 선율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취한 사람 특유의 유순하고 부드러운 도취 속에서 그녀는 설명했습니다. 1악장의 회로가 얼마나 복잡하고 극적인지, 그것을 종결하는 방식이 얼마나 미묘한지. 삶과의 춤을 그린 2악장이 얼마나 대조적으로 세속적인지. 반면에 죽음과의 무도인 3악장에 어려 있는 씁쓸한 유머에 대해서. 그리고 4분 55초의 알토 독창으로 처리한, '처음의 빛'이라는 제목의 4악장. 그 견결하고 끔찍한 아름다움에 대해서."
한강 작가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에는 부활 교향곡이 등장한다. 그것도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에서 치명적인 모티브로 작동한다. 소설에는 마치 그리스 비극 속 고독하고 소외받는 주인공처럼 거친 세파에 치이고 밀려나는 한 여성이 등장한다. 생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 내지 존재의 확인은 부활 교향곡을 듣는 것이다.
"그 노래의 마지막 단어, 레벤-생명-을 부르던 그녀의 떨리는 가성을 기억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음반을 찾아서 들어보았지만, 사십 년 전 그녀의 부엌에서 들었던 만큼의 처절함을 느끼게 하는 가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이 발음하는 영원한 생명을 향해 오직 절망과 갈망만으로 다다르려 하는, 다시 살아나고 싶지 않아 천사에게 애원할만큼의 고통을 알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
부활 교향곡의 피날레에서 느껴지는 순백의 해방감은 지극히 내면적인 것이며, 숭고하면서도 슬픈 느낌을 준다. 사멸해가는 우리 존재가 기도와 종교적 열망 속에 내세에의 확신을 보장받는 그런 형태의 속편한 구원이 아니다. 부활과 재생을 향한 쉼없는 갈구는, 사실 우리 모두가 반드시 죽는다는 실존적 숙명을 뚜렷하게 재인식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이 거대한 5악장의 교향곡은 유한하고 죄많은 인간(ein sterblicher, sūndiger Mensch) 모두를 위한 자서전이며, 우리의 내면을 향한 끝없는 질문이다.
※ 본문 속 음반의 타임코드(⊙)는 사이먼 래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의 2010년 라이브 레코딩(W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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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②] 클라우디오 아바도 &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DG) _ 세계를 향한 처연한 그 미소
[영상] 안드리스 넬손스 & 빈필 (C Major) _ 현대 말러의 찬연한 기념비
사이먼 래틀(Simon Rattle)과 베를린필의 2010년 라이브 레코딩[Warner]은 순음악적 부활 교향곡의 최정점에 위치한 연주다. 래틀의 지휘 철학은 한마디로 '음악은 다이내미즘이다'로 요약할 수 있는데, 치밀하고 빈틈없으며 극도로 리드미컬한 그의 지휘봉이 악보의 구석구석을 찌르듯이 건드리면서, 리듬과 화성, 선율만으로도 가장 완성도 높은 말러 음악이 가능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베를린필 재임 시절 오페라에 큰 의욕을 보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3편의 오페라 공연을 소화해야만 하는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 등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럼에도 그가 베를린필과 남긴 바그너의 <발퀴레>(2012), <트리스탄과 이졸데>(2016) 등은 하나같이 기념비적인 명연인데, 한순간의 주저함도 없는 완벽한 완급조절과 적재적소를 타격하는 치밀한 음악적 포커싱이 너무나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2010년의 부활 교향곡 또한 래틀의 이런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놀라운 연주로, 복잡한 설교 대신 악보 속의 음악적 메시지를 가장 적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지휘자의 능력과 초인적인 연주력의 베를린필이 궁극의 시너지를 보여주는 명연이다. 베를린필 디지털콘서트홀에서 영상으로도 시청이 가능하다. 래틀이 젊은 시절 녹음한 버밍엄 교향악단과의 음반[Warner, 1986]도 탁월한데, 1악장의 수직적인 상승과 하강이 주는 익사이팅한 쾌감과 5악장에서 장대하게 넘쳐흐르는 오르간 음향의 짙은 여운은 지금 들어도 특별하다.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는 본질적으로 미니멀하고 담백한 말러를 추구한다. 그래서 음악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가 제법 뚜렷하게 갈리는데, 그가 비교적 젊은 시절에 남긴 빈필과의 레코딩[DG]이 바로 이런 아바도의 경향성을 잘 보여주는 음반이다. 아바도의 말러가 감정적인 굴곡이 너무 없고, 지나치게 담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2003년 루체른 페스티벌 실황 레코딩[DG]에는 크게 만족할 것이다. 그는 베를린필 지휘봉을 스스로 내려놓은 후, 남은 여생을 가장 순도높은 음향의 말러를 연주하는데 헌신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하여 전 세계 최고 관현악단의 대표적인 단원들과 유명 솔리스트들을 망라해 '월드 올스타 오케스트라'를 조직했는데, 이것이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Lucerne Festival Orchestra)이다. 2003년 '부활' 교향곡은 바로 이 오케스트라의 첫 콘서트로, 악장에 콜야 블라허, 플루트의 엠마뉘엘 파위, 오보에의 알브레히트 마이어 등 아바도의 베를린필 시절 최고 단원들이 전부 포진해 있으며, 클라리넷의 자비네 마이어, 첼로의 나탈리아 구트만 등 눈을 의심케 하는 비르투오조 솔리스트들이 단원으로 앉아 있다. 1악장부터 온화한 향취와 드높은 인격성이 느껴지는 깊고 심오한 음악이 펼쳐지는데,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룬 최고의 마에스트로가 속세의 온갖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순수한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 듯한 그 초월성이 너무나 큰 감동을 준다. 해당 음반은 영상물로 출시되어 있고, 유튜브에서도 시청 가능하다.
부활 교향곡의 전통적인 명반으로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가 지휘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음반[Warner]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브루노 발터와 함께 20세기 초기부터 가장 먼저 말러 교향곡을 널리 알렸던 지휘자 중 한명이다. 발터가 비교적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칸타빌레가 가득한 말러를 추구했다면, 클렘페러는 엄격하고 강인한 정신성이 느껴지는 철학적 말러 해석의 선두주자였다. 특히 클렘페러는 부활 교향곡에 깊이 천착하여 무려 7종류의 레코딩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1963년에 녹음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레코딩은 지금까지도 반드시 들어봐야 할 전설적인 명연으로 이름 높다. 특유의 냉철함과 악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클렘페러는 희망과 좌절, 축복과 죽음이 수시로 교차하는 말러 음악의 그로테스크한 2중성을 완벽하게 포착하고 있다. 주빈 메타(Zubin Metha)의 1975년 빈필 레코딩[Decca]도 부활 교향곡 중 단연 톱클래스에 꼽히는 명연으로, 젊은 시절의 메타가 창출하는 뜨겁고 밀도 짙은 정방형의 사운드가 유연하면서도 극적인 빈필의 연주력과 어우러져 최상의 시너지를 자아낸다.
음반과 영상을 통틀어 단 하나의 '부활'을 뽑아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안드리스 넬손스(Andris Nelsons) 지휘의 빈필 실황[C Major]을 선택할 것이다. 201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라이브 연주를 담아낸 영상으로, 지금까지 나온 넬손스의 말러 해석 가운데서도 단연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빈필은 말러와 인연 및 악연을 둘 다 가진 오케스트라이다. 말러는 빈에서 공부했고 빈국립오페라와 빈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지내며 인생의 최전성기를 보냈다. 그러나 빈필은 '작곡가로서의 말러'는 철저히 무시했다. 말러 생전에 빈필이 그의 교향곡을 초연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빈필의 사운드에 말러 시대의 전통과 향취가 남아 있느냐 하면 그건 또 확실히 '그렇다'라고 할 수 있다. 전통의 사운드를 수호하고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이 오케스트라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사명이기 때문이다. 이 공연에서 제1 바이올린 부수석 자리에 앉아 있는 악장 볼크하르트 슈토이데의 경우 말러의 매제, 그러니까 말러의 여동생 유스티네의 남편이자 1881년부터 1938년까지 무려 반세기 동안 빈필의 악장을 역임했던 아르놀트 로제(Arnold Rose)의 바이올린을 그대로 들고나와 연주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빈 특유의 사운드'를 비너 클랑슈틸(Wiener Klangstil)이라고 부르는데, 빈필의 그 나긋하고 유려하면서도 드라마틱한 벨벳 사운드는 말러가 지휘봉을 잡았던 세기말이나 디지털 시대인 지금이나 개념적인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넬손스도 빈필과의 호흡이 최상인데, 실제로 같은 해에 베를린필을 지휘한 영상[디지털콘서트홀]에 비해 빈필과의 연주가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1악장은 첫 마디부터 인상적인데, 육감적으로 꿈틀대는 격노의 사운드와 품위 있는 예술적 진중함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개부에서 '아뉴스 데이'와 '진노의 날'이 엇갈리는 부분의 드라마틱한 콘트라스트라던가, 코다에서 C단조로 떨어지는 수직적 추락의 급박함 등은 특별히 인상적이다. 2악장에서는 역사상 최고의 렌틀러 춤곡이 펼쳐진다. 넬손스가 부여하는 특유의 여유로운 자율성과 이에 노련하게 반응하는 빈필 단원들의 유려하고도 우아한 음악성이 한데 어우러져 한편의 아름다운 노스탤지어 영화를 완성했다. 당밀한 낭만이 스며든 4악장의 숭고함은 절로 빈의 세기말을 아스라히 떠올리게 한다. 5악장 피날레에서 울리는 '영원의 동기'가 다른 어떤 연주들보다 더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넬손스와 빈필의 음악적 지향점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19세기 유겐트 슈틸의 유미주의적 우아함이 21세기의 기능적 관현악의 치밀한 최고 합주력과 만나 탄생한, 우리 시대의 기념비적인 명연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