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교향곡 제3번>

- 구스타프 말러 교향악 기행(3) <교향곡 제3번>

by 황지원

흰 가지 사이로 석류석처럼 빛나는 초록빛 햇살이 하얀 옷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푸른 나무 사이로 하늘거리던 하얀 옷자락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숲 속 깊은 곳으로 기사의 모습도 사라지고, 이제 파릇파릇한 풀밭에는 정적만 남게 되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이따금 들려오는 햇살, 고대의 정적, 한적한 빈터. 짓밟혀 눌려있던 자그마한 풀들은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썼고, 조금씩 상처 입은 잔디도 눈에 띄웠다. 행렬은 지나갔고, 아늑하고 작은 숲 속의 공간은 처음으로 사람을 보았다.

-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교목림 Der Hochwald>


전통적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예술가들은 겸허한 자세와 소박한 언어로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나지막히 찬양해왔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슈베르트의 '송어'와 슈만의 라인 교향곡, 브람스의 교향곡 2번, '로맨틱'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브루크너의 4번 교향곡 등이 그렇다. '숲의 작가'라 불렸던 아달베르트 슈티프터는 <교목림>과 <늦여름> 등을 통해 오스트리아와 보헤미아 일대의 숲이 주는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특유의 교양미 넘치는 언어로 담담하게 노래하곤 했다.


구스타프 말러 또한 자연을 사랑한 음악가였다. 빈의 궁정오페라 지휘자로 일하면서 늘상 과로에 시달렸던 그는 여름 휴가철만은 한적한 장소로 잠적해 아무런 방해없이 마음껏 음악을 쓰고 싶어 했다. 그가 찾은 첫 번째 장소는 잘츠카머구트 아터제(Attersee, 아터호수)의 호반마을 슈타인바흐였다. 1893년 여동생 유스티네를 비롯해 가족, 지인들과 휴가철 석 달을 보내며 이 마을의 고즈넉한 정취에 흠뻑 빠진 말러는, 이듬해에는 아예 호숫가 바로 앞에 작은 오두막을 지어 놓고는 몇 시간이고 틀어박혀 작곡에만 매달렸다.



두어 평 남짓의 작곡오두막(komponierhäuschen)에는 밖으로 난 작은 창문과 뵈젠도르퍼사의 간이 피아노 한 대가 전부였다. 이곳에서 말러는 '대자연을 재인식'하게 된다. 문명화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을 자기 위주로 해석하기 마련이다. 도심 한가운데의 파릇한 잔디 공원, 마을 산책길의 즐거운 새소리, 주말 드라이빙으로 찾아간 호반도시의 카페, 근교의 등산코스 등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개의 자연이다. 그러나 조금만 문명의 손길을 벗어나도 이런 '정제된 자연' 말고 날 것 그대로의 총체적 생태계들과 마주치게 된다. 어느 산골 농가에서 보낸 하룻밤은 무섭고도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불빛 하나 없는 칠흙 같은 밤에도 숲에서는 수천가지 생명의 소리들이 쏟아졌다. 새들의 퍼덕이는 날개소리, 들짐승들의 비명 섞인 울음들. 식물들이 소리를 낸다(?)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 세찬 산바람에 나뭇가지가 부딪히고, 휘청이고, 찢어지는 그 소리는 사납고 원초적이었다. 동해 바다에서 훈련을 받던 해군 시절도 기억이 난다. 천지사방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바다는 달콤한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 속에 북두칠성의 위치가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육지를 찾아내야 했던 고대인들은 그래서 별자리에 그렇게 열심이었을 것이다.


아터제의 오두막에서 말러는 자연과 정신적으로 합일(合一)한다. 그때의 총체적인 체험, 강렬한 깨달음을 여섯 악장의 거대한 교향곡에 담았다.

"온 세계를 다 담아낸 광대한 작품이고 생각하면 되오. 말하자면 우주가 연주하는 악기인 셈이지. 어떤 패시지는 너무나 초자연적이어서 내가 만들어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라오."

말러는 이른바 철학적 진화의 단계에 따라 악장을 구성하였다. 목신 판(Pan)이 깨어나 생명이 요동치는 1악장, 식물(2악장)과 동물(3악장) 그리고 인간(4악장)의 세계를 그린 음악에 이어, 천사(5악장)와 신의 사랑(6악장)이 등장한다. 그는 악보에 이렇게 적었다.


제1악장 판이 깨어나고, 여름이 행진한다

제2악장 목장의 꽃들이 내게 말하는 것

제3악장 숲속의 동물이 내게 말하는 것

제4악장 인간이 내게 말하는 것

제5악장 천사가 내게 말하는 것

제6악장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


아터제의 오두막을 찾은 말러의 제자 브루노 발터는 호수의 찬란한 풍광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말러가 말했다. "그렇게 열심히 볼 필요없네. 내가 남김없이 여기(3번 교향곡)에 다 작곡해 놓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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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악장] 태초가 눈을 뜨고, 여름이 행진한다


제시부


도입부 _ 빅뱅

3번 교향곡은 8대의 호른이 포효하는 도입부로 시작(⊙T1/00:00)된다. 말러는 악보에 기상나팔(Der Weckruf)이라고 적었다. 브람스 <교향곡 제1번> 4악장의 제1주제(해결주제)를 D단조로 변형해놓은 모양새다. 이 음악은 빅뱅 혹은 태초의 시작을 뜻하며, 동시에 아직은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겨울'을 상징하는 표지석 역할이다. 빅뱅 이후 안개와 먼지들이 빈 공간을 맴돌다 가라앉는 혼돈 이후의 상황이 음악으로 묘사된다.


제1주제 _ 생명 없는 겨울

장송행진곡풍의 불길한 3연음 리듬이 등장(⊙01:13)하고 약음기를 단 트럼펫의 사나운 포효와 함께 '겨울' 혹은 '생명없음'의 주제(⊙01:27)가 울린다. '요정의 간주곡'. 판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고, 찰랑이는 3연음 리듬을 바탕으로 여름이 행진을 시도한다. (⊙05:20- 05:59) 그러나 아직은 겨울이다. 생명의 온기는 트롬본 솔로의 한겨울 삭풍에 금새 사그라진다.


제2주제 _ 여름의 행진

판이 다시 고개를 든다. (⊙09:12) 이제 진짜 여름이 찾아왔다. 경쾌한 부점 리듬이 점층적으로 쌓이며 생명 탄생의 난만한 온기를 온 대지로 실어나른다. 자연이, 생명이, 판이, 디오니소스가 뜨거운 대지를 휘저으며 행진을 시작한다. 말러의 모든 교향곡 가운데서도 가장 고양감이 넘치는, 실로 찬란한 행진곡이다.


전개부


그러나 여름의 행진이 클라이막스에 달할 때 급격한 붕괴가 일어나고, 음악은 도입부의 사나운 호른 독주를 재소환한다. (⊙14:26) 겨울의 주제가 거듭되며 차가운 삭풍이 몰려 온다. 이때 트롬본 솔로의 고독한 노래(⊙16:12)가 깊고 적막한 밤의 공간으로 한없이 날아간다. 마치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 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ämmerung ihren Flug.'는 헤겔의 문구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판과 여름의 테마(⊙17:41)가 다시 깔리고, 바이올린이 매혹적인 솔로를 그 위에 얹으면 트럼펫과 피콜로가 군대를 소집하는 나팔소리(⊙18:10)를 앙증맞게 연주한다. 주변이 윙윙 거리며 군세가 모이는 듯 하다. 여름의 온화한 향기, 생명에 대한 넉넉한 낙천성이 공간을 채운다. 판과 그의 일행이 동네 건달마냥 껄렁한 자세로 모여드는 에피소드(⊙20:34)가 등장한다. 말러는 트롬본의 날카로운 리듬에 '폭도들!'(Das Gesindel)이라고 적었다. 여름의 행진이 더욱 흐드러진 분위기로 진행된다. 음악은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디오니소스의 광란의 축제(⊙23:18)로 발전한다.


재현부


군악대의 터질 듯한 드럼 비트를 타고 도입부 호른 합주와 겨울의 제1주제가 재등장한 후, 여름의 행진을 묘사한 제2주제가 다시 나오고, 그들이 찬란하게 비상하는 가운데 1악장의 막이 내린다.


[제2악장] 꽃들이 말하는 것


1악장은 험준한 산과 바위에서 겨울과 여름이 서로 투쟁하며 이뤄진 생명 탄생의 순간을 서사적인 축제로 노래한 것이었다. 2악장은 창조의 다음 단계로, 알프스의 들녘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에 관한 이야기다. 세 도막 형식으로, 트리오가 두 번 등장하는(A-B-A-B-A) 느린 무곡 악장이다. 1악장의 디오니소스적 광란에 비해 한결 느슨하고 장식적인 로코코 분위기가 보다 여유로운 감상을 가능케 한다.


A주제(⊙T2/00:01)는 미뉴에트다. 금관이 침묵하는 자리에 나긋한 오보에와 청신한 바람 같은 바이올린이 함께 한다. B주제(⊙01:57)는 현악기의 피치카토를 타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들을 묘사한다. 앙증맞은 노란 꽃으로 유명한 알프스 허브 크로이터(Kräuter), 민들레 뢰벤잔(Löwenzahn), 유채꽃 랍스(Raps) 등이 들판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하다.



A주제(A-B-A-B-A)(⊙02:50)에는 비엔나 살롱음악풍의 감성적인 달콤함이 가미되어 있다. 때문에 당시에는 전곡 대신 2악장만 따로 떼어 연주하는 곳도 있어서 말러를 슬프게 하기도 했다. B주제(A-B-A-B-A)(⊙05:00)가 좀 더 세찬 바람을 표현하고, A주제(A-B-A-B-A)(⊙06:33)가 미묘한 분위기로 다시 연주된 후 악장은 부드럽게 마무리된다.

[제3악장] 동물들이 말하는 것

스케르초 악장. A주제는 뻐꾸기의 노래 소리(T3/⊙00:00)다. 때로는 소란스럽게, 때로는 조용하게 다채로운 느낌으로 변주된다. 백스테이지에서 들려오는 포스트 호른(Post Horn)의 나른한 세레나데는 B주제(⊙05:37)이다. 이때 음악은 리스트의 <스페인 광시곡> 중 스페인 전통무곡인 '호타 아라고네사'(jota aragonesa)를 신비롭게 인용한다.

트럼펫의 나팔신호(오스트리아 육군의 퇴각신호를 그대로 가져다 쓴)를 기점으로 다시 A주제로 돌아와(⊙10:08) 뻐꾸기의 노래소리가 재등장하고, 두 번째 포스트 호른이 B주제의 귀환(⊙13:17)을 알리는데, 코다(⊙16:27)는 말러 특유의 격렬한 '붕괴'와 함께 거대하게 수직으로 치솟으며 마무리된다.


[제4악장] 인간이 말하는 것


4악장에서 이르러 세계 창조의 과정은 자연에서 인간으로 진화한다. 1악장 도입부의 후반부에 등장했던 신비로운 화성을 바탕으로 알토 독창자가 '오 멘쉬! 오 멘쉬!'(인간이여, 오 인간이여!)라고 노래하며 시작된다.


오 인간이여! 들으라!

이 깊은 밤은 무엇을 말하는가?

나는 잠들었었고

이제 그 깊은 잠에서 깨었노라.

지금 세상은 깊도다,

밝은 대낮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깊도다.


O Mensch! Gib Acht!

Was spricht die tiefe Mitternacht?

Ich schlief, ich schlief

aus tiefem Traum bin ich erwacht

Die Welt ist tief,

und tiefer als der Tag gedacht.


밤의 고뇌는 깊지만

기쁨은 고뇌보다도 더 깊도다!

고뇌는 말하길: 사라져라!

그러나 모든 기쁨은 영원으로 향하려 하나니,

깊고도 깊은 영원으로 향하려 하나니.


Tief ist ihr Weh,

Lust tiefer noch als Herzeleid.

Weh spricht: Vergeh!

Doch all Lust will Ewigkeit,

will tiefe, tiefe Ewigkeit!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밤의 노래'에서 텍스트를 가져왔다. 3도로 떨어지는 초월적 오보에(T4/⊙01:52)는 밤의 새 나흐트포겔(Nachtvogel,금눈쇠올빼미)을 표현했다. 칡흑같은 밤을 지키며 그 잠들지 않는 형형한 눈빛으로 세계의 이면을 응시하는듯 하다.


[제5악장] 천사들이 말하는 것


F장조로 된 3부 형식의 악장으로, 소년들이 노래하는 '천사들의 목소리'와 알토가 노래하는 '베드로의 회개장면'이 중심이 된다. 여성합창은 나레이터 역할이다. 소년들이 종소리를 흉내내 '빔밤 빔밤 Bimm bamm Bimm bamm'이라 노래하고, 여성 합창단은 민요조의 '세 천사가 노래를 불렀네 Es sungen drei Engel'를 노래하며, 여기에 알토 독창자가 가세한다.


세 천사가 달콤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네.

그 노래는 천국에서 복되게 울려 퍼지고

그들은 기쁨의 환성을 질렀네,

베드로는 무죄라고.


Es sungen drei Engel einen süßen Gesang,

mit Freuden es selig in dem Himmel klang.

Sie jauchzten fröhlich auch dabei:

daß Petrus sei von Sünden frei


주 예수가 식탁에 앉으시어

12제자와 함께 만찬을 하실 때

예수 말씀하시매

"너는 어찌하여 여기에 서있느냐?

내가 너를 보매 울고 있구나."


Und als der Herr Jesus zu Tische saß,

mit seinen zwölf Jüngern das Abendmahl aß,

da sprach der Herr Jesus: "Was stehst du denn hier?

Wenn ich dich anseh', so weinest du mir!"!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으리까, 자비로운 주여!

저는 십계명을 어겼나이다

슬픔을 참을 수 없어 울고 있나이다

제게 오셔서 자비를 베푸소서!"


"Und sollt' ich nicht weinen, du gütiger Gott?

Ich hab' übertreten die zehn Gebot!

Ich gehe und weine ja bitterlich!

Ach komm und erbarme dich über mich!"


"네가 십계명을 어겼다면

무릎 꿇고 주님께 기도하라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라!

그리하면 천국의 기쁨을 얻게 되리라."


"Hast du denn übertreten die zehen Gebot,

so fall auf die Knie und bete zu Gott!

Liebe nur Gott in alle Zeit!

So wirst du erlangen die himmlische Freud'."


천국은 행복한 곳이요

천국은 영원한 곳이리라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영원한 기쁨을 약속하시매

모든 이들에게도 영원한 축복이 내려졌느니.


Die himmlische Freud' ist eine selige Stadt,

die himmlische Freud', die kein Ende mehr hat!

Die himmlische Freude war Petro bereit't,

durch Jesum und allen zur Seligkeit.


[제6악장] 우리에게 남은 건, 사랑이리니

베토벤 '영웅의 교향곡' 2악장의 트리오를 연상케하는 신비로운 화음으로 시작된 고요한 선율이 바이올린으로 연주(T6/⊙00:00)되며 6악장이 시작된다. A주제다. 따뜻하고 자애로운 모성애적 사랑 혹은 아가페적 사랑의 분위기가 넘쳐 흐른다. B주제(⊙03:37)가 등장하고, 이어 음악은 A주제(⊙03:37)와 B주제(⊙09:10)를 론도 형식으로 뒤섞으며 전개시킨다. A주제(⊙13:00) 말미의 초월적 분위기는 바그너의 <파르지팔>을 연상케도 한다. 최후의 코다(⊙20:01)가 들리며 100분에 이르는 거대한 교향곡의 막이 내린다.


말러는 이 마지막 악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악장을 '신이 나에게 말하는 것'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신은 오로지 사랑으로만 파악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내 작품은 단계적으로 상승하여 발전해가는, 모든 단계를 포함한 음악적인 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없는 자연에서 시작하여 신이 사랑까지 높아져 갑니다."


음악이 끝나고


"왜 사람들은 자연에 대해 이야기하면 항상 꽃과 사랑스런 새소리만 이야기하나?" 말러가 3번 교향곡을 작곡하며 했던 말이다. 그는 이 교향곡에서 독일 음악사의 전통을 상당부분 뒤집었다. 인간은 자연을 자기 감정에 따라 편리하게 해석하곤 한다. 누구는 새를 보고 '노래한다'고 하고, 또 누구는 '울음소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말러는 인간이 중심이 되어 자연을 일방적으로 해석(오역)하는데서 벗어난다. 그는 이른바 '아니마 문디 Anima mundi' 즉, 우주만물과 자연, 인간 등이 모두 하나의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일종의 범신론적 관점에서 이 교향곡을 썼다. 그리하여 3번 교향곡에서 말러는 자연의 삼라만상을 거대하면서도 복잡한 음향 속에 차례로 담아냈다. 그가 묘사한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체험은 아름답고도 신비로우며, 경이적인 것이었다.

"인간을, 드라마를, 진실을, 무자비한 진실을 눈 앞에 드러내 보인 교향곡입니다." - 아르놀트 쇤베르크


※ 본문 속 음반의 타임코드(⊙)는 마리스 얀손스 지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2010년 라이브 레코딩(BR Klas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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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음반과 영상]

[음반] 마리스 얀손스 &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BR Klassik) _ 음향으로 쌓아올린 대우주의 신비

[영상] 사이먼 래틀 & 베를린필 (디지털콘서트홀) _ 리듬으로 이룩한 디오니소스의 향연


마리스 얀손스(Mariss Jansons)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와도 수많은 명연을 남겼으나 그가 2003년부터 부임하여 생애 마지막까지 일헀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의 연주들은 음악적인 순도 면에서 한 차원 더 깊은 세계를 들려준다. 실제로 얀손스가 이 오케스트라에 부임하고 나서부터 '북독일의 베를린필-남독일의 바이에른방송'이라는 투톱 체제가 완전하게 확립되었다. 얀손스는 특별한 과장이나 드라마적 왜곡을 지양하고, 음악 그 자체의 울림을 가장 투명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한다. 여기에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특유의 '맑고 힘차며, 담백하면서도 호방한 음색'이 절묘히 조응하면서 최고의 순간들이 펼쳐진다. 1악장 도입부의 호른 합주부터가 장엄하거나 위압적이라기보다는 마치 바이에른 알프스의 영봉 위에서 터져나오는 자연의 메아리를 그대로 겸허히 채록한 듯한 인상이다. 말러의 이 거대한 교향악을 구성하는 그 수많은 소리들이 악기별로, 마디별로, 조성과 화음에 따라 하나하나 정성껏 분해된 뒤 가장 조화로운 형태로 재결합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교향곡을 대자연에 대한 성실한 찬사, 우주와 생태계를 향한 한 인간의 겸허한 관찰록이라고 생각한다면 얀손스의 연주야말로 최후의 마침표 하나까지도 선명하게 다듬어낸 가장 위대한 기록이라 할 것이다. 2010년 뮌헨에서 열린 라이브 공연이다.



사이먼 래틀(Simon Rattle)은 실로 리듬의 화신과도 같다. 1악장 제시부의 '여름의 행진'에서 래틀은 악보 속에 숨어 있는 모든 리듬적 요소를 낱낱이 다 끄집어내 한바탕 '디오니스소의 향연(饗宴)'을 펼친다. 역대 3번 교향곡의 연주 중에서 이처럼 리드미컬한 디테일이 살아 있는 연주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 베를린필 단원들의 명인기(名人技)는 여기서도 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데, 특히 오보에의 알브레히트 마이어, 클라리넷의 벤젤 푹스 등 목관 수석들의 역량이 극한까지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문학적인 컨셉이나 어떤 통일적인 테마의 연주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음악이다. 그렇다고 악보 그대로 해석하면 밋밋한 풍경사진 같은 평범한 수준에 그치기 쉽다. 그 점에서 래틀의 해석은 청량한 사운드와 집중력 있는 디테일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연의 광포함, 아름다움, 초월적이고 현실적인 생태계의 카오스적 질서 등을 생생한 감각 속에 잘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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