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예술기행① Preludio 서주
세계를 향한 감미로운 호기심이 그녀의 부드러운 눈매를 따라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그래, 람피오니 디 베네치아 Lampioni di Venezia, 베네치아의 가로등 불빛과 닮았다. 무라노섬 장인들이 자신의 숨결을 하나하나 불어 만들어낸 둥근 유리갓 램프의 아련한 등불처럼, 그녀의 눈빛은 온화한 위로와 고아한 신비감 사이의 어느 지점에 안착해 있었다. 살며시 손을 잡았다. 어디론가 이끌어야만 했다.
그래도 낮에는 조용히 숨죽이며 지냈다. 대개는 수변의 카페에 앉아 하릴없이 커피와 탄산수를 번갈아 마시며 시간을 보냈던 것도 같다. 조금씩 어둠이 찾아오고 가로등이 하나둘씩 불을 밝히면, 특수부대처럼 밀려왔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췄다. 이 섬에서 일종의 '생활감각'이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낮에만 해도 골목과 경치마다 가격표가 붙고, 거대한 백팩을 앞뒤로 두 개씩이나 둘러맨 관광객들이 현지의 바람잡이 호객꾼들과 피곤한 흥정을 끊임없이 벌이던, 말하자면 작은 전쟁터와도 같은 섬이었다. 수로에 어둠이 깔리는 이 밤에는 그저 풍경과 매혹만이 남는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로 변한 듯했다.
우리는 폰다멘타(Fondamenta)를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폰다멘타는 운하에 면해 길게 늘어선 보행로를 뜻하는 베네치아 특유의 용어다. 어깨를 맞댄 좁은 건물들 사이의 골목길이 칼레(Calle)라면, 대운하와 접한 거대한 부둣길은 리바(Riva)라고 부른다. 칼레에선 매일의 반복적인 일상이 주는 어떤 강박이 느껴지고, 리바는 어딘가로 의지 없이 떠밀려 나가는 관광객 무리를 연상케 하는 묘한 피로감이 있다. 폰다멘타는 달랐다. 아침이면 수면 위로 떨어지는 아드리아 해의 햇살이 찬란히 빛나는 곳이고, 무엇보다도 저녁이면 무라노 글라스의 가로 등불이 자아내는 교교한 분위기가 수변 위에 펼쳐진 하룻밤의 작은 오페라하우스처럼 낯선 세계만의 고혹을 자아내는 장소였다.
우리는 주로 폰다멘타 노베를 걸었다. 칸나레조와 카스텔로 지구 사이의, 섬의 북쪽을 따라 길게 늘어선 이 길은 부속도서인 부라노와 무라노, 토르첼로 등으로 떠나는 정기여객선들의 선착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화려하고 장대한 산 마르코 광장과는 전혀 다른, 아스라함이 감도는 특유의 쓸쓸한 분위기가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 장소였다.
저녁은 곧잘 알지우바지오(Algiubagiò)에서 해결했다. 원래는 부라노 섬으로 넘어가는 주민들이 배를 타기에 앞서 커피와 담배, 와인 한 잔을 즐기던 작은 바르(Bar)였다. 지금은 베네치아에서 가장 은밀하고 매혹적인 분위기의 레스토랑으로 변모해 있다.
석호의 모래톱, 즉 조간대 습지를 베네치아에서는 바레네(Barene)라고 부른다. 셰프 다니엘레 젠나로는 여기서 자생하는 야생 허브인 산토니코(Santonico), 바다회향(Finocchio marino) 등으로 접시 위에 작은 마법을 연출했다. 산토니코 특유의 톡 쏘는 쓴맛은 해산물 리조토에 또 하나의 지층을 확보했고, 바다회향이 지닌 상큼한 시트러스 풍미와 코 끝을 스치는 스파이시함은 주로 생선이나 고기 요리의 가니쉬로 쓰이며 '씬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예술의 섬 베네치아가 자아내는 가장 달콤한 감동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알지우바지오의 테라스에 앉아 조용히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문득 베네치아와 그녀에 대한 나의 태도가 묘하게 닮아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녀를 탐미하는 것만큼이나 베네치아를 속 깊이 갈망하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나의 섬'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베네치아의 공간들 속으로 그녀를 이끌어 그 속에 숨겨진 어떤 매혹들을 함께 바라보고자 했다.
산 마르코 대성당 뒤편의 프레차리아 골목(Calle Frezzaria)에서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사랑이 피어났다. 한때 공화국의 반역자들을 수장했던 주데카 섬의 동쪽 끝, 오르파노 운하(Canale Orfano)의 한 폐가에서는 거리의 여가수 라 조콘다가 기어이 '자결의 아리아 Suicidio'를 노래했다. 헤밍웨이가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써 내려간 소설 <강 건너 숲 속으로 Across the River and into the Trees>에는 지금도 실존하는 베네치아의 역사적 장소들 - 그리티 팰리스 호텔과 해리스 바, 토르첼로 섬 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생생한 묘사로 등장한다.
우리는 그 사랑의 행로들을 조용히 따라가기로 했다. 좀 더 깊숙한 베네치아로 은밀한 여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