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의 노래 Willow Song

베네치아 예술기행② 주세페 베르디 <오텔로 Otello>

by 황지원

손수건의 비극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자수 무늬가 새겨진 그 손수건은 한눈에 봐도 베네치아의 것이었다. 단순히 천 바탕 위에 바느질로 무늬를 얹힌 정도가 아니다. 허공에서 순식간에 빚어낸 황홀한 조각품과도 같은 형상을 지녔다. 연필로 그린 도안을 보며 바탕 천 없이 바늘과 실 하나만으로 뼈대를 잡은 후 거기에 복잡한 입체 무늬를 조형한다. 마치 공중에서 그림을 그리듯 한다고 해서 현지에서는 '푼토 디 아리아 Punto di Aria'(허공의 점묘)라고 부르는 기법이다. 지금도 베네치아 본섬에서는 제작이 불가능하고, 그 옆 부라노 섬에서 대대로 구전되는 기술을 전수한 극히 일부만이 가능한 기예이다. '바늘로 빚어낸 보석', '사이렌의 선물'이라는 찬사는 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손수건이 비극을 낳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Othello> 이야기다. 16세기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전성기 시절, 북아프리카 출신의 무어인(이슬람계 흑인) 오셀로는 장군의 지위에까지 오른다. 그는 원로원 의원의 딸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져 결혼에도 성공하지만, 이들의 사랑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오셀로 부대의 하급 장교 이아고(Iago)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른바 '무조건적 악의 Motiveless Malignity'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신의 열등감, 의처증, 이유 없는 격노, 언어적 폭력 등을 총동원하여 오셀로의 약점을 공략한다. 그는 오셀로가 부인 데스데모나에게 선물한 베네치아산 최고급 자수 손수건을 훔쳐내 이를 불륜의 결정적인 증거라며 들이밀고, 평소 명예를 중시하는 지성인으로 자부하던 오셀로는 순식간에 질투와 복수심에 사로잡힌 짐승으로 추락해 파국을 향해 급전직하하고 만다. 사람들이 이 작품을 '손수건의 비극'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니콜라스 하이트너가 연출한 2013년 영국 국립극장의 <오셀로>. 이아고역을 맡은 로리 키니어(좌)의 악역 연기는 지금도 전설로 회자된다.)


화려한 문명 도시 베네치아와 거친 전쟁터 키프로스를 배경으로, 이방인 장군 오셀로가 겪는 인종적 소외감과 인간 본연의 파괴적인 질투를 그려낸 <오셀로>는 280여 년이 지난 후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양식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위대한 거장 주세페 베르디가 이미 일흔을 넘긴 나이임에도 숨 막히는 밀도의 심리극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당대 최고의 아방가르드이자 지금도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명작으로 남아 있다.


버들의 노래


둘 사이의 소문이 조금씩 나기 시작한 것은 10월 초 즈음이었다. 그 시절의 베네치아는 떠들썩한 레가타 경주대회도 막을 내리고 곧 다가올 겨울준비를 슬슬 고민하는 시기다. 스산한 바닷바람이 대리석 기둥에 스며들고, 식당마다 아드리아해에서 갓 잡아 올린 대구를 말려가며 겨울의 진미인 바칼라 만테카토(Baccala mantecato)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두 사람은 언제부터 커플이 되었을까? 모른다. 극장 주변을 떠도는 소문을 종합해 보면 이랬다. 오페라하우스의 젊은 오보에 주자와 미국에서 온 프리마 돈나가 밤마다 카나레조의 수변도로에 자주 '출몰'한다는 것. 수 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오다가도, 밤만 되면 그들 모두가 빠져나가 다시금 심연 같은 고독을 금세 되찾는 이곳 베네치아라면, 이방인 음악가 커플의 일거수일투족이 토박이들의 눈에 잡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남자는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Teatro La Fenice)의 오보에 주자라고 했다. 이탈리아식 예명인 마르코로 불리는 걸 좋아했지만, 본명은 따로 있었다. 밀로스 야노비치. 크로아티아의 어느 궁벽한 해안 도시가 그의 고향이다. 싸늘한 돌무더기 뒷동산과 한없이 펼쳐진 아드리아 해, 메마른 석회질 밭에서 흘러나오는 싸구려 와인이 거의 전부인 마을이었다. 관광객은 언제나 두브로브니크로 몰려갔고 밀로스의 고향에는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음악 밖에는 살 길이 없다고 생각해 바다를 건넜다. '저쪽',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는 '이곳'에는 없는 꿈과 성공이 있을 것이라, 그는 그렇게 확신했다.


베네치아는 모든 것이 화려했다. 그러나 이 도시는, 언제나 밤이 되면 가슴을 옥죄어 오는 무거운 죽음과 절망의 분위기가 끈적이는 애수와 뒤섞여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밀로스는 그런 분위기가 좋고도 싫었다. 그럴 때마다 1번 수상버스를 집어타고는 베네치아의 대운하 카날 그란데를 한 바퀴씩 돌곤 했다. 매서운 바닷바람과 비릿한 물 냄새는 어쩔 수 없는 삶의 비루함을 절감케 했고, 수변을 따라 늘어선 찬란한 대리석 건물들은 희미한 가로등 불빛과 어우러져 모두가 저만의 소설 작품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무거운 현실의 바로 옆 자리에, 한없이 아름다운 환상이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바바라가 마르코, 아니 밀로스를 처음 만난 건 게토 누오보 광장의 작은 제과점에서였다. 그녀는 미국 인디애나 주 태생의 소프라노다. 대도시 뉴욕에서 공부했지만, 원래가 나돌아 다니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매일 줄리어드 스쿨에서 노래했고, 콜럼버스 서클까지 걸어가 연한 뉴욕식 커피 한 잔을 청해 마시는 게 바바라의 유일한 낙이었다. 본성이 떠들썩한 걸 싫어하는 그녀는 복잡한 베네치아 내에서도 금세 숨 쉴만한 곳을 찾아냈다. 본섬의 북서쪽 옛 유대인 지구. 대운하와 한참 떨어져 있고, 수상버스도 제대로 다니지 않아 뜨내기 관광객 대신 현지인들이 더 많은 곳이었다. 두 블록만 걸어 나가면 카나레조 수변로를 산책하며 베네치아의 고즈넉한 우아함을 만끽할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그녀의 베네치아행은 급작스러웠다. 원래는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바바라'), 이탈리아 최고의 슈퍼 프리마 돈나가 출연키로 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가 불쑥 공연을 캔슬하고는 남자친구인 불가리아 바리톤과 함께 흑해 연안으로 날아가 버렸다. 거기서 초겨울까지 긴 휴가를 즐긴다나 뭐라나. 극장 측에서 급히 대타를 구해 나섰다. 노련한 스타급 소프라노를 모셔올 시간적 여유는 당연히 없다. 신진급 중에서도 화제만발의 누군가를 골라내 '낙하산'으로 떨어뜨려야만 했다. 캐스팅 디렉터인 마르첼로가 뉴욕으로 급하게 전화를 넣었다. 다행히 또 한 명의 바바라 - '바바라 아메리카나(Babara americana 미국의 바바라)'를 찾을 수 있었다. 금발의 파란 눈동자와 어우러진 지극히 부드러운 리리코 소프라노의 음성을 지닌 그녀였다. '수려한 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 신대륙에서 건너온 미지의 소프라노!' 과연 이걸로 제대로 된 마켓팅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극장 측은 한숨을 놓았다. 그녀는 주세페 베르디 최후의 비극이자 가장 위대한 오페라인 <오텔로 Otello>, 그중에서도 비련의 여주인공 데스데모나를 노래할 참이었다.



카페에 앉은 그녀를 알아보고는 밀로스가 인사를 건넸다. "새로 온 데스데모나군요? 오케스트라에서 오보에를 불고 있어요. 아직 수석은 아니지만. 그래서 이번에 잉글리시 호른도 제가 분답니다." 대개 관현악단에는 잉글리시 호른 전담연주자가 없다. 오보에를 부는 플레이어들이 필요에 따라 분담하는데, 수석 연주자는 여기에서 빠지고 대개는 제2 오보에 주자가 이를 맡는다. 보통은 귀찮은 일로 여겨지지만, 밀로스만은 이 악기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베를리오즈의 서정적인 목가, 드보르작의 나른한 노스탤지어, 쇼스타코비치의 날카로우면서도 치열한 작가정신이 모두 잉글리시 호른의 신비로운 음률에서 뿜어져 나왔다. 밀로스가 특히나 사랑하는 작품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였다. 금지된 파멸적 사랑, 죽음을 향한 열망, 낮의 세계를 거부하고 은밀한 밤의 그 칠흑 같은 어둠으로 추락하는 이 장대한 비극의 세레나데는 사실 이곳 베네치아에서 쓰인 작품이다. 게다가 3막에는 애절한 우수로 가득 찬 잉글리시 호른 솔로가 등장한다. "이건 반드시 밤에 들어야 하는 음악이에요. 제가 한 번 불어 볼까요. 마침 여기는 바그너가 생을 마감했던 벤드라민 궁전과 가깝기도 하답니다."


그렇게 둘은 사랑에 빠졌다. 밤이면 밤마다 베네치아의 골목길을 헤집고 다녔다. 어느 날은 카나레조 수변로를, 언젠가는 자정이 될 때까지 도루소두로의 곳곳을 두 발로 걸었다. 주데카에서 밤바다의 별들을 바라보다, 냉큼 리도섬으로 건너가 차디찬 모래 해변에 드러눕기도 했다. 해와 달, 바다와 별빛은 모두 그들 둘 만의 것이었다. 허기가 질 때면 늦은 밤까지 문을 여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산 폴로 지구에 있는 진짜 제대로 된 베네치아 식당이다. 거미게를 넣은 탈리올리니, 염장 숭어알에 잠두콩 크림을 섞은 봉골레 스파게티 등을 주로 먹었다.



베르디의 <오텔로>는 복잡한 얼개의 오페라다. 더군다나 소프라노에게 무척이나 까다롭다. 작곡가는 여주인공 데스데모나의 심리를 너무나도 리얼하게 묘사했다. 고결하고 자긍심 높지만, 백지처럼 하얗고 그렇기에 상처받기 쉬운 여자. 대사는 심오하고, 음악은 때로 넘실대는 파도처럼 휘몰아쳐서 바바라의 마음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게다가 이번 공연은 새로운 연출로 올려져 이미 세계적인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영국에서 온 그레이엄은 몹시도 까다로운 성격의 연출가였다.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 출신답게 원작에도 능통하지만, 뜻밖에도 이탈리아적인 감수성도 풍부해서 우아하고 색채감 넘치는 무대미술에 관심이 많다. 잔뜩이나 복잡하게 잡은 동선에, 장면마다 의상을 바꿔 입게 만들었다. 지휘자인 마에스트로 베르톨리는 벌써부터 불만이 한가득이다. 연기가 너무 복잡해 성악가들이 노래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대작을 위해 리허설만 벌써 두 달째다. 그동안 지중해의 바람은 서서히 차가워져 갔다. 9월 하순만 해도 베네치아 특유의 습하고 끈적거리는 해풍이 내내 바바라를 괴롭혔다. 질척한 그 느낌이 정말 싫었다. 그러다 11월이 되니 이번엔 차갑고 휑한 바닷바람이 마구 몰아닥쳤다. 골목 안으로 작은 물길을 낀 숙소는 극장에서 잡아준 덕에 제법 고급스러웠다.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모기가 짜증스러웠지만,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그나마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곳이었다. 밀로스도 자주 여기로 건너왔다. 그는 맞은편 산 폴로 지구에 집이 있었는데, 어느 날은 다리를 몇 개씩이나 빙빙 둘러 달려왔고, 행여 비라도 오는 날은 바쁜 마음에 그 비싼 수상택시를 잡아타고 갑작스레 출몰하기도 했다. 둘은 이 아름답고 은밀한 작은 방에서 매일 밤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다. 싱그러운 과일처럼 익어가던 사랑은 계절을 넘어서자 곧 결혼의 맹서(盟誓)로 이어졌다. 둘은 약혼의 징표로 반지까지 교환했다. 황금빛 그 반지에는 섬세한 수공으로 새겨진 붓꽃 문양이 있었다.


(Teatro La Fenice, Venezia)


12월 18일이었다. <오텔로>의 역사적인 첫 공연이 있는 날이다. 바바라의 오페라 데뷔 무대이기도 했다. 레푸블리카, 코리에레 델라 세라, 일 조르날레 등 유력일간지의 음악평론가와 기자들이 모두 모였다. 입구에 버티고 선 어셔는 마치 베네치아 앞바다를 누비던 선원처럼 착 달라붙은 네이비색 유니폼을 입고 있다. 그녀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연신 외쳐댔다. ‘씬뇨레 에 씬뇨리, 쁘렌데레! 쁘렌데레!!’ (신사숙녀 여러분, 이제 시작합니다! 시작해요!).


그 ‘쪽지’가 도착한 건 4막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오페라의 마지막 피날레에서 데스데모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길고 유장한 모롤로그 두 곡을 소화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소프라노 아리아들이기도 하다. 그때 분장실로 꽃다발 하나가 도착했다. 리비에라 해안에서 가져온 듯한 검붉은 장미 꽃다발 안에는 섬세한 수제문양의 카드 하나가 꽂혀 있었다. 밀로스가 보낸 것이었다. “미안해 바바라. 이제 그만 만나자. 안녕히!"


밀로스와 바바라는 곧 눈빛이 얽히게 되어 있다. 그건 연출가 그레이엄의 아이디어였다. 3막에서 광기에 무너진 남편 오텔로에 의해 데스데모나는 커다란 모욕을 당한다. 4막이 시작되는 어둑한 저녁 무렵 그녀는 침소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구슬픈 엘레지 하나를 부르게 된다. 어릴 적 집안의 하녀가 실연을 당해 시름시름 앓아 죽어가며 불렀다는 탄식의 비가(悲歌) - '칸초네 델 살리체'(Cazone del Salice), 즉 버들의 노래다. 서주는 우울하고도 무거운, 울음 섞인 탄식과도 같은 표정의 머뭇거리는 잉글리시 호른 솔로로 시작된다. 아리아의 중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그 처연한 우아함으로 장식된 구슬픔이 무섭도록 아름다운 곡이다.


연출자는 아예 잉글리시 호른 연주자를 무대 위로 올려버렸다. 총독 관저의 발코니 아래에서, 밤마다 처연히 데스데모나를 올려다보며 알 수 없는 가락으로 피리를 불어대는 연모의 청년으로 연출한 것이다. 창가에 앉은 데스데모나가 밖을 내려다보면 바로 그가 보인다. 리허설 때마다 그렇게 바바라와 밀로스는 눈빛을 교환했다. 그 사랑스럽고 뜨거운, 내밀한 침묵의 언어는 밤마다 계속되는 데이트보다 어쩌면 더욱 끈적이는 치명적 갈망을 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둘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이 찾아왔다. 밀로스의 일방적인 결별의 선언.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극심한 불안에 휩싸인 바바라가 음악이 흐르기도 전에 그를 내려다봤지만, 밀로스는 내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마에스트로 베르톨리가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밀로스가 주저하듯 살짝 어깨를 들썩이더니 천천히 잉글리시 호른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하는 수 없이 바바라도 입을 떼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이 노래의 주인공도 '바바라' 아니던가.


미아 마드레 아베바 우나 포베라 안첼라....


“내 어머니에게는 어여쁘고 귀여운 몸종이 하나 있었어. 그 가여운 소녀의 이름은 바바라였지.”

Mia madre aveva una povera ancella, innamorate e bella. Era il suo nome Barbara.


“연인에게 버림받고는 노래만 계속해서 불러댔어. 그건 ‘버들의 노래’(La Canzone del Salice)라고 했지.”

Amava un uom che poi l'abbandonò; cantava un canzone: la canzon del Salice.


저 한적한 들판에서 울며 노래하는 서글픈 아가씨.

오 버들이여, 버들이여, 버들이여!

그대 내 머리에 와닿는구나.

버들이여, 버들이여, 버들이여!

노래를 불러요. 노래 불러요.

그 버들가지는 내 장례식의 화관(花冠)이 될 거예요.


현실의 바바라는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비련의 엘레지가 그 자신의 노래가 될 줄은, 실연의 슬픔 속에 죽음을 찾아 헤매는 이 아리아가 프리마 돈나 스스로의 운명이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었다.


“Salce 살체...살체...살체...버들이여, 버들이여, 버들이여!”


피울음을 머금은 그녀의 아련한 절규가 이어질 때마다, 발코니 아래의 밀로스가 멈칫거리듯 서글픈 목관 솔로로 응답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꽃잎 만발한 들녘의 개울가에서 한없는 슬픔 속에 신음하네.

남몰래 한 사랑의 쓰디쓴 눈물이여!

버들이여! 버들이여! 버들이여!

노래 불러요. 노래를 불러요.

그 버들가지는 내 관의 장식이 될 거야.

새들도 나뭇가지 사이를 날며 노래를 듣는구나.

너무도 서럽게 울어 바위도 그녀를 동정하네.


https://www.youtube.com/watch?v=H3yj_J0eBqM

('버들의 노래 La Canzone del Salice', Sop. 미렐라 프레니)


그녀의 노래에 객석은 감전된 듯했다. 굉음과도 같은 박수가 폭풍처럼 터져 나왔다. “브라바 바바라!”, “비바 베르디!” 까칠한 성격으로 유명한 마에스트로 베르톨리조차 놀란 눈길로 잠시 음악을 멈춘 채 그녀에게 작은 찬사의 제스처를 보냈다. 울컥하는 마음에 성급히 일어서 열렬한 기립박수를 보내는 신사도 몇몇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몰랐다. 무대 위의 바바라가 겪고 있던 슬픔을. 그 서글픈 비극을. 아름다운 자수정처럼 투명한 목소리와 베네치아의 밤하늘처럼 빛나는 신비로움을 지닌 그녀의 음성에 그저 넋을 잃고 감동했을 뿐이었다. 어느덧 음악은 다음 곡 '아베 마리아'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눈동자는 허공의 달처럼 텅 빈 기운을 자아냈다. 아마도 마음은 극장의 저 바깥, 그 짙푸른 베네치아의 밤거리로 쓸쓸한 밀행을 떠난 듯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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