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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부르크의 최중원 Mar 27. 2021

1 of 1

자신의 음악 플레이리스트 속 제목에 숫자가 들어간 노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어떻게 "없다"는 개념이 "있을" 수 있냐며 0의 존재를 부정했다고 한다.  고지식한 사람들이다.


애와 증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미시세계와 거시세계 각각을 서로 완벽히 다른 역학체계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우리는 서로 충돌하는 개념들이 실제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알고,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의 존재 양태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0만큼은 아니지만 1 역시 특별한 숫자이다. 1이 지금의 특별한 위상을 차지하게 된 데에는 인간이 사고하는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성향 때문이다. 첫 번째, 희귀할 수록 높은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두 번째, 모든 것들에 순위를 매기는 것을 즐긴다. 세상에 하나 뿐인 것은 그것이 더 이상 희귀해지지 못할 정도로 희귀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첫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그 아래 두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하나 중에 하나 라는 문구는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 이 문구 안에서 대상은 하나뿐이다. 그렇기에 "중에" 라는, 대상을 제한하는 기능을 하는  문장 성분을 적었음에도 구문론적으로 "하나 중에 하나"는 "하나"라는 진술과 다르지 않다.  "하나 중에 하나"는 그러므로 하나 마나 한 말이다. "셋 중 하나" 라는 진술이 호명된 "하나"를 나머지 다른 "둘"과 구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하지만 샤이니가 뮤직비디오에서 복고풍의 옷을 입고 춤을 추면서 "1 OF 1"이라는 후렴구를 부르는 모습이 꽤나 로멘틱해보인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도저히 하나 마나 한 말일 수가 없다.  졸업작업에 수반되는 이론적 글쓰기를 연습해보기 위해서 오늘은 이 "1 of 1"이라는 문구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누군가가 "셋 중 하나"라고 말 하는 순간, 두 단계의 구분짓기가 실행된다. 먼저 수 많은 대상 중에서 셋을 꼽고, 다시 한번 그 셋 중에서 하나를 꼽는 것이다.   피스타치오랑 초콜렛과 바닐라 중에서 나는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이 좋아요. 라고 말한다고 했을 때, 나는 우선 선택의 폭을 셋으로 좁힌 것이다. 그 첫번째 구분짓기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일 수도 있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남아있는 맛이 그 세가지 뿐이다), 나의 의지가 작동한 결과일 수도 있다. ( 그 세개가 내가 좋아하는 맛이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선택이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첫번째 구분짓기에 나의 의지가 작동했다고 해도, 내가 발화를 통해서  두번째 구분짓기를 수행하는  순간에는 첫 번째 구분짓기를 물릴 수가 없다는 점에서 첫 번째 구분짓기는 더이상 나의 의지가 닿지 않는 닫힌 세계이다. "피스타치오랑 초콜렛과 바닐라 중에서 딸기"는 성립되지 않는다.


가사의 테마에 맞게 사랑이라는 테마를 적용시켜서 다시 " 나는 영희와 순이와 옥희 중에 옥희 네가 좋아" 라고 써 보자.  영희, 순이, 옥희가 동시에 나에게 마음을 고백했거나, 핵전쟁 때문에 전 세계에 오직 저 세명의 여자만 남았을 수도 있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선택) 내가 기본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저 세명일 수도 있다.(나의 의지가 작동해서 일어난 선택 : 물론 호감을 가지는 것이 전적으로 내 주관 하에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지금 말하는 순간에 왜 영희, 순이, 옥희가 선택지 상에 존재하는지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옥희가 영희와 순이보다 좋다는 것이다. 우열을 가리는 표현이다. 곧 이어 논리적으로  "왜? 얼마나? 옥희 다음엔 영희인가 순이인가? " 와 같은 질문들이 이어진다(물론 실제로는 아무도 묻지 않지만)


내가 그러나 "옥희 너는 나에게 하나 중에 하나야" 라고 말할 때, 이 문장에서는 우열도 구분짓기도 없다.  물론 첫 단계의 구분짓기가 있지만,  이 문장의 논리 속에서는 그 구분짓기의 기준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1 of 1"  이라는 표현을 쿨하게 만들어준다.   너를 나의 유일한 선택지로 만든 이유가 운명이던, 너의 외모나 성격이던, 나나 너나, 어쩌면 우리 모두가 했었을 노력이던,  잘 맞는 우리의 사주던, 아무튼 무엇이던간에 상관없다. 어쨌든 너는 지금 이 순간 내 유일한 선택가능한 가능성이고,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는 당연히 그 하나를 선택한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에 너는 필연적이다. 하나 중에 하나라는 표현에서 "하나"라는 서수는 하나밖에 없다는 희귀함과 첫번째라는 순위에 기대지 않은 채로 온전한 의미를 만든다.  


아. 모든 의미와 상징과 문장이 결국에는 사랑으로 환원될 수 있다니. 황홀하면서도 오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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