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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부르크의 최중원 Apr 10. 2021

조용히 해 삐삐

한 번 가진 것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게 되어버려

과외 선생님이 말했다. 

그럴 바에야 가지지 않는게 낫단다 구찌 핸드백도 청년부의 잘생긴 오빠도

하지만 옆집 연희가 가지려고 한다면 냉큼 네가 가져 버리렴 나도 그렇게 여기까지 왔단다

조용히 해  삐삐


내 방에는 자물쇠가 달린 공책들로 채워진 책장이 있다

그러니까 이게 다 교환일기란 말이지 그러니까 이 안에 사람이 한 명씩 들어있단 말이지

쥬스 먹을래 원한다면 너도 나와 일기를 쓰자   

오늘의 너를 내가 가지고 

내일의 나를 네가 가지고

빈 페이지 하나 없을 때 까지 가지고 가지다 보면 

던졌던 열쇠를 찾아 다리 밑 천변을 해매고 싶어질 수도 있겠지만

찾을 수 없는데 냄새만 나는 것이 러브 아니겠니

조용히 하라니깐 삐삐


십년 전에 사둔 집이 네 배가 올라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어난다는 아빠도

금요일 밤마다 오페라를 보러 나갔다 술을 마시고 기어 들어오는 엄마도

과외 선생님도 청년부의 오빠도 옆집의 연희도 산책길에 암캐만 보면 달려드는 삐삐도

아무도 가져본 적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도통 가질 수 있는게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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