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 너구리 Sep 14. 2023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이장

5. 외상값

이 글에 등장하는 장소와 인물은 허구이며, 실제가 아닙니다.

이미녀 씨는 이상용 씨의 큰 딸이다. 원래 호적상 이름은 이기순인데 도랑을 건너던 친할머니 유애기 씨가 이름을 잊어버려서 동사무소 직원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아름다울 미에 여자녀자인 미녀 씨는 그 당시 한 교실에 미녀가 두 명이나 있었다고 흔한 이름이었다고 본인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이름은 흔한 이름이었을지 몰라도 미모는 흔하지 않은 미모다. 동사무소 직원은 미래에서 온 듯이 이미녀 씨의 외모를 미리 예측했다.

"미래에서 왔으면 로또 번호나 알려줄 것이지 외모가 이쁠 줄은 어찌 알았누" 하며 혀를 끌끌차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할머니는 이미녀 씨를 업어 키웠다. 첫 손주이기에 이뻐했으며 그다음 동생으로 당연히 아들을 볼 줄 알고 귀히 키웠다. 그러나 할머니는 어찌 예측할 수 있었으랴. 그 뒤로도 내리 딸을 넷이나 더 낳을 줄을 말이다.

이미녀 씨로 말하자면 4차원이다. 이미녀 씨는 생김새로 말할 것 같으면 연예인 빰치는 얼굴이다. 이미녀 씨가 길거리를 지나가면 돌아보지 않는 남자가 없을 정도며, 이미녀 씨가 머리를 한 번 쓰다듬으며 고개를 한 번 쓰윽 옆으로 돌릴라치면 이미녀 씨를 돌아봤던 남자들이 우루루 머리가 쓸리는 방향으로 쓰러진다. 이미녀 씨의 뒤로 줄을 선 남자들이 어찌나 많은 지 동화 속에 황금알을 낳는 오리에서 사람들이 착착 달라붙는 이야기라든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다니는 아이들이 떠오를 지경이다.

허나 이미녀 씨는 개의치 않는다. 어린 시절 이후로 그런 사람들에 익숙해진 이미녀 씨는 자기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자기를 따라다니지 않으며 이미녀 씨보다는 자기 자신을 지독히도 사랑하는 안하무인인 남자와 결혼했다. 이미녀 씨는 또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보는 실험정신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이미녀 씨는 군것질이 하고 싶었다. 돈은 없고, 사 먹고 싶은 건 많은 이미녀 씨는 집에서 낳은 계란을 엄마 몰래 훔쳐다 팔았다. 팔아서 군것질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계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이미녀 씨는 친구들에게 돈을 조금씩 빌렸다. 이 친구 저 친구, 만나는 친구마다 돈을 빌려서 이미녀 씨는 군것질을 실컷 했다. 어느 정도 아는 친구들에게 돈을 다 빌린 미녀 씨는 이제 학교를 가기가 싫었다. 왜냐하면 학교를 가기만 하면 친구들이 이미녀 씨를 따라다니며 꿔준 돈을 갚으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미녀 씨를 따라다니는 친구들이 아까의 이미녀 씨의 미모에 반하여 따라다니는 남자들보다 많아져서 이미녀 씨가 이뻐서 따라다니는 건지 꿔 준 돈을 갚으라고 따라다니는 건지 알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이미녀 씨는 하는 수 없이 부모님이 준 등록금, 잃어버릴까 봐 가방 바닥에 고이 넣어 준 등록금을 꺼내 줄을 선 친구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다.

"넌 얼마야? 내가 얼마 꿔 줬어?"

줄을 선 친구들에게 얼마를 꾼 지도 모르는 이미녀 씨는 하나하나 물어서 돈을 다 나눠줬다. 다 나눠주고, 군것질을 실컷 했는데도 등록금이 남았다. 이제 집에 가면 혼날 것도 같고, 남은 돈을 들키면 안되는 이미녀 씨는 추수가 끝난 뒷 논 바닥에다 돈을 묻어 버렸다.  

영원히 묻힐 줄 알았던 이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등록금을 내지 않아 집으로 찾아온 담임의 말을 들은 엄마의 회초리로 드러났다.

"너 등록금 준 거 어쨌어?" 회초리가 무서운 이미녀 씨는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고, 그날 저녁 돈을 묻어 놓은 자리를 기억 못 하는 이미녀 씨 덕분에 이상용 씨와 김은수 씨는 뒷 논  바닥을 밤새 파헤쳤고, 남은 돈을 찾아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이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