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갈 준비를 끝내고 침대에 앉아 있던 나는 모텔방을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었다. 아빠였다.
네 시 반쯤 쓰러지듯 잠이 들었지만, 비몽사몽 간에도 녀석이 깰까 봐 푹 잠들지 못하고 결국 한 시간 뒤에 다시 일어났다. 카톡을 확인하자 그래도 내가 걱정이 됐던 아빠는 회사까지 나와 녀석을 태워다 준다고 했고,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다. 더 이상 내 선택의 여지도, 능력도 없었기에 녀석에게 필요한 것들을 부탁했고 아빠는 열매가 어릴 때 쓰던 이동 케이지와 배변 패드, 약을 먹일 때 필요한 스포이트 등을 가지고 와 주었다. 그리고 나와 녀석을 태우고 출근길에 올랐다. 출근을 하는 동안 어제 엄마에게 전화로 들었던 것과 비슷한 잔소리를 들었지만, 반박을 할 수 없던 나는 그냥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는 대체 누가 아픈 고양이를 데려가려고 하겠냐고 했다. 만약 내가 독립을 해서 혼자 살았거나, 결혼을 했다면 주저하지 않고 데려갔을 거야. 입 밖으로 말하지는 못했지만 생각이 많아졌다. 당장 입양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입양처를 구할 때까지 며칠간만이라도 임시보호를 해 주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어제 그 숱한 연락에도 불구하고 한 곳도 임시보호가 가능한 곳은 없었다. 당장 우리 집만 해도 그랬다. 하루이틀이라도 녀석을 보호하고 싶었던 내 마음은 매몰차게 외면당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조금씩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쉬워 보이는 일이, 다른 사람한테는 용납이 안 될 정도로 어려운 일일 수도 있는 걸까.
'이게 대체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라고 외쳤던 말들은 그저 나만의 기준이었다. 타인의 상황과 현실은 고려하지 않은. 타인과 나, 그 거리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멀고 복잡한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내가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남들에게는 그저 수없이 올라오는 피드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관심조차 없는 타인에게 도움을 바라는 것 자체가 나의 이기적인 행동인 걸까. 나는 그저 이 불쌍하고 가여운 생명을 구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머릿속에서 시작된 질문은 자꾸만 원점으로 되돌아왔고 답을 찾지 못한 마음속은 복잡한 감정으로 뒤엉켜 답답하기만 했다.
"오늘 안에 어떻게든 임시보호 해줄 수 있는 곳 구할 거야. 못 구하면 오늘도 집에 못 들어가."
아빠한테 큰소리는 쳤지만 사실 오늘 안에 임시보호처를 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녀석이 든 박스를 들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제 이 아이를 구조해서 사무실을 나왔는데, 어디도 가지 못하고 바로 다음날 이렇게 다시 함께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날 종일 녀석은 사무실의 인기쟁이였다. 오는 사람마다 갑자기 등장한 아기 고양이를 신기해하면서 만져보고 안아주며 귀여워했다. 하지만 나와 부서 쌤들은 고양이를 돌보는 동시에 여기저기 임시보호처를 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녀석은 사무실에서도 한 번도 울지 않고 우리 품 안에 돌아가면서 얌전히 안겨 있었다. 잠이 든 아이가 추울까 책상 아래 있던 히터를 틀어주고 시끄러운 소리에 깰까 봐 말소리도 조심했다.
아직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어제보다는 한결 컨디션이 나아 보이는 녀석은 잠에서 깰 때마다 사무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다리에 헤드번팅을 하고 품에 안기면 기분이 좋은지 골골송을 불렀다. 아픈 길냥이인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애교가 많은 개냥이였다니. 마음 같아서는 사무실 한쪽에 캣타워를 마련해 주고 부서 쌤들과 같이 키우고 싶었지만 내 회사가 아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애교 가득한 녀석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도 임시보호처를 구하지 못하면 오늘 밤에는 또 어디로 가야 하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어제처럼 서울까지 다시 이동하는 건 어려우니 오늘은 회사 근처 모텔을 알아봐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던 순간, 민주쌤이 소리쳤다.
"이 분이 임시보호 해주신대요!!"
민주쌤이 포인핸드 어플에 올렸던 글에 임시 보호가 가능하다는 댓글이 달린 거였다.
녀석을 구조한 지 22시간 만에, 처음으로 희망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