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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별 Jan 16. 2024

사회적기업에서 일합니다.

평범한 소시민의 일에 대한 의미 찾기

2023년을 되돌아봤을 때 나에게 있었던 가장 큰 변화는 다시 조직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2021년,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우울증과 번아웃을 경험하고 도망치듯 조직을 떠난 지 1년 반 만이었다. 함께 일하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나의 능력을 증명해 내야 하는 조직의 시스템이 목을 졸라오는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조직을 벗어났고 1년간은 소속 없이 근근이 벌어 먹고살았다.


조금 있어 보이게 말하면 '프리랜서', '인디펜던트 워커'. 없어 보이게 말하면 '일용직', '아르바이트생'. 초반에는 프리랜서의 로망을 실현한다는 설렘이 있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해야지, 요즘 핫하다는 워케이션도 떠나봐야지! 하지만 곧 나에게 '프리'랜서 생활은 전혀 '프리'하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증상이 가볍더라도 우울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규칙적인 생활이 정말 중요한 것이었고, 정해진 루틴 없이 일하는 생활이 나를 옭아맸다. 생활비, 휴무일 등 그 어떤 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기에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불안을 회피하다 결국 들어간 곳은 사회적기업

소속 없이 일해도 나는 괜찮다고, 불안하지 않다고 최면을 걸다가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출퇴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구나, 고정적인 급여가 있어야 하는구나. 특별하고 싶고, 특별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실상은 여느 직장인들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럼 이제 나를 받아줄 조직을 찾아야 한다. 어느 정도 이름 있는 곳에 가면 사람들도 알아줄 테고, 급여도 괜찮을 거고, 실력적으로도 많이 성장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곳은 나 말고도 지원하고 싶은 사람이 많다. 실패의 경험을 줄이고 싶은 나는 그냥 타협했다. 사회적기업이나 비영리단체는 이름도 별로 안 알려졌으니, 사람들이 별로 지원을 안 할 거야. 실제로 사회적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기도 했고, 나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정말 웃기다)


초년생 시절엔 정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사회적기업에서 일을 했다. 경험을 잘 쌓아서 언젠가는 사회적기업을 창업하겠다는 포부의 초년생은 없고, 어디든 소속되어 무소속의 불안감을 잠재우고만 싶었다. 지금의 회사엔 미안하지만, 처음엔 사명감이 없었다. 가치적인 것에 보람을 느끼지 못했고, 내가 회사에서 이뤄낸 크고 작은 성과들에만 집착했다.



그러다 마주한 평범한 얼굴들

성과에만 집착하며 10개월가량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내부 직원을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지금 일하는 곳은 장애인, 특히 정신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이다. 장애인 직원의 일상은 어떤지, 장애가 오기 전 어떤 일을 했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등 얼굴을 마주하며 30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 전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딱 둘로 나눠,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며 오직 그들을 내가 '돕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주 오만한 생각이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 본인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매일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이후 병을 얻게 되었지만 현재도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섬세한 로스터였다.



장애가 장애 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함께하는 이들 대부분이 20대 이후 병을 얻었다. 날 때부터 아팠던 사람은 없다. 장애는 당연히 나의 일이 아니라고 여겼는데 언제고 나의, 내 가족의, 내 친구의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는 왜 지금의 회사에서 일을 할까? 브랜드를 기획하고 알리는 사람으로서, 왜 더 많은 사람이 우리 회사를 알아야 할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에게도 언제 올지 모르는 장애가 장애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장애를 얻었다고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평범하게 일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이동하는 그런 세상에 조금이라도 일조하고 싶어서.


지금의 회사가 세상이 알아주는 회사가 아니고, 그래서 남들보다 돈을 더 벌거나 더 크게 성장하는 기회는 적을 수 있다. 6개월 전의 나라면 더 인정받을 수 있는 곳으로의 이직을 꿈꿨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 회사가 더욱 매력적인 브랜드가 되어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목표를 이뤄가는 단계를 차근히 담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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