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이후부터는 잘 카운트하지 않는, 그러나 누구보다 강인하게 살고 있는
어느새 또 한 번의 10월 2일이 다가왔다.
나이를 먹는 것이 이제는 점점 덤덤해진다. 숫자가 와닿지도 않고, 잘 세지도 않아 종종 헷갈리기도 한다. (20대까지는 꼬박꼬박 의미 있게 세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그렇게 기다려지고, 많은 친구들과 모여 파티를 하기도 했는데..
생일, 이제는 스스로보다는 나를 있게 한 사람들에 대해 더욱 생각하게 된다.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당연 부모님이다.
며칠 전 금요일, 네덜란드 매체의 기자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첫 질문부터 굉장히 깊게 현재 하는 사업을 왜 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계속 이어지는 질문에 답변을 했다. 자신의 질문이 너무 개인적인 것을 다뤄 불편하면 이야기하라고, 그리고 물어보는 것이 많아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동안의 인생과 사회의 변화,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참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잊을 수 없는 건 헤어지기 직전의 순간이다. 공식적인 인터뷰는 마치고 지하철 종각역 앞에 다다를 때쯤,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랐냐는 질문에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런데 어릴 때 한동안 조부모님 손에 다른 지역에서 지냈다. 그때, 보고 싶은 엄마를 찾으며 많은 날을 울었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마주친 우리의 두 눈은 순간 붉어졌다.
생일 전날, 나에게 많은 사랑을 부어준 아빠도 있지만 엄마와 단 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저녁 데이트를 했다. 그 인터뷰를 한 바로 다음날이라 뭔가 더 애틋하기도 했다. 주어진 바우처 덕분에 맛있는 음식들을 즐기며, 모녀간의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촛불을 불기 직전, 내 안에 깊이 있던 - 엄마가 결코 다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과 그때의 감정 - 삶이 달라졌을 수도 있는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딸이라는 존재는, (더욱이 장녀로서) 엄마가 힘들어 보이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생일이면 한껏 들떠 파티 기분으로 지낼 법 도한데, 이번에는 정말 차분하게 가족과의 시간을 우선적으로 여유롭게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럼에도 자정이 된 순간부터 받은 축하 메시지와 선물들은 참 감동 있게 다가왔다. 그 속에서 관계에 대해 다시 보는 계기가 되기도.
독일 통일된 전날이자, 노인의 날인 2022년의 10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