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 그리고 미친 가속도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를 보고

by 송동섭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초반부에 주인공 만수(이병헌)가 아내와 두 자녀를 한데 껴안으며 하늘을 보고 ‘다 이루었다’라는 한마디를 내뱉는 장면이 있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영화에 관한 인터뷰에서 영화 속 사과나무에 대한 답으로 빨갛고 탐스러운 선악과로 숲속의 뱀의 이미지하고도 연결된다고 했고, 종교를 넘어 보편적인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고도 덧붙였다. 이번 영화를 그런 상징을 염두에 두고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말로 들린다. 이 점에서 영화 초반부의 장면은 성경의 창세기에서 신이 세계와 인류를 완성하고 나서 표현한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창세기 1:2)와도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감독은 이전의 작품 <올드보이>에서도 신화적인 요소_운명, 비극, 근친상간_를 녹여내면서 작품 해석의 깊이를 더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종교적인 상징을 활용한 듯 보인다.


감독의 종교적 성향과 상관없이 영화에서는 사과나무, 뱀 등의 성경에 기록된 인류와 죄에 대한 소재를 의도한 것처럼 다루고 있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말한 바와 같이 종교로 한정하기 보다는 이미 보편적인 상징이 되었기 때문에 영화 소재로 차용하는 듯하다. 물론 그것을 일차원적인 수준의 직선적이거나 노골적이진 않다. 우선 보편적인 상징의 소재로 영화에서는 뱀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성경에서 뱀은 인류에게 죄를 짓게 만든 존재로 표현된다.(참고로 성경에서는 뱀을 죄의 상징으로만 표현하진 않는다. 치료의 상징이기도 하고, 지혜로운 것을 상징한다. 단지 뱀이 다른 것 보다는 죄와 관련한 상징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만수는 제지회사에 25년 근속으로 회사로부터 장어 선물을 받고 가족과 함께 바비큐와 장어를 구워 먹는데, 이때 만수의 아들 시원(김우승)은 ‘이거 뱀 아니야’라는 말을 한다. 회사에서 보내준 장어는 해고를 뜻하는 것으로 만수에게는 범죄의 시작을 알리는 예고와 같은 것이다. 성경에서 뱀은 이브를 유혹하고 아담과 함께 죄를 짓게 한 시발이 되는 존재이며 그들에게 낙원을 잃게 하는 원인이다. 뱀과 유사한 장어를 통해 주인공 만수의 범죄로의 출발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뱀의 상징을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상징의 의미를 변형, 각색한다. 만수가 범모(이성민)을 살해하기 위해 염탐할 때 산에서 뱀에 물리게 되고 범모의 아내 아리(염혜란)가 뱀에 물린 만수에게 엉뚱한 응급조치 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뱀은 만수가 범모를 살해하는 데 장애 혹은 방해의 소재이다. 게다가 뱀에 물려 아리에게 자신의 얼굴이 노출되었으니 그의 살해 시도는 불발이거나 재시도 역시 불가해 보인다. 하지만 만수는 불가능할 것 같은 살해를 어쩔 수(가) 없이 재시도한다. 여기에서 뱀은 범죄를 부추기기보다 범죄를 제한하려는 것으로 사용된다. 아마도 감독은 인류의 죄성이 어떤 존재(뱀)에 의한 것보다는 인류가 갖는 죄의 근원적인 성질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영화 제목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기도 한 것이다. 어쩔수가없다, 인간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단지 종교적 소재를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인간의 보편적 죄성이라는 종교적인 요소를 활용하고 있는 볼 수 있다. 성경에서는 최초 인류의 죄로 인해 모든 인류가 보편적 죄성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이 기독교의 교리다. 이 점에서 만수의 가족은 딸 리원(최소율)을 제외하고는 모두 범죄자 혹은 동조 및 묵인자이다. 만수가 해고된 이후 일명 잘나가는 다른 제지회사 직원 최선출(박희순)의 유튜브를 보고 있을 때 만수의 아내 미리(손예진)는 ‘이 사람 벼락 맞아 죽지 않나’라는 대사를 던지는데, 이때 만수의 눈빛은 어떤 도를 넘는 상상하는 모습을 보인다.(이 외에도 아내 미리는 만수가 면접을 보러 갈 때 넥타이를 매어주며 ‘다 죽여 버려’ 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다) 성경에서 이브가 뱀의 유혹으로 아담에게 죄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여기에 만수의 아들 시원 역시 친구 아버지 핸드폰 가게에서 핸드폰을 절도하는 범죄를 저지고 경찰 조사를 받는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뜬금없이 삽입된 어색한 부분으로 판단되는데, 아마도 보편적 죄성을 담아내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이러한 보편적 죄성은 결국 만수의 범죄를 알고도 아내 미리와 아들 시원은 묵인 방조하는 인물로 표현되고 있다. 반면에 만수의 딸 리원은 다른 가족과 범죄에서 다른 결을 갖는 것은 아마도 감독이 인간에 대한 희망의 여지를 남겨둔 것처럼 보인다.


앞서 말한 것이 종교적인 상징의 차용 혹은 변형이었다면 이번에는 문명사적 발명의 전환의 상징적인 의미를 이야기해 보자. 주인공 만수의 직장은 종이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제조회사다. 중국에서 발명된 것 중 서양으로 전달되어 문명사적인 변화를 준 발명품에는 화약, 나침반, 종이가 있다. 종이의 발명으로 지식과 정보 전달의 용이성으로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전반적인 문명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제지회사라는 것은 한때 문명사적으로 획기적인 가치를 지닌 종이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디지털시대에서 자동화 시스템과 AI시대로 접어들면서 종이의 가치와 공장 운영은 예전과 같을 수 없다. 종이 보다는 전자 문서로 종이의 활용이 급격하게 줄어든데다가 자동화 시스템은 공장 작업자의 인력을 완벽하게 대체하고 있다. 문명사적으로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던 종이가 이제 쓸모가 줄어들었고 로봇이 인력을 대체하는 시대에 숙련된 기술자 역시 그 쓸모 역시 잉여일 뿐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전환을 감독은 제지회사의 이름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만수가 다니던 회사의 이름은 태양제지이고 다시 입사하게 된 회사의 이름은 문제지이다. 여기서 문제지의 문을 moon(달)으로 본다면 감독은 확실한 시대적인 환경의 전환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만수가 문제지에 면접을 보면서 관리자들의 대사에서 자신들의 회사에는 소등시스템이 있다고 한 점이다. 자동화 시스템에서 로봇에게는 빛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빛이 없어도 생산라인이 원활하게 가동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만수가 일하는 장면에서 그의 뒤로 점차 소등되는 장면은 만수의 이후의 삶에 대한 암울한 예고이면서 단순히 그의 미래에만 한정되지 않는 감독의 묵직한 메시지와 같은 장면이다. 추가로 문제지라는 회사 이름을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문제問題 인데, 이것은 새로운 시대 전환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거대한 시대적인 환경의 변화에 대한 한 개인의 삶에 변화에 대한 물음이면서 인류를 향한 물음이다. 물론 답은 불분명하고 전망할 수 없고 예측되지 않는 물음이고 풀어야 할, 풀리지 않는 어려운 숙제와 같은 문제인 것이다.


앞에서와 같이 영화 <어쩔수가없다>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을 하다보니 성경의 최초 인류_아담과 이브_를 상징적으로 사용하면서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현재의 인물에까지 닿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과 끝이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천 년이든 수 억년이든 셀 수 없고 가름할 수 없는 시간이 흘렀지만, 인류의 삶의 모양은 거기서 거기? 최초의 인류보다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의 삶의 모양 역시 조금은 진일보해진 걸까? 조금은 성숙해진 걸까?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변화는 속도에 속도가 더해져 가속도가 폭발적으로 증폭하고 있지만, 우리의 죄성은 최초의 인류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이 이번 영화를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로 실업자가 취업을 위해 실업자를 죽여야 하는 가당치 않은 현실을 웃프게 표현하고 있지만, 어쩌면 불편한 현실에 대한 혹은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감독의 자조는 아닐까. 따라잡을 수 없는 미친 가속도 속에 갇힌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점차 소등되어 가는 미래를 살아야 하는 아담과 이브를 연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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