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 딸은 외관상으로 다름이 보인다.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들어 내놓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알려지면 흘러가게 둔다. 지나가는 시간의 물결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인연이 있다. 그들 중 소중한 인연이 닿으면 그때에는 딸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모인 우리가 먼저 열어두면 상대방은 부담이 없어진다. 다음번 만남에서는 조금 더 편안한 사이가 된다.
소중한 인연이 있는가 하면 스쳐 지나갈 인연도 있다. 난 그들에게는 굳이 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한글학교를 다니면서 예외적인 만남을 겪게 됐지만 이 또한 가볍게 지나가길 바랐다. 한글학교에 두 아들을 들여보내고 산책이라도 해야지 생각했었는데.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아이엄마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의자를 빼며 옆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 엄만 이미 다른 엄마와 이야기 중이었다. 그들 사이에 앉으려니 어색했다. 쭈뼛쭈뼛 엉덩이를 들이밀며 의자에 앉았다.
왼쪽에 있는 엄마가 내게 물었다.
“전에 보니 딸도 함께 왔었는데 오늘은 안
데려왔어요? “ ”집에 할머니와 함께 있어요. “라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른쪽 엄마가 이어서 질문했다.“딸은 몇 살이에요?” “다섯 살이요.” ”유치반에 들어갈 수 있네요. “ “사실 제 딸은 다운증후군이에요. 교장선생님이 보조 교사를 구해준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이에요.”라는 내 이야기와 함께 정적이 흘렀다.
무거운 공기를 가로지르며 ”정말 대단하세요. “라는 말이 들려왔다. ”저라면 못 받아들였을 거예요. 저는 둘째를 가졌을 때 노산이었어요. 유전자 변이로 아이가 이상 할 수도 있다고 해서 열 달 내내 마음고생
했어요. 다행히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힘들었는데. 다운증후군 엄마로 평생을 어떻게 살아요. 받을 그릇이기에 그 가정에 태어났나 봐요. “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위로라고 했겠지만 받아들이는
내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누가 위로를 해달라 했나? 평범한 아이의 엄마면 다행이고 다름의 아이엄마면 대단한 건가? 실타래처럼 엉겨 붙은 마음의 감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나도 그들과 다를 것 없이 평범하다. 아이가 아프면 품에 안고 함께 아팠다. 아이가 첫 발을 내디뎠을 때 기뻤다. “엄마”라는 말을 듣고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엄마들이 느끼는 감정을 나도 똑같이 느꼈다.
결코 특별하거나 대단하지 않다. 그들도 내 입장이었더라면 시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받아들였을 거다. 나 역시도 두 아들의 엄마였을 때에는 생각도 못했다.
‘다운증후군’ 엄마가 되며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빠져들었다. 이제는 없으면 안 될 존재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독일교회에 행사가 있었다. 독일교회 행사에 참여했다. 고사리 같은 딸의 손을 이끌고 유아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1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가 있었다. 활짝 웃으며 내게 인사를 했다. 나 또한 반갑게 웃어 보였다. 독일 사람들은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걸 좋아한다. 내 딸에게 이름을 물었다. 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대신 말했다. “내 딸은 아직 말을 못 해요. 다운증후군이거든요. 이름은 다희에요.” “다희라는 이름이 예뻐요.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마음이 따뜻하고, 사랑이 넘친다는 걸 알아요. 존재자체가 사랑이에요.”라는 말이 어지럽게 뒤엉켰던 마음이 스르륵 풀렸다.
나는 독일에 사는 한국인이다. 한국인 입장도, 독일인 입장도 이해된다. 작년에 잠깐 한국 방문을 했을 때 딸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아직 한국에서는 따뜻한 시선이 독일만큼은 아니구나를 느꼈다. 훗날 대한민국도 편견이 아닌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