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랑시점 #12 고심 끝에 고른 긴자 청담점
여기에서 '이제'의 시점은 언제일까? 결혼 날짜를 잡았을 때? 아니면 프로포즈를 했을 때? 결혼 준비를 하기 위한 몇 가지 단계들이 있겠지만, 그중 빼놓을 수 없는 단계 '상견례'.
상견례의 특이한 점 하나는 전혀 분위기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 역시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달라 당황하기도 했으니. 다른 준비 과정인 드레스 투어, 프로포즈 등 중요한 이벤트는 신랑, 신부 둘만의 이벤트라서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 있지만, 상견례의 경우 두 가족 적어도 여섯 명(예랑, 예랑 부모님, 예신, 예신 부모님) 이상이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도 하고. 특히 우리 둘 말고는 모두 처음 보는 자리이기 때문에. 또 '결혼'이라는 일대 중대한 일을 주제로 만나서 결코 가벼운 자리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수장들이 만나는 정상회담 격 아닐까.
꼭 빠지지 않은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나오는 단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자리 중에 하나인 데, 여자 친구와 나 둘만의 행사가 아니라 두 가족이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매개로 전혀 모르던 두 가족이 하나로 만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코로나 격상 단계로 5인 이상 집합금지 상견례도 인원 문제로 걱정이 많다고 한다. 조금 있으면 코로나 단계가 조금 낮아질 듯싶으니, 시기를 조금 기다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러한 이유로 상견례 장소도 까다롭게 고르고 싶었다. 각 가정의 정상 분들께 최고의 식사를 대접하고 싶기도 했고.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도록 우리 일행만 따로 앉을 수 있는 홀이어야 할 것이다.
우선 리스트를 뽑았다. 상견례 식당은 우리가 가본 식당 일리 없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빌려야 했다. 결혼 준비하면서 알게 된 식당들, 최근 상견례 동향을 알 법한 결혼한 친구들의 추천 장소. 웨딩 카페 추천 등. 리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메뉴가 한정식 코스다.
이 중에서 꼭 가고 싶었던 곳은 석파랑, 어느 블로그에서 본 적이 있어서 기억해 두었는데,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사용되었던 장소로 고택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나중에 꼭 한 번 가보겠노라 찜 해두었던 곳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차가 있어야만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상대적으로 비싼 금액. 이럴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단어 '평생 한 번뿐인' 상견례인데. 뭐 그 정도 쓸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한 편으로 들기도 하다.
대충 후보는 나왔으니 조금 더 현실적으로 예산을 잡아보자. 그러려면 먼저 참석 인원을 파악해야 했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예비부부 + 부모님으로만 만나서 총 6명이 만나는 경우도. 이때 아니면 언제 다 모이냐는 의견으로 형제, 자매 혹은 그 배우자까지 보는 경우도 있었다. 내 생각에도 처음 인사하는 자리인 만큼 모두가 참석했으면 했는데,
우리의 경우라면 내가 2남매, 여자 친구가 3남매였으므로 총 9명이었다. 여자 친구의 언니가 결혼해서 형님까지 참석한다면 최대 10명 정도. 그렇다면 열 명에 한 명 식대가 10만 원.. 이면.. 백.. 백만 원? 와우. 이렇게까지 많이? 사람이 많기 하지만, 식사 한 번에 백만 원 지출이라니.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우선 예약 일정을 한 번 잡아보기로 했다.
이 역시도 쉽지 않았는데, 일단 주말로 날짜를 정해야 했고, 열 명의 일정을 한 번에 잡으려니, 또 우리 부모님은 광주에서 올라오셔야 하니 한 명이 안 되면 그다음 주, 또 일정이 있으면 그다음 주. 우리 가족에서 날짜를 정해서 여자 친구 쪽에 물어보면, 또 일정이 안 맞아서 우리 가족으로 날짜가 넘어오고. 생각보다 난관이었다.
그러다 정한 날짜가, 10월 셋째 주 토요일. 바로 내 생일이었다. 생일에 상견례라... 허허 이 역시 들어본 적 없는 전개인데. 생각해 보니 정말 기억에 남는 생일이 될 것만 같다.
우선 이 날짜를 가지고 꼭 가고 싶었던, 그리고 무리해서 진행해 볼 석파랑과 아홉 명이 합리적인 식당인 긴자가 최종 후보로 좁혀졌고 바로 예약 확인을 해보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쉽다고 해야 할지, 석파랑은 예약이 모두 마감되었고 긴자는 예약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하여 최종 결정된 우리의 상견례 장소, 청담동 긴자.
참고로 긴자는 주말가족특선(상견례 코스)가 있어서, 미리 전화할 때 상견례라고 얘기하면 약간의 데코를 준비해 주니 꼭 예약할 때 상견례라고 언급하자. 미리 말하지만, 긴자는 정말 잘 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상견례 날이 다가오고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셨다. 생일이라고 아침에 미역국도 같이 먹고. 얼마 만에 함께 보내는 생일 아침인가. 오랜만에 온 가족이 만나 보내는 시간. 그리고 오늘은 한 가족을 더 만나는 시간이다. 시간에 맞춰 택시를 타고 이동. 다행히 청담동이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아버지는 늦으면 안 되다고 일찍이 택시를 부르셨다. 다들 조금씩 긴장을 한 탓일까? 조용한 택시 안. 나 역시도 살짝 긴장이 된다. 어색하면 안 될 텐데.
식당에 도착. 긴자는 항상 밖에서 지나쳤던 곳인데, 여기에서 상견례를 할 줄이야.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무려 국내에 17개의 체인을 두고 있는 전국 규모의 체인이었다. 청담동에만 있는 식당인 줄..
http://shinhwaifood.co.kr/ginza/
SFG 그룹이 운영하는 긴자, 위 홈페이지에서 전국 매장 리스트가 있다.
이미 여자 친구 가족이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님은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는지 멀리 아버님이 나와 계신다. 홀 밖에서 아버님들끼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에 있던 가족 분들이 인사를 하러 나온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몇 번의 인사가 오갔는지 모르겠다. 아버님과 어머님도 한 번 뵈었던 터라 반갑게 맞아 주신다.
다들 들뜬 마음으로 자리에 착석. 아 이제 진짜 시작이다. 처음부터 어디에 누가 앉아야 할지 살짝 망설였는데, 부모님 네 분이 마주 앉으시고, 나와 여자 친구가 마주 앉았다. 그 옆으로 동생과 형제들이 앉았고.
우리를 뒤따라 홀 담당 직원분이 들어오셨다. 미리 예약해둔 메뉴를 확인하시고 오늘 메뉴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주말가족특선. 이라고 부르고 상견례 전용 메뉴.
식사를 다 하고 나서야 하는 말이지만, 음식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세트 메뉴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확인하지 않아서 주는 대로 먹고 있었는데, 음식이 몇 번을 들어오는지, 중간에 여자친구와 '우리 주문 잘못 들어간 거 아니야? 라고 의심했을 정도. 음식량이나 맛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곳. 감히 서울 상견례 식당 추천 긴자라 할만한다.
위 사진 가운데 보이는 게 상견례 테이블 데코. 큰 건 아니지만, 그리도 이렇게 청사초롱 문양이 있으니 혼례 분위기가 나서 좋다. 정말 상견례 분위기도 나고. 테이블을 가로질러 두 가족이 마주 앉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다.
식사가 시작하기 전에 나와 여자친구가 서로의 가족 소개를 했다. 아버님, 어머님, 동생 한 분 한 분 소개를 올리고. '멀리 서울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아버님들께서 대표로 한 마디 씩 건네셨다.
그리고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데 -. 잠시 동안의 정적. 다들 음식 먹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중일 테다. 나 역시도 여자 친구와 앞에서 눈을 마주치며, 웃음만 짓는다.
너무 조용하다 싶으면 우리가 나섰다. '아버님도 등산 좋아하시는데, 저희 아버지도 등산을 너무 좋아하셔 가지고요' 그러면 또 아버지가 이어서 말을 거들기도 하고. 또 레퍼토리가 떨어지면 우리 결혼 준비하는 소식도 한 번씩 업데이트했다. '신혼여행은 뉴욕-칸쿤으로 가기로 했는데, 아직 세부 일정은 정하는 중이에요'
이런 식으로 대화가 조금씩 조금씩 간격을 두고 이어지다가, 중간중간 식사가 들어와서 또 자연스럽게 어색한 분위기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식사 막바지에 갈수록 굳이 우리가 개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식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리고, 여자 친구가 이때쯤이다 싶었는지, 언니와 속닥속닥. 뒤에서 케이크를 꺼낸다.
"오늘, 상견례이기도 하지만 함께 오빠 생일이라서, 같이 축하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생일 케이크를 꺼내고 따로 준비한 토퍼를 꼽았다.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했담.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서, 예신이 센스 있게 준비한 토퍼. 나라면 절대 못했을 이벤트. 확실히 둘이 모이니 좋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덧 저녁이 다 되었다. 막 분위기가 좋아지는 듯하여 잠깐 카페라도 가야 하나 싶었지만. 다들 피곤하시니 이즈음에서 적당히 헤어지는 게 좋겠다. 택시를 기다리며 잠깐의 시간, 결혼식 때 다시 뵙자며 부모님들께서 서로 인사를 건넨다. 나도 여자친구와 서로 수고했다고 격려하며 오늘은 헤어지기로 한다.
다시 돌아오는 택시 안. 서로의 상견례 후기를 나누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꿈만 같았던 나의 생일. 그리고 상견례. 오늘의 자리를 비로소 나는 진짜 결혼을 하나보다 싶다. 다시 이 구성원들이 만날 때까지 잘 준비해보자.
예랑, 예신이 분위기를 만들어보자
* 사아-실 예랑 입장에서 따로 준비할 게 없는 것 같아요. 현재 분위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저도 아버지가 사교적이시고 외향적이라 큰 어려움(?)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첫 상견례 자리에서 말씀을 아끼시는 걸 보고 낯선 아버지의 모습을 보기도 했거든요. 다행히 갈수록 분위기는 좋아졌지만, 처음 어색함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다만 상대방 부모님의 간단한 정보 정도는 일러두는 게 좋겠죠? 취미로 등산을 좋아하신다든지, 최근에 무슨 이슈가 있었는지
* 긴자가 고맙게(?) 여겨졌던 부분은, 저희 홀 서빙해 주시는 담당이 중간중간 들어오셔서 이야기를 잘해주셨어요. 음식부터, 상견례 축하드린다는 말도. 귀한 사진도 한 장 남겨주셨고요. 어색한 분위기 속에 한 번씩 음식 가져오는 순서들이 적막을 깨는 좋은 기회였는데, 그런 면에서 상견례 1등 식당답게, 직원분들이 잘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꼭 사진 한 장 부탁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잘 찍어주시기도 하고,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사진 남길 일이 정말 없거든요.
* 양가 부모님께 간단한 선물을 준비해드리는 것도 좋아요. 저희는 상견례 외에 따로 선물을 챙겨드리긴 했지만, 다른 후기들 보니 상견례용 선물을 사기도 하더라고요. 화분을 많이 하는 것 같던데 그 밖에 간단한 떡, 한과 같은 간단한 음식 선물도 좋아 보였습니다.
* 상견례 옷차림이 걱정이라면, 예랑 분들은 단정한 정장을 입기를 추천드립니다. 저는 평소 정장 입는 걸 좋아해서, 오히려 옷을 잘 입으려고 신경 쓰는 것보다 정장을 입는 게 더 편했어요. 여자 친구 역시 정장과 어울리는 원피스나 단정한 스타일로 선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