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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티 Oct 17. 2024

겜돌이 교사의 교실에서 게임하기 –2-

재미의 익힘 정도를 저는 중요시 여기거든요.

「Even하게 재미있지 않았어요.」

(2차 창작/원출처: 흑백요리사)


내 학창 시절은 한창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시기였기에 자연스럽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온라인 게임을 많이 접하게 됐었다. 1부에서도 밝혔듯 게임에서 만나 사람들과 소통하고 경쟁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던 시기였고 이 재미를 진즉부터 알아버린 나는 서른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게임 속 세상을 동경하며 겜돌이로 남아있다.

이런 온라인 게임, 특히 rpg게임이 오래되다 보면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문제가 있는데 바로 격차이다. 게임이 오래된 만큼 앞서나가는 선발대 유저와 새로 들어오는 유저 사이의 간극을 웬만한 방법으로 메우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사가 쓰는 방법 중 하나가 리셋(reset)이다. 말 그대로 선발대 유저들이 가지고 있는 스펙을 의도적으로 낮추거나 초기화(reset)시켜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다. 확실하게 간극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당연하게도 선발대 유저들은 개발사가 정하는 대로 자신의 캐릭터 가치가 낮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마냥 선호하지만은 않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기존 유저들 입장에서는 싫어하는 부분이 더 큰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얼마만큼 선발대 유저들의 스펙을 낮추는지에 따라 하드리셋과 소프트리셋으로 나뉘는데 작년까지 정말 재밌게 즐겼던 로스트아크라는 게임도 시즌3를 맞이하며 사실상 소프트리셋을 시행하였고 많은 선발대 유저들은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저도 이제 따라가기가 힘들어서...안녕 나의 홀리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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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으로 학급을 운영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게임사처럼 생각하고 운영하게 되는 것 같다. 2학기 들어와서 리셋 버튼을 만지작거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2학기에 접어들면 학생들이 성장하기도 하고 경주마처럼 달리는 것이 아닌 옆에 살짝 머물러 살펴보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캐릭터와 다른 친구들의 캐릭터를 보고 있노라면 본인들도 생각하게 된다.

아? 저 친구랑 차이가 좀 심하네? 못 따라잡겠네?
어? 뭐 더 안 해도 앞서갈 수 있겠네?

이렇게 말이다.

즉, 열심히 한 친구도, 약간은 부족한 친구들도 고루 흥미가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아바타와 관련한 부분이 눈에 띄는데, 저번 화에 언급했듯 학생들은 지금 포켓몬 때문에 DP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 결핍상태이다. 그리고 DP를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아바타를 꾸며 최고매력도를 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격차가 벌어진 만큼 한순간에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쉽게 격차를 메울 수 있도록 만들어버렸다. 즉 리셋이 가지고 있는 ‘빠르고 확실하게 간극을 줄이는 방법’이라는 속성에 초점을 두었다. 사실 실제 게임이라면 억울하고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교실에서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불만을 제거할 수 있어서 선택한 방법이기도 하다.

(선생님이 리셋 하겠다는데 뭐 애째뤠고~ 하드리셋이든 소프트리셋이든 어쩔 수 있는데? 2학기도 열심히 참여하도록 해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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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용한 리셋의 방법은 매력도의 증가치를 확 높여버린 것이다. 1학기에 아바타를 뽑았을 경우 노말 아바타가 10매력도, 1등을 뽑아 명품아바타를 뽑아야 50매력도를 얻게 된다. 그래서 1학기 가장 매력도가 높은 학생은 약 80정도였다. 하지만 2학기 뽑기에서는 노말아바타의 매력도를 50으로 정해놓고 뽑기를 시작했다.

파격적인 매력도 상승으로 원성이 자자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생각보다 아이들은 감탄하고 부러워하지, 불만을 표하는 학생들이 없어서 신기했다.

그리하여 다시 ‘대 뽑기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아이들은 DP를 벌기 위해(+아바타가 예뻐지기 위해) 열심히 DP를 쓰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보는 바와 같이 위의 1번 친구의 아바타가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2번 학생이 단 한 번 ‘딸깍’으로 뽑은 아바타 하나보다 매력도가 낮게 되었다. 물론 기존 10dp였던 뽑기가 업그레이드 뽑기라는 이름으로 12dp로 판매되고 있지만 솔직히 불만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것 전혀 없이 뽑은 친구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이 가득한 상황이다. 내 생각보다 4학년 학생들은 더 순수한 것 같다. 플레그 방지 퉤퉤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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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거로워 보이지만, 하다 보면 이젠 별로 품을 들이지 않고도 제법 모양새가 나오게 된다. 아이들의 아바타가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과연 학년을 마무리할 때 가장 높은 매력도가 어느 정도 일지, 어떤 방향으로 패치를 할지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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