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 관장 선생님이 승부를 걸어왔다.
「너의 파이리? 약.하.구.나! 나의 뮤츠로 순살 해주지..」
내가 기억하는
포켓몬에 열광했던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진화였다.
이전 화에서 말했듯 어딘가에 있을법한 다양하고 귀여운 포켓몬이 각각의 진화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컨셉을 지키면서 더 멋있게 진화하는 모습은 나를 그리고 내 친구들 모두를 열광하게 했다. 그 시절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어느 누구도 포켓몬을 싫어하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에서 지우의 포켓몬이 진화한 날이면 다음날 학교에서 모두 진화에 관해 이야기하기 바빴다. 작고 약해 보이는 포켓몬이지만 애정을 가지고 아껴주었을 때 결국은 진화해서 멋있게 탈바꿈한다는 흐름은 너무 진부하지만 그만큼 명확한 흥미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진화라는 소재는 무조건 아이들의 흥미를 불러올 것이라 확신했다.
(무기력한 단데기가 버터플로 진화할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불 뿜던 공룡 파이리, 리자드가 날개 달린 공룡 리자몽으로 진화한다? 그때 잠은 다 잤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애정하는 포켓몬의 진화는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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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매력적인 진화를 교실로 가져오기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있는데
즉 포켓몬이 트레이너와 유대를 맺으며 경험을 쌓고 이런저런 역경을 딛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게 처음에는 약간 막막했다. 이미 우리 교실에서는 경험치를 올리면서 캐릭터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성장 요소를 삽입하는 것이 애매하고(귀찮고) 그렇다고 각 포켓몬마다 진화 형태가 아닌 별개의 포켓몬으로 운영하자니 그건 포켓몬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흥미 요소를 반감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관리 파트와 성장 파트를 어떻게 운영할지 차일피일하다가 낸 결론은 아이들이 관리할 수 있도록 권한 넘기기였다. 별거 아니지만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관리카드를 만들어 모조지에 인쇄하여 나누어주고 아이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말 관리만 할 수 있게 3분 만에 뚝딱 만들고 나눠줬는데 생각보다 열심히 관리하는 모습에 더 신경 써줄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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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관리는 아이들에게 떠넘겼고 성장만 신경 쓰면 됐는데 포켓몬 배틀을 당장 교실에 도입하자니 내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어서 간단하게 전투력 비교만 시키기로 했다. 수학 시간과 문제토벌 시간에 많이 활용했는데 방법은 다음과 같다,
수학 익힘이나 문제토벌 완료하면 검사를 받을 때 위의 관리표와 포켓몬 카드를 소지하기
수학 익힘을 다 맞거나 문제토벌 완료가 확인되면 선생님과 배틀의 기회를 얻으며 자신의 포켓몬 카드를 잘 섞는다. (이때 교사도 포켓몬 카드를 랜덤하게 들고 있는다. 나는 내 맘대로 전설의 포켓몬도 껴서 6장 들고 있었다.)
3,2,1신호에 맞춰 가장 위에 있는 카드를 보여주고 전투력을 비교하여 승패를 정한다.
이기면 전투력 +20 / 진 경우도 성장의 일부로 판단하여 전투력 +10을 적어서 계산한다. (수학 익힘이나 문제토벌의 난이도나 양에 비례하여 승패 전투력은 조정될 수 있다.)
계산 확인 후 교사가 도장을 찍어준다.
(내 생각보다 아이들은 포켓몬에 진심이라 카드 슬리브를 사서 관리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걸 운영하면서 나도 재미있었는데, 채점은 맨 처음 다 풀고 확인한 몇 명이 맡아서 진행하고 나는 채점이 확인된 학생들만 모아놓고 포켓몬 배틀만 하면 되는 부분이라 나의 욕구도 충족시킬 수도 있었다. 300 언저리의 스타팅 포켓몬을 가지고 도전하는 아이들에게 5~600전투력의 망나뇽과 전설포켓몬을 부리는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부러운 눈빛은 상상 이상으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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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스템을 도입하자 아이들 포켓몬의 전투력이 마구마구 상승했다. 사실 규칙이 너무 간단해서 생각보다 흥미가 없을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어했다. 레벨처럼 차별화되는 것도 아니고 지든 이기든 계속해서 전투력이 오르는 시스템이지만 성장이라는 것은 아이들의 동기를 주기에 충분했고 심지어 수학 시간을 기다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의 지우 영향이 크긴 하겠지만 자신의 첫 포켓몬을 진화시키지 않고 피카츄처럼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아이들도 다수 나타나는 것을 보면 나의 포켓몬과 함께 성장한다는 부분이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큰 애착을 형성하는 듯하여 흥미롭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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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어느 정도 포켓몬이 다양해지기 시작하고 성장과 관리가 이루어지는 이때 우리 반에는 어느덧 포켓몬 배틀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