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제 뭐함?
「저를 가장 괴롭힌 그 질문... 근데 이제 뭐함?」
끄적쌤과 대화, 여러 영상에서 영감과 용기를 얻어 상태창을 정말 재미있게 만들었다. 스테이터스라던지, 칭호, 직업 등등 게임 개발자라면 이렇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들었다. 여러 개념을 만들고 지우고, 색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가시성을 높여보며 시간이 굉장히 소요됐지만 그럼에도 지치지 않았고 오히려 재밌었다.
(처음에는 아바타 없이 자기가 원하는 캐릭터를 그리거나 찾아오면 올려주기로 했었습니다. 저는 포켓몬 아르세우스를 넣었었는데 그냥 올리기에는 닌텐도의 저작권이 무서워서...ㅎㅎ 아르세우스(하찮)인가보다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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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고 보니 결국 돌고 돌아 나를 가장 괴롭힌 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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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화부터 계속해서 이야기했었던, 10년 동안 항상 내 발목을 잡던 그 질문이다. 상태창을 만들고 힘이나 지력을 찍는다면, 스텟을 찍는다면 뭐가 좋을까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게임을 할 때 스텟을 찍으면 내 캐릭터가 강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것처럼 이렇게 스텟을 찍게 만들어 놨으면 스스로 강해지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어 스텟을 찍으면 공격력과 방어력이 올라가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내 떠오르는 물음은 또다시 ‘공격력 올려서 뭐함?’이었다.
그냥 레벨업 그 자체가 좋다는 내적인 동기를 심어준다? > 필요하지만 언제까지 가능할까? 계속 이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나?
친구들과 경쟁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들까? > 끄적쌤은 카드게임 형식으로 배틀을 진행했다 하셨지만 한 번의 활동이 아닌 영속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싶은데, 그 게임은 어떻게 만들지?, 학생 간 계층이 생기는 건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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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지만, 종합해 보자면 시스템적으로 강해지고 성장할 수는 있지만
(J성향이 강한 저는 이런 불안한 상황까지 시뮬레이션하고 해결책을 상정해 놓고 행동하는 편인데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젤로라고 쳇gpt기반 클래스팅 인공지능에도 물어보기도 했는데 시원하지 않고 답답하기만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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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에는 결국 답은 못 찾고 일단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상태창을 뿌렸다. 종이로 했던 과거의 실수를 딛고 공유 스프레드시트에 제작을 하였고 몰입을 위한 용사증을 배부했다. 게임처럼 앱을 만들 수 있다면 좋았겠으나 ‘그 정도는 내가 못하겠다!’ 싶어 언제나 들어가서 볼 수 있도록 qr코드를 뒤에다가 인쇄해 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
6학년이었기 때문에 핸드폰 사용이 익숙했고 유치하다 생각하기보다는 흥미를 가지고 성장시키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원래 의도대로 상태창 그 자체에 관심을 보여주었고 이게 나를 참 설레도록 만들었다.
(초창기 용사증 형태입니다. 반으로 접어서 사용하고 뒤에는 qr코드를 찍을 수 있도록 코팅해서 나눠줬습니다. 앞에 빈 공간에는 용사가 된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바타를 넣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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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폭발적이고 긍정적인 피드백은 저를 기쁘게 했지만, 반대로 스테이터스 활용에 대한 고민 또한 이와 비례하게 깊어졌었다. 그렇게 계속 꼬리를 물고 생각하다 자체적으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확신은 없었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스텟이 있고 이를 활용할 수 있다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만들어 놓고 아니면 조금씩 고쳐보자는 생각으로 새로운 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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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우리 반에서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문제토벌의 시작이었다.
(명칭에 대해서 고민을 좀 했었습니다. 사냥이라는 말을 쓰자니 뭔가 가볍고 레이드라는 말은 애들이 알기에 쉽지도 않고, 그러다 몬스터헌터 월드에서 수도 없이 마주했던 토벌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적당히 어렵고 약간 숭고한 의식 같은 어감의 좋은 단어였다고 생각해요. 토벌 성공, 토벌 실패라는 말도 뭔가 쓰기에 거부감 없이 와닿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