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카레몬 Oct 22. 2024

설거지 탕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한 시선



지난 5월, ‘마이 아트 뮤지엄’에서 열린 스웨덴 국립 미술관의 북유럽 화가들의 작품 전시회를 다녀왔다. 그중에서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은 한나 파울리(Hanna Pauli)의 <아침 식사 시간>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기억에 오래 남아서 언젠가 글로 풀어 봐야겠다고 생각한 작품이다. 그녀가 그린 아침식탁 풍경 속에서 표정 없이 침묵하는 인물은 세기를 초월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아침 햇살이 은빛 주전자 위에서 반사되고, 하얀 식탁보에 내려앉는 이미지가 생생하다. 잘 차려진 테이블 위엔 찻잔과 그릇들, 유리병과 준비된 아침 식사가 있다. 테이블 너머 흰 앞치마를 두른 하녀가 트레이를 들고 서 있다. 그림의 중심에 있는 듯 하지만, 그림자처럼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다. 빈 의자는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새벽부터 깨어 움직여야 아침 식사를 준비할 수 있고, 그림에서조차 그저 배경처럼 존재한다. 손은 부지런히 움직이지만, 그 손의 주인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 하녀는 그림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만, 가장 쉽게 사라지는 존재로 그려져 있다.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그녀의 얼굴, 그 속에 묻힌 피로감은 이내 보이지 않는 손들, 우리 시대의 무수한 사람들과 연결된다. 


한나 파울리(Hanna Pauli)의 하녀를 보며, 몇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오늘날의 하녀들은 다를까? 우리는 더 이상 하녀가 있는 시대에 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뿐이다. 급식실에서, 화장실에서, 공장에서, 지하에서, 고공에서,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그들은 언제나 투명인간으로 사라진 채, 다시 남아 있다.


얼마 전 뉴스에서 봤다. "조리사 빠져 숨진 급식실 '설거지 탕'... 식판 2000개 90분에 몰아쳐" 헤드라인을 보고 무거운 한숨이 나왔다. 급식실에서는 쉼 없이 움직이는 손들이 있다. 그 손들이 닿는 곳에서 또 누군가 사라진다. 식판을 닦는 노동은 끝이 없다. 한나 파울리의 하녀와 다를 바 없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노동은 언제나 고단하다. 


한나 파울리(Hanna Pauli)의 빈 의자는 그들을 상징한다. 그들은 그곳에 있지만, 자리에 앉을 권리는 없다. 보이지 않는 손들의 수고와 존재는 이제 더 이상 그림자의 배경으로 남아 있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손길에 감사할 때, 조금이나마 공평한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 중심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누나와 형, 친구, 동료가 있을지 모른다. 단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수고에 걸맞은 공정한 대우를 요구하는 행동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들의 손길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노동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 손길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들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야 한다.


거리에서, 일터에서, 우리의 일상을 지탱해 주는 모든 보이지 않는 손들에게 마땅한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들의 자리, 그들의 권리를 기억하고 요구할 때, 비로소 이 세상은 조금 더 공정해질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그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빈 의자에 누군가 앉아있을 때, 비로소 세상은 조금 더 평등해질 것이다.




<한나 파울리(Hanna Pauli)-아침식사 시간(Breakfast Time, Frukostdags), 87 x 91cm, 유화, 1887>




설거지 탕



바깥은 점심이 한창인데

이곳은 아직 어둡고 손만 보인다 


식판 탑과 물통 사이, 

그녀의 낮은 그림자가 끼어 있다


세제 거품이 신발을 덮고

씻기지 않는 하루의 잔해가 부풀어 오른다


구멍 난 마음을 꿰매다가

칼에 찔린 손가락을 탓한다

기름에 찌든 솥단지처럼

물에 부푼 발꿈치가 하얗게 드러나면

차가운 벽에 그녀의 등이 들러붙는다


쌓인 서류들 속에 묻힌 이름,

주민번호와 계좌 번호들이

감정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종이컵 커피 한 잔으로 덧대는

하루의 조각, 조각, 조각..... 


그녀는 매일 물속에 잠긴다




오늘의 아포리즘

일상 속 편리함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수고로 완성된다

Convenience in everyday life is completed by the hard work of invisible people


'존 F. 케네디 (John F. Kennedy)'의 아포리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노동을 인식하는 것이다

What we need to do is not take for granted what we have, 

but recognize the labor hidden in it.


나의 아포리즘

[                                                                  ]







청소 노동자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38398.html


플랫폼 노동자

https://labors.or.kr/content/03news/03_01.php?proc_type=view&a_num=17144879&b_num=786&rtn_url=%2Fcontent%2F03news%2F03_01.php%3Fp_page%3D250%26p_search%3D%26p_keyword%3D%26p_cate%3D%26p_displaysu%3D10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38398.html


학교 급식 노동자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085979.html


이주 노동자 가정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42157


용역 노동자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708046.html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708046.html


외국인 노동자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96344


작가의 이전글 우리도 다 풀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