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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이를 낳았지만 엄마는 아닌 사람

별이 되어 선물해 준 엄마라는 이름

by 최고담 Feb 19. 2025


열 달을 뱃속에 품고 있었다. 뱃속에서 통통통 거릴 때 일정한 박자로 통통통 거리는 게 아무래도 박자감각이 남다른 거 같다며 김칫국을 마셨다.


그건 발차기가 아니라 딸꾹질이라는 것을 알고 나도 참 벌써부터 이렇게 아들 바보 엄마가 되었구나 싶어 배를 감싸고 웃던 나날들.


내게 와준 10달 하고도 14일의 시간 속에서 재신이 마음속엔 어떤 소중한 기억이 많이 남았을까.


임신 중에 제일 당겼던 음식은 선지해장국이었다.


그 마저도 먹고 싶을 때마다 먹지 않았던 게 지금의 상황을 만든 건 아닐까.. 후회와 미련으로 그렇게 나 자신을 몰아세웠다..



화장터에서 아이의 유골함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납골당에 가지 않으면 어떤 함(?) 같은 곳에 유골들을 모아 한번에 어디에 뿌려준다고 했던 거 같다.


내 자식을, 그 핏덩이를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이곳에 붓고 갈 순 없었다. 그렇다고 납골당으로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시댁 쪽 선산에 뿌려주면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차피 우리 부부가 죽으면 거기로 갈 테니 그곳에 뿌려주면 결국 같이 만나는 거니까.. 그게 낫겠다 생각했다.


시댁 선산은 충남 예산이었다.

유골함을 품에 안은 채.. 선산에 도착했다.


결혼하고 처음 와본 선산에 아이를 뿌려주러 왔다.


애국가 3절 가사 같던 하늘

“가을 하늘도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맑은 하늘 아래서 엄마를 지켜보고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차로 언덕을 오르고, 선산에 다 도착해서 묘가 하나 보였다. 내게 행운인 건지 선산을 정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했고, 조용했다.


뚜껑을 열어 재가 되어버린 재신이를 바람에 흩날려 떠나보냈다.


아기 사이즈의 관이 따로 있지 않아, 어른과 같은 관에 덩그러니 그 작은 아이가 들어있었다. 아마도 이 유골함엔 재신이보다 관의 재가 더 많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 관 안에 작던 아이가 그거보다 더 작은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갔다.


바람에 멀리 날아가는 재신이가 야속하면서도 이대로 영영 떠나보낸다는 생각에 많이 뿌리지도 못했다.


차라리 우리 자리를 알았더라면, 그 자리에 뿌려줬을 것을 그저 목적 없이 뿌려주다 결국 선산에 한 나무에 가장 많이 뿌렸다.


나무는 그대로 있을 테니 위치라도 기억하기 쉬울 거 같아 내린 판단이었다.


이 날은 뇌에 그대로 박혀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에 도착하면 언제나 어제일 같이 생생하여 눈물부터 가득 차오른다.




아이를 뿌려주고, 시아버님 친척분이 운영하시는 소고기 집으로 갔다. 평소 시아버님은 무뚝뚝하신 분이라 말씀이 많이 없으시다.


그런데 그날은 먼저 꽃등심을 시켜주시며 말하셨다.


새아가, 이 고기 맛있게 먹고
이 일은 마음에서 싹 잊는 거다.
알겠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맛있는 척 열심히 먹었다.


재신이가 떠나기 전날 마지막 인사를 하던 그날에 아버님도 재신이를 보았기에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 그 어린것이 마지막 인사를 했구나 하는 것을..


아이가 하늘로 떠났다고 하자, 아버님은 욕실 샤워기를 틀고 한참을 우셨다고 했다. 그런 아버님의 부탁을 위해 괜찮은 듯이 웃었다.


내 마음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졌는데, 그 마음을 손으로 움켜쥐고 사람 행세를 하고 있었다.


무너질 곳이 이곳은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남편은 걱정이 많았다. 본인은 내일부터 출근해야 하는데, 나 혼자 집에 있을 생각 하니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런 남편의 걱정을 뒤로한 채 먼저 씻겠다며, 욕실로 들어와 샤워를 했다. 문득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겉모습은 너를 품고 있던 그대로 같은데 너만 없다. 그나마 제왕절개를 한 상처만이 이 모든 게 현실이라는 것을 대변해 줄 뿐이었다.


심지어 비용조차 한 푼도 들지 않게 되었다. 내 제왕절개 비용과 신생아 중환자실 입원비 돈 나갈 곳이 많았으나, 태아보험과 여기저기서 들어온 축하금에.. 오히려 돈을 번 셈이 되었다.


너를 만나기 위해 가장 크게 지불한 것은 오로지 나 하나뿐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제왕절개 자국보다 더 큰 상처가 내 안에서 피가 철철 쏟아지고 있었다.


씻고 나오자. 남편이 싱크대에서 무언가 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가 유축해 둔 모유였다.


내 손으로 하기 어려울 테니 본인이 다 꺼내서 싱크대에 버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냥 그러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남편이 와서 말했다.


내가 회사가 있는 동안 울기만 할까 봐
걱정돼, 그래서 직접적으로
총총이랑 연관되어 있는 건 내가 치우려고..
사진도 다 지울 거야. 괜찮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집에서 쉴 수라도 있는데, 그는 바로 회사에 가서 일을 해야 했으니 미안해서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이후 며칠 젖을 말리는 과정에서 젖몸살을 세게 앓았고, 주변 지인들과의 연락을 차단했다.




그 와중에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출산 예정인 언니가 있었는데, 문득 출산 소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이 언니도 나와 비슷한 일이 생긴 건가 싶어 걱정되었다. 다행히도 얼마 있다 유도 분만으로 아이를 건강하게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때의 내 감정이 너무 쓰레기 같이 느껴졌다.


그 아이가 건강해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왜 나만 이렇게 불행을 겪어야 하지에 대한 생각이 들자..


이런 나 자신이 너무 경멸스러웠다.


나는 엄마도 아가씨도 아줌마도 아닌 그 어디의 이상한 사람으로 고이고 고여 썩어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사랑이 사랑으로 잊히듯 아이는 아이로 잊어야 하는 거 아닌가?


늘 그랬듯 나 자신을 살피는 것보다 나 자신을 몰아가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언제나 행복보다 불행이 가까웠다.


행복으로 가는 선택지를 모르니 그렇게 또 불행으로..

내 발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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