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

거친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있다

by 황규호


“구렁이 기럭지가 10자라도 동굴 속에 있으면 누가 알겠냐?”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간혹 말씀하셨다. 세상과 불화하며 지내는 내가 하도 답답하셨는지 지나가듯 한 말씀하셨었다. 젊으셨을 때 아버지는 가수로 데뷔할 기회가 있을 만큼 끼가 넘치셨지만, 안타깝게도 집안의 장남인 까닭에 꿈을 포기해야만 하셨다고 한다. 그 아쉬움이 늘 마음속 깊이 미련의 응어리로 남아 이따금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어렸던 때, 그 당시 내가 살던 외진 시골에서는 여간해서는 보기 힘든, 쌀 뒤주 같이 엄청난 크기의 검은색 전축을 소유하고 계셨다. 그리고 항상 노래를 즐기셨다.


전축의 턴테이블 한가운데 긴 쇠기둥에는 항상 엘피판들이 서너 장씩 올려져 있었다. 레코드판들은 하루내내 자신의 순서가 되면 자동으로 착착 내려와 갖가지 음악을 들려줬다. 고향집 뒷마당에는 큼지막한 감나무가 한 그루 우뚝 서 있었다. 저녁노을에 잘 익은 햇살을 머금은 반들반들한 감나무 잎들이 싱그럽고 가벼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고향집, 그 감나무 아래에서 아버지는 자주 노래를 흥얼거리셨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버지의 아련한 노랫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그렇게 항상 어릴 적 내 고향집에는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는 나를 도시로 일찍 유학을 보내셨다. 우리의 부모 세대가 대개 그러하 듯, 아마도 당신이 못 이루신 꿈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꿈을 하나씩 이루어가는 듯한 모습이 장하고 또 한편 남자로서 부러우셨을 것이다. 자식들만은 나름대로 성공하여 꿈을 이루고 남부럽지 않은 멋진 삶을 살아가 주길 바라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들 녀석이 간혹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하고 다니는 입성과 행색은 너무나 초라해서 거렁뱅이 보다 못한 낭인의 모습으로 보이셨던 모양이다. 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不慍 不亦君子乎).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라는 말이 있다지만, 아들의 겉모습이 너무 추레하여 남들이 잘못 보면 영락없는 실업자에 폐인의 형상이었으니 부모로서의 마음은 편치 못하셨을 것이다. 이제 생각하면 그런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근래 전해지는 소식에 의하면, 한국은 요즘 주택가나 아파트의 미관상 보기 흉하다는 이유로 트럭은 노상에 주차를 하지말고 보이지 않게 지하 주차장에 하라고 한다고 한다. 또 아파트 주차장에 소형이나 경차가 주차되어 있으면 아파트의 가격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며 옆집에 사는 이웃에게 아무런 부끄럼 없이 소형차를 외제 차로 바꿀 것을 강권한다고 한다.




이제 이런 이웃과 더불어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겉으로 번지르하게 보여지는 것에만 점점 매몰되어가는 세상. 화려한 겉치장을 하지 않고는 견디며 살아가기 힘든 시대. 이젠 귀밑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아들. 세상을 살아온게 한참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철이 덜 든 아들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이제서야 겨우 아버지가 그토록 걱정하셨던, 거친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