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를 생각한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윤동주, 참회록)
코로나 이전, 언젠가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차창에 비친 낯선 사람이 풀린 눈으로 나를 망연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흠칫 놀랬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 분명했다. 그러나 참 생경하고 낯선 얼굴이라 생각했다. 아마도 어두운 조명 때문이리라.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얼굴은 음영이 뚜렷한 어떤 사내의 것이었다.
한참을 응시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알아차렸다. 유리창에 비친 얼굴은 바로 내 얼굴이었다. 왜 내 얼굴이 이리 낯설고 이상했을까? 지하철의 어두운 조명 탓만 하기에는 너무 궁색하고 설득력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까닭이 이내 느껴졌다. 입꼬리 때문이었다. 차창에 비친 남자는 입을 꼭 다물고 있었고 입꼬리가 아래로 깊게 고랑을 파고 있었다. 영락없는 고집 불통인, 나이 든 남자의 모습이었다.
사실 나는 약간의 나르시시즘에 젖어있는 면모가 있다. 쉽게 말해 자뻑이 좀 있는 편이다. 이 나이에 어린 딸과 경쟁적으로 거울 보기를 즐기고 서로 셀카 찍기를 즐긴다. 본인의 얼굴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편이니 이 같은 행동이 수시로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 그러나 그동안은 밝은 곳에서의 나의 모습에만 익숙했던 터라 지하철의 어두운 조명 아래 무방비 상태로 차장에 비치는 나의 얼굴은 익숙하지 못했던 것이다. 꾸며지지 않은 본래의 나의 얼굴 표정이 그 순간 적나라하게 드러나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것이다.
사람이 웃게 되면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러나 나의 입꼬리가 아래로 향해 있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웃지 않는 것이 습관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왜 나는 웃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까?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미학자, 언어학자, 철학자, 소설가, 역사학자인 움베르트 에코는 한쪽으로 치우친 광기스럽고 맹목적인 주장을 항상 경계했다. 그는 지식계의 티라노사우르스로 불릴 만큼 엄청난 양의 독서와 깊이 있는 비평과 수필로도 유명하다. 그는 당대 파시즘뿐 만 아니라 종교적 근본주의 그리고 미디어에 나타나는 대중의 광기를 경계했다. 또한 폐쇄적인 자세로 자신들만이 진리를 말한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비판적이었다.
<장미의 이름>은 1980년 이탈리아에서 출판된 움베르트 에코의 메타 픽션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교황과 황제 사이의 세속권 다툼, 교황과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청빈 논쟁, 제국과 교황에 양다리를 걸치려는 베네딕토 수도회, 수도원과 도시 사이에 흐르는 갈등 등이 등장한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베네딕토 학파는 모든 종파 중에서 특히 보수적인 학파에 속한다. 그들은 웃음을 죄악시한다. 따라서 베네딕토 학파는 신학에 대한 광신과 철학에 대한 증오로 무장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을 금서로 취급하였다. 그리고 금서에 접근하여 웃음을 탐하는 수도사들은 수도원에서 차례로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된다.
수도사들이 죽임을 당하는 이유는 이렇다. “웃음은 두려움을 없앤다. 웃음은 악마에 대한 두려움까지 없애는데, 두려움 없이는 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웃음은 죄가 되며 웃음을 탐하는 죄인은 죽어야 된다는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호르헤 신부는 웃음을 악마로 여기는 정신착란을 앓는 늙은이로 등장한다. 그는 거짓된 지식으로 자신의 믿음이 오로지 진리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결국에 그가 믿었던 거짓된 진리는 지식을 탐구하고자 했던 젊은 수도사들뿐 아니라 자신까지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세상에는 이처럼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기준으로 자신을 중심으로 사람과 세상을 재단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가장 큰 죄악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죄악을 선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다. 우리들의 모습에도 이런 거짓된 믿음과 맹신이 존재한다.
움베르트 에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선별과 여과의 긴 과정이다. 다른 문화들 사이에 충돌이 있을 때는 상식과 관용이 필요하다.”
2022년 3월 9일 20대 대통령 선거,
그 어느 때 보다도 잘못된 진실을 믿고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과 맹목적인 태도는 거두어야 한다. 자신의 권력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후보가 아닌 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후보를 찾기 위해 우리는 이성의 횃불을 높고 밝게 치켜세워야 하고 선별과 여과를 통한 올바른 판단과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