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고도 여전히 한 사람의 나로 서 있고 싶은 마음들에게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 부모가 되고도, 여전히 한 사람의 나로 서 있고 싶은 마음들에게
회사에선 “○○님”으로 불리고,
집에선 “엄마” 혹은 “아빠”로 불린다.
하루 종일 같은 몸으로 살고 있는데,
이 두 이름 사이에는 언제나 얇고 긴 죄책감이 드리워져 있다.
1) 회사에 있는 동안, 집에 두고 온 마음들
출근길에 아이 얼굴을 보고 나오는 날이면
늘 같은 마음이 따라온다.
“오늘도 나 없이 잘 지낼까?”
“혹시 속상해 하진 않을까?”
“내가 곁에 있어야 하는데…”
회의실에서 앉아 있는데도
마음 한쪽에서는 아직 집안의 공기가 남아 있다.
메일을 쓰다가도,
보고서를 정리하다가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더 미안한 사람일까.
2) 집에 있는 동안, 회사에 두고 온 마음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이번엔 반대 방향의 미안함이 밀려온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에는 업무 자료가 맴돌고,
책상을 치워 주다가도
미처 답변하지 못한 메일이 떠오른다.
아이에게 집중하면
회사에 미안하고,
회사를 신경 쓰면
아이에게 미안하다.
결국 어느 쪽에도
“온전히” 서 있지 못한 것 같은 기분.
그래서,
하루가 끝날 무렵 가장 많이 떠오르는 문장은
“오늘도 또, 미안하다.” 이다.
3) 돌봄과 일 사이, 구조가 만들어낸 죄책감
이건 단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다.
돌봄과 일을 동시에 버티는 사람들에게
회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가족이 먼저죠, 이해합니다.”
“그래도 일은 처리해 주셔야 해요.”
말로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결국 평가와 일정은 그대로다.
돌봄으로 인해 빠진 시간은 ‘눈치’로 메워야 하고
회의 시간은 항상 돌봄 시간과 겹치며
돌봄 이슈는 “개인 사정”으로 묶여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돌봄을 하는 사람은
늘 선택해야 한다.
오늘은 어떤 미안함을 감수할 것인지.
아이에게?
팀에게?
나 자신에게?
4) 특별한 가족형태로 살아오면서, 내가 배운 것들
나 역시 특별한 가족형태로 살아오며
돌봄과 일을 동시에 붙든 사람이다.
출근 시간을 앞당기고,
업무를 최대한 압축해서 처리하고,
퇴근 후에는 다시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이 삶을 버티며
조금씩 배운 것들이 있다.
· 완벽한 선택은 없다.
오늘 아이에게 더 마음을 썼다면
내일은 일을 조금 더 정리하는 식으로
삶은 매일의 미세 조정에 가깝다.
· 미안함은 줄이는 것이 아니라, 다루는 것이다.
미안함이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
다만 그 미안함이 나를 잡아끄는 힘을
조금씩 약하게 만드는 법을 배워가는 것뿐이다.
· 나는 한 사람의 구성원이면서도, 한 사람의 나다.
회사에도, 아이에게도 중요한 사람인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5) 회사가 조금만 달라진다면, 가능한 변화들
돌봄과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회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회의 시간을 조금만 조정해 주는 것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같이 봐주는 것
“괜찮아요, 오늘은 빨리 들어가세요”라는 말 뒤에 정말로 일을 덜어주는 것
돌봄을 이유로 한 눈치 주기를 조직 전체의 규범으로 명확히 금지하는 것
이런 작은 변화만으로도
사람은 “미안한 직원”에서
“함께 가도 괜찮은 동료”라는 감각을 회복한다.
그리고 그 감각이
조직을 오래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돌봄과 일 사이에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미안한 날이 온다.
그때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를 여기까지 버텨낸 너 자신에게도
미안함 대신, 조금은 고마워해도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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