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내일(아이와 내가 함께 믿어보는 시간)
[오늘의 단어] 내일(아이와 내가 함께 믿어보는 시간)
“엄마, 우리 내일은 뭐 해?”
하루가 거의 다 지나갈 무렵,
아이 입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이다.
오늘 일도 아직 다 정리하지 못했는데
아이의 “내일”은 이미 눈앞까지 와 있다.
아이에게 내일은 대부분 좋은 것과 함께 온다.
“내일은 비와도 놀이터 가자.”
“내일은 내가 간식 만들게.”
“내일은 책 두 개 읽어줘.”
아이에게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재미있고,
조금 더 같이 있고, 조금 더 나아질 것 같은 시간이다.
달력의 다음 날이라기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살짝만 손을 뻗으면
곧 닿게 되는 작은 약속에 가깝다.
가끔 아이는 이렇게 묻기도 한다.
“엄마, 내일도 회사 가?”
나는 그럴 때 가능하면 같은 대답을 건네려고 한다.
“응, 엄마 내일도 회사 가. 엄마는 엄마 일이 참 좋아.”
이 말을 자꾸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조금은 필요한 주문 같아서다.
나는 일을 좋아하고, 일하는 나도 좋아한다.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는 순간,
엑셀 화면을 보다가 숫자 사이에서 답이 하나 보일 때,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길을 같이 찾을 때,
“아, 잘 버텼다” 싶은 날이 있다.
그래서 내일은 나에게 도망치고 싶은 날보다는
“내일도 한 번 더 해볼 수 있는 날”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에게 건네는 내일이 가볍지만은 않다.
“내일은 같이 놀자.”
“내일은 일찍 와줘.”
아이의 목소리 속 내일에는 믿음과 기다림이 함께 들어 있다.
어른처럼 ‘상황을 이해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엄마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어 버리는 마음.
어른들이 쓰는 ‘내일’에는 미루기의 그림자가 섞일 때가 많다.
“이건 내일 할게.”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늘의 나를 보호하기 위해 가끔은 일부러 쓰는 단어.
하지만 아이에게 말하는 내일만큼은 되도록 그런 용도로 쓰고 싶지 않다.
아이의 “내일”은 오늘과 내일을 잇는 다리라서,
되도록 흔들리지 않게 세우고 싶다.
물론 현실은 항상 계획대로 흐르지 않는다.
야근이 생기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거나, 몸이 버거운 날도 있다.
그럴 때는 약속했던 내일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할 때도 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은 꼭 이 책부터 읽어줄게.”
이렇게 말해 놓고 다음 날 또 다른 변수들이 끼어들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와 내일을 약속할 때
가능한 한 ‘크고 멋진 이벤트’보다는
조금 작지만 지킬 수 있는 것들 위주로 약속하려고 한다.
“내일은 10분만이라도 네 얘기 먼저 듣자.”
“내일은 집에 오자마자 같이 귤 까먹자.”
이 정도의 내일이라면
일을 좋아하는 엄마로서의 나와, 아이 옆에 있고 싶은 나 둘 다
무너지지 않고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아서.
〈點心〉은 하루의 한가운데 마음에 찍는 작은 점에 대한 기록이지만,
생각해 보면 아이와 나 사이의 많은 점들은 “내일”이라는 단어 끝에 찍혀 있었다.
힘들었던 날 저녁, 아이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엄마,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을 거야.”
그 말이 참 오래 남았다.
“엄마, 내일 회사 가지 마”가 아니라
“내일은 더 좋을 거야”라고 말해 주는 아이.
어쩌면 아이는 일하는 엄마를 보며
엄마의 내일도 조금은 응원해 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아이에게 내일은 엄마가 또 일하러 가더라도,
그래도 다시 집으로 돌아와 같은 식탁에 앉고,
같은 이불 속에서 잠들 수 있다는 기다림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각자의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해야 할 일로 채워진 내일,
회의와 보고로 바쁜 내일,
그래도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내일.
그 여러 가지 내일들 사이에서 아이에게 건넨 내일 하나만큼은
조금 더 단단하게 그리고 조금 더 다정하게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에게 내일은
더 많이 미루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일을 좋아하는 나와 아이와 함께 있는 나,
두 가지 얼굴을 조금 서툴게나마 함께 품어 보는 시간이다.
그래서 오늘의 마지막에 나는 이렇게 중얼거려 본다.
“내일도 일을 좋아하는 엄마로, 그리고 네 옆에 있고 싶은 엄마로 다시 한 번 가볼게.”
그 다짐이 마음에 찍히는 작은 점 하나가 되어
오늘과 내일 사이를
조용히 이어주기를 바라며,
제2장 〈아이가 찍어주는 점〉의 또 하나의 내일을 여기에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