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커피(나에게만 허락된 10분)
[오늘의 단어] 커피(나에게만 허락된 10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시면서도
이 한 잔이 이렇게까지 중요해질 줄은 예전엔 잘 몰랐다.
그냥 졸음을 쫓는 카페인,
입가를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따뜻한 음료 정도로만 생각했다.
지금의 나에게 커피는 하루를 시작할 때 찍어두는 작은 마음의 점 같은 것이다.
주말의 커피는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각자의 세상에 빠져 있을 때,
레고를 맞추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TV 속 무언가에 온 신경을 빼앗긴 틈.
그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주방으로 가 커피를 내린다.
잔에 커피가 천천히 떨어지는 동안,
집 안의 소음은 잠시 멀어진다.
누군가를 챙기기 위해 움직이는 시간이 아니라
아무에게도 불리지 않는 몇 분.
머그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창밖을 바라보거나,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고 앉아
오늘은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될지를 천천히 떠올려 본다.
주말의 커피는 해야 할 일 대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생각할 수 있는 드문 시간이다.
평일의 커피는 조금 더 분주한 풍경 속에 있다.
아침 업무 점검을 모두 끝낸 뒤,
메일함에 쌓인 급한 일들을 한 번 쓸어보고,
오늘 꼭 챙겨야 할 일정들을 머릿속에 줄 세운 다음에야
비로소 “커피 한 잔 하실래요?”라는 말을 꺼낼 수 있다.
동료들과 함께 탕비실로 걸어가는 몇 분.
텀블러에 떨어지는 커피 소리,
종이컵 뚜껑을 닫는 사소한 동작들 사이로
“어제 집에 잘 들어가셨어요?”
“오늘 일정 괜찮으세요?” 같은 안부가
조심스럽게 오간다.
별것 아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그 안에는 이런 말들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오늘도 같이 버텨봅시다.”
“그래도 우리, 여기까지는 잘 나왔네요.”
이 커피 10분을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다.
“할 일 많다더니 또 삼삼오오 모여서 커피 마시네.”
실제로도 커피잔을 들고 서 있으면
왠지 일을 미루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이 시간은
그냥 시간을 태우는 휴식이 아니라,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 마음을 데우는 의식 같은 것이다.
이 10분을 한 번 가져두면
적어도 오후의 나에게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할 수 있다.
“그래, 오늘도 여기까지는 괜찮아. 이제 다시 한 번 가보자.”
가끔은 커피를 놓치는 날이 있다.
아침부터 회의가 이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이슈가 터져
자리에서 일어날 틈도 없이
시간이 쌓이는 날.
어찌어찌 하루를 넘기고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은 뒤에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나에게 한 번이라도 쉬어가라고 말해줬나?’
보고서는 남았고, 메일은 보냈고, 이슈는 얼추 정리했는데,
정작 내게 남겨진 건 피곤함과 공백뿐인 것 같은 기분.
그때 뒤늦게야 아침의 그 10분을
허투루 볼 수 없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나에게 커피는 조금 다른 정의로 남아 있다.
“내가 내 하루를 사소하지만 의식적으로 대접해 주는 시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순간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이 시간은 “지금부터는 나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자”라고
슬쩍 다짐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點心〉은 하루의 한가운데 마음에 찍는 작은 점에 대한 기록이다.
출근길의 손잡이, 점심시간의 햇빛,
퇴근길의 한숨 사이에
커피는 언제나 조용히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일하러 가는 사람의 손에 들린 검은 잔,
주말 오후 식탁 위에 올려진 하얀 잔.
그 잔들 위로 “오늘의 나”라는 시간이 잠깐 쉬어간다.
오늘 당신의 하루에도 커피 한 잔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너무 정신없이 마셔서 맛도 잘 기억나지 않는 커피,
회의실로 들어가기 전 급하게 들이킨 한 모금,
혹은 마시려다 잊어버려 책상 위에 식어버린 커피.
어떤 모습이었든 그 잔을 들었던 순간만큼은
잠깐이지만 당신의 하루가 “나”에게
조금 더 가까워졌던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단어를 이렇게 적어 두고 싶다.
커피.
나에게만 허락된 10분,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은 따뜻함.
그 한 모금이 오늘의 당신에게도
“그래, 오늘도 여기까지는 잘 왔다”라고
말해 주는 점 하나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