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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데이터 분석가가 된 이야기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필연이 되었다"

by 이건승

2년 전, 블로그에 ‘내가 데이터 분석가가 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평범한 내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어떤 방향과 고민 속에서 10년 넘게 일을 해왔는지를 기록한 글이었다. 이번에는 그 글을 조금 정리해 브런치에도 남겨보려 한다.


이 글은 처음으로 커리어를 고민하던 20대부터 지금까지, 나의 길을 어떻게 선택해 왔는지를 돌아보며 남기는 작은 기록이다.



CPA를 꿈꾸던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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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진학 이전부터 나는 공인회계사(CPA)가 되고 싶었다. 친한 형이 CPA가 되었고,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어른들을 보며 막연한 동경을 품었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Best in All’이라는 아이디도, 당시 삼일회계법인의 슬로건에서 따온 것이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본격적으로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다. 첫 해에 본 1차 시험에서, 커트라인인 330점에 단 두 문제 차이로 불합격했다. 점수는 326.5점이었고, 보통 이 정도 점수를 받으면 다음 시험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 전역 후 1년도 안 되는 준비 기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불안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이 길이 내게 잘 맞는다고 느꼈는데 왜 이 정도밖에 점수를 못 받았을까. 그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무렵, 엄마가 차로 학교까지 데려다주신 날이 있었다. 차 안에서 나는 조심스레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엄마, 나 시험을 계속 준비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 다른 가능성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걱정만 커지는 것 같아


나는 당시 27살이었고, 평균적으로 CPA에 합격하는 나이대인 27~28살을 지나고 있었다. 다음 해에 1차에 합격하고 동차로 2차까지 붙어야 흐름에 탈 수 있었고, 재시로 합격하면 어느덧 29살이 되는 상황이었다. 합격할 수도 있었지만, 불합격 가능성이 더 크게 느껴졌고 자신감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차분하게 이야기해 주셨다.

지금 너의 나이가 많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아직 도전하기엔 충분히 젊은 나이야.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시간도 있어. 지금 이 자리에서 포기한다면, 훗날 분명히 후회하게 될 거야. 우리는 네 도전을 응원할 테니, 걱정 말고 한 번만 더 해봐


엄마의 말을 들은 나는 ‘이번엔 정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하자’고 다짐하며, 한 해를 휴학하고 시험 준비에 집중했다.


하지만 결과는 더 좋지 않았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오히려 점수가 더 낮았고, 시험장에서부터 불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채점 결과를 보고 한참을 울었다. 자책이나 슬픔 때문이라기보다, 스무 살부터 꿈꿔온 직업을 결국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이 힘들었다.


물론, 계속 준비하면 언젠가 합격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내 한계를 느꼈다. 주변에서는 2개월 뒤에 있는 세무사 시험을 추천하며 과목이 비슷하니 도전해 보라고 했지만, 나는 그 길도 접고 복학을 선택했다.



백화점 마케팅팀 인턴, 우연의 시작


복학 후 나도 또래 취업 준비생들처럼 토익과 오픽 시험을 준비했다. 당시 취업 시장은 지금 못지않게 어려웠고,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각종 스펙 쌓기에 몰두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대외활동이나 공모전은 해본 적도 없었고, 자격증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겠는 상태였다.


이제는 ‘직업’이 아닌 ‘직장’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닥치는 대로 지원서를 작성했다.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으니 재경 관련 직무나 금융권에 기대를 걸었지만, 서류 탈락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통과한 곳도 있었지만 논술에서 탈락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유통과 패션 기업에도 지원해 보게 되었다. 의외로 이쪽에서는 서류 합격률이 좀 더 나았다. 그러던 중, ‘한국지방세연구원’이라는 공공기관 인턴 공고가 떠서 지원했고, 겨울부터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그 인턴십을 시작한 지 2주쯤 되었을 때, 이전에 지원했던 두 기업에서 최종 합격 소식을 받았다. 하나는 백화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유명한 패션 기업이었다. 두 곳 모두 영업관리 혹은 MD 직무였다. 고민 끝에 나는 백화점을 선택했고, 그것이 나의 첫 직장이 되었다.


백화점 인턴은 총 3개월 과정이었고, 그 기간 동안 두 부서를 경험하게 된다. 첫 배치는 점포 마케팅팀이었다. 당시 함께 입사한 인턴 동기는 마케팅 직무를 희망해 판촉 파트로 배정되었고, 나는 회계사 시험 준비 이력을 본 팀장님의 판단으로 숫자와 영업 계수를 다루는 영업기획/CRM 파트로 배정받았다.


나는 지금도 이 순간을 커리어의 결정적 장면으로 꼽는다. 그때가, 우연의 시작이었다.


마케팅팀에서의 첫 멘토는 분석에 강하고 숫자를 잘 다루는 선배였다. 엑셀조차 제대로 다뤄본 적 없던 나에게 그는 엑셀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역 내 대형마트는 전통시장 보호 차원에서 2주차, 4주차에 휴점을 해. 그때 백화점 매출이 올라가지 않을까?

그리고 나에게 이를 분석해 보라는 과제를 주었다.


선배가 추출해 준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는 엑셀로 정리를 시작했다. 2주차/4주차와 일반 영업주차를 나누어 매출 신장률을 비교하고, 네이버 지도 위에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위치를 표시했다. 각 동별로 주차별 평균 매출과 신장률을 표기해 1페이지 분량의 시각화 자료로 정리했다. 그것이 나의 첫 분석 결과물이었다.


image.png?type=w773 이미지 예시


인턴 근무 마지막 날, 그 결과물을 팀장님과 팀원분들께 메일로 공유했고, 곧 다음 부서로 이동했다. 그 분석 결과는 실제 타깃 캠페인으로 이어졌고, 정규직 전환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팀장님은 그 자료를 보고 꼭 나를 팀에 데려오고 싶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허니버터칩 사건, 그리고 본사 CRM팀 발령


정규직으로 발령받은 후, TO가 없던 영업기획/CRM 대신 판촉기획 파트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침 내가 속한 점포는 경쟁 백화점의 오픈을 앞두고 있었고, 우리 점포 역시 쇼핑몰 증축을 마치고 그랜드 오픈을 준비 중이었다. 오픈 당일, 기업 오너와 본사 경영진이 점포를 방문할 예정이었기에 많은 고객이 몰리는 ‘성공적인 집객’이 중요한 과제였다.


하지만 당시 준비된 마케팅 계획만으로는 기대한 수준의 방문객을 유치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마케팅팀에 보완책 마련 지시가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하던 ‘허니버터칩’ 열풍이 눈에 들어왔다. SNS에는 ‘허니버터 냄새가 난다’는 말까지 떠돌 정도로, 단순한 과자를 넘어 사회적 현상이 된 아이템이었다.


때마침 식품팀에 허니버터칩이 입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급히 이를 사입하여 이벤트로 기획하기로 했다. 이미 전단지와 DM은 발송된 상태라, 홍보 수단은 점포 페이스북 페이지가 유일했다. 처음에는 ‘선착순 무료 증정’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나는 100원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보자고 제안했다.


SNS 게시물 콘셉트도 점포 VMD 콘셉트에 맞춰 공사장 점프슈트를 나와 인턴 후배가 직접 입고, 허니버터칩을 공수해 왔다는 설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쇼핑몰 로고인 ‘&’ 모양을 허니버터칩으로 형상화한 사진도 함께 게시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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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게시물은 하루 만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올리기 전까지도 ‘이걸 보고 사람들이 오긴 할까?’라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다음 날 백화점 앞에는 오픈런 대기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현장 통제를 맡느라 외부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사진과 기사들을 보며 그 반응에 놀라고 소름이 돋았다. 일부에선 무리한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회사 내부에선 성공적인 집객으로 평가되었고 분위기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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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3d20ae788ce607d8f77e20d0c0c90.jpeg 이벤트 당일 오픈런을 만들었다

그날 저녁, 본사 마케팅전략팀장님으로부터 “고생 많았다. 이벤트 정말 잘 준비했다”는 카톡이 도착했다.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만 컸고, 내가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 허니버터칩 일화를 굳이 꺼낸 이유는, 이 경험이 계기가 되어 정기 인사 발령 때 본사 CRM팀으로 이동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내준 바로 그 마케팅전략팀장님이, 나의 새로운 팀장이 되었다.


지금도 한 가지 의문은 남아 있다. 당시 내가 낸 성과는 마케팅 기획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왜 CRM팀으로 발령이 났을까? 그 이유를 직접 여쭤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나는 본격적으로 CRM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CRM을 하게 되다


본사로 발령을 받고 나서도 쉽지는 않았다. 원래 그 자리에 오랫동안 계시던 과장님이 갑작스레 퇴사하면서, 나는 데이터에 ‘데’자도 모르던 상태에서 CRM 업무를 하나하나 스스로 익혀야 했다. 자연스럽게 야근은 일상이 되었고, 그렇게 혼자 버텨내며 일을 배워야 했다.


3~4년 차가 되면서는 팀 내에서 맡는 업무도 늘어났다. 멤버십, CRM 캠페인, 개인정보보호, 데이터 분석, 제휴카드 등 다양한 영역을 짧은 시간 안에 경험했다.


특히 멤버십 제도를 전면 개편하는 프로젝트와 새로운 제휴카드 론칭은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동시에 데이터 분석도 전담하여, 매일 아침 임원에게 직접 리포팅을 하였다. 그 작업을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했고, 5시 30분이면 회사에 도착했다. 전일자 데이터가 DW에 적재되자마자 분석을 시작해 3~4페이지 분량의 리포트를 오전 8시까지 본부장님께 보고했다. 이런 생활을 2년 가까이하다 보니 결국 몸이 버티지 못했다. 젊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과로가 내 건강에 분명 영향을 주었다.


비록 주니어 연차였지만 프로젝트 PM을 맡았고, 회사 안에서는 데이터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 덕에 사내 BI 교육도 몇 차례 진행했고, 엑셀의 한계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SQL과 R을 따로 공부하기도 했다.


당시 회사에서는 승진 대상자에게 고과를 잘 주는 경향이 있었지만, 나는 첫 평가를 받던 해부터 퇴사할 때까지 줄곧 S~A 등급을 받았다. 내가 특별히 뛰어나서라기보다는, 단순히 남들보다 2배는 더 일했고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며 일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그렇게까지는 일하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그건 무모했다.


생각해 보면, 점포 마케팅팀 인턴 시절 좋은 멘토를 만나 첫 분석을 경험한 것, 그리고 허니버터칩 이벤트로 본사 CRM팀에 발령 난 이 두 가지 우연이, 지금의 데이터 분석가 커리어를 시작하게 만든 결정적인 출발점이었다.

image.png?type=w773 예전 특강을 진행하면서 주니어 연차 시기 커리어 타임라인을 정리한 자료



온라인 커머스, 데이터 분석가로 이직


열심히 일했고 회사에 대한 로열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컸던 건 커리어 성장에 대한 갈망이었다. CRM 마케터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운 좋게 큰 프로젝트를 맡아 성과를 내며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이 많은 업무를 지금처럼 계속 감당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느꼈고, CRM 안에서도 내가 집중해야 할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성과를 많이 냈던 마케팅 영역보다, 첫 인턴 시절 느꼈던 ‘분석의 재미’가 더 오래 남았다. 분석 업무를 할 때 몰입도가 높았고, 이 일이 내 적성과 잘 맞는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마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사회적으로 주목받던 시기였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앞으로는 데이터를 잘 다루는 사람이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온라인 커머스에 대한 경험도 지금보다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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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중반, 알파고 대국을 계기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직을 결심했고, 두 번째 회사인 SK스토아의 데이터 분석 직무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데이터 분석가로서 커리어 확장에 집중하게 되었고, 동시에 지금 운영하고 있는 ‘데이터 마케팅 공부방’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채널도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어떻게 우연히 데이터 분석가가 되었고, 주니어 연차 시절 어떤 고민을 했는지를 돌아보며 정리해 보았다. 글이 다소 길어지긴 했지만, 결국 우연한 기회를 통해 필연적으로 데이터 분석이라는 길에 들어서게 된 과정이었다.


처음부터 데이터 분석가가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면서 조금씩 방향을 잡아갔다. 그래서 지금 커리어의 초입에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완벽한 목표를 설정하기보다는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나에게 맞는 길을 탐색해 보라는 것이다.


시행착오가 있어도 괜찮다. 이 시기는 가능성과 시야를 넓히는 단계다. 다양한 경험은 훗날 자신이 추구하는 전문성을 쌓는 데 반드시 도움이 된다. 연차가 낮을수록 어려운 일이나 낯선 업무를 피하기보다는, 경험치를 쌓고 레벨 업하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다만, 나처럼 일에 몰두하다 건강을 잃거나 자신을 소진시키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다음 글에서는 데이터 분석가로서 이직 후 본격적인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과 경험을 해왔는지 이어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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