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심 품기 좋은 연필 가게 <흑심> 외 홍대 나들이

부제 : 대체 '홍대'란 어디까지인가

by 김쩨리

이상하게 연필을 써야 했었을 때에는 그다지 연필이 끌리지 않았는데 샤프와 볼펜에 익숙해지고 나서부터는 연필이 좋다. 특히, 흔히 '연필'이라고 했을 때 딱 생각나는 지우개 달린 노란 육각형의 연필을 만나면 기분이 더 좋다. 그리고 연필깎이가 생기고 연필 찌꺼기의 향기와, 연필을 깎는 소리가 좋아지면서 나는 연필에 더욱 빠졌다.


그래서 이번 주말 나들이는 나 같은 연필 덕후가 만든 <흑심>을 가기로 결정했다. 경기도민이 강을 넘는 건 매우 대단한 일이므로, 이왕 간 김에 주변에 가보고 싶었던 가게까지 들리기로 맘을 먹고 출발.



# 연필에 흑심 품기 좋은 연필 가게 <흑심>


© 다락방_멀리만 보고 가면 보이지 않는 연필 가게 <흑심> 간판

연필 가게 <흑심>은 요즘 을지로 갬성에 충만하게 '휴 레지던스'라는 고시텔 3층에 있다. 그냥 스르륵 지나가면 보이지 않는데 천천히 지나가면 딱 '연필'다운 그림이 그려진 입간판과 현관에 작게 그려진 쪼그만 연필들이 연필 가게 <흑심>으로 안내한다.


07.jpg © 다락방_멀리만 보고 가면 보이지 않는 연필 가게 <흑심> 간판


3층으로 올라가면 문이 살짝 열려있고 귀여운 메모가 우릴 반겨준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복도 끝, 커다란 연필을 입간판 삼아 문을 연 <흑심>을 만나볼 수 있다. <흑심>에 들어서면 뭔가 그 연필을 갈거나 연필심을 가까이했을 때는 향이 미묘하게 나서 기분이 확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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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방_선박을 빼곡히 매운 연필통들과 전시된 빈티지 연필

연필 가게 <흑심>은 단순한 연필을 파는 곳이 아니다. 특정 연필들을 제외하면 거의다 빈티지 연필들이다. 1950년대 연필을 오늘에 와서 똑같이 재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1940년대, 50년대 등 예전에 제작된 연필들을 주로 팔고 있다.


대체로 오래된 것들이 그렇듯, 여기에도 희귀한 연필들이 있는데 보통 그런 것은 한 자루에 10,000원 정도 한다. 한 다스를 살려면 에어팟 직구 가격 정도는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다. 빈티지 감성을 좋아한다면 한 통을 사고 싶은 유혹이 들 수도 있다. 그 옛날 빈티지한 패키지가 던지는 유혹을 이기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연필 가게 <흑심>에서는 또 연필만 만나볼 순 있는 건 아니다. 빈티지 지우개도 살 수 있고 깎을 때 심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연필깎이 등 우리의 연필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줄 아이템들이 가득하다.


10.jpg © 다락방_내가 산 연필과 지우개. 모두 합해서 20,500원 ^^

연필 가게 <흑심>은 완벽하게 그 감성을 완성하고 있는데, 제일 좋은 건 계산할 때 빈티지 연필에 대해서 계산해주시는 분이 설명을 해준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거 듣는 거 싫어하면 싫어할 수 있다.) 동일한 모델이 지금도 생산되고 있는 연필이 몇몇 개 있는데 지금 생산된 것이고 당시에 생산된 게 어떻게 다른지 직접 보여주면서 설명해주시기 때문에 약간의 듣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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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방_<흑심>에서 볼 수 있는 빈티지 연필들, 오른쪽 사진처럼 써 볼 수 있다.

통 밖에 나와 있는 것은 빈티지 연필은 아니지만 5개 세트로 9,600원에 구매할 수 있는 연필 세트이다. 각각 다른 메시지가 적혀 있어서 한 10개 정도 되는 연필 중 종류를 골라서 넣으면 패키지 2종 중 원하는 패키지에 싸준다. 통 안에 있는 3개 연필은 전부 빈티지 연필이라 어떤 건 6,000원, 어떤 건 3,000원 그렇다. 10,000원짜리 연필은 담에 여유가 될 때 와서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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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방_지금도 나오는 모델의 옛날 버전부터, 지금은 단종되어 구하기 힘든 연필까지

세트 연필을 산 건 어차피 내가 산 빈티지 연필들은 내가 감히 깎지조차 못할 걸 알기 때문에 쓸려고 산 연필들이다. 패키징도 예술이다. 솔직히 그 모든 과정이 좀 더 잘 팔기 위함인 걸 알지마는,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레트로한 쿠폰, 노란 봉투 속에 담아 실링을 모방해 만든 스티커 붙이기, 그리고 연필로 작성해 주는 영수증(표현방법을 몰라 영수증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효력을 갖는 영수증은 아니고 연필로 구매내역 비스무리하게 날짜와 금액을 적어둔다)까지. 감성에 의해, 감성을 위해, 감성으로 태어난 연필 가게 <흑심>이었다.



# <뿔랄라 백화점>에 가면서 마주친 광경들


04.jpg © 다락방_골목길에서 마주친 어쿠스틱 카페

그다음 내 행선지는 <뿔랄라 백화점>이었다. 을지로에 중고 빈티지로 유명한 <우주 만물>이 있는데 그곳처럼 그런 레트로한 빈티지 중고 아이템을 판다고 해서 가보려고 했는데, 가는 길이 무척 즐거웠다. 생생한 라이브 소리가 새어 나오는 어쿠스틱 카페 <언플러그드>부터 홍대에서 딱 당일 진행 중이었던 '와우페스티벌' 속 재밌는 광경들까지 뭔가 재밌었다.


12.jpg © 다락방_와우 페스티벌


최소 5년은 넘어 보이는 세탁소 간판 아래 실제로 손님들의 옷이 가득한 진짜 영업장 안에서 벌어지는 디제잉은 확실히 '와우'할 만했다.


11.jpg © 다락방_경의선 책거리는 다음에 제대로 걸어보고 싶었다.

가는 길에 경의선 책거리를 거쳤어야 했는데 조금 길고 행선지랑 멀어지는 것 같아서 조금만 걷다 말았는데 경의선 책거리는 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걸어볼 만한 산책로다.


14.jpg © 다락방_가는 길에 만난 길냥이

그리고 무엇보다 내 눈을 끌어당긴 건 골목길에 얌전히 앉아있던 고양이다. 꽤 사람에 익숙한 듯, 딱 두 뼘 정도의 거리만 유지한 다가오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내가 그의 영역에 들어온 손님을 여실히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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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방_가는 길에 만난 길냥이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는 듯 적당히 통통한 몸과 중성화를 했다는 의미의 펀칭된 귀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그는 보살펴 주는 사람 덕에 사람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웠겠지. 마치 연예인처럼 나의 카메라를 즐기는 그는 그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어찌나 카메라 렌즈를 잘 보고 적당히 포즈를 취해주는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길냥이보다 촬영에 호의적이었다.



#<뿔랄라 백화점>은요,

05.jpg © 다락방_뿔랄라 백화점은 재밌는 게 많다.

을지로에 <우주만물>이 있다면 홍대에는 <뿔랄라 백화점>이 있다. <뿔랄라 백화점>은 정말 백화점(百貨店)이라는 한자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고 있다. 빈티지 중고 상품들이 장마다 가득가득해서, 우리의 통장을 뿔나게 만들 수 있다. LP와 비디오, 옛날 피규어는 물론 성냥, 포스터 등 우리의 눈을 유혹하는 것들이 천지에 널려있다. 더 있다가는 도저히 유혹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아서 서둘러 나왔지만, 텅장이 아니었다면 이미 대여섯 개가 장바구니에 담겼을 것이다.



# 그리고 마지막, <글벗 서점>

13.jpg © 다락방

홍대입구역에서 10분 정도 걸어야 볼 수 있는 중고 서점 <글벗서점>은 문을 연지 40년이 넘어가는 오래된 곳이다. 색이 바랜 채 밖에 가득 쌓여있는 책들을 보면 그 세월이 느껴진다. 안에 들어서면 책 꽂을 공건이 부족해 꽉 찬 옷장에서 옷이 삐져나오듯 책장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는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요즘 중고 책들도 쏠쏠찮게 발견할 수 있고 아주 오래된 잡지, 먼지 냄새가 날 법한 책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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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앨범도 있고 2층에 올라가면 외국 서적으로 가득 차 있는데 너무 많은 책들로 여유롭게 책을 골라 보기엔 다소 협소한 공간이다. 사실 <글벗서점>은 길 건너에서 봐야 더 예쁘다. 주황색 건물과 노란색 창 지붕이 조화를 이루고 유리창에 비치는 가득한 책이 멋진 풍경을 완성한다. 지하에도 책이 있는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좌우로 가득 쌓여있는 책들을 가만히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토끼를 따라 내려가야 볼 수 있는 세계가 열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돌아다녔나?

map_watermark.jpg © 다락방



돌아다녀 보니 왜 홍대로 사람들이 그렇게 모이는지 알았다. 홍대 '갬성'은 모르겠고 여기저기 들어가면 기분이 좋을 것 같은 카페부터, 재밌는 물건들을 파는 가게, 자신만의 색으로 무장한 채 거리를 걷는 사람들 등 재밌는 풍경들로 가득하다. 서촌이 고요하고 평화롭게 걸을 수 있어 마치 식빵 같은 빵이라면 홍대는 이곳저곳 재밌는 것들이 많아서 엄청 화려한 피자빵을 먹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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