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 #1. 서울책보고

그곳은 정말 '보고'이다.

by 김쩨리

북극에는 인류 최후의 날을 대비해 만든 '노아의 방주'가 있다. 바로 전 세계에서 보내온 6,000여종의 종자 100만점을 모아 놓은 스발바르의 국제종자저장고이다. 씨앗의 보고라 불릴 만한 곳이다. 그리고 서울에 올해 4월, 책의 보고가 개장을 했다. 바로 <서울책보고>이다.


01.jpg © 다락방_처음에는 그냥 대따 큰 서점 정도로 생각했다.

솔직히 대따 큰 서점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다. <서울책보고>는 서울시가 헌책방들을 모아 오래된 책의 가치를 담아 새로 만든 서울 헌책방이다. 거기에 더해서 각종 체험 프로그램, 강연과 더불어 독립출판물을 열람하게 함으로써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03.jpg © 다락방_서울책보고 운영시간


출입구에는 보라색 로고가 맞이한다. 운영시간은 화요일에서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10시 30분 ~ 오후 8시 30분, 공휴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9시까지 운영한다. 도서관처럼 매주 월요일 휴무다. 사실 홈페이지만 보면 왜 보고인지 모를 수도 있다. 그냥 요즘 복합문화공간이 유행하다보니 흉내낸 것이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입구로 들어서서 왼쪽을 바라보면 왜 이곳이 보고인지 알게 된다.


© 다락방_서울책보고


왼쪽을 돌아다 보면 중앙 복도를 가득 메운 책장에 헌 책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자세히 보고 있으면 이 책들이 왜 '중고 책'이 아닌 '헌 책'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지 알게 된다. 물론 요즘 책들도 많다. 특히 어린 아이들을 위한 만화책들은 저렴한 가격에 꽤나 깨끗한 아이들로 가져갈 수 있다.


저 꼭대기에 있는 책은 어떻게 가져가냐고? 장식이냐고? 전혀 아니다. 책 사다리를 이용해 스스로 가져갈 수 있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막 멋지게 책 사다리를 올라가서 막 그냥 촥촥촥 책을 가지고 내려올 수 있다. 물론 조심해야하고 쓴 책 사다리는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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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책장마다 헌 책을 내놓은 헌 책방들의 이름이 달려있다. 내가 갔을 때는 태권브이 시리즈부터 오래된 진짜 옛날 만화 책들도 전시하고 있었는데 대개 5만원이 훌쩍 넘어가게 판매하고 있다. 그만큼 귀하고 구하기 어렵다는 뜻이겠거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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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방

책장을 이래저래 뒤져보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누군가의 낙서가 보이는 '회원명부'는 경성학원동문회원명부였나 했다. 너무 오래되서 비닐 안에 쌓여 있었는데 주인이 한자를 따라 쓴 낙서가 정겹다.


보이는가? '마아케팅과 세일즈'. 1990년에 나온 창간호다. 세일즈 관리 전략부터 무려 업계 동향에 실무핵심, 1900년대에 마케팅 매니지먼트에 대한 내용도 있다. 뭔가 재미삼아 사볼까 하다가 이사할 때 짐만 될 것 같아서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11.jpg © 다락방


이건 다른 잡지에서 다룬 내용이다. 기사 내용을 보면 요즘 '90년대 X세대 패션'이라는 제목으로 돌아디나는 게시물 속 사진들의 패션에 대해서 우리와는 전혀 다른 평을 하고 있다. 이런 잡지를 보는 게 재밌는 이유는 기사 속에 그때 당시의 시선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견해를 담는 기사라면 더욱 그렇다. 기사 내용을 조금 훑어 보면 흔히 '성문화'라는 것에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이 다음장에 있는 것은 음주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로, 맨 끝에는 음주운전을 최고 문제로 삼고 있다. 30년 전에나 지금이나 음주운전은 여전히 문제요, 처벌은 미미한 것 같다. 지금의 청춘들에게 '요즘 것들이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라고 일갈하던 세대의 '요즘 것들' 시절을 보고 있으니 그것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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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방


옛날 연재 만화 책들도 찾을 수 있다. 챔프부터 밍크, 파티까지 옛 순정만화가 그립다면 혹할 수도 있다. 이왕이면 시리즈로 다 갖추는 게 좋지만 몇 권이 비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서울책보고>는 서울의 헌 책들과 더불어 그 추억들이 모여있는 진짜 '보고'다. 요즘 나온 책들의 '중고 책'들부터 정말 오래된 고등학교, 중학교 교과서, 진짜 실제본으로 만든 정말 오래된 책, 영화나 소품으로만 보던 영문 양장본 책 등 가히 그 양부터 내용까지 모두 '서울책보고'라 불릴 만하다.


이런 책장 말고도 전시 장소에 비닐에 고이 쌓여 있는 책들 중에는 50만원이 넘어가는 것도 있다. 그런 책들 중에는 문학을 사랑한다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책도 있다. 책장 사이를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그 헌책방들을 직접 가보고 싶기도 하다. 또, 헌책방마다 꽂혀 있는 책의 성격이 다 달라서 마치 헌책방 뷔페가 열린 것 같은 공간이다.


<서울책보고> 운영의 또다른 좋은 점은 독립출판물은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열린 공간에서 독립출판물들을 체험하고, 경험하게 함으로써 독립출판물들을 찾아보게 하고 직접 해당 출판사에서 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맘에 들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책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방문이다. 전시 책들이 올려져 있는 곳에 자기가 보려는 책들을 올려놓고 다른 책을 읽느라 전시 책을 못보게 하는 아이, 읽은 책들을 책 수레 넣지 않고 죄다 읽던 장소 뒤에 그대로 두고 가는 아이, 사다리를 좁은 통로에 그대로 두어서 다른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도저히 힘들게 만든 사람 등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 다소 불편했다. 그렇지만 어느 영화를 보든 옆에서 핸드폰하는 사람이 있고, 예매하지 않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뭐, 그냥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근데 다음에는 부모님이 잘 가르쳐서-성인 포함- 제발 안 그랬음 좋겠다.)



<서울책보고> 근처에는 광나루 한강공원, 생태화 공원 등에 걸어갈 수 있어서 아직 더운 날씨에 낮에는 <서울책보고>를 둘러보고 선선한 밤에 공원을 걷는 코스를 추천한다. 물론 나는 당일 늦잠을 자서 <서울책보고>만 갔다 왔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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