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는 덜하고 메세지는 재밌고
넷플릭스에 <글래스 어니언 : 나이브스아웃2>가 공개됐다. 워낙 호평받고, 개인적으로도 재밌게 봤던 <나이브스아웃>이라 공개되자마자 보고 온 후기!
원래 <나이브스 아웃>은 '후더닛(whodunit)' 장르 구조를 취하고 있다. 사건이 벌어지고, 주인공들과 함께 관객도 같이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구조다. <나이브스 아웃> 1편에서는 정석적으로 그 구조를 따른다. 영화 시작과 함께 베스트셀러 작가가 사망하고, 용의자들을 인터뷰하며 플래시백 형태로 영화를 전개해 간다. 그래서 관객도 같이 브누아 블랑, 마르타와 함께 퍼즐을 맞춰 나가며 영화에 몰입하고,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 마치 퀴즈쇼에 참가해 정답을 확인해보는 기분으로 영화이 재미를 극대화한다.
<글래스 어니언 : 나이브스 아웃>은 조금 다르다. 기본적으로 후더닛 장르이지만, 처음부터 사건을 보여준 <나이브스 아웃>과 달리 <글래스 어니언 : 나이브스 아웃>은 용의자가 될 캐릭터 빌드업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나이브스 아웃>과 같이 처음부터 살인 미스터리 수수께끼를 풀어나갈 기대를 한 사람이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은 그 기대를 저버리는 게 <글래스 어니언 : 나이브스 아웃>의 의도이다. 어차피 이 영화를 보는 대다수의 관객들은 관객이 풀어야할 살인 범죄가 생길 것을 안다. 뻔한 흐름대로 두지 않고, 일부러 구조를 한번 전환 시킨 것이다. 사실 <글래스 어니언 : 나이브스 아웃>은 전체 플롯 자체가 이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는 구조와 똑같다.
다양한 퍼즐이 잔뜩 달린 기계 장치를 받은 인물들은 얼레벌레 퍼즐을 풀고, 억만장자 마일스 브론이 초대한 그리스의 휴양지 섬으로 배를 타고 들어간다. 뭔가 대단한 비밀과 미스테리가 있을 것 같았지만, 마일스 브론이 이틀이나 걸릴 거라며 준비한 살인 미스테리는 브누아 블랑이 손쉽게 해결해 버리고, 사실은 더 거대하고 불편한 진실이 마일스 브론에게 숨어 있었다.
이런 구조는 <나이브스 아웃>을 보고 <글래스 어니언 : 나이브스 아웃> 예고편을 본 관객들이 뭔가 대단히 재미있는 수수께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왔다가 그 수수께끼 퍼즐은 사실 별 게 아니었고, 실제로 <글래스 어니언 : 나이브스 아웃>이 얘기하려던 게 딴 게 있는 이 영화 자체와 아주 유사하다.
사실 위와 같은 내용은 이 영화의 제목에 이미 숨어 있다. '글래스 어니언'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모순적이다. 유리(glass)는 보통 투명하고, 속이 잘 보이는 속성을 표현하고자 할 때 쓴다. 그런데 양파(onion)은 좀 다르다. 까면 깔 수록 다른 모습이 보일 때, 우리는 양파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니까 '글래스 어니언'은 복잡할 줄 알았는데 사실 속이 다 보이는 것을 말하는 모순적인 단어다.
만약 영화를 처음부터 세심하게 봤다면 이는 마일스 브론이 보낸 초대장에서도 드러난다. 굉장히 머리가 좋은,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 장치 같지만 앤디가 그냥 때려부수고 초대장을 꺼냈다는 점이나 마일스 브론이 마술사 조언을 얻어 그냥 외주 맡긴 장치(심지어 발송 일정을 '간신히' 맞춘)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런 특징은 영화 속 각 캐릭터에서도 도드라진다. 용의자로 의심받을 만한 캐릭터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볼 수 있게 일부러 기계장치를 푸는 과정을 화면을 분할해 각각의 인물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여준다.
대단한 기술혁신을 이뤄낸 것처럼 보이는 '라이오넬', 지구를 사랑해 마지 않는 깨어있는 정치인 '클레어', 불쾌한 발언으로 뭇매를 맞지만 자칭 자유로운 사상가 인플루언서 '버디', 그리고 트위치 인플루언서이면서 당당하게 페미니스트를 공격하는 '듀크'.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엄청난 아이디어로 알파를 설립하고 억만장자가 된 '마일스'까지.
하지만 이들은 앤디가 비난하는 것처럼 한꺼풀만 벗겨내도 별 거 아닌, 친구를 배신한 인간들이다. 라이오넬은 그저 마일스의 지시를 받는 사람이고, 클레어는 마일스의 돈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었으며, 버디는 잘못된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가 마일스가 투자해준 덕분에 살아남았다. 듀크는 미성년자들에게 코뿔소 발기부전치료제를 트위치에서 팔다가 마일스 덕분에 인플루언서가 된 인간이다. 이 모든 인간들의 돈줄인 마일스는 사실 카산드라 브랜드의 아이디어를 훔치고 자기것인냥 발표해 억만장자가 된 비열하고 찌질한 인간일 뿐이다.
마일스가 브누아 블랑에게 그 대단하신 '붕괴자들(disruptors)'가 뭔지, 어떻게 해야 혁신이 되는지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했지만 결국 그는 카산드라 브랜드의 아이디어를 훔친 것처럼, 하다못해 앤디를 죽이는 아이디어 조차 브누아 블랑의 비유에서 훔친 별 거 아닌 인간이었던 것이다.이처럼 이 영화 영화 제목, 영화 속 캐릭터, 그리고 영화 속 배경의 그 투명한 유리돔까지 '어니언' 대신 '글래스'에 집중해야하는 걸 보여준다.
뭔가 대단한 비밀이 있고, 그걸 풀어나가는 구조를 기대했지만 <글래스 어니언 : 나이브스 아웃>은 전혀 다른 구조를 띄고 있다. 영화의 무대는 살인 미스터리의 전통적인 배경이다. 억만장자의 외딴섬, 거대한 저택의 거실은 고전적 살인 미스터리 배경이다. 그래서 얼핏 범인을 찾는 살인 미스테리를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글래스 어니언 : 나이브스 아웃>에서 발견해야할 미스터리는 누가 듀크를 죽였나, 누가 앤디를 죽이려고 했나, 누가 카산드라 브랜드를 죽였느냐가 아니다. '왜' 죽였느냐이다. 그리고 그것이 <글래스 어니언 : 나이브스 아웃>이 보여주고 싶은 '글래스'이다.
<나이브스 아웃>의 재미는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그 과정 자체에 있고 상황 및 증거 등이 퍼즐을 푸는 열쇠가 된다. 그러나 <글래스 어니언 : 나이브스 아웃>은 살인 현장의 증거, 힌트 보다 '왜' 죽였을까에 대해 탐구해야 미스터리를 풀 수 있다. 결국에 이 '왜 죽였느냐'가 카산드라 브랜드를 죽일만한 사람이 누군지, 앤디를 죽이려고 시도한 인간이 누군지 알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비교적 증거가 명확했던 <나이브스 아웃>에 비해 <글래스 어니언 : 나이브스 아웃>이 증거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은 것도 이 이유때문이다.
그건 '클루' 게임이 재미없다고 얘기하는 브누아 블랑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다. 클루 게임은 살해도구, 증거, 힌트, 살해현장 등의 실마리를 가지고 범인이 누군지 맞추는 보드 게임인데, 브누아 블랑은 살인 동기가 훨씬 중요하다며 '클루'가 재미없다고 한다.
관객도 <글래스 어니언 : 나이브스 아웃>에서 '왜'에 집착해야하는 이유는 결국에 각각의 인물들이 왜 죽여야만 했는지를 알아야 <글래스 어니언 : 나이브스 아웃>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어니언에게 눈속임을 당한다. 화려한 언변, 그럴듯한 자료와 수치, 멋져보이는 겉모습 등 세상을 이루는 대부분은 어니언이다. 그래서 마일스처럼 누군가는 자신의 속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수많은 어니언들은 사실 '글래스 어니언'이다. 가만히 차분하게 들여다보고 '왜'를 통해 그 욕망을 들여다 보면 속을 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이 구조와 주제 특성상 <글래스 어니언 : 나이브스 아웃>의 재미는 <나이브스 아웃>보다 덜했다. 결말도 굉장히 아쉬웠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일스의 별장에 유리 조각상을 부수는데 합류한 다른 인물들의 태세 전환도 조금 뻔해서 오히려 의문이 들기도 했으며, 마일스 별장을 폭파 시키는 게 과연 현실적으로 마일스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인가 싶기도 했다.
이런 부분에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매력있는 영화이다.
한줄평
: 3.5/5
전작보다 아쉬운 재미, 메세지는 재밌다.
'글래스 어니언'은 참 재밌는 표현이다. 어니언처럼 보이는 줄 알지? 사실 글래스야 하고 그럴듯한 겉모습으로 속이려 드는 걸 비웃는 단어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