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택은 아닙니다만

길냥이를 데려오다

by 김쩨리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인연은 묘하다. 알기 전까지는 모르다가 어느새 이름을 알고 그다음에는 나이나 사는 곳을 알게 되고 더 가까워지면 취미와 삶의 방식, 삶의 일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더 가까워지면 더 이상 남은 아닌, 그 어떤 인연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와 ‘연’을 맺는다. 나도 그랬다. 길에서 시작한 그 ‘연’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묘한 연의 주인공은 묘


인생에는 자고로 전환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인생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고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그런 전환점이 몇 개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전환점이 바로 길냥이를 입양한 순간이다.


자취를 21살 때부터 시작하면서 언젠가 반려동물을 꼭 들이리라 다짐했는데 어릴 때부터 강아지 키우고 싶다고 하면 코끼리나 키우라는 소리를 들어왔기 때문에 꽤 간절했다. 간절했지만 무책임하게 데려올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나름의 전제 조건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일정 금액 이상의 ‘고정 수입’이었다. 내 생활비와 반려동물 생활비를 모두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기준을 잡아두었는데 그걸 달성한 것이 바로 2016년 하반기다.


다수의 육체노동형 알바를 거쳐 2016년 하반기에는 화상 과외라는 사무직에 가까운 알바를 하게 된다. 시급도 당시 최저임금의 거의 2배에 가까우면서 물리적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는 개꿀알바였다. 당시에는 코로나19 같은 건 예상도 없던 시절이라 ‘화상’으로 뭔가를 하는 게 덜 익숙한 시기였는데 화상과외 회사 프로그램이 나름 꽤 괜찮아서 과외를 진행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여튼 그런 개꿀알바로 고정적 수입이 정했던 기준을 넘었고 마침내 나는 고양이를 들이기로 결심했다.



묘한 연의 주인공은 묘



러시안블루_비마이펫 라이프.jpg
랙돌 사진_로얄 캐닌.png
왼쪽 | 러시안블루_비아펫 라이프, 오른쪽 | 랙돌_로얄캐닌
먼치킨_노트펫.jpg 먼치킨_노트펫

처음에는 흔히들 말하는 ‘품종 고양이’에 관심을 가졌다. 귀여운 먼치킨이라든지, 미모가 미쳐버린 랙돌이라든지, 애교가 많다는 러시안브루라든지 하는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펫샵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데, 점점 알아보다 보니 펫샵의 행태가 참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가정 분양과 길냥이 입양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동물도 다 생명이라는 게 있는 대상인데 그걸 마치 장난감 가게에서 인형을 사 오듯 하는 게 기분이 참 찝찝했다.


그런 와중에 가정 분양도 가정 분양인 척하는 펫샵인 경우도 있다고 해서(물론 찐 가정 분양들도 많다.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서 분양 보내는 경우) 그런 곳을 발라내는 거에 피로도가 느껴진 나는 이왕 데리고 오는 거 좋은 일 해보자는 생각으로 길냥이를 데리고 오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뒤에는 네이버의 네임드 길냥이 카페를 매일 들어가고 포인핸드를 조회하면서 나의 ‘묘연’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길냥이를 데리고 오는 과정에서도 기준을 정했는데 그건 내가 그 고양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1. 내가 대중교통 혹은 택시를 타고 데려올 수 있는 거리에 있을 것. 2. 적당히 어미 고양이와 3개월 이상 지냈을 것. 3. 나름 귀엽게 생길 것. 요렇게 3가지를 정했다.


그렇게 이 3가지 기준에 딱 부합하는 고양이를 찾아 몇 번 시도를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 번은 내가 아무리 과외를 돈 벌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학생이니 갑작스러운 병이 생겼을 때 감당할 수 없으므로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자기가 너무 귀여워서 데리고 왔는데 엄마가 길길이 뛰어서 결국 입양 보낸다고 했던 학생이었다. 처음에는 제안을 수락했는데 나중에 갑자기 자기 집 근처 사는 분이 입양을 원하는데 자기도 너무 귀여워서 자주 보러 가고 싶다며 말을 바꿨다. 재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알았다고 했다. 안녕 나의 귀여운 검정고양이...


그러다가 마주친 고양이가 바로 아래 고양이다.

3472339811031740425_20190122024836669.jpeg Ⓒ길묘한 홍시이야기_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도용 금지

아마 다들 이 사진을 봤다면 누구든지 데려오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 옆에서 꼼지락 장난치는 모습과 눈, 무늬가 나를 홀려버렸다. 이 고양이는 내 고양이다! 이 고양이는 내 고양이야!! 용기 있는 자가 미묘를 얻는 법, 바로 문자를 보냈다.



역시 첫 만남은 어려워


이 고양이는 파주 출신 고양이로 초등학교 선생님들께서 학교 근처에서 돌봐주던 길냥이가 낳은 새끼였다. 그때가 대충 12월 초쯤 됐는데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는데다가 어미 냥이가 또 새끼를 밴 것 같아서 구조하려고 하는데 입양 혹은 임보(임시보호)가 가능하신 분이 계시냐는 글이었다.


정말 죄송한데
다른 고양이 알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바로 연락했고 그 어미 냥이가 낳은 2마리 중 내가 원했던 냥이를 데리고 가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그 주 토요일에 데리러 가기로 했는데 목요일쯤 다른 고양이를 알아봐야 할 수도 있다고 연락이 왔다. 게시글처럼 고양이를 구조한 상태에서 글을 올린 게 아니었는데 그때까지 고양이를 구조하지 못한 것이다. 하필 또 어미 고양이만 구조가 되어서 새끼들이 무서워서 숨은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어미 고양이는 워낙 개냥이라서 사람들이랑 정말 잘 지냈다고 했는데 어미 고양이가 새끼들한테 교육을 빡세게 시켰나 보다. 이와중에 어미 고양이는 임신한 게 아닌 걸로 밝혀졌다.


그러더니 금요일이나 토요일 중에 다시 시도해 보고 안돼면 다른 고양이를 알아보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3번이나 안돼는 거라면 정말 나는 묘연이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길냥이만 보면 츄르를 그렇게 줬는데도 길냥이들한테 간택당한 적도 없더라.



하지만 너는 내게 홍시가 되었다


그런데 마침내 금요일인가 토요일 저녁! 드디어 구조됐다는 문자를 받게 된다. 체육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 도움을 받아 구조했다고 한다. 와 역시 초등학생 체력을 따라잡는 분들이라 다른가 보다. 어미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걔네가 원래 지내던 곳 근처에서 계속 들려줬는데 빼꼼 나오던 걸 구조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로 일요일 저녁에 바로 고양이를 데리러 갔다. 정말 조그맣고 정말 여리고 정말 귀여운 고양이가 커다란 핫핑크 이동장에 있었다. 누가 봐도 아기 고양이는 겁에 질려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보다 몸이 최소 5배 이상은 큰 외계인 3명이 우리 엄마를 잡아갔는데 다른 외계인 1명이 또 와서 우리 집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하면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핫핑크 이동장에서 내가 가지고 온 이동장으로 겨우 옮겨서 집으로 왔는데, 버스를 1번 갈아타야 했기 때문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탔다. 아직도 버스를 태워주신 두 기사분께는 그저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2번째 버스에서는 고양이가 좀 정신이 들었는지 한 절반쯤 갔을 때부터 야옹거리기 시작해서 정말 진땀이 났다.


이동장을 자취방 바닥에 내려놓을 때쯤에서야 내가 드디어 고양이를 입양하게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이 작고 귀여운 털북숭이가 내 고양이라고? 이제 고양이 카페에서 애절하게 간식이나 낚싯대를 흔들지 않아도 나랑 놀아주는 고양이가 생기는 거라고?! 소리를 지르면 고양이가 놀래기 때문에 심장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그 길냥이는 내게 와서 ‘홍시’가 되었다. 데려오기 전부터 미리 지어 놓은 이름을 바로 불러주었다. 먼 길을 가서 데리고 오는 게 제일 힘들 줄 알았는데, 데리고 오니까 그 이후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IMG_6712.JPG Ⓒ길묘한 홍시이야기_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도용 금지

이틀 동안 엄마가 없어서 밥과 물을 제대로 못 먹었을 거라고 해서 밥과 물을 주려고 이동장 문을 열었는데 홍시가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한 뼘 남짓한 몸을 이동장 벽에 최대한 붙이고 있었다. 나는 너가 정말정말 싫고 정말 최대한 너랑 멀어지고 싶다고 정말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겨우 이동장에서 꺼냈더니 그 작은 몸을 재빠르게 놀려서 침대 밑으로 바로 숨어버렸다. 침대 밑을 제일 열심히 청소했는데... 어쩐지 거기를 청소하고 싶더라.


그리고 그렇게 겨우겨우 내게 온 그날, 홍시는 침대 밑, 나한테서 제일 먼 위치에서 쪼그리고 앉아 그날 밤의 달이 다 기울도록 엄마를 찾아 울었다.


홍시랑 살면서 홍시로 인해서 딱 2번 울고 싶었는데 이 날이 그때였다. 홍시, 정말 나한테 ‘홍시’가 되어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나도 밤을 지새운 날이었다.


이제는 개냥이가 된 홍시의 다음 이야기는 이어서.



Ⓒ김쩨리의 길묘한 홍시이야기_무단 전재 및 재배포, 도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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