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날이게
무언가의 관계에서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은 성숙함의 증표 중 하나다. 그 관계란 사람도 사랑도 일도 모두 해당한다. 8282 왕국 대한민국에서도 상위 10% 안에 드는 급한 성격의 소유자인 나는 그런 면에서 신생아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 사이의 일에 대해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속도를 기다려 줄 수 있다는 것인데, 나는 그런 면에서 한참 모자란 모지리 of 모지리였다.
그런데 이걸 바꿔준 게 내가 데려온 길냥이, 내가 길에서(실은 네이버 카페에서) 만난 묘한 인연, 홍시다. 그래서 홍시를 데려온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 중 하나가 되었다.
홍시를 처음 데려온 날의 이야기를 보면 알지만 홍시는 처음에 극도로 사람을 경계하는 고양이였다. 단순히 경계를 넘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은 모두 자신을 죽이러 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경계했다. 데려온 그날, 홍시가 밤새도록 엄마를 찾아 울던 그날, 홍시는 침대 밑을 자신의 세이프 하우스로 삼았다.
홍시는 침대 밑의 가장 구석으로 가서 자신이 붙일 수 있는 한 가장 가까이 침대 밑 벽에 몸을 붙이고는 몇 날 며칠을 내가 방에 존재하는 시간에 절대 나오지 않았다. 홍시는 내가 없는 시간에만 나왔다. 밤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정말 내가 없을 때만 나왔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정말 내가 있는 동안은 단 한 발짝도, 단 한줌의 털도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데 외출하고 돌아오면 사료가 줄어있다거나 뭔가 움직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먹긴 먹고 마시긴 마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내가 있는 동안에는 단 1초도 침대 밑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용변도 침대 밑에서 봤다.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다가 문득, 똥냄새가 나면 홍시가 용변을 본 것이었다. 진짜 내가 지린 거 아님. 그러면 바로 침대를 벽에서 떼고 홍시의 용번을 물티슈로 박박 닦아 치웠다.
사실 이 기간 동안에는 나도 정말 마음이 힘들었다. 내 방에 놀러 오는 친구들은 고양이가 있긴 하냐고 그랬고, 나도 복실복실 우리 집 새끼 고양이랑 놀고 싶은데 나만 보면 바퀴벌레마냥 침대밑으로 숨으면서 밤에는 엄마 찾아서 우니까 진짜 유괴범이 된 기분이었다.
아무리 춥고 힘들어도 엄마 곁에 두는 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내가 홍시를 데리고 온 건 인간의 오만함이었을까?
홍시는 둘째 고양이인데, 자기 언니는 남의 집 가서 잘만 적응해서 하루 만에 놀아제낀다는데 홍시는 왜 내게 오지 않는 건지 답답했다.
그러던 홍시는 침대 밑에서 그렇게 안 나오던 2주를 지나 밤에만 나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내가 없을 때만 사료나 물이 줄었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아침에 일어나면 바뀌어 있었다. 그 외에도 내가 찢어버릴려고 했던 송장이 바닥에 뒹굴고 있다던지, 화장실의 두부모래가 어디 구석에 뒹굴고 있다던지 하는 흔적들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잠들기 전 살짝 귀를 기울여 보면 홍시가 혼자 밤에 나와서 챱챱챱 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리고 뭔가를 뽀시락 대면서 타다다닥 쫓아다니며 노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날엔 정말 악세사리 택배 상자에 쏙 들어가서 자고 있었던 날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이불을 움직이는 소리를 내거나 찰칵 소리를 내면 바로 숨었기 때문에 일어날 땐 배의 힘으로 소리 없이 일어나 무음 카메라로 몰래 홍시의 모습을 담았다.
홍시가 밤에는 나온다는 건 그래도 좀 경계가 풀어졌다는 얘기라 그때부터 침대 밑에 근처에서 장난감으로 유혹하는 걸 시도했다. 새끼 고양이는 새끼 고양이인지라, 호기심 때문에 장난감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침대 밑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손을 쭉 뻗어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줬는데 정말 웃기게도 경계는 엄청나게 하면서 고개와 눈이 장난감에 대한 흥미를 잃지 못해 달려들곤 했다.
그런 홍시의 모습이 진짜 참을 수 없이 귀여웠는데, 그걸 자꾸 보고 싶어서 침대 밑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홍시랑 노느라 3주 내내 무릎에 멍을 달고 살았다. 홍시가 이렇게 계속 숨어있던 덕분에 완전히 아기 고양이 시절 홍시 사진이 몇 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시는 나에 대한 경계가 여전히 심했다. 그 조그만 몸으로 온 힘을 다해 하악질을 하는데 모골이 송연해져서 바로 도게자를 박을 뻔한 적도 있다. 하악질이 그 특유의 소리 때문에 진짜 무서웠다.
그런데 그런 홍시가 이제는 내가 잘 때가 아니어도 본인한테 신경을 안 쓰고 다른 일에 집중하면 나오기 시작했다. 과제를 하느라 노트북에 집중하고 있으면 뒤에서 물 먹는 소리, 사료 먹는 소리, 뭔가를 가지고 혼자 장난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쯤 홍시가 구겨진 종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밤에도 나의 존재를 덜 의식하게 되면서 이제는 낮에도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밤에 홍시가 내가 잘 때만 나오던 시절부터 홍시는 정확하게 고양이 화장실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화장실을 한번 가린 뒤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용변 실수를 한 적이 없다.
홍시는 먼벌치에서만 놀더니 점점 나에게 다가왔다. 나를 향해 포르르 달려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인지 못 하는 사이 묘기척도 없이 옆에 덩그러니 앉아 그 쪼그만 고개를 틀어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 다시 침대 밑으로 숨었다. 어떤 날은 낮잠을 자다 눈을 떴는데 홍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눈을 마주치자 바로 최선을 다해 다시 멀어졌지만, 희망이 조금 보였다.
홍시는 이제 적어도 공간만큼은 익숙해진 것 같았다. 저녁에만 나오거나 아예 근처에 오지도 않던 시절에 비해 장난감도 잘 가지고 놀았다. 예전에는 장난감으로 아무리 유혹해도 침대 밑 지정석에서 5cm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침대의 경계선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 침대의 경계선은 마치 홍시와 나 사이 절대 넘을 수 없는 경계선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장난감을 꽉 붙잡은 채 딸려 나오는 홍시를 보면서 장난감으로 홍시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시는 장난감 중에서도 이상하게 제일 하찮은 오뎅꼬지를 좋아했는데 애착 오뎅꼬지로 홍시를 유혹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후 며칠 뒤, 저녁에 역시나 침대 옆에 앉아 홍시를 유혹해서 침대 밑에서 꺼냈는데 홍시는 아니나 다를까 오뎅꼬지에 완전히 정신이 팔렸었다. 그래서 나한테 등을 보인 그 순간, 바로 홍시의 등을 쓰다듬었다!
나한텐 정말 극적인 순간이었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에 홍시가 놀라서 도망갈까 싶을 정도로 긴장했다. 그런데 내 손길을 홍시가 처음엔 영문도 모르고 받았는데, 처음엔 화들짝 놀라더니 그 뒤에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 그리고 그때, 마치 첫사랑 종이 울리는 것 마냥 운명의 소리가 들렸다.
홍시의 골골송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홍시가 골골 소리 내는 법을 엄마한테 못 배운 줄 알았다. 그런데 나를 그렇게 경계하고 무서워하고 피하던 그 고양이가 내 손길에 골골골 소리를 내고 있었다. 거봐. 좋지. 너 몰라서 그렇게 무서워했던 거야.
물론 홍시가 뒤를 도는 순간 그 골골송은 바로 끝이 났다. 그렇지만 그 순간은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홍시가 드디어 사람의 손길, 정확히는 '나'의 손길을 알게 된 순간이었고 그게 결코 자신을 해치는 게 아닌 것을 알 게 된 순간이니까.
그리고 그 뒤부터는 갑자기 모든 게 순조로워졌다. 홍시는 내 근처라고 생각하면 오지는 않았지만 이제 장난감으로 유혹해서 침대 위로 올리면 침대 위에도 올라갔다. 그렇게 장난감으로 시선을 돌린 뒤 만지는 걸 반복하면 홍시는 바로 골골송을 불러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날에는 피곤해서 그냥 침대 누워있었다. 홍시를 장난감으로 유혹했던 순간도 아니었다. 그런데 홍시가 침대로 올라왔다. 끼이잉 하는 침대의 스프링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홍시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몸을 부비적 부비적 구겨서 내 몸에 자신의 몸을 아주 바짝, 아주 바짝 붙여 앉고는 내가 만지지도 않았는데 골골골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게 2017년 1월 11일이었다.
홍시가 우리 집에 온 날은 2016년 12월 11일이지만, 진짜 홍시가 내게 온 날은 2017년 1월 11일이다. 그날 나는 홍시의 시간을 배웠다.
내가 아무리 애를 쓰고 기다리더라도,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아끼는 마음이 크더라도 홍시에게는 대략 4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 마음의 크기와, 내가 들이는 노력과, 내가 사랑하는 깊이는 중요하지 않다. 홍시에게는 4주의 시간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그 날 인관관계에서 나는 기다림을 배웠다. 내 마음의 크기와 관계에 들인 노력과 무관하게 상대를 기다리고 이해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그 사람을 움직이는 데에는 그 사람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심지어 그 사람은 움직이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설사 내가 잘해줬다고 하더라도 그 호의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순전히 상대방한테 달렸으며 내가 그 사람에게 마음을 쏟고 신경썼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것이 그 사람이 나에게 돌려줘야 하는 마음이 아닌 것도 알았다.
홍시는 그날 이후 흔히들 말하는 개냥이가 되었다. 부르지 않아도 와서 몸을 비비며 골골송을 부르는, 앉아있으면 바닥에서 앉아달라고 나를 툭툭 치는, 정말 나를 엄마처럼 생각하는 아기 개냥이가 되었다. 홍시는 어린 시절 침대 밑이 자신의 안식처였던 게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는지 침대 밑은 아직도 홍시의 최애 장소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구겨진 종이나 비닐을 아직도 침대 한켠에 모아둔다.
홍시는 이제 내 삶의 일부이면서 가끔은 내 삶의 전체이다. 홍시는 소리와 향과 모습으로 내 삶에 스며들어 있다.
홍며든 삶은 어떤지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