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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향이 나서 홍시향이라고

고양이는 무슨 냄새가 날까

by 김쩨리

반려동물이 내 삶에 들어온다는 건 반려동물 용품이 추가되는 것보다 훨씬 감각적인 일이다.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훨씬 더 풍부한 소리와 향기와 촉감들로 가득 찬다. 오바 조금 보태서 나의 온 우주가 바뀌는 셈이다.


사람이 가진 감각 중 어느 감각이 가장 예민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후각은 여러 종류의 자극을 구별하는 데 가장 민감한 감각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홍시를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나서 가장 풍부해진 게 무엇이냐고 하면 그건 냄새다.


고양이는 무슨 냄새가 날까

IMG_1659.jpeg Ⓒ길묘한 홍시이야기_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도용 금지

홍시와 가까워지고 나서 가장 좋았던 점은 홍시가 가지고 있던 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양이는 원래 사냥감과 천적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그루밍을 꾸준히 해서 얼핏 보면 정말 냄새가 전혀 안 날 것 같아 고양의 향이라는 게 어색할 수 있다. 실제로 홍시가 가까이 오면 가까이 오는 것만으로는 홍시의 냄새를 알 수 없다.


그러나 홍시를 들고 뒤통수에 코를 박으면 홍시가 가진 냄새가 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햇빛에 오랜만에 말린 오래된 애착 인형에게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십여 년 전 내가 어릴 때 입고 있던 엄마의 옷을 옷장에서 꺼냈을 때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자주 빨아서 헤졌지만 내가 사랑하는 담요 같은 데서 날 법한 냄새 같기도 하다. 고향 집에서 엄마가 빨아준 수건의 냄새를 내가 흉내 낼 수 없듯 홍시의 체취는 그 어떤 향수보다 향기롭지만 흉내 낼 수 없고 표현하기 어려운 참 따뜻한 향이다.


실제로 고양이들은 취선이 뒤통수 쪽에 있어서 뒤통수에서 각 개체가 가진 냄새가 난다고 한다. 가끔 친구 고양이들 뒤통수 향도 맡아보는데 신기하게도 홍시랑 전혀 다르다. 홍시 뒤통수에는 홍시만의 향이 있다. 어쩌면, 홍시와 다른 고양이 모두 같은 냄새가 나는 거지만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사랑의 묘약은 사람마다 다르게 향기가 난다고 하는데, 고양이 뒤통수 냄새나 발바닥 냄새가 그런 게 아닐까.

IMG_3732.jpeg Ⓒ길묘한 홍시이야기_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도용 금지

뒤통수 말고 복실복실하고 몰캉몰캉한 배에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냄새를 맡느라 얼굴을 처박고 있으면 홍시가 가끔 뒷발로 차기 때문에 눈치껏 냄새를 맡아야 한다. 그래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맡을 만한 가치가 있다.


홍시에게서 대놓고 좋은 냄새가 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이불 빨래를 한 뒤 섬유유연제 향이나 건조기 시트 향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불 속에다 몇분간 홍시를 집어넣었다 빼면 홍시에게서도 그 향이 나서 안고 있으면 천국이 또 따로 없다.


그렇지만 역시 어떤 순간이든 좋은 건 홍시 그 자체의 향이다. 왜냐하면 이건 홍시가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내가 알 수 있고 내가 홍시를 사랑하기 때문에 알 수 있는 향이기 때문이다. 체취가 강하진 않지만 그 귀여운 뒤통수에 코를 박고 있노라면 이 고양이가 내 고양이라는 것, 이 고양이가 내 가족이라는 사실이 후각을 통해 전해진다.


고양이의 발 꼬순내

IMG_4563.jpeg Ⓒ길묘한 홍시이야기_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도용 금지

홍시도 부위마다 살짝 향이 다른데 홍시도 발꼬순내를 가지고 있다. 강아지 발 꼬순내는 유명한데 이상하게 고양이 발 꼬순내는 딱히 유명하지 않다. 그래서 발 꼬순내라는 게 없는 것 같지만 고양이도 발꼬락에서 향이 난다.


홍시의 발바닥에서는 미묘한 단내 같은 게 난다. 아기들은 분유를 먹고 나면 정수리에서 묘한 분유 냄새가 나는데 홍시 발꼬순내가 정확히 분유 향은 아니지만 여튼 그런 느낌이다. 고소하면서도 단내가 약하게 나는 향이라서 이 향을 정확하게 정의하고 싶어서 계속 맡게 된다. 생각이 안 나지만 입 끝에 맴도는 그 단어를 찾는 그 느낌으로 계속 맡게 된다.


물론 밟았던 것들의 냄새가 묻긴 해서 화장실 갔다 온 직후에는 안 맡는 게 좋다. 하지만 집을 한창 돌아다니다 오거나 침대 속에서 놀고 있다 나오거나 하면 여지없이 꼬소하고 단내나는, 예의 그 향이 난다.


현실적인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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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단점이라면 홍시의 화장실 냄새다. 고양이 소변 냄새와 똥 냄새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꽤 악명이 높다. 홍시는 아니지만 종종 바닥이나 이불에 소변을 보는 경우들이 있는데 두어 번 그게 겹치면 그게 생각보다 냄새가 잘 안 빠져서 여러 번 빠는 일도 있다.


소변도 소변이지만 끝판왕은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나는 막냇 동생이 있어서 똥 기저귀 경력자라 그렇게 어려울 줄 몰랐는데 홍시가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더라도 보고 나면 그 즉시 냄새가 나서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홍시가 아직 1년이 되지 않아 어렸을 땐 나도 집에서 생활을 많이 해서 주로 밥을 집에서 해 먹곤 하는데 밥을 먹는 중에 홍시가 용변을 보면 의도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악취다.


다행히 홍시가 용변을 보고 나면 그래도 바로 덮는 편이라 냄새가 잘 묻히는 게 그나마 다행.


몰랐던 그 냄새 사료 향기

IMG_2481.jpeg Ⓒ길묘한 홍시이야기_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도용 금지

그 냄새를 제외하면 고양이 가진 모든 냄새는 향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홍시를 키우고 나서야 알게 된 향 중에 가장 좋은 건 사료 향기다.


사실 사료 그 자체는 그렇게 향기롭다고 할 수 없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데 홍시에게 밥을 주기 위해 사료를 부어주게 되면 사료 봉지에서 나는 사료 향기가 가끔 거북할 때가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분들이라도 사료 베이스에 따라 사료 냄새가(특히 생선 베이스인 경우) 역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흔히 집에서 '고양이 냄새가 난다'라고 표현할 때가 있는데 주로 고양이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인 경우도 있지만 사료 냄새도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고양이가 사료를 먹고 난 직후 고양이 입에서는 그런 사료의 역한 냄새는 전혀 없어지고 뭔가 더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가 난다는 점이다.


홍시는 사료를 먹고 나면 항상 내 곁에 오는데 내가 침대에 누워 있으면 내 가슴팍에 엎드려서 뭐라고 뭐라고 야옹거리곤 한다. 그런 자세에서는 홍시의 얼굴과 내 코의 거리가 꽤 가까워서 애쓰지 않아도 홍시의 입에서 사료를 먹은 직후 냄새가 나는데 흔히들 표현하는 '입냄새'가 아니라 뭔가 달큰하고 고소한 향기가 난다.

IMG_2780.jpeg Ⓒ길묘한 홍시이야기_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도용 금지

꼭 홍시가 그렇게 엎드려 있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료를 먹고 책상에 올라오면 내게 몸을 기대면서 뭐라고 뭐라고 야옹거리는데 그럴 때도 사료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사료통에서 나는 냄새는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홍시가 사료를 막 와작와작 먹고 난 뒤 홍시 입에서 나는 그 묘한 냄새는 왜 그렇게 좋은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뒤에서 홍시가 사료 먹는 소리가 들리거나 자동 급식기의 밥 먹었다는 알림이 오면 곧 홍시가 와서 그 향기를 맡게 해줄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홍시를 집에 데려온 지 8년이 넘어가지만 왜 홍시가 먹고 나면 사료의 역한 냄새가 빠지고 달달하고 고소한 냄새만 나는지는 아직 그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래도사랑인 것 같다.


누가 보기엔 왜 죄다 달달 고소 꼬순내냐고 할 수 있다. 그건 명백히 내가 가진 어휘의 한계 때문이다. 홍시 뒷통수 냄새와, 발바닥 냄새와, 고양이 입에서 나는 사료 냄새는 다 다르다. 그건 상대를 사랑해야만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아주 미묘한 차이들이다. 깊이 알아야 알 수 있는, 그런 냄새들.



홍시를 가족으로 맞이한 뒤 바뀐 나의 우주는 이렇게나 향기롭다. 달고, 고소한 향긋한 냄새들로 가득 차 있다. 고양이를 키우면 향초를 못 피우는 게 약간의 흠이라곤 하지만, 고양이가 바꿔준 내 우주의 그 향기로도 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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