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옭에오오옹
고양이는 성인 고양이가 되면 야옹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고양이가 야옹 하고 우는 건 아기 고양이일 때 어미 고양이와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하고 지내는 고양이가 야옹 야옹 거리는 건 성인 고양이끼리 꼬리나 몸짓, 귀의 움직임, 눈의 깜빡임 등으로 소통해도 되는 내용들이 인간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소리로 의사소통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홍시는 집에서 아주 우렁차게 야옹거린다. 반려동물은 주인 성격을 닮는다고 하는데 홍시도 그런 것인지 말이 많은 나를 닮아서 정말 심심하면 야옹거린다.
홍시가 내 삶에 들어오면서 달라진 또 다른 감각은 야옹, 바로 이 청각이다. 홍시는 주로 야옹 하고 울지만, 실제로 홍시의 소리는 훨씬 더 다양하다.
고양이를 키워보면 다 알겠지만, 엄마가 아기의 울음소리로 배고픈 건지,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건지, 자고 싶은 건지를 알 듯 고양이의 울음소리로 필요한 게 뭔지 대충 예측할 수 있다. 홍시는 무언가 강렬하게 필요할 때와 그냥 대답할 때, 나를 부를 때, 기분 좋은 걸 표현할 때, 반가울 때 모두 울음소리가 다르다.
주말 아침 늦잠 자느라 놀아주지 않고 있으면 귀에 대고 짧고 높게 에옹 에옹 에옹 소리를 낸다. 야 놀자. 놀자고. 대충 이런 느낌이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으면 발톱을 세워 그 작은 솜방망이로 나를 툭툭 친다. 작은 발톱이 맵다고 결국 일어나게 만든다.
홍시는 가끔 물을 갈아달라고 요청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정말 집요하게 화장실 문 앞까지 찾아와서 정말 길고 높게 울어댄다. 우와오옹 하는 소리를 내면서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면 물그릇 앞에서 한 번 더 운다. 꼭 물을 갈아달라는 게 아니더라도 우와오오옹 하면서 길고 높은 소리를 내면 그건 뭔가 강력한 요구사항이 있다는 뜻이라서 홍시의 동선을 잘 살펴봐야 한다.
홍시는 또 참 착한 고양이라서 내가 말을 걸 때마다 대답해 주는데 "홍시 뭐해?", "홍시 자?", "홍시야 홍시야 홍시야", "홍시 바보", "바보 홍시", "홍시 엄마랑 놀까?", "홍시 나랑 놀자"라고 귀찮게 해도 꼬박 꼬박 와옹 하고 대답해 준다.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내가 말을 걸면 꼭 끄와옹 대답하고 눈만 마주쳐도 대답해 주는 게 홍시다. 그 끄와옹 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자꾸만 말을 걸고 눈을 마주쳐 본다.
홍시가 내는 소리 중 가장 귀여운 건 기분이 좋아서 골골 대면서 나한테 다가올 때 내는 소리다. 고양이들 사리에서도 친구들과 소통할 때 내는 소리라고 하는데 오로롱! 하는 소리가 난다. 진짜 밝고 경쾌해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 건지 내가 고양이가 아닌데도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럴 때는 꼭 와서 부비고 비비고 치댄다.
홍시를 키우면서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소리가 무엇이냐 하면 사실 그건 골골송이다. 보통 기분이 좋을 때 정말 작은 모터가 돌아가는 것처럼 고로로로로로 고로로로로 하는 소리가 나는데 미세한 몸의 떨림과 함께 곁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방해할 수 없는 부드러운 우주 속에 내가 빠지는 것만 같다.
특히 홍시가 골골송을 부를 때에는 주로 나한테 치대는 경우인데 품에 안아서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골골송을 부르면 그 작은 떨림이 어깨에 전해지고 작은 그 소리가 귀에 맴돌아서 아무리 무거워도 영원히 안고 있을 수 있는 힘을 준다.
홍시에게도 나름의 루틴이 있다. 그 루틴은 시간이 정해져 있다기보단 주로 나의 행동에 달려 있는데 그게 바로 내가 자기 직전에 꼭 가슴팍에 올라와 10분이든 30분이든 자는 것이다. 자는 시간 일정하지 않아서 침대에 눕는 시간은 매번 다르지만, 홍시는 내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기다렸다는 듯이 올라와서 가슴팍에 식빵자세를 하고 골골송을 부른다. 그러면 정말 신기하게도 홍시의 그 작은 심장이 뛰는 박자와 내 심장의 박자가 맞아떨어져서 무겁지만, 평온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홍시가 골골 소리를 내는데 홍시 몸의 작은 떨림이 내 심장을 좀 더 가볍게 해준다.
최고봉은 홍시가 머리에 부빌 때 내는 골골 소리이다. 신기하게도 선호하는 향이 있는 건지 비슷한 향이 날때마다 머리카락에 얼굴을 쑤셔박는 박는다. 정말로 쑤셔박는다는 표현이 맞는 게 있는 힘껏 머리를 들이밀어서 꼭 내 얼굴을 베개 삼아 엎드리기 때문이다. 그럴 때 가장 골골송이 잘 들리게 되는데 이마에 홍시의 콧김과 홍시 얼굴의 미세한 작은 떨림이 전해지면서 골골골 하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린다.
홍시는 또 정말 착실한 쿠키반죽러이다. 골골송을 부르는 기분 좋은 순간에 홍시는 항상 꾹꾹이도 같이 하는데 그 부위와 위치가 정말 다양하다. 어떨 땐 사람의 가장 여린 살이 어디인지 해부학을 배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겨드랑이의 가장 여린 부분에다가 무게중심을 실어서 꾹꾹이를 한다. 발톱을 잘 안 깎거나 하는 날이면 정말 아플 때가 있다.
가끔은 가슴팍에 올라와서 목에다가 꾹꾹이를 하는데 몇 번 참다가 홍시의 몸이 더 커지면서 감당하기 힘들어져서 요즘은 목에다 꾹꾹이를 하면 바로 몸을 흔들어서 내려가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떨 때는 정확히 갈비뼈 사이 심장 언저리에 CPR을 하듯 꾹꾹이를 하는데 그렇게 꾹꾹이를 열심히 하는 홍시를 보고 있노라면 어떤 사명감 같은 게 느껴진다.
홍시는 발 꾹꾹이를 할 때도 있는데 두 발을 내 몸 위에 올려두고 폭신폭신한 이불에 꾹꾹이를 할 때이다. 그럴 땐 무게중심을 잡느라 발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면서 양발에 무게중심을 옮겨가면서 이불에다가 꾹꾹이를 하는데 도대체 쿠키를 만드는 것도 아니면서 뭐 저렇게 열심히 하나 싶다.
홍시의 꾹꾹이가 너무 좋은 것은 꾹꾹이가 주는 촉감과 적당한 압박감, 가끔은 안마 같은 시원함도 있지만 꾹꾹이를 할 때 나는 그 트드득 트드득 하는 소리가 너무 좋다. 물론 맨살에 할 때에는 그런 소리가 나지 않지만 옷감이나 이불 같은 천 위에 할 때에는 작은 소리가 날 때가 있는데 정말 이건 키워봐야만 아는 소리라서 유별나게 들리기도 한다.
홍시가 가진 또 다른 귀여운 소리는 바로 하품 소리다. 특히 아기 때 많이 냈는데 하품하느라 입을 크게 벌렸다가 닫는 과정에서 나는 그 하우욱 하는 소리가 너무 귀엽다. 이건 귀를 기울이고 의식해야 들리는데 아기 때에는 유독 많이 나다가 어른 고양이가 되니까 그런 소리가 줄었다.
하우우욱 하고 하품을 하면 입을 닫는 과정에 뭔가 톡 하는 소리가 나는데 홍시가 하품을 하고 입을 다는 그 일련의 과정에선 나는 소리가 모두 귀엽다 하겠다.
홍시는 그루밍도 정말 부지런하게 하는데 고요하게 하는 것 같지만 가까이 있을 때는 사악 사악 하는 혀로 털을 핥는 소리가 난다. 또 어떤 부위를 하냐에 따라서 소리가 조금씩 달라지는데 혀를 많이 움직여야 하는 자세에서는 할짝거리는 소리까지 나서 더 귀엽다. 가끔 이빨로 털을 빗듯이 고를 때에도 있는데 아주 작게 토독토독 하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면 그렇게 그루밍을 하고 있다. 저 작은 이빨과 혀로 정말 꼼꼼히 그리고 아주 성실하게 그루밍을 하는데 가끔 홍시가 샤워를 시켜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홍시를 가장 잘 나타내고 홍시를 가장 잘 알려주면서 그중에서도 가장 큰 소리가 뭐냐하면 그건 홍시의 부재였다. 홍시가 존재하다가 부재한 순간, 그 고요함이 주는 소리는 그 어떤 소리보다 크게 느껴졌다. 홍시가 중성화 수술 때문에 4시간 넘게 내 곁에 없었던 순간 홍시가 내던 온갖 소리들이 내 공간에서 사라졌다.
홍시는 어릴 때 병뚜껑을 좋아해서 내가 떽떼구르 하고 병뚜껑을 떨어뜨리면 저 멀리서 다다다닥 소리를 내면서 달려와 떼구르르 떼구르르 소리를 내면서 병뚜껑을 가지고 놀았다. 홍시는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에도 내가 침대에 누우면 낮이고 밤이고 올라와서 항상 침대의 끼잉 하는 스프링 소리를 들려주었다. 홍시는 물을 먹으면서 챱챱챱 거렸고 사료를 먹으면서 와작와작거렸으며 종이를 갖고 놀 때에는 토독거렸다. 간식을 먹을 때 우와웅 했고 달려올 때에는 도도독 했다.
그런데 홍시가 없어지니까 그 모든 소리가 없어졌다. 떼구르르 끼잉 챱챱챱 와작와작 토독 우와웅 도도독 하는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마치 랩으로 쌓인 방에 누군가가 나를 가둔 것 같았다. 그것은 내가 홍시한테 들었던 소리 중 가장 큰 소리였다. 그 소리는 잊을 수 없는 홍시의 소리였다. 부재라는 소리가 홍시가 존재할 때 내는 그 어떤 소리보다 존재감이 컸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경험해야 할 소리이기도 했다. 그날 나는 4시간 좀 넘게 홍시가 부재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8년이 지난 지금은 10여 년이 지나면 영원히 내가 경험해야 할 소리였다. 그건 천둥보다 큰 소리였고 지진보다 더 격렬하게 내 마음을 흔드는 소리였다.
어떡하지. 그렇지만 또 홍시를 사랑해야지. 그럴 땐 홍시가 부재한 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울면 좀 낫겠지. 그러면 그 큰 부재 소리를 묻을 수 있겠지.
부재의 소리를 홍시 덕분에 실감한 순간 우주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됐다. 어떤 건 존재하지 않을 때 가장 큰 소리를 내는구나. 그러니까 존재하는 모든 건 소중하구나. 홍시는 소리로 그런 우주를 내게 알려줬다.
홍시는 자꾸만 내게 새로운 감각과 우주를 알려준다. 아주 작은 고양이지만, 아 물론 이제 무럭 무럭 자라서 7kg 육박하는 고양이가 되었지만, 137억살 정도 먹었다는 우리 우주만큼 깊은 세계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