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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각을 곤두세워라

홍시는 부드러우니까

by 김쩨리

사람의 털을 제외하면 복슬복슬한 털을 만지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다. 특히 그 대상이 귀여운 존재라면 털을 다 뽑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기분이 째진다. 그래서 홍시를 데리고 올 때 가장 기대했던 건 고양이라는 동물이 가진 이 복슬복슬함을 무한대로 만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고양이라는 동물이 가진 촉각은 이 복슬복슬함만 있을 줄 알았는데 홍시를 구석구석 뜯고 만지다 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위치에 따라 다른 복슬복슬

IMG_0083.jpeg Ⓒ길묘한 홍시이야기_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도용 금지

홍시의 털은 홍시의 귀여움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다. 당연히 부위에 따라 털의 길이와 결이 다르다. 그러다보니 부위마다 그 촉감이 정말 다른데 굳이 굳이 가장 좋은 부위를 꼽으라면 바로 배이다. 홍시는 그렇게 경계심이 많았던 고양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생각보다 배를 잘 허용해 준다. 홍시가 가끔 급하게 먹으면 사료를 통째로 토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배 마사지를 해주면 좋다고 해서 한번 해줬더니 골골송을 부르며 좋아하길래 그때부터 배를 만지기 시작했다. 홍시가 정말 예민해진 순간 말고는 대부분 언제든지 배를 조물딱거릴 수 있다. 홍시의 배는 가장 부드럽고 털이 가장 길어서 정말 복슬복슬하고 말캉말캉해서 조물딱거릴 수록 마음에 평온함이 찾아온다.


원시 주머니라고 불리는 그 부위가 늘어져 있다 보니 특히 더 부드러운데, 조물거리고 있으면 홍시도 좋아하니 서로 윈윈이라 더 좋다. 홍시의 배를 그렇게 조물딱거리면 나를 찾아왔던 수많은 불안이 홍시가 잠들듯 잠이 들고 그 촉감에만 집중해서 낮이고 밤이고 홍시 배만 만지고 싶다.

IMG_0522.jpeg Ⓒ길묘한 홍시이야기_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도용 금지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홍시의 털은 턱 밑과 살짝 뼈가 튀어나온 목 부위이다. 목 부위는 귀 뒤만큼이나 홍시 최애 터치 포인트인데 목 부위를 쓰다듬어주면 힘을 쭉 빼고 머리를 온전히 내 손길에 맡긴다. 손끝이 가로지르는 적당한 길이의 털들, 그리고 살짝 느껴지는 홍시의 턱뼈 사이. 그 사이를 잘 간질여주면 홍시는 눈을 감은 채 오롯이 내 손길을 느끼고 나도 홍시의 온도를 오롯이 느낀다.


뼈가 살짝 튀어나온 부위는 삼각형으로 하얗게 털이 있는데 묘하게 그 부위도 홍시가 좋아한다. 그 부위는 털이 짧기 때문에 쓰다듬는다기보단 만지작거리는 거에 가까운데 거길 만지작거리면 홍시는 고개를 숙여서 손에다 얼굴을 부빈다.

IMG_3830.jpeg Ⓒ길묘한 홍시이야기_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도용 금지

또 다른 킬포는 바로 귀 뒤와 정수리이다. 원래 귀 뒤에 분비샘이 있어서 거기가 좀 간지러운 부위라고는 하는데 그래서인지 나도 홍시도 좋아하는 부위이다. 귀 뒤를 살짝살짝 긁어주면 금새 눈을 감고 손길을 즐긴다. 정수리도 마찬가지인데 눈 윗부분부터 귀 뒤까지 손 끝을 살짝 세워서 긁어주면 귀를 젖히고 눈을 감은 채 내 손길을 즐기면서 골골송을 불러준다. 어쩌면 그 촉감 그 자체보다 좋아하는 홍시의 모습을 보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발바닥, 그 말캉한 귀여움에 대하여

IMG_1030.jpeg Ⓒ길묘한 홍시이야기_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도용 금지

이런 털이 주는 부드러움도 좋지만, 이런 네 발 달린 포유류의 가장 귀여운 포인트는 사실 발이 아닐까 싶다. 보통 핑크 젤리라고 표현하지만, 홍시의 발바닥은 갈색 반점도 섞여 있다. 물론 얌전하고 착한 홍시도 발바닥은 민감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조심조심 만지는 부위이다.


내가 만지지 않아도 홍시의 발바닥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내 옆에 엎드려 자거나 안겨 있을 때 그 작은 발바닥을 내 몸에 대고 있는데 살짝 부드럽고 탱글한 젤리의 촉감이 참 귀엽다. 특히 안겨 있거나 할 때 벗어나지 않으려고 발톱을 살짝 세워서 고정해 둘 때가 있는데 그럴 땐 그 작은 발톱과 함께 부드러운 털, 발바닥 젤리가 같이 느껴져서 더 귀엽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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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을 자를 때에는 발바닥을 살짝 눌러줘야 발톱이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지게 되는데 그럴 땐 홍시도 굉장히 불쾌해해서 이상하게 나도 썩 좋진 않다. 그런데 홍시가 가끔 품에 안겨서 기분이 좋을 때 발바닥을 일부러 조물딱 거리는데 그럴 땐 홍시가 골골거리면서 좋아해서 그럴 땐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복슬과 말랑함 말고 또다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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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는 동물이 복슬복슬하고 발바닥이 말캉할 거라는 건 사실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홍시를 키우고 나서 알게 된 촉감이 있다. 그건 바로 홍시의 콧수염과 콧김, 그리고 숨결이다.


내가 침대에 누우면 홍시는 반드시 올라와서 나에게 부비는 순간이 있는데 대부분은 내 품 안에서 팔을 베고 눕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머리카락에 부빌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 머리 위에서 홍시의 콧김과 숨결 느낄 수 있다. 자기도 폐와 심장으로 움직이는 생명이라는 걸 알려주듯, 홍시의 정말 작디작고 보드라운 숨결이 내 머리카락과 볼을 간질이는데 웃기면서도 귀엽다.


그때는 홍시의 콧수염도 내 얼굴에 닿곤 한다. 팽팽하게 나 있는 홍시의 콧수염이 닿을 때면 그렇게 곁을 내주지 않던 길냥이가 언제 이렇게 가까워졌나 싶다. 고양이에게 콧수염은 냄새가 오는 방향도 알려주고 냄새를 더 잘 맡게 해주는 꽤나 중요한 뷔위라서 예민한 경우에는 밥그릇에 콧수염을 닿는 것도 싫어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홍시가 그만큼 다가와서 털도 아니고 숨결도 아닌 콧수염으로 나를 간질이면 우리가 벌써 이만큼 가깝구나 싶어서 마음도 간질해 진다.


까슬까슬 그루밍 당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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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홍시가 가져다주는 수많은 촉감들은 내가 만지고 인식해야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유일하게 홍시가 먼저 가져다주는 촉감이 있는데 그건 바로 그루밍이다. 신기한 건 홍시가 어릴 때 그루밍을 해줄 때와 2살이 넘어서 성인 고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때쯤부터 해주는 그루밍은 좀 다른 느낌이라는 거다.


홍시가 어릴 때 했던 그루밍은 정말 호감의 표시처럼 느껴졌다. 자기가 기분 좋을 때 내 몸 위에서 손가락을 츄파춥스 마냥 핥아줬는데 그 까슬까슬한 혓바닥이 너무 좋아서 아픈 줄도 모르고 손을 맡겨뒀다. 다들 그루밍이 꽤 아프다고 하는데 나는 사실 별로 아픈 줄은 모르겠고 그냥 홍시가 그렇게 표현을 해주는 게 마냥 좋다.


요즘 해주는 홍시의 그루밍은 마치 엄마가 코흘리개의 콧물을 닦아주는 기분이다. 왜냐하면 기분이 좋을 때 간혹 그루밍을 해주기도 하지만 자기 전에 인공적인 향이 덜 나는 스킨 케어 제품을 바르고 자면 홍시가 그루밍을 해주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뭐라도 묻힌 것 마냥 손가락과 손등을 열심히 핥아준다. 원래는 얼굴은 정말 웬만해서 그루밍을 안 해주는데 그런 스킨 케어 제품을 얼굴에 바르고 거의 바로 누우면 가슴팍에서 자다가 볼따구를 정말 열심히 그루밍해준다. 어유. 뭘 이렇게 묻히고 다니니. 하면서.


그리고 홍시가 주는 무게감

IMG_0168.jpeg Ⓒ길묘한 홍시이야기_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도용 금지

그러나 홍시의 존재감이 촉각으로 가장 와닿는 순간은 홍시가 오롯이 자신의 존재를 내게 맡길 때이다. 집에 돌아오면 홍시는 내게 다가와서 애교를 부리면서 다리에 자기 머리를 부빈다. 외출하기 전에 양말을 신는다고 앉아 있으면 어느새 옆으로 쪼르르 와서 자기의 머리를 또 양말을 신는 팔에 부비고 있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면 올라와서 내 팔을 깔고 앉아 있는다.


어떨 때는 책상 위에 딱 앉아서 일부러 홍시가 고개를 들기도 한다. 그럴 땐 내가 홍시 뒷통수에 얼굴을 갖다대는 걸 홍시가 알기 때문에 책상 위로 올라와서 일부러 고개를 드는 것이다. 어떤 날은 마치 겁을 먹은 어린 아이처럼 책상 위에서 내 품에 살짝 기댈 때도 있고 어깨에 자기의 고개를 얹고 기댈 때도 있다.


내가 낮잠을 자든 밤에 자든 침대에 누우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내 배 위에서 그대로 잔다. 어떨 땐 배 위에 고개만 살짝 올리고 그대로 나를 보며 잘 때도 있다. 심지어 홍시는 정말 잘 안겨 있는 고양이다. 고개를 어깨에 기댈 수 있게 안아 올리면 금세 자신의 무게를 나에게 온전히 맡기고 골골대면서 안겨있다. 어떤 날은 꼭 내 품에 안겨있지 않아도 그냥 말없이 내 등뒤에 자신의 등을 바짝 붙이고 기대자기도 한다.


이런 모든 순간에 나는 홍시를 오롯이 느낀다. 홍시의 그 소중한 생명이 나를 뒤덮는다. 홍시는 겨우 얼굴을 맞대거나 발을 갖다 대거나 정수리를 부볐을 뿐이지만 그 찰나마다 내가 책임지는 이 소중하고 귀엽고 따뜻한 존재가 머리끝부터 발끝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감싼다.

IMG_3621.jpeg Ⓒ길묘한 홍시이야기_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도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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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생명은 도대체 나를 어떻게 믿고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오롯이 나에게 맡기는 걸까. 그렇게나 멀리 있었던 이 연약한 생명은 언제 이렇게 가까워졌나.


홍시가 자신의 무게를 온전히 다 나에게 맡길 때면 홍시의 그 작은 폐가 부풀었다가 작아지고, 심장이 뛰는 것까지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홍시라는 거대한 품에 오히려 내가 안겨 있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정말 그 모든 순간들에 나는 삶을 살아갈 또다른 힘을 얻는다.


그건 귀여워서가 아니다. 홍시 내 품위에서 잘 때, 머리에 자신의 작디작은 얼굴을 기댈 때, 내 좁은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올려둘 때, 자신의 온 무게를 실어서 나에게 부빌 때 그 어떤 존재도 줄 수 없는 무한한 지지와 사랑을 느낀다.


1초 전에 생겨난 우주의 먼지조차 나를 싫어하고 온 세상이 나를 버린다고 해도 홍시만큼은 내 곁에 있어 줄 거라는 그 강한 안정감. 나를 그 어떤 편견과 오해 없이 온전히 받아주고 뒤에서 받쳐줄 거라는 확신. 홍시의 정수리과 얼굴과 등과 발에서 그 모든 걸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홍시는 나에게 가족이다.



누군가는 동물은 동물이고 인간은 인간이라 한다. 그런 의견도 존중하기 때문에 일부러 밖에서는 홍시를 가족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홍시의 존재를 논할 때 중요한 건 동물이냐 인간이냐 하는 종 따위가 아니다. 홍시는 내 삶의 일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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