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없다 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을 공감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만약 없다면 그건 꽤 복 받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떤 존재의 난 자리를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어떤 존재의 난 자리를 경험했더라도 그저 그런 해프닝으로 지났단 거니까.
하다못해 썸이 끝나도, 같이 일하던 팀원이 퇴사해도 느끼는 게 난 자리다. 매일 같이 찾아오던 톡이 없어지는 것, 매일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의 노트북이 없어져 있는 것, 메신저를 켰는데 '비활성화됨'을 보는 것. 그것이 모두 난 자리다.
어릴 때 우리 아빠는 강아지를 키우자고 조르면 절대 절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때는 강아지를 홈쇼핑에서 팔기도 했는데 홈쇼핑에서 하얀 강아지가 꼬물거리며 나올 땐 엄마 아빠 몰래 전화해서 사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분명히 우리 엄마 아빠는 남의 집 강아지를 보면 그렇게 좋아하고 아껴주는데 왜 우리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건 안되는 것일까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뒤치다꺼리가 귀찮아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는데 아빠가 자기 마음대로 어디서 거북이 2마리를 구해와서 수조도 씻고 밥도 주고 한 게 엄마와 나의 몫이 된 걸 생각하면 그건 아니었다. 친구가 기르던 햄스터가 낳은 새끼 햄스터가 너무 많아서 3마리를 데려왔었는데 그럴 땐 엄마가 햄스터들 좋으라고 엄청 큰 집도 수족관에서 사다 줬던 걸 보면 역시 우리 엄마아빠는 동물을 싫어하거나 동물의 뒤치다꺼리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어릴 적 내가 자랐던 집에는 금붕어도 있었는데 금붕어도 되고, 거북이도 되고, 햄스터도 되는데 왜 강아지는 안 되는 것일까.
어릴 땐 끝까지 이해를 못 했다가 나중에 돼서야 알게 된 사실은 엄마아빠는 강아지를 잃었을 때를 고려했던 것이었다.
햄스터를 기를 때 3마리 모두 수명대로 살지 못했는데 1마리는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제대로 못 큰 채로 죽었다. 그때 당시에는 햄스터 사육 환경에 대한 지식이 그렇게 많지 않았었을 때라 친구가 기르던 것처럼 3마리를 모두 한 케이지에 키웠는데, 2마리가 1마리를 괴롭혔던 것 같았다. 학교를 갔다 왔는데 그 햄스터가 축 늘어져서 힘이 없길래 해바라기씨도 부숴서 먹여보고 했는데 안 먹어서 퇴근하신 아빠가 빵가루를 물에 녹여서 먹여보기까지 했다. 그렇게 하는 동안 내가 정말 펑펑 울었는데 아빠는 그때 아마도 예견을 한 것 같았다.
이렇게 작은 동물인데도 강아지만큼 교감하는 것도 아닌데 이만큼 슬퍼하면 강아지는 더 힘들어할 거라는 것을. 햄스터 3마리 모두 작고 강아지처럼 교감한 건 아니었지만 손에 올려두면 해바라기씨도 잘 받아먹고 쓰다듬으면 내 손길을 받아주고 다리 위에 올려두면 비록 종종 똥을 싸면서 내 몸을 타고 올라와 간질이곤 했다. 그렇게 그 작은 존재에게도 마음을 줘버려서 하나하나 떠날 때마다 마음이 한 번씩 무너져 내렸다.
어릴 때 햄스터를 잃어 본 경험은 내가 기억 속 처음 경험한 난 자리였다. 내가 난 자리에 익숙하지 않아 보이니 아마도 아빠는 더 이상 큰 자리를 만들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서 나는 햄스터의 난 자리를 어렴풋한 기억 너머로 넘겨버렸다. 그리고 데려온 게 홍시다.
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홍시를 데려올 때 내가 고려해야 했던 가장 큰 부분은 홍시를 잃었을 때의 내 모습이 아닐까 싶다. 홍시를 데려오고 홍시가 정말 개냥이가 되면서 홍시는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매일 내 일상의 일부였고, 가끔은 내 전부이기도 했다.
그런 홍시가 성숙해서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중성화 수술 때문에 병원에서 상담을 받았는데 청진기로 홍시의 심장 소리를 들어보시더니 약간 잡음이 들린다고 했다. 당시에 홍시는 미친 흥분 상태였기 때문에 잘못 들린 거이길 바랐는데 의사 선생님이 집에 가서 홍시가 잘 때 몸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횟수를 잘 세보라고 했다. 특정 숫자 이상이면 문제가 조금 있을 수도 있으니까 잘 세어보라고. 말을 듣는데 눈물 날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에이씨. 아무리 반려동물이 주인 닮는다지만 왜 심장 잡음까지 닮고 난리야. 속상하게. 그래서 나는 그날 홍시가 잘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음 졸이며 홍시의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횟수를 세알렸다. 홍시 심장이 아픈 거면 어떡하지. 눈물이 자꾸 눈앞을 흐리게 해서 훌쩍하고 세고 닦고 세고 했다. 1분 동안 얼마. 총 3번을 세어었다. 다행히도 의사 선생님이 말한 숫자 근처에도 안 가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 나서 중성화 수술 상담을 마저 받았는데, 우선은 수술 전에 엑스레이를 찍어보겠다고 했다. 엑스레이에서 홍시의 심장 크기가 너무 크거나 하면 마취 자체가 심장에 무리가 되기 때문에 못 깨어날 수 있다고 그러면 수술을 못하는 거라고 했다.
차라리 홍시가 발정기가 와서 배변 실수를 하고 여기저기 울어대더라도 홍시가 없는 것보다는 그게 낫다고 생각해서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중성화 수술 시간을 예약해 두고 수술 전까지 홍시랑 정말 열심히 놀았다. 그리고 수술 당일, 그때까지도 계속 대학교 수업을 듣고 있었을 때라 아침에 홍시를 병원에 맡겨두고 수업을 들으러 왔다.
간호사 선생님 품에 안긴 커다란 플라스틱 케이지에서 애처롭게 나를 향해 에옹 에옹 소리를 내는 홍시. '홍시 잘하고 와~' 하는 내 목소리가 떨렸다. 홍시가 자기를 버린 거라고 느끼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학교로 오는데 발걸음이 정말 천근만근이었다. 홍시가 잘못될까 하는 걱정보다는 홍시가 진짜 거기에 버려졌다고 생각할까 봐.
그리고 병원에서 문자를 받는다.
'홍시 크게 이상 없어서 수술 들어가요~ 이따 오후 4시 정도에 데리러 오세요~'라고. 홍시는 암컷이어서 수컷과 달리 개복수술을 하게 되는데 수술 시간이 긴 건 아니지만 마취에서 깨는 시간을 포함해서 수술한 뒤 출혈이 있는지 없는지도 지켜봐야 해서 좀 오래 걸린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홍시를 데려온 뒤 처음이자 거의 마지막으로 홍시가 없는 집에 혼자 돌아왔다. 정말 믿기 싫은 적막이 집에 흘렀다. 원래 집에 들어오면 나는 홍시야- 홍시야- 부르고 홍시가 침대 밑에 숨어있다가 에오옹 하면서 나왔는데 이제 홍시가 없다.
오후에는 수업이 없어서 오후 4시까지 꼼짝없이 그 적막을 오롯이 견뎌야 했다. 목이 타서 물을 마시려고 생수 뚜껑을 열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달려오는 소리도, 떨어진 병뚜껑을 발로 여기저기 차면서 노는 소리가 없었다. 견딜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바로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웠는데 홍시가 침대에 올라오는 소리가 없다는 게 다시 느껴졌다. 홍시의 부재를 알려주듯 심장 박동이 경고음처럼 들렸다. 그걸 그냥 견딜 자신이 도저히 없어서 꿈으로 도피했다.
그렇게 비몽사몽 자다가 깨다가 하다가 3시쯤 찾으러 와도 된다는 문자를 받고 홍시를 데리러 갔다. 홍시는 진짜 너무나 멀쩡하게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의 칭찬을 받으며 내 품으로 왔다. 케이지 안에 있는 홍시는 수술한 걸 증명이라도 하듯 팔에 수액 맞았던 흔적이 있었다. 그 얇디얇은 팔에 흰색 붕대가 감겨 있는 게 조금 웃겼다. 그리고 거즈로 수술복을 입혀놨는데 정말 거적때기 걸친 꼬질이 같아서 그것도 웃겼다. 마치 새 언니들에게 구박받아서 쌀자루를 입은 신데렐라 같았다.
수술복은 상처 부위를 고양이가 핥으면 안 되기 때문에 입혀놓은 것이라고 했다. 넥카라를 할 수도 있는데 어차피 고양이들은 넥카라를 워낙 잘 벗기도 하고 밥 먹거나 할 때도 불편해서 그런 환자복을 입힌 거라고 했다. 그리고 아직 마취 기운이 남아있어서 동공 조절이 잘 안되니깐 집에서 불을 안 켜는 게 좋다고도 해줬다. 진통제도 처방받아서 츄르에 잘 섞어 먹여주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은 홍시만큼 착한 고양이 없다고 진짜 착하더라고 했다. 왠지 모든 고양이에게 해주는 얘기 같긴 했는데 나는 또 그게 기분 좋아서 홍시가 겁쟁이라서 그래요~ 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은 겁 많아도 그런 경우 잘 없다고 했다. 며칠 뒤에 수술 부위 경과도 보고 실밥도 뽑고(사실 뽑아야 했던 건지 아닌 건지 기억이 잘 안남) 해야 해서 다시 보러 가기로 했다. 그때 왠지 너무 감사해서 커피를 계신 인원수대로 사갔었다.
홍시를 그렇게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홍시는 그냥 힘이 전혀 없는 상태로 침대 밑으로 숨어들었다. 아직도 침대 밑은 홍시에게 가장 아늑하고 안전한 장소인데 겁이 나거나 내가 집에 없을 땐 항상 침대 밑으로 간다. 그래서인지 그때도 케이지에서 꺼내놓자마자 침대 밑으로 숨었다.
홍시가 집에 들어오자 그제야 다시 집이 살아났다. 대략 4~5시간을 견뎠던 그 적막이 드디어 깨지고 삶의 색이 돌아온 느낌이었다. 홍시는 비록 기분을 푸느라 침대 밑으로 들어갔지만 그 밑에서 작게 자기 몸을 핥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녁을 먹이고 진통제를 먹여야 했기 때문에 츄르를 접시에 놓고 진통제를 섞어서 침대 밑에 두었다.
홍시는 그래도 츄르 맛이 생각날 정도의 상태는 됐는지 곧 쭈구리 상태로 침대 밑에서 나왔다. 냥냥 거리면서 츄르를 핥았다. 비록 거적때기 같은 수술복을 입고 동공도 잘 안 닫혀서 동공이 커진 상태로, 자신의 몸 상태가 왜 그런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먹고 있지만 다시 홍시 이 집에 있다는 사실, 홍시가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이 정도면 울지 않고 홍시가 없던 난 자리를 견뎌내었으니 꽤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다. 홍시는 츄르를 먹고 좀 쉬더니 또 금세 기운을 차려서 원래 자기가 잘 찾는 책상 밑 내 발이 딱 닿는, 보일러 선이 지나는 곳에 기대서자고 있었다. 그날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기억이 안 나는데 밥 먹으면서 보려고 고른 영화가 하필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라는 영화였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는 영화 제목처럼 고양이를 오래 키울 순 없지만 고양이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말 그대로 고양이를 '빌려' 주는 주인공이 겪는 에피소드를 담은 일본 영화다.
처음 나온 에피소드가 한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할머니가 죽음을 곧 앞두고 계신 상황이었는데 십여 년 넘게 키우던 고양이도 떠나고 자식도 멀리 떨어져 살면서 그냥 고양이를 한 번 더 키우겠단 생각으로 노묘를 빌리게 된다. 고양이가 먼저 떠나도, 할머니가 먼저 떠나도 자연스러울 정도로 고양이도 노묘인, 그런 상황.
결국 할머니가 먼저 떠나게 되고 주인공이 다시 그 고양이를 데리러 할머니 집으로 찾아간다. 원래 그 고양이는 주인공이 부르던 이름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고양이를 빌리면서 새로 붙여준 이름이 있었고, 그 고양이 이름은 할머니가 키우던 옛날 그 고양이의 이름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주인공이 찾아간 날, 주인공은 당연히 자기가 불러주던 이름으로 고양이를 부른다. 그런데 고양이는 미동도 없이 앞만 바라보는데 할머니가 부르던 이름으로 부르자 바로 귀를 쫑긋하고 고개를 돌리더니 주인공 품으로 안기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에피소드를 보고 내 발밑의 홍시를 내려다봤다. 오늘 6시간 정도 내 옆에 없었던 홍시. 홍시는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내 발밑, 보일러 선이 들어오는 그 위치에서 눈을 감고 거적때기 같은 수술복을 입고 자고 있었다. 홍시야 하고 나지막이 부르니까 귀를 쫑긋하고 홍시가 눈을 뜨고 작게 야옹 하고 대답해 줬다.
그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그 영화를 보고, 홍시의 이름을 불러보고 나서야 내가 나중에 견뎌야 할 홍시의 난 자리가 실감이 났던 것 같다. 정말 아주 짧게 홍시가 내 곁에 없었는데 그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순간이었는지 홍시의 야옹 하는 소리에 실감이 나 버렸다.
나는 매일 매일 홍시가 내 곁에 없어지게 되는 순간을 각오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각오하고 대비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건 아마도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난 자리일 거라는 게 그날 느껴졌다. 그날 왜 그렇게 아빠가 강아지를 못 데리고 오게 했는지도 완전히 이해됐다. 무한히 나를 받쳐주던, 나를 언제나 믿어주던, 그리고 그렇게 믿어줄 거라고 생각하던 나의 우주가 내 등 뒤에서 사라질 때, 그건 블랙홀보다도 더 깊은 심연을 겪는 일이라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홍시가 없어지더라도 부지런히 일하고 바쁘게 나를 갈아넣으면서 조금이라도 덜 느끼려고 하겠지만 홍시의 난 자리는 내가 홍시를 들이는 순간, 홍시라는 행운과 복을 얻던 순간 작용 반작용의 원리처럼 내게 주어진 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겠다. 난 자리는 아마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