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테토스의 행복에 대한 조언은 현대인들에게 유효할까?

by 돈다돌아



내 힘으로 이길 재간이 없는 겨루기에 절대 뛰어들지 않는다면
패배자가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변화를 싫어하고 현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진취적이라니 모험적이라니 하는 표현들을 매우 꺼려 했다. 아마도 무언가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고 마음이 어렸기 때문에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닥쳐올 때의 불안감이 너무도 싫었던 모양이다.


이런 쪼그라든 마음의 상태로 인생을 살아왔으니 무언가에 도전하고 성취감을 누리는 경험이 얼마나 있었을까? 오히려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든 그 상황을 피하려고 회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어린 시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대학 때(심지어 군대도 다녀와 복학한 이후였다) 교양 중국어 수업을 들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교양"이 무엇인가? 갖추면 좋으나 없다고 큰일 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하여 나는 이 수업을 그저 교양으로 "대충", "부담 없이"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임시 강사였던 남성 교수님은 대충 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모양인지 수업 때마다 숙제를 내더니 급기야 시험 때는 교수님과 일대일로 중국어 대화를 해서 평가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의 중국어 실력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데 속절없이 시험일이 다가왔다. 그때의 막연한 압박감이란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필기시험을 치르면서 한 명씩 교수님에게 나가 일대일 대화 구술시험을 보고 있는데 다들 중국에 오래 살다 온 인간들인지 어쩐지 너무 술술 대화를 잘 한다 싶었다. 모르긴 해도 중국어를 이미 잘 하는 학생들이 학점을 딸 목적으로 수강하는 경우가 다수인 모양이었다. 나는 분위기를 살피며 어물쩍 시험지에 정답일 가능성이 매우 낮은 답안을 적다가 그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구술시험을 포기하고 강의실을 나와 버렸다.


그 상황은 아무리 스스로 합리화해보려 해도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지금까지 그때의 상황과 기분이 각인되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왜 이 모양이냐', '평생 이렇게 회피하며 살 거냐?'라며 자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내가 에픽테토스의 저 문장을 만났더라면 적어도 조금은 뻔뻔하게 자기합리화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너 나 없이 용감하고 당당히 맞서 싸우라고 목소리 높이는 세상이다. 이기고 쟁취하고 성취해야 성공한 삶이라고 가르친다. 전쟁 같은 미래를 대비해 자신만의 무기를 갈고닦으라는 조언이 난무한다. 이 와중에 에픽테토스는 이길 재간이 없는 겨루기에 절대 뛰어들지 말라니 거참 생소하고도 묘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현대인이 추구할 삶의 태도로 적당한 것이 맞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에 위로가 되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8981171122_f.jpg

에픽테토스는 서기 50년쯤 로마 동쪽 변두리 지방에서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다. 날 때부터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머리는 무척 총명했던 모양인지 주인이 스토아학파 철학자 루프스의 제자로 철학을 공부하도록 해주었다. 이를 계기로 소크라테스 철학과 스토아학파 철학을 계승해 자연에 따라 사는 삶과 욕심을 버리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며 검소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삶의 태도라 조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