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위안 [심리학이 제갈량에게 말하다1] 책 리뷰
1. 역사 속 인물의 심리학적으로 재해석이라는 흥미로운 시도
처음 이 책 [심리학이 제갈량에게 말하다 1]를 접했을 때 적잖이 심드렁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삼국지를 좋아해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10번 이상 읽었고, 그 이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영화, 애니, 만화 등등을 통해 너무나 자주 삼국지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입니다. 책을 어지간히 안 읽는 분이라 하더라도 삼국지 이야기의 주요 골자는 모르는 분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대중 심리학 서적도 많이 읽어왔기 때문에 익숙한 두 분야의 결합이라 하더라도 큰 흥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 부분을 조금 읽다 보니 예상외로 너무 재미있어서 화들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삼국지 인물과 심리학의 결합은 대단한 상승효과가 있었습니다.
삼국지의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도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을 비롯 조조, 손권, 제갈량, 주유 등의 핵심 인물은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들도 다 안다고 할 만큼 유명한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그 유명한 인물들이 가득한 삼국지도 각각 인물들의 세부적인 심리상태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그랬다가는 분량이 한없이 길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스토리 라인이 너무 늘어져 독자들의 흥미가 떨어질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은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해 나가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렇다면 삼국지를 놓고 봤을 때 가장 흥미롭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인물이 누구일까 물었을 때 각자의 취향은 있겠습니다만, 가장 신출귀몰 매력적인 인물은 단연코 제갈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갈량은 삼국지 속에서 가장 능력이 미화되고 영웅화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삼국지를 읽을 때면 어떻게 이렇게 모든 일에 통달하고 미래를 예견하며 전쟁에 늘 승리하는 인물이 있을 수 있나 의아하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역시 중국인들은 뻥이 심하군'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심리학이 제갈량에게 말하다]의 저자 천위안은 중국의 심리학자이자 교수이면서 작가이기도 합니다. 잘 몰라봐서 죄송합니다만, 이 책의 구성처럼 현대 사회심리학 이론을 역사 속 인물이나 사건을 분석하는데 적절히 사용해 그 내용을 기술하는 "심리 설사"의 창시자라 불린다고 합니다. 과연 오리지널은 다른지 다소 건조하게 진행되는 삼국지의 주요 부분을 각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를 기준으로 설명을 해주는 방식의 이 책은 삼국지를 읽고 기억이 있는 독자라면 정말 "이렇게 극적으로 재미있어진다고?"라며 감탄하게 될 거라 확신합니다.
2. 다양한 심리적 장치를 활용한 대표적 인물 제갈공명
제갈량 공명은 다시 봐도 신비로운 인물입니다. 제 기억 속 제갈량은 신출귀몰하고 세상 이치를 통달한 천재 중 천재로 남아있습니다. 이 각인 효과가 너무 강했는지 등장부터 죽음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제갈량이 삼고초려로 세상에 나오는 과정부터 사실은 긴장도 하고, 무리도 했음을 지적하고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제갈량은 산골에 묻혀 지내다가 출사한 인물이다 보니 시작부터 화려하게 전권을 잡지 않으면 그저 그런 관료로 지내다 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유비가 여러 차례 찾아와도 만나지 못하는 신비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전략을 "의도적"으로 짜냅니다. 책에서는 이른바 [심드렁한 판매자 전략]이라 설명합니다. 이는 유비가 [투자의 함정]과 [착각 상관]에 빠져 있어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삼국지를 읽을 때는 스토리 전개에 심취해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는 물론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발휘하는 순간순간의 심리학적 기지를 설명을 통해 깨닫게 되다 보니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듯한 만족감이 느껴집니다.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던 삼국지를 다시 한번 리마인드 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제갈량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알게 되어 이야기가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여기에 특정 장면에서 제갈량이 사실은 완벽하지 못해서 실수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냥 삼국지를 읽었을 때는 전혀 몰랐던 부분이라 이를 어찌 수습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새로운 재미가 있었습니다.
유비를 대할 때, 유비의 장수들을 대할 때, 단신으로 동오로 넘어가 수많은 문관들과 상대할 때, 동네북 같은 순하고 착한 노숙을 이리저리 요리할 때, 우유부단한 손권을 대할 때, 그리고 이 책에서 사사건건 제갈량의 맞수로 등장하는 주유와 대결할 때의 다양한 심리와 형편, 위기와 기회는 물론 실수와 만회 등을 두루두루 볼 수 있어 전에 없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갈 때마다 등장하는 제갈량의 능숙한 대처와 그 기저에 자리한 심리학 법칙들을 해설을 통해 배우면서 진정한 심리학 교보재를 만난 것 같은 생생함을 느끼게 됩니다.
3. 재미없는 이론을 살리는 스토리텔링의 힘
이 책을 읽으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베스트 스토리 인 삼국지의 일부분을 따서 익숙한 인물들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두고 심리학 이론을 설명하는 방식이 얼마나 파워풀한지 깨달았습니다. 만약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현대 심리학의 이론들을 나열식으로 설명했다면 하품을 하며 끝까지 읽지도 못했을 것이 자명합니다.
그만큼 심리학은 흥미로울지 모르나 정작 심리이론이나 용어들은 드럽게 재미가 없습니다. 대학 때 심리학에 흥미를 느껴 교양과목으로 심리학 개론을 수강했다가 흠씬 두드려 맞고 제가 생각하는 대중 심리학은 대학 캠퍼스에는 없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그 당시의 심리학 개론은 누가누가 더 잘 외워서 쓰는가 대결하는 듯한 과목이었고 수업 자체도 정말 드럽게 지루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영역을 저렇게도 지루하고 답답하게 만들어 놓다니 누군지 몰라도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인간을 즐겁고 이롭게 하는 것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살아있는 스토리입니다. 너무 생소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익숙하면서도 신선함이 가미된 기승전결이 뚜렷한 다이나믹한 이야기라면 그 어떤 이론을 실어도 넉넉히 나르는 튼튼한 캐리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사실 이 책은 거의 거저먹기라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스토리를 생각해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스토리 속 장면들을 정리하고 이에 해당하
는 이론과 접목시키는 역할은 저자의 탁월한 재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각 챕터를 통해 "1) 챕터 제목(주제) 2) 삼국지 속 해당 스토리텔링 3) 제갈량 중심으로 스토리 속 인물 심리 해설 4) 일반 심리 이론 소개나 삼국지 외 예시 소개 5) 심리학으로 들여다보니"의 촘촘한 뼈대를 전체 챕터에 적용해 일관성 있게 전달합니다. 약 마흔 개에 달하는 챕터를 이런 구조의 반복으로 소개하는 것을 읽다 보니 스토리도 살리고, 인물도 되살아나고 그 속에 담긴 심리학 이론도 정리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 읽어보니 저자의 탁월함이 새삼 느껴집니다.
삼국지 자체를 재미있게 읽으셨거나 추억이 있으신 분은 무조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는 책입니다. 삼국지를 잘 모르시는 분이라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해 실제 원문보다 더 삼국지의 내용을 입체적으로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유비의 제갈량 등용 부분부터 일부분은 생략된 적벽대전 전후의 이야기에 국한된 내용입니다. 그렇기에 더 이야기 속 인물들의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점은 큰 장점입니다. 책을 접할 때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읽는 재미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책이라 꼭 추천드릴 수 있을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