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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기억이 흔들린다면...

데이비드 발다치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 책 리뷰

by 돈다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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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결같이 재미있는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


데이비드 발다치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를 읽고 리뷰를 처음 쓴 때가 2016년 11월 경이니, 데커 시리즈를 만난 지도 거의 9년이 되었습니다. 첫 작품이 워낙 인상적이기도 했고 이후 작품들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번 신간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는 국내 번역본 기준,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7번째 작품입니다. 데커 시리즈는 묘한 매력이 있어서 전작을 다 읽게 되었네요.



에이머스 데커라는 캐릭터는 첫인상이 매력적이지는 않았지만 갈수록 응원하게 되는 존재입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다는 과잉기억 증후군 환자라는 설정에 대인 관계 등 하자 많은 캐릭터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덩치와 두뇌는 추리 미스터리 장르에 최적화된 주인공이고, 지랄맞은 성격은 스토리를 풍성하게 만드는 필요악이기도 합니다.



내용상 전체 시리즈를 보면 옴니버스처럼 각 편의 내용이 전혀 연결되지 않고 독립적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작품을 처음 읽어도 이해하고 즐기는데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저자도 이런 독자들을 배려해 각 편마다 주인공의 스토리와 특징은 물론 등장인물에 대해 간단히 회상하거나 설명하는 내용을 추가하곤 합니다. 저처럼 시리즈 전작을 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번 주인공의 과거와 과잉기억 증후군에 대해 반복해서 설명을 듣는 일이 생기긴 하지만 읽는 텀이 거의 1년씩 되다 보니 과잉기억상실 증후군인 저로서는 친절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당연하겠지만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편부터 꾸준히 읽어오면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매 에피소드마다 만나는 사람들에 애정을 갖기도 하고, 비슷하지만 조금씩 변주되는 스토리와 주인공의 캐릭터 등에 세밀한 차이를 느껴보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어쩌면 비슷한 패턴의 사건 해결 과정을 식상하게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익숙하지만 조금씩 변화를 주는 신선함에 더 주목하게 되는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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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잡하게 엉킨 진실이 밝혀졌을 때...


데커 시리즈의 첫 작품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아무래도 주인공 데커의 사고와 환경, 과잉기억 증후군에 대한 설명과 캐릭터를 잡는데 많은 에너지를 할애하기 때문에 스토리가 독립적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첫 작품은 먼저 읽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후에 모든 시리즈는 사실상 데커의 특별한 능력이 아니면 풀기 어려운 복잡한 난제를 내고 이를 힘들지만 악착같이 풀어나가는 과정을 즐기는 스타일로 전개됩니다.



이 과정에서 데커라는 인간이 얼마나 사회성이 떨어지는지, 주변 형편을 신경 쓰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지, 본인 신변의 안전도 무시하고 문제를 풀기 위해 집중하는지를 보는 맛이 일품입니다. 저래도 되나 싶은 행동도 자주 보이는데, 그게 또 통합니다. 신분이 높은 것도 아니고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그 모습이 독자 입장에서는 화끈한 기분과 대리만족을 줍니다.



주변 인물들과 어찌어찌 합을 맞춰 나가는 모습도 보기 좋습니다. 공통의 목표가 있기에 가능한 협업이고 FBI라는 특수한 조직에 속해 있어 가능한 일들도 많이 겪습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뒤를 보지 않기에 포기를 모르는 모습도 특징적입니다. 관료 조직에 가까운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현실적으로 데커 같은 인물은 금방 도태되기 딱 좋은데, 그 위기를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헤쳐나갑니다. 이런 부분이 통쾌함을 느끼게 합니다.



데커 시리즈는 주인공 능력치를 높게 설정해놓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건에 숨은 배경이 거대하고 해결 난이도가 매우 높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범인이나 배후를 추측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추리 미스터리에서 사건의 난이도가 높다는 것은 사실 실체가 밝혀졌을 때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스럽게 느껴질 위험이 큽니다. 사실 지난 시리즈를 돌아보면 좀 과한 설정이라는 생각으로 뒤통수 어딘가가 뜨뜻미지근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번 작품에서는 모든 사건이 풀렸을 때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사건이 복잡했지만 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중간에 범인을 거의 유추하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제일 범인이 아닐 것 같은 사람이 범인인 경우가 많다 보니 그 부분은 약간 아쉽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독자 개인 취향에 따라서는 사건의 전개와 풀이가 너무 복잡해서 흥미롭지 못하게 느낄 위험도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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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간적인, 지나치게 인간적인...


데커 시리즈를 끌어가는 핵심은 주인공 데커의 캐릭터입니다. 사실상 주인공이 혼자 캐리 하는 구조죠. 미식축구 출신의 덩치 큰 하드웨어 캐릭터일 것 같은 데커는 의외로 지능캐입니다. 잭 리처 같은 덩치지만 몸으로 제압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큰 몸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느낌입니다. 주로 만나는 상대가 데커를 우습게 보는 포인트로 사용되기도 하고, 차를 탈 때 구겨져 들어간다는 묘사 등은 큰 몸이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설정으로 활용됩니다.



통상 지능캐는 샤프하거나 날카로운 외모인 경우가 많고, 그게 아니라도 마르거나 왜소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런 면에서 일종의 반전이기는 합니다. 지나치게 똑똑하면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이 보이는데, 데커의 경우 완벽한 기억력과 사교성을 맞바꾼 설정이라 초기작을 보면 파트너나 팀원과의 관계에서 심각한 문제를 보입니다. 용의자나 사건 관계인을 대할 때도 거침없고 상대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습이 많습니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사건에만 집중하는 캐릭터가 약간씩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국면의 씨앗을 보이기는 했습니다만, 그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재수 없어 보이는 주인공을 약간 방어하는 수준으로 보이던 장면들이라 보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 들어와서는 데커가 인간성을 회복해 가는 모습이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사실 저자가 아무리 복잡한 사건을 설계한다고 해도, 거의 초능력 수준의 기억력을 가진 주인공이 풀어나가는 전개는 어느 정도 정해진 틀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시리즈마다 다른 장소와 공간과 인물이 만들어내는 사건이지만 큰 틀에서는 대동소이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주인공 캐릭터의 변화는 필연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트리거가 되는 사건이 초반에 배치되면서 복잡한 사건을 대하는 데커의 모습이 크게 흔들리는 장면을 묘사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쏟은 모양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고 나름 잘 작동했다고 생각됩니다. 캐릭터에 공감하고 이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데커의 인간적 고뇌가 잘 묘사되고 있어 저처럼 이미 데커의 빅 팬인 경우는 더 응원하게 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다른 독자들이 이런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재미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읽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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