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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마이라 칼만의 멋진 그림책 리뷰

by 돈다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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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의 핵심을 관조하는 매력적인 그림들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은 세계적인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라는) 마이라 칼만의 그림과 약간의 글을 모은 책입니다. 미술이라고는 정말 1도 모르는 제가 봐도 뭔가 남다른 구석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펼쳐집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넘기며 가볍게 감상하다 보니 마이라 칼만이라는 사람은 대관절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생겨 먹었고, 무슨 생각으로 사는 사람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만큼 그의 그림은 그만의 독특함이 있습니다.


마이라 칼만은 인간에 대해 많이 고민한 것처럼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뭔가 자신만의 자아를 확립하는 데 애를 씁니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나답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는 순간을 마주치게 됩니다. 이때 많은 경우 자기혐오를 경험하거나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이라는 "인간은 원래 일관적이지 않다. 세상 모든 건 모순적이고 한 가지 모습일 수 없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녀는 이런 혼란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인간은 원래 전혀 다른 면을 동시에 가질 수 있고 이런 혼란 속에서 훌륭한 작품이 탄생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마이라 칼만은 바로 이런 혼란과 정돈된 결과물 사이 어딘가 즈음에 있는 작품을 그려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녀의 그림이 독특하고 남다른 점은 그녀의 이런 발상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녀는 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관찰하고 작업실로 돌아가면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그립니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컬러를 섞는 기쁨을 누립니다. 여기에 홀로 있는 것, 음악을 듣는 것, 다른 세계로 몰입하는 시간을 보내는 기쁨을 추가로 충분히 누립니다. 상상해 보면 참 멋진 일입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만의 시선으로 해석해 내고 이를 그림이라는 예술로 풀어내는 것, 멋진 결과물이 남는 일, 그리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일,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그녀의 멋지고 행복한 과정을 공유할 수는 없지만 이 그림책의 독자로서 그녀의 결과물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나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은 그렇게 저에게 왔고, 저는 그 결과물을 감상하며 그녀의 생각과 삶을 이해해 보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모르긴 해도 저의 삶에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치겠지요.


예술적 재능이나 감수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다 보니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거나 인생의 큰 감동을 받는다거나 하는 정도의 영향을 받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소 관찰자적 시선으로 이 흥미로운 저자와 그녀의 작품을 관조할 뿐입니다. 그녀는 타인의 삶을 관조하고 그림을 그리고 저는 그림을 관조하고 삶을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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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관절 어째서, 왜, 어떤 사유로 "Women"이 "우리"가 되었을까?

이 그림책의 영어 원제는 "Women Holding Things"입니다. 극단적인 단순미가 돋보입니다. 여자들이 들고(가지고) 있는 것들 테마입니다. 그림을 넘겨 봐도 온통 여자들이 뭔가를 들고 있거나 가지고 있거나 입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물과 함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Holding"의 범위가 극단적으로 넓기는 하지만 예술로 받아들이면 납득이 됩니다. 그런데 왜 번역이 되면서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이 되었을까요?


그녀는 대체로 어딘가 구체적인 장소에 방문하고 그 경험을 자신의 그림으로 그려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 특히 여성들도 다 실존하는 사람들로, 지인이거나 직접 만난 사람들입니다. 이 "Holding" 시리즈가 시작된 계기도 만남입니다. 그녀는 어느 날 마트에서 엄청 큰 양배추를 든 여자를 만나고 그녀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묻는데, 그 여자가 엄청 짜증을 냅니다. 마이라는 그 여자의 모습이 어쩐지 매우 진실한 모습이라고 느끼고 이를 그림에 담아냅니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기쁨과 행복보다는 짜증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행복은 통상 찰나에 지나가는 감정일 테니까요. 마이라 칼만은 아마도 여기에 착안을 했던지 그녀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 중에 웃고 있는 얼굴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무표정하거나 인상을 쓰거나 표정을 알아보기 힘들거나 무뚝뚝하거나 합니다. 바로 이 점이 그녀의 그림을 더 돋보이게 합니다. 마이라 그림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튼 그녀는 뭔가를 들거나 이거나 입거나 잡거나 기타 등등 "Holding"으로 퉁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그림에 담아냅니다. 솔직히 보다 보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애초에 인간은 일관적이지 않다고 했던 고백을 기억해 냅니다. 그녀가 "Holding"이라면 "Holding"입니다. 이걸 인정하는 순간 그림을 판단하는 저의 마음에 자유와 평화가 찾아옵니다.


참, 어째서 "Women"이 "우리"가 되었을까라는 의문은 책을 넘겨 가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되었습니다. 개성 강한 여성들이 등장하는 그림들 일색이던 책은 어느새 남성이 중심인 그림이 슬금 슬금 나오더니 공간과 장소로 바뀌기도 하고 심지어 정물화 같은 그림도 등장합니다. 다시 한번 애초에 그녀가 일관성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는 단도리를 쳤던 것을 기억해 내면서 옮긴이가 되었건 출판사 편집자가 되었건 이 책은 "여자들이 가진 것들"이라고 제목을 번역하기엔 여자 아닌 무언가가 너무 많이 등장한다는 고민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탄생한 합리적이고도 한국적이면서도 보다 광범위한 독자를 타깃 하기 더 좋은 "우리"라는 단어가 저는 참 마음에 듭니다. 저는 "여자"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우리"의 범주에는 들어갈 수도 있다고 우겨볼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주장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이라는 제목이 마이라 칼만의 인생관과 가치관, 그녀의 작품을 아우르기에 훨씬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잘 지은 제목입니다. 마이라 칼만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그녀의 그림을 통해 어떤 감상과 통찰에 이를 수 있는지,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개성 강한 그림을 한 번에 여러 장 감상하고 싶은 분들 모두 이 책을 한번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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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캡처 2025-07-31 22204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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