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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Aug 15. 2018

아무튼, 스릴러

무서운 세상을 그리는, 그러나 더없이 안전한 스릴러의 세계




1. 특정 분야를 소개한다는 것...


  이다혜 기자는 영화 리뷰와 리포트, 에세이 등으로 유명합니다. 여러 경로로 워낙 글솜씨가 좋은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궁금했던 "아무튼" 시리즈 중에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책에 드러난 저자의 독서 이력을 보니 어릴 때부터 영화뿐 아니라 책에 푹 빠져 살았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습니다. 저는 늘 이런 분의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퓨어하고 관대하며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안분자족의 성향과는 달리 살포시 부려움과 시샘의 마음이 일렁이게 됩니다. 물론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다 보니 금세 평정을 유지합니다만은...

   잘 모르는 타인을 대상으로 특정 분야를 소개하고 그 자체의 특징과 매력뿐 아니라 특정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충동까지 들도록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필력이 뛰어나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현란한 필력보다는 저자의 진정성이 훨씬 더 설득력을 가지게 합니다. 

   곳곳에 묻어나는 저자의 스릴러 장르에 대한 오랜 경험과 식견, 그리고 애정이 자연스럽게 독자의 관심을 끌게 한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짧은 기간에 쌓을 수 없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가적 지식과 숙성되어 내재된 자신만의 관점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아무튼, 스릴러에서 설명하는 것들


   이 책은 스릴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기본적인 개념과 저자의 개인적인 스토리, 스릴러를 즐기기 위한 기본적인 지식과 접근법, 세부 장르별 특징, 스릴러에 담긴 인간과 사회 등이 깨알같이 담겨 있습니다. 저자의 경험이 풍부하게 녹아있어 순간순간 감탄하게 하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한편, 이 책에 담긴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구성 면에서 부족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시리즈의 특징 자체가 그런 것이라면 지나친 지적일 수도 있지만 한 권의 완성된 책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기본적인 장르의 특성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아주 구체적이고 충분하다는 느낌은 못 받았고, 그 점이 아쉬우면서도 오히려 장르에 익숙지 않은 독자에게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서 접근을 돕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솔직한 생각을 말하자면,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오랫동안 고심해서 한 땀 한 땀 글을 쓰고 책을 완성했다는 느낌보다는 의뢰가 들어와서 기존에 썼던 글을 참고해서 빠른 시간에 책을 완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워낙 많이 읽고 지식이 풍부해서 내용은 충실하지만 저로서는 뭔가 테마를 향해 집중력 있게 쓴 글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그렇기 때문인지 책을 읽고 나서는 곳곳에 좋은 주옥같은 문장들이 있었음에도 뭔가 아쉽다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3. 그럼에도 스릴러


   그럼에도 스릴러에 대한 저자의 글 중에 공감되는 부분이 꽤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경꾼’으로서 타인의 불행을 소비하는 심리가 여기 없는가 묻게 된다. 범죄물의 팬은 범죄를 소비하는가, 범죄의 해결을 소비하는가? 일상 미스터리 같은, 잔인함과 거리를 둔 듯 보이는 서브 장르에서조차 ‘못된’ 심리를 전시하는 일을 종종 본다. 사건에 휘말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판단하는 일, 타인을 의심하고 자신의 명석함을 확인하고 즐거워하는 일의 속성이 그렇다. 타인을 이리저리 재 판단하고 싶어 하는 마음 역시, 이 장르의 독자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로 의심받는 사람들에 대한 온갖 정보가 작품 속에 나열되기 때문이다. 의심할 만한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생각들이 p32


   글 속에 나타나는 저자의 통찰과 그것을 문자로 표현해 내는 능력이 저는 매우 부럽습니다. 체계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기질이라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릴러를 읽는 독자들의 심리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매우 적확합니다.


사회의 현실을 소설적으로 파고들면 그 끝에 범죄소설이 있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미국의 급소에 대해 쓰고 싶다면,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미국의 다른 얼굴에 대해 쓰고 싶다면, 범죄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어 있다. p13


   저자가 인용한 이 글도 무척 공감하고 동의하게 되는 글입니다. 


스릴러는 풍토병을 닮았다. 그곳의 사회문화적 풍토가 특정 방식의 사건을 만들고 사건 보도를 만들고 반응을 만든다. 그리고 그런 알 만한 사건을 연상시키는 많은 소설이 태어난다. 여기까지 내가 성장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길게 적은 이유는 그래서다. 스릴러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한 사회의 고민이 보이기도 하고 무의식이 보이기도 한다. p31


   위 글이야말로 이 책 전체를 압축해서 아우르는 문장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독자가 저자의 설명처럼 스릴러 소설을 읽으면서 사회의 고민이나 무의식을 깊이 고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재미있게만 읽기에는 제법 속이 쓰린 스릴러를 읽은 중요한 이유 중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기에 "쓸데없는 소설을 읽는 행위"라는 표현은 꽤나 거칠고 무식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세상엔 쓸데없는 일이 더욱 즐겁고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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