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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Aug 12. 2018

철학 읽는 힘

복잡한 서양철학을 간략하게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좋은 입문서



1. 놀라운 정리의 힘


   이런 책을 대할 때마다 일본인들의 재활용 능력에 감탄과 찬사를 보내게 됩니다. 이미 누군가가 해 놓은 것을 가져다가 마치 내 것인 양 정리하고 의미 부여해서 새로운 버전으로 탄생시키는 일을 얼마나 해대는지 말입니다. 아, 표현이 좀 거칠었던 것 같습니다. 나쁜 의미는 아니고 그만큼 다양하고 꼼꼼한 조사와 연구를 많이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잘 정리한 내용을 책으로 공유하는 것도 무척 의미 있는 일이기는 합니다.


   서양 철학의 출발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큰 틀에서 흐름을 정리한 "철학 읽는 힘"은 그 유명한 "사이토 다카시"의 저서입니다. 사실 이 분의 책이라서 읽은 것은 전혀 아니고 처음 몇 장을 읽어보니 저처럼 머릿속이 늘 혼란한 사람에게 아주 좋은 책이기에 읽게 되었습니다. 

   아이큐가 멘사 수준으로 좋아서 정리와 암기를 탁월하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내용을 받아들일 때 핵심만 간략화, 도표화하면 무척 좋습니다. 디테일은 잊어버리더라도 최소한의 틀은 기억을 하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서양 철학이 늘 어렵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최적화된 책입니다. 

   서양철학의 흐름을 크게 세 덩어리로 잘라서 분류하고 각각 덩어리 안에 또 세분화해서 몇 가지 큰 건더기로 분류하는 방식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시간이 없거나 크게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앞부분 서문 몇 장만 읽어도 서양철학의 기본 틀은 이해하게 되는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 책장에 꽂아 두고 가끔 서문만 다시 읽으면서 도표만 확인해도 좋을 책입니다.               

                                     






2. 인간이 철학을 공부하고 알아야 하는 이유                                                    


   철학서적을 읽다 보면 참 신기합니다. 뭣 때문에 그렇게까지 세상의 시작과 원리가 궁금한 것일까요? 왜 그걸 꼭 정의하고 설명하려 드는 걸까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미 부여를 하고 싶은 욕망인지 단순히 앎과 깨달음에 대한 욕망인지 모르겠습니다. 짐승처럼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싸고 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주위를 둘러보면 어지간히 복잡한 것은 아웃 오브 안중이고 그저 먹고 주머니를 채우는 데만 관심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렇다면 아니 어쩌면 그게 더 행복에 가까운 걸까요? 저는 사실 나태하고픈 욕망이 더 많습니다. 변화도 싫고 그냥저냥 유도리를 최대한 발휘하면서 매우 편안하게 살고 싶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개개인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쉬도록 두는 녹녹한 사회는 아닙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공동체적으로도 매우 문제가 많고 미래가 암울한 체제인 것이 사실입니다. 딱히 모두가 합의하는 더 나은 체제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바꾸기가 매우 어렵도록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흘러가는 것이지요.

   인간은 자신이 아는 만큼 세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과 장성해 견문을 넓힌 성인이 세상을 인식하는 수준은 상당한 차이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런데 견문을 넓히는데 있어서 드넓은 세상을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이미 앞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철학자들의 결과물을 참고하는 것은 짧은 시간에 내 삶을 더 의미 있고 고귀하게 만들어 줄 확률을 높이는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이 던진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의 비유는 사실상 돼지 비하 발언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배고픈 소크라테스처럼 살아야 하는 것인지, 차라리 배부른 돼지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사실상 배부른 돼지의 승리로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별다른 고민 없이 자본주의 체제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삶이 더 잘 사는 삶처럼 보이는 시대가 이미 완성되어 있습니다. 지나친 일반화이기는 합니다만 많이 배운 사람이나, 직업이 좋고 나쁜 사람이나 지역에 관계없이 모든 의사결정은 "내 집값이 오른다면 그것이 최선이다"라는 의지로 귀결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나마 배부른 돼지가 되기도 참으로 힘든 세상이 아닙니까? 대부분이 배고픈 돼지 형편인 지금 세상이 딱히 완벽해 보이지는 않으니 우리가 나아가야 할 이상향은 멀리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아직도 소크라테스처럼 고차원적인 인간의 이상을 고민하고 철학과 사상을 확립해 우리의 삶의 태도를 바꾸려는 노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폴란드의 정치사상 연구가인 리샤르드 레구코는 역사학자 이병한 박사와의 대담을 통해 소크라테스와 돼지의 대립에 대한 뼈아픈 지적을 합니다.(책 내용은 아닙니다만..)

고귀한 인간과 그러하지 못한 인간을 평등하게 대접하는 것을 마땅한 것이라고 간주합니다. 더 높은 인간적 경지를 향하여 절차탁마하는 인간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반복하는 인간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말해요. 그것을 '인권 존중'이라고 포장하지요. 그래서 소크라테스형 인간은 졸지에 엘리트주의로, 권위주의로 치부됩니다. 심지어 민주주의적 심성에 위배된다고 비판받습니다. 어느새 배부른 돼지가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강력한 도전자 지위까지 올라선 것입니다. 아니 이미 이겨버린 것 같아요. 이 평균화 과정을 '민주화'인양 호도하는 것입니다. 실로 '보통 사람'들이 승리한 시대이죠.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68585


   우리가 인간의 본질과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고민을 포기하고 '보통 사람'에 머물기로 결정하는 순간, 자유민주주의는 갈 길을 잃고 표류하기 십상입니다. 불완전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위험성을 보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체제의 근간이 되는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바람직한(또는 그렇다고 믿는) 가치관을 정립하고 끊임없이 수정하고 개선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고전 철학도 알아야 하고 현대 사상가나 철학자의 고민과 결과물을 들여다보고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3. 서양철학의 특징과 동양철학의 특징? 일본 성향을 착각한 것은 아닌지...                                                    


   이 책에서 주야장천 주장하는 바는 서양철학의 힘은 "이전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려는 불굴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지나온 과거를 살펴보고 평가를 하다 보면 적절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에 비해 다른 동양의 특성이랄까? 이 부분에서 딱히 동의하기 힘든 부분들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양인들은 이러하다'라는 저자의 주장이 저에게는 '일본인들은 이러하다'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민족성이나 특성이 다른 동양인들과 동일한가? 유사한가?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렇지 않다"라고 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일본인들은 그들만의 사고방식이 있고 여타 동양의 다른 나라와 매우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와도 마찬가지죠. 사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나 흐름에서 이 부분이 딱히 큰 비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왠지 무척 거슬려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 이런저런 예를 들 때 '우리 일본인들은~~' 같은 내용이 많이 나오다 보니 본문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안 되었습니다. 이 역시나 서양철학에 대한 흐름과 체계를 잡는 것이 책의 주요 내용이라고 볼 때 큰 비중이 아니고 무시하고 읽어도 큰 무리가 없는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꼰대력을 극대화하는 역린 같은 것이어서 매우 많이 불편했습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저는 마음이 바다와 같이 넓고 인자와 관대함이 흘러넘치는 캐릭터였지요.... 그렇습니다. 조금 불편할 뻔했지만 다 이해합니다. 글 쓴 사람이 아무리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이라 한들 어쨌거나 일본인이고 일본인의 관점에서 쓴 책이니까 말입니다. 

   또 한 가지는, 방대한 내용을 요약하고 단순화하다 보니 각 철학 사조에 대해 정리된 내용에 일부 왜곡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겠다는 점이 걸립니다. 저처럼 철학알못 같은 독자들의 인식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 살짝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후반부로 갈수록 각 철학자들의 생각이 나 저서의 내용을 정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저자의 평가가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저자의 시각과 관점에서 이들을 평가하고 의미 부여를 하는 경우가 제법 보입니다. 그런데 왠지 꼭 그런 게 맞나 싶은 의문이 들게 되는 것이죠. 

   아, 고만합시다. 무척 유명한 저자고 잘 팔린 책인데다가 내용도 좋았는데 딴지가 너무 길었습니다. 저는... 관대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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