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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Nov 21. 2018

관계를 읽는 시간 : 바운더리 심리학

균형 잡힌 인간관계, 정적 거리의 법칙, 바운더리의 심리학


1. 바운더리 : 인간관계에서 자아와의 균형을 조절해주는 핵심


  누구나 살면서 주변에 뭔가 이상하다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과잉친절을 베풀면서 요구하지도 않은 일까지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유욕이 너무 강해서 함께 있으면 매우 불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연인 관계이면서도 상대방에게 원인을 돌리면서 폭언과 폭력까지 휘두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폭력의 상황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순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심리학자이자 다양한 상담 경험으로 이 문제를 고민해오신 저자 문요한 선생님은 "관계를 읽는 시간"에서 이런 문제의 원인을 나와 너를 구분하는 경계가 혼란스럽고, 수평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관계에서 자아와의 균형을 조절해주는 바운더리가 잘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운더리"라고 하니 뭔가 생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많이 듣던 소리 같은데?'싶기도 합니다. 사실 심리학적 문제에 대한 책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책이 워낙 비슷한 내용들이 많고 들어도 들어도 해결이 잘 안되다 보니 반복의 미를 최대한 살린 책들이 많습니다. 이 책도 전혀 새로운 범주에 가 있는 책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어쨌거나 바운더리라는 새로운 개념어를 들고 나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부분에 있어서는 긍정적이라는 생각으로 읽었습니다.                                                     





2. "바운더리"의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우리에게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자아와 대상과의 경계이자 통로"라는 정의의 바운더리가 이토록 익숙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시나 용어가 새롭기는 해도 이거슨 흡사 신분 세탁과 비슷합니다. 내용은 같은데 용어만 바뀐 느낌이랄까... 바운더리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한 세기를 뒤흔들며 수많은 덕후를 양산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이 떠오르는 것이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나무 위키의 설명에 따르면 위 장면에서 나기사 카오루는 AT 필드에 대해 "어떤 사람에게도 범해 지지 않는 성스러운 영역, 마음의 빛. (중략) AT 필드는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벽이라는 것을"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나를 나로 있게 해 주는 힘'이자 '인에 대한 공포'혹은 '타인에게서 거리를 유지하려는 본능'에서 나오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강력한 적인 "사도"는 엄청나게 강한 AT 필드를 펼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로가 이해하고 마음을 열어서 하나가 되고 싶은 욕구가 있음에도 외부 방어막인 AT 필드가 너무 강했던 사도들은 자신을 외부 세계와 단절시키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AT 필드가 약해서 오히려 '하나가 되려는 욕구'에 영향을 많이 받고 지속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면서 서로에게 다가가려고 했으며,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결론 격인 "인류 보완계획"은 결국 인간들의 AT 필드를 없애 하나가 되며 분쟁도 갈등도 사라진 이상적인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뭔가 허무맹랑해 보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철학적이라 부담스럽기까지 한 이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하는 AT 필드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 문제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AT 필드가 강력한 "사도"는 저자가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경직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에 해당합니다. 즉, 타인과 교류하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지나치게 폐쇄적인 상태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요. 반면 AT 필드가 약한 "인간"은 이 책에서 설명하는 희미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에 해당합니다. 남과 나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아를 보호하지 못할 정도의 상태인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편, 저자는 그 유명한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그리스 신화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에코와 나르키소스 이야기로 위 두 개념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나르시시즘을 설명할 때 주로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여기서는 나르키소스 외에 에코에도 주의를 집중해서 두 개념을 적절히 설명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덕분에 "변신 이야기"를 찾아서 읽게 되어 책이 책을 부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야기 속에 에코는 희미한 바운더리를, 나르키소스는 경직된 바운더리를 상징합니다. 슬프게도 둘 다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운더리가 건강하지 못하면 비극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바운더리가 건강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과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


   이 책의 리뷰는 정말 웃음기를 쏙 뺀 진지하고도 학구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냥 책을 읽어보시면 다들 알게 될 내용을 제가 왜 굳이 정리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책에서 설명하는 바운더리에 문제가 있을 때 나타나는 유형에 대해 그래프를 그려봤기 때문에 굳이 써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겨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자는 바운더리에 문제가 생기는 근본 이유에 대해서 어린 시절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지 못하고 부모와의 애착형성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으로 크게 보고 있습니다. 제가 좀 싫어하는 트라우마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고, 어쨌거나 건강한 정신 상태는 좋은 부모가 필수입니다. 

   자아 분화가 과분화가 되었느냐 미분화가 되었느냐를 세로축으로, 관계 교류가 지나치게 억제되었느냐 탈억제 되었느냐를 가로축으로 놓았을 때, 순응형과 방어형, 지배형, 돌봄형 등으로 네 가지의 불완전한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보고 확인하도록 합시다. 이쯤 했으면 되었습니다. 


   저자는 가열차게 바운더리가 건강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를 다섯 가지나 소개하고 있습니다. 관계 조절력, 상호 존중감,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 갈등 회복력, 솔직한 자기표현 등입니다. 거 뭐. 이 정도면 되었습니다. 더 궁금하시면 각자 찾아보시는 것으로 합시다. 힘듭니다.    


   참, 저자가 지적하는 부분 중에 상당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자기애는 바운더리 형성에 핵심이지만 최근 우리 사회가 불행한 진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만 사랑하느라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문화가 점점 더 장악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적을 대하면서 최근 읽은 "골든아워"도 생각나고 "닥터헬기 소음 민원" 사건도 생각나서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바운더리가 건강한 사람들이 성숙했을 때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성숙한다는 점을 밝히면서 희망적으로 끝내고 있습니다. 즉, "자아가 확장되면서 이웃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며, 좀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실천하게 된다"라고 합니다. 바운더리를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이유를 "자신을 채움과 동시에 공동체에 공헌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개인의 문제를 살피는 것은 물론 원인과 증상, 실제적인 개선 방법을 제시하고 궁극적인 방향 제시까지 알차게 정리한 "인간관계를 읽는 시간"은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역시나 또 생긴 대로 살게 되겠지만요. 그래야 이런 심리학 저자분들도 또 계속 먹고 사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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