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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Nov 25. 2018

골든아워2 - 여전히 제자리인 중증외상센터의 현실

이국종 교수 - 골든아워2



1. 우리 사회가 불행한 이유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 1,2권을 읽으면서 중증외상센터의 현실은 물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고민을 하던 차에 관련 뉴스를 접했습니다. ["닥터헬기 시끄럽다" 민원에... 외상센터 폐쇄 위기]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내용을 읽지 않아도 주변 아파트 주민이 헬기 소리가 시끄럽다고 헬기 못 다니게 하라는 민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내용일 것이 뻔했습니다. 헬기 소리가 시끄럽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공동체적 공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렇게 말초적으로 불편해하기도 어려울 텐데 거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뜩이나 책의 내용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더 한심한 기사였습니다. 

   위 기사에 달린 댓글과 댓글에 달린 대 댓글을 하나씩 살펴보니 온라인상에 넘쳐나는 혐오의 정서가 적나라하게 읽혀서 그 또한 마음이 아팠습니다. 민원을 넣은 주민들을 혐오하는 글이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그 주민들은 병원에서 진료하지 말라거나 본인이나 가족이 큰 사고를 당했는데 헬기를 못써서 목숨을 잃어봐야 정신 차리겠냐는 댓글 등이 그야말로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주변 주민들의 태도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불편하면 공공기관에 민원을 넣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태도 역시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민원을 접수한 기관이 무책임하게 병원과 민원인끼리 해결하라고 쏙 빠져버리는 태도입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다양한 심리학 서적을 저술한 문요한씨는 최근 저서 "관계를 읽는 시간"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과 집단의 조화이며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수렴이다. (중략) 우리 사회가 불행한 진짜 이유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만 사랑하느라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문화가 점점 더 장악해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개인의 자존감 회복도 중요하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발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위 지적처럼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재산 유무나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타인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고 사회 구성원인 타인을 위해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아줄 줄 아는 지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타인이 사실은 잠재적으로 내가 될 수도 있고, 내 가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 경조사에서 경조사비를 내고 내가 경조사를 당할 때 받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내가 참은 만큼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사회적 보험이라 생각하고 참아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에게 좀 익숙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에  2호선 전동차는 많으면 외선 한쪽 방향에만 34대까지 투입됩니다. 한량에 많으면 200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탑승합니다. 대충 가장 승객이 많은 시간에 한량에 200명이 탄다고 가정하면 한 편성에 2,000명이 탑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더 많이 탑니다만) 그럼 총 승객수는 2,000X34=68,000명입니다. 약 7만 명에 가깝습니다. 엄청난 인원이죠? 

   이때 갑자기 한 승객이 비상통화장치를 들고 뭔가 승무원에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승무원이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전동차를 세워 둔 상태로 비상통화장치가 울린 곳으로 달려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달려가보니 어르신께서 춥다는 민원을 넣으셨다고 합니다. 승객 한 분의 의견이 소중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비상통화장치라는 것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상상황"에 긴급한 내용을 승무원이나 관제센터로 알리기 위해 있는 장치입니다. 내가 전동차에서 추위를 느끼는 일이 "비상상황"에 해당할까요? 

   2호선은 순환선이기 때문에 한 대가 멈춰 서 있으면 모든 열차가 덩달아 서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이 민원을 확인하기 위해 열차를 5분 동안 세워뒀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모든 열차가 5분의 지연이 발생하게 됩니다. 위에서 봤듯이 대략 7만 명의 소중한 5분이 한 분의 추위를 느끼는 상황 때문에 소비되었습니다. 환산하면 35만 분이 날아간 것이죠. 한 사람의 소중한 승객이 한 별생각 없는 행동이 35만 분의 시간을 공중으로 날려버립니다. 관제센터에서 하루에도 수도 없이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저로서는 즐겁게 받아들이기 참 힘든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너무도 소중한 나"를 위해 '어쩌면 더 소중한 공동체의 타인"을 소비합니다. 이런 피해 의식이 쌓여 점점 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2.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


   사실 저는 골든아워 1 권을 읽으면서 무척 답답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도 했습니다. 책의 흐름을 볼 때, 2권은 최근의 상황을 서술한 내용이 등장할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중증외상센터가 생긴 초반에는 정말 드럽게도 힘들고 답도 없었지만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국가적 지원 시스템도 갖춰져서 결국 많은 부분에 진보가 있었다."라는 내용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문제가 많았던 정권을 평화적인 촛불집회로 모은 민의를 통해 교체하지 않았던가요? 문제가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의지로 고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보지 않았습니까? 그렇기에, 정권이 바뀐 이후는 적극적이고 공평 정대한 방향으로 시스템의 수정이 이루어지고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저자의 고백을 듣고 싶었던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월호 사건 때 출동했던 경험담을 읽으면서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막연한 분노와 혐오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태도지만 여러 경로로 당시 사고에 대응하는 정부와 관련 기관들의 모습을 대하면서 강한 분노를 느꼈던 기억이 떠오르고 말았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둠의 히어로가 되어서 교정적 정의를 실현하고 싶은 마음이 쏟구칩니다. 제가 히어로가 아니라 다행입니다. 

   저의 희망과 기대와는 전혀 무관하게 골든아워는 2권이 끝나는 시점까지도 조금도 희망적인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왜 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는데, 중증 외상센터의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못했을까요? 왜 우리 사회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일까요? 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사람을 살리려는 이들의 노력을 외면하기만 하는 걸까요? 

   거대한 정부 기관이 움직이는 생리를 저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보니 이국종 교수의 답답함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그 이면에 어떤 방식으로 이들의 실무를 방해하는 쪽으로 작동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하게 느끼는 무기력함이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과연 제가 죽기 전에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3. 이국종 교수가 욕을 먹는 근본 이유


   최근에는 이국종 교수가 언론에 많이 등장하는데 이를 못마땅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국종 교수를 싫어하는 분들 중에 특히 북한 병사의 수술 내용을 오픈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과연 북한 병사의 상태를 브리핑할지 말지를 의사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이국종 교수가 오픈을 한 것으로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 브리핑을 언론을 통해 오픈할지 말지 결정권이 있는 지위체계의 태도를 비난해야 정당합니다. 이 병사가 딱히 보호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군에서도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으므로 필요하면 통제를 했어야 할 문제인데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태도를 오히려 비난해야 옳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때의 상황에 대해 이국종 교수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환자에 대한 모든 것은 보안에 붙여졌다. 국군 기무사령부와 국정원, 경찰, 지역 육군 사단까지 인원을 보내 철통 경비를 한다고 했다. 보안구역까지 정해서 지켰다. 그런데도 환자의 모든 정보는 실시간으로 빠져나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민간 병원에 있기 때문에 보안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군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기막혔다. 어떤 경로로 정보가 빠져나가는지 짐작이 갔으나 이번에도 나는 입을 닫고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지겹고 귀찮았다. 
(중략)
2차 수술이 끝난 뒤, 환자 상태에 대한 브리핑에서 기생충에 대해 언급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날 선 비판이 튀어나왔다. 나는 조직에 속한 일개 외과 의사일 뿐이다. 환자는 군을 비롯해 국가 기관의 관리를 받고 있고, 이 환자에 관한 한 내 의지는 끼어들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내 뜻과 무관하게 그 말들 한가운데에 놓였다. 말이 말을 낳는, 말의 잔치 속에서 이리저리 뒤채는 인생이 한심스러웠다.


   이국종 교수와 아주대 중증외상센터가 구설수에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한민국의 만국 병 중 하나인 차별입니다. 아주대는 지방에 있을 뿐 아니라 역사가 깊지도 않고, 아주대 병원은 상대적으로 규모도 권한도 작은 지방대학병원입니다. 일반인들은 그게 뭐 어떠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문제겠지요. 군대에서 육군사관학교 출신과 삼사관 학교 출신의 진급이 차이가 심한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서울의 종합대학병원 출신의 수많은 의사들이 보기에 아주대 중증외상센터의 이국종 교수는 허접한 의사일 뿐일 겁니다. 서울대 출신들이 연, 고대 출신을 무시하고 스카이 출신이 서울 4년제 대학 출신을 무시하며, 인 서울 출신이 지방대 출신을 무시하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가 아닙니까? 

   회사에서도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떤 회사에 다니다 왔는지 등등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우리가 매일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출신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예단하며 이미 평가를 내려버리는 놀라운 사회, 아이들 사이에 입고 있는 패딩의 가격으로, 살고 있는 아파트와 평수로 상대의 등급을 정해버리는 사회. 이국종 교수를 폄하하고 깎아내리는 태도의 이면은 바로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천박함"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갑질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와도 다름이 없는 이런 태도야말로 가장 먼저 타파해야 할 적폐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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