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돈다돌아 Dec 01. 2018

모털 엔진 - 탁월한 미래학 교과서 같은 SF 소설

영화 모털 엔진 원작 소설 흥미진진한 모험과 성장, 견인도시연대기 첫 편




1. 피터 잭슨이 선택한 환상의 세계


   저에게는 사실상 생소했던 "견인 도시 연대기"의 첫 번째 작품 "모털 엔진"은 피터 잭슨 감독 때문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고무 인간의 최후]라는 걸작 마스터피스를 만든 감독이자 이후 소소하게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호빗] 시리즈까지 대중성을 확보한 피터 잭슨 감독은 원작이 가진 세계를 가장 충실하게 영화화하면서도 새로운 매력을 불어넣을 줄 아는 감독입니다. 

   피터 잭슨 감독이 각본에 참여하고 제작한 영화가 "모털 엔진"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 양반의 원작을 선택하는 안목을 믿었기 때문에 이 책은 무조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의 제목이 "임모털 엔진"이 아니라 "모털 엔진"이었기 때문에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소설이었습니다. 게다가 단순히 재미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생각할 이슈를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모털 엔진"이 필립 리브의 첫 작품이라고 하니 이 양반 거의 "물괴... 가 아니라 괴물" 수준입니다. 이런 천재 같은 사람들이 어디서 튀어나오나 모르겠습니다. 근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런 시리즈를 저는 왜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로 소설은 엄청난 수준을 자랑합니다. 하기야 SF의 불모지 한국에서 얼마나 관심을 받았을까 싶기는 합니다만, 이 번 영화를 계기로 원작 소설에도 많은 관심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청소년 SF, 액션, 어드밴처, 스릴러, 하드보일드, 판타지, 로맨스, 사회파 소설


   개인적으로 모든 장르 소설을 환영하는 편이지만 하위 장르를 막론하고 제가 선호하지 않는 설정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어린아이인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대체로 성장소설로 흘러가기 마련이고 다양한 혼란과 난관을 딛고 성장하는 캐릭터를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한 장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확실한 이점이 있는 설정입니다.. 그러나 저는 주인공이 아이인 경우 어지간하면 감정이입이 잘 안되는 무미건조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보니 일단 좀 꺼리게 되는 입장입니다.

   움직이는 도시라는 컨셉 외에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소설을 읽다 보니 주인공이 남, 여 아이여서 걱정이 앞섰습니다. 제가 아무리 퓨어하고 바다처럼 드넓은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공감이 안되면 소설 읽기가 매우 힘겨워지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어린 주인공을 꺼리는 것은 저의 어린 시절과 비교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거의 진공에 가까운 순수한 뇌를 유지하며 하루하루를 멍하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너무나 어른스럽고 탁월한데다가 고난 앞에서 의연합니다. 게다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도 하고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일을 하지요. 너무나 동화적인 일입니다. 그래야 소설이 되기는 합니다만... 

   저자는 어린 남, 여 주인공을 데리고 너무나 훌륭한 성장 소설을 완성시켰습니다. 약점도 확실하고 부족한 점 많은 주인공들이 온갖 고난과 모험을 끝까지 이겨내며 결국 서로 단단히 의지하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읽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눙물이... 크흙흙... 저도 어린 시절을 이렇게 고난과 맞서 싸우며 보냈다면 세상을 구할 훌륭한 의인이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가능한 족족 회피하며 구차하게 연명해온 인생이다 보니 거 참 민망하기만 합니다. 이 마음의 눙물은 주인공을 향한 감탄의 눙물인지 회한의 눙물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정말 대단한 것은 공식적으로 SF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하나의 하위 장르로 국한하기에는 너무나 다채로운 내용과 설정을 잘 버무려 넣어 맛있는 퓨전 요리로 완성해 내어놓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신없이 읽고 나니 도대체 이 소설이 SF 인지 판타지인지 뭔지 딱 잘라 한 장르에 욱여넣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F 기반의 청소년 성장 소설이자, 뛰어난 액션, 어드밴처, 스릴러인데다가 놀라운 하드보일드이기도 합니다. 주인공들이 온통 깨지고 부딪히고 망가지기를 반복합니다. 안쓰러울 정도로 말입니다. 작가가 창조한 세상은 미래의 세계이기도 하면서 가본 적 없는 새로운 세계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점에서는 판타지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뛰고 날고 기고 다치고 온갖 고난을 겪는 와중에 주인공 간의 로맨스도 시나브로 익어갑니다. 독자들의 마음에도 슬며시 스며드는 이 신선한 로맨스는 식상하지 않고 설득력 있어 기분 좋은 로맨스입니다. 

   여기서 그쳤다면 그저 재미있는 청소년 SF라고 치부되었겠지만, 이 소설 속에 녹아있는 세계관과 인간에 대한 이해, 과거와 미래를 조망하는 작가의 시선이 탁월합니다. 훌륭한 사회파 소설이기도 하고, 인류학이자 미래학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읽으면서 다양한 사고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3. 성장 Vs 분배, 인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고찰이 돋보이는 소설


   "모털 엔진"에 등장하는 핵심 아이디어는 움직이는 [견인 도시]입니다. 60분 전쟁이라고 불리는 세계 전쟁의 발발로 인해 전 지구적인 폭망을 겪은 이후 최신 통신 기술 등, 모든 신기술을 잃어버리고 고전적인 기계 기술만 남은 미래에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작중 인물인 니콜라스 쿼크의 "도시진화론"에 기반한 움직이는 도시들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큰 도시가 작은 도시를 끊임없이 사냥하며 성장과 진화를 반복합니다. 한정된 땅에서 생성된 도시들은 서로 통폐합을 거치며 결국 거대한 몇 개 도시들만 남게 되고 결국은 사냥감이 없어 성장을 멈추고 정지, 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운명은 태생부터 결정된 종말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시진화론은 지구 환경이 안정된 이후에도 여전히 종교처럼 신봉되어 정작 생활은 미개한 것으로 경멸하며 끊임없이 적자생존의 생활을 반복합니다. 

   이런 기본 설정에만도 인간의 역사에 나타난 여러 가지 시사점을 풍성하게 품고 있습니다. 성장 일변도로 국가 간 지역 간, 계층 간 빈부격차를 계속 늘려가는 우리 인류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딱히 획기적인 대안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자본가에게 모든 부가 집중되는 자본주의가 마치 궁극의 진리인 양 굳건히 인간을 옥죄고 있는 현대 사회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작품 속에 핵심적으로 등장하는 견인 도시 "런던"의 시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다른 견인 도시를 잡아먹고 약탈하는 순간에도 그들의 행위가 타인에게 폭력적이며 반인류적이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고 오히려 박수와 환호를 보냅니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신념을 견지합니다. 이는 사실상 짐승들의 적자생존적 태도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습니다. 조만간 사냥할 도시가 없어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지만 시장이, 누군가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현실을 외면합니다. 



   그런가 하면 도시 내부에서도 심각한 계층 격차가 존재합니다. 작품 속에 묘사된 견인 도시 "런던"은 다층 구조로 된 거대한 구조물입니다. 당연히 고층은 최고위층이 호화롭게 생활합니다. 아래로 갈수록 지위가 낮은 시민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거대한 "도시"를 운영하고 움직이기 위해 고혈을 짜냅니다. 최하층에 위치한 "죄수"들에게는 인간의 기본권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다수의 비자발적인, 강요된 희생으로 말미암아 괴물 같은 견인 도시가 굴러갑니다. 마치 설국열차를 위로 세워놓은 것만 같은 구조입니다. 저자는 성장이 절대선이 된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소설 속에 구현해 내고 있습니다.

   더 이상 도시가 도시를 잡아먹는 방식으로 생존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인데도 발전적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도시진화론자"들과 대치되는 존재가  바로 반 견인 도시주의자 들입니다. 이들은 정착해 땅을 가꾸며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갈 것을 주장하며 초대형 "도시"들과 대립합니다. 도시가 침입하지 못하게 강대한 방호벽을 건설하고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살아갑니다. 마치 수렵시대와 농경시대가 대립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소설은 당연히 두 세력이 극단으로 치닫는 대립을 하도록 이끌고 그 과정에서 전쟁 같은 대립의 한 가운데 주인공들을 던져 놓습니다. 폭풍 같은 혼란의 한가운데 던져져 모험을 겪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세계 속에 던져진 우리 개개인의 흔들리는 운명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의반 타의 반이기는 하지만 몇몇의 의지가 세상을 나락으로 끌고 가기도 하고, 최악의 상황에서 구원하기도 합니다. 소설 속에서는 견인 도시 "런던"의 시장이 그런 인물입니다. 내가 속한 도시, 나의 위치가 공고해지기만 한다면 나머지는 다 죽이고 없애도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지요. 늘 그렇듯이 이런 계획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최악의 상황을 피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라집니다. 

   국가 간, 민족 간, 종교 간, 계층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현실 세계의 인류는 산적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평화롭고 조화를 사랑하는 선한 의지와 미래를 조망하는 혜안을 가진 사람들이 개인의 이익이면 무슨 짓이든 하는 욕망의 광풍에 휩싸인 "런던 시장" 같은 자들로부터 어떻게든 세상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종말이 예정된 "견인 도시"에서 멈추는 결단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과연 저자는 시리즈의 다음 권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골든아워2 - 여전히 제자리인 중증외상센터의 현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